커버스토리 제 961호 (2014년 04월)

[곡물가 폭등, 재앙은 시작됐다] 쌀 개방 ‘초읽기’…빗장 풀 준비됐나

식량 자주권 우려…해외 비축하고 곡물 스와핑 추진해야

20세기에 세계 인구는 15억 명에서 61억 명으로 증가하고 세계 곡물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했지만 품종 개발과 화학비료 사용으로 생산 통계(단수)가 급격히 증가, 맬서스의 예언과 달리 지난 100여 년간 곡물의 실질적인 가격은 계속 하락하는 풍요로운 시대를 보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식량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자 옥수수 소비 증가의 65%, 식물성 유지 소비 증가의 37%가 바이오 연료 생산에 이용됐고 그 결과 모든 곡물의 재고가 일시에 감소해 2008년의 곡물 파동이 일어났다. 그 후에도 세계 곳곳의 기상이변으로 가격 폭등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앞으로는 중국의 곡물 수요 폭발이 또 다른 파동을 불러오지 않을까 모두가 우려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한국은 이제까지 주식인 쌀의 수입을 엄격히 통제, 자급 기반을 유지해 왔고 그것이 식량자급률을 24% 수준이나마 유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 돼 왔다. 그러나 쌀 수입 통제의 근거가 됐던 ‘관세화 유예’라는 특별조치가 올해로 끝난다. 한국은 20년간 두 차례(1995~2004년, 2005~2014년) 개방이 유예됐다. 그 대신 일정 물량을 의무 수입해 왔다. 쌀은 총 열량 섭취의 15%를 차지하는 핵심 식량이고 자급 기반을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곡물이므로 쌀 시장의 전면적인 개방은 식량 안보에 대한 위기감을 더욱 높일 수밖에 없다.


20년을 끌어 온 쌀 시장 개방
일부에서는 2015년 이후에도 ‘관세화 유예’ 조치를 연장하는 것, 다시 말하면 쌀 시장 개방을 연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루과이 라운드 협정문을 세밀히 살펴보면 한국 쌀에 대한 관세화 유예는 한시적 조치였고 따라서 그 시한이 끝나는 2015년에는 관세화를 통해 시장을 개방해야 하는 것은 명백하다고 생각된다.


한국은 필요한 농산물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관세화하지 않는 유일한 길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이른바 웨이버 조항에 의해 일시적 의무 면제를 받는 것인데, 그 일시적 조치나마 받으려면 WTO 회원국 4분의 3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그 동의를 받기 위해서는 이해 당사국들에 TRQ(관세화 유예의 대가로 수입하게 되어 있는 이른바 저율 관세 수입 쿼터) 증량은 물론 여러 가지 혜택을 제공해야 하므로 전혀 실익이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로 한국과 매우 유사한 처지에 있는 필리핀이 궁여지책으로 웨이버 조항을 적용해 일시적 의무 면제를 받으려고 하고 있지만 단지 5년간의 면제에 TRQ를 무려 2.3배나 늘려 주는 조건으로도 아직 동의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제는 쌀시장을 개방하되 관세를 충분히 높여 수입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드는 것이 쌀 자급 기반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안이 됐다. 다행히 우리가 준비를 철저히 해 WTO 회원국들의 검증 공세를 잘 방어한다면 500%가 넘는 관세를 부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고 그렇게 된다면 이미 수입되고 있는 TRQ 40만7000톤 이외에 쌀이 수입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쌀은 시장 개방에도 불구하고 자급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식량 안보 문제로 돌아가자.

식량 안보 문제를 논의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첫째, 식량 위기관리 체계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불필요한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21세기 식량 수급은 에너지 수요와 대체에너지 기술 개발 등에 따라 바이오 연료 수요가 얼마나 증가하느냐와 유전자 변형 농산물(GMO) 등 생산(단수) 증가 기술, 기후변화 등 공급 요인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중국의 경제 발전과 농업 생산이 어떻게 달라지고 투기 자금이 어디로 튈 것인지에 따라 세계 곡물 가격은 폭등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가령, 실질 가격으로 보면 2008년의 가격 폭등은 20세기의 장기적 가격 하락 추세 속에서 나타난 파동의 하나이며 이미 장기적 슈퍼 사이클의 하강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둘째, 한국은 국민 1인당 농지 면적이 380㎡로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일본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적어 놀랍게도 중국이나 네덜란드의 3분의 1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현재의 기술 조건 아래서는 쌀까지 생산을 포기하고 농지를 전부 사료를 생산하는 데 투입해도 축산물을 자급하기 어려운 게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돈 주고도 곡물 못 사는 상황 벌어질 수도
셋째, 식량 위기 대응 시스템이 어떤 상황에 대비하려는 것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 극단적인 상황은 세계적으로 공급이 구조적으로 부족해 해외 조달이 안 되거나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경우이고 또 다른 상황은 단기적 공급 부족 혹은 물류 이상으로 국제시장에서 일시적으로 곡물을 조달하기 어려워지는 경우이며 각각의 경우에 따라 대처 방안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한국이 현재 수준의 소비를 유지하려면 식량의 상당 부분을 해외 생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므로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식량 공급 부족 상황에 대비하려면 식량 수급을 전체적으로 통제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가령 축산물 소비와 생산을 줄이는 등의 방법으로 곡물 수요를 줄이고, 농지 이용과 농산물 소비를 엄격하게 통제하는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대로 식량 수급은 지구환경과 경제 시스템에서 결정돼 수급과 가격 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러한 통제 위주의 대책을 세우는 것은 비용이 너무 크고 국민적 합의를 얻기도 어렵다. 또한 그러한 상황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기보다 일시적 공급 부족이 반복되면서 점진적으로 진행될 것이므로 그런 추세를 주시하며 단계적으로 대책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식량 안보 체제는 흉작이나 물류 라인의 장애 등에 의해 일시적으로 물량을 확보하기 어렵거나 가격이 폭등하는 상황에 대비하는 것에 목표를 두는 것이 현실적이고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수급이 빠듯해 세계 재고가 적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이런 일은 빈발할 가능성이 높고 이미 우리가 경험하고 있다.

일시적 공급 부족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국내외에 적절한 양의 곡물을 비축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러나 국내 비축보다 공급 부족 시 즉시 도입할 수 있는 곡물을 해외에 비축하는 것이 효율적 대안이 될 수도 있다. 특히 한국이 국제 곡물 유통 사업을 하면 산지와 수출 엘리베이터, 산지로부터 수출항까지의 운반선이나 철도, 수출항으로부터 국내 항까지의 선박 등에 항상 상당한 재고가 있으므로 이것이 곧 해외 비축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재고를 유사시 활용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게 비용을 가장 적게 들이는 안보 수단이 될 수 있다. 또한 외환과 같이 유사시 다른 나라와 식량을 서로 교환하는 스와핑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이정환 GS&J인스티튜트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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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4-05-13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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