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1238호 (2019년 08월 21일)

박용준 삼진인터내셔널 대표 "쇠락하던 70년 어묵 시장 확 바꿨죠”

[커버스토리 : 젊은 2세 경영인 3040 혁신 성공기]
-커피업계 벤치마킹·소비자 직접 공략…베이커리형 매장’으로 6년 만에 매출 10배 성장 


(박용준 삼진인터내셔널 대표 약력 : 1983년생. 2010년 뉴욕시립대 회계학과 졸업. 2018년 삼진식품·삼진어묵 대표. 2019년 삼진인터내셔널 대표(현).)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반찬용과 꼬치용. 삼진어묵이 탄생하기 전 어묵의 용도는 딱 두 가지로 나뉘었다. 모든 공장이 약속이라도 한 듯 ‘납작한 사각 어묵’을 생산했고 시장은 70여 년 동안 표준화돼 있었다.

어묵을 사기 위해 소비자들이 줄을 서거나 80여 종의 어묵을 골라 먹을 일도 없었다. 2013년 박용준(36) 삼진인터내셔널 대표(삼진어묵 전 대표)가 베이커리형 어묵을 선보이면서 어묵의 위상이 달라졌다.

박 대표는 고정관념을 깨고 세상에 없던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길거리 음식으로 치부되던 어묵을 백화점에 입점시켰고 세계 각지에 수출했다. 그 결과 박 대표 취임 6년 만인 지난해 삼진어묵의 정직원은 45명에서 550명, 매출은 82억원에서 920억원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B2B에서 B2C로 전환

66년. 3대째 어묵 외길을 걷고 있는 삼진어묵은 현존하는 어묵 제조회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 1953년 피란민들이 부산에 몰려들면서 저렴한 단백질 공급원을 제공하기 위해 박 대표의 할아버지인 고(故) 박재덕 창업자가 사업을 시작했다.

2세 박종수 회장은 생산 공장 설비를 구축하고 산업화해 나갔다.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매출 20억원 규모를 유지해 왔다. 3세 박용준 대표는 가업 승계를 원하지 않았다. 1년 365일을 쉴 틈 없이 일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며 어묵 공장 최고경영자(CEO) 대신 미국에서 회계사의 길을 걷고자 했다. 하지만 건강에 위협을 느낀 박 회장의 권유로 한국에 들어왔고 어묵 산업이 처한 현실을 마주했다.

박 대표가 한국에 들어온 2011년 회사도, 시장도 도태되고 있었다. 회사는 공장 가동률이 저하됐고 부채가 증가해 위기에 놓여 있었다. 어묵 산업은 성장이 없는 사양산업이었다. 대형 유통 채널은 대기업이 꽉 잡고 있었고 도매상과 전통 재래시장에 납품하는 작은 생산 공장은 이미 레드오션이었다. 광복 이후 70여 년간 그 누구도 어묵 산업에 혁신을 가져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묵 업체들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가격 경쟁뿐이었다.

미국에서 회계사 시험을 통과한 박 대표였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평생 일군 회사가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첫 6개월 그가 한 일이라고는 어묵을 포장하고 나르는 것뿐이었다. 직원들은 나가서 영업이라도 뛰라고 닦달했다. 오전 11시면 공장 운영을 마칠 정도로 영업이 안됐다. 별다른 경쟁력이 없었기에 회사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가격뿐이었다. 가격을 내렸지만 1주일 만에 가격을 더 내린 업체들이 생겨났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었다. 박 대표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 나섰다. 도매상이나 대리점과 B2B로 해오던 거래를 B2C로 전환했다.

먼저 온라인에 도전했다. 박 대표는 다짜고짜 모든 온라인 오픈마켓에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한 소셜 커머스 업체에서 연락이 왔고 박 대표는 40% 할인할 테니 홈페이지 메인에 삼진어묵을 걸어달라고 요청했다. 경영이 처음이었기에 마진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소셜 커머스에서 1만원짜리 삼진어묵을 6000원에 팔자 B2B만 상대하던 내부 직원들이 반발했다. 하지만 박 대표가 B2C로 사업 구조를 선회해야 한다며 직원들을 설득하고 나섰다. 다행히 박 대표의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소셜 커머스에 올린 지 하루 만에  2억원어치가 팔렸다. 2011년 당시 삼진어묵의 연매출이 20억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였다.

프로모션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삼진어묵을 각인시켰고 온라인에서 조금씩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12년 매출은 두 배로 올라 40억원을 기록했다.




◆직원 식당 메뉴에서 아이디어 얻어
온라인 판매로 자신감을 얻은 박 대표는 오프라인 매장으로 B2C 영역을 확장했다. B2B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부산어묵’이라는 이름을 ‘삼진어묵’으로 바꾸고 유통 판로를 넓히기 시작했다.

예상과 달리 첫 오프라인 시도는 대실패였다. 박 대표가 전통 재래시장 위주로 입점했기 때문이다. 삼진식품은 부산 부전시장, 진주 중앙시장 등 전통 재래시장 위주로 4개의 직영점을 냈다. 하지만 모두 적자를 이어 갔다. 시장과 소비자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였다.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한 매장이었는데 전통시장은 대부분 식자재 판매 위주의 B2B 거래였습니다. 또 당시에는 소비자를 그러모을 만큼 매장이 매력적이지도 않았고요. 그 시장에 맞지 않았던 거죠.”

박 대표는 실패를 인정하고 직영점을 모두 정리했다. 하지만 B2C로의 전환은 포기하지 않았다. 기존 어묵이 아닌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소비자들이 들어오고 싶은 공간을 선보일 계획이었다. 박 대표가 벤치마킹한 것은 다른 어묵 업체가 아닌 커피 시장이었다. 빠르게 대중적인 주류 문화로 자리 잡은 커피업계를 보며 ‘소비자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실패하지 않았으면 어묵 베이커리가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당시 실패를 통해 우리가 뭐가 부족했는지 알 수 있었죠. 제품에 소비자를 맞추는 게 아니라 소비자 의견에 제품을 맞춰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소비자 관점에서 발상을 전환했죠.” 그렇게 1년을 고민해 지금의 베이커리형 삼진어묵이 탄생했다.

어묵 디저트의 첫 시작이었던 ‘어묵 고로케’는 박 대표의 모친이자 30여 년 이상 어묵을 만들어 온 이금복 장인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는 직원 식당 점심 메뉴로 나온 돈가스를 보고 ‘어묵에도 빵가루를 입혀 튀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메뉴를 개발했다. 

2013년 12월 19일 어묵 베이커리가 문을 열었고 새로운 콘셉트의 매장은 이른바 ‘대박’을 터뜨렸다. 사람들은 새로운 매장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부산 두 곳에서 시작한 매장 수는 해외 9개 매장을 포함해 모두 31개로 늘어났다.



소비자들은 차갑게 유통되는 어묵이 아닌 갓 튀긴 따뜻한 어묵을 맛볼 수 있었고 어묵크로켓·단호박어묵·치즈말이어묵·베이컨말이어묵 등 60여 종의 다양한 어묵을 골라 먹을 수 있었다.

박 대표는 카페처럼 세련된 인테리어로 꾸몄고 매장 한쪽에 통유리로 된 오픈 주방을 만들었다. 어묵이 비위생적이라는 편견을 깨고 어묵 성형 과정과 조리 과정을 소비자들에게 보란 듯이 공개했다.


◆장인이 만드는 다품종 소량생산

박 대표는 생산방식도 바꿨다. 현장 생산과 조리를 원칙으로 했다. 어묵을 고급화하기 위해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전략을 바꾸고 생산방식도 공장 생산에서 수제로 변경했다. 삼진식품은 2011년 국내 어묵 공장 최대 생산능력을 갖춘 제2공장을 세웠지만 박 대표는 오히려 과거 수제 방식으로 회귀한 셈이다.

좋은 원료와 철저한 위생 관리로 차별화할 수 있다고 믿은 박 대표는 고급 어묵으로 포지셔닝해 나갔다. 기존 어묵 업체들이 점유하고 있던 레드오션 대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셈이다. 이를 통해 차별화에 성공했고 끊임없는 제품 연구·개발(R&D)로 삼진어묵을 모방한 경쟁사들을 압도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지금의 소비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우리 업의 형태가 맞는지 지속적으로 바라보고 변화를 꾀하는 것이 기업이 꾸준히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브랜드를 갖추기 위해 노력했고 진정성을 갖고 고객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니 점점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박 대표는 삼진어묵을 키우고 어묵 시장의 판도를 바꾼 ‘게임 체인저’다. 하지만 최근 삼진어묵 대표직을 내려놓고 전문 경영인을 영입했다. 66년간 이어져 오던 사주 경영 체제를 마감한 셈이다. 3대째 이어져 오던 가업이었지만 박 대표에게 아쉬움은 없었다.

그는 “단순히 경영 승계를 이어 나가기를 고집하기보다 기업의 철학과 가치를 승계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지난 7월 취임한 황종현 삼진어묵 신임 대표를 영입하기 위해 직접 나섰다. 황 신임 대표는 30년간 동원그룹에서 영업·마케팅을 담당해 왔고 동원F&B 부사장을 지냈다. 황 대표가 2014년 삼진어묵 영도본점에 직원들과 함께 방문한 것이 인연의 시작이 됐다. 이후 정기적으로 만나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생각과 방향, 지향점이 맞아 박 대표가 몇 번의 설득 끝에 영입했다.

“지난 6년간 삼진어묵은 10배 이상 성장했습니다. 그에 따라 회사 규모도 많이 커졌죠. 이제 시스템을 갖춰야 할 때가 왔다고 판단했고 부족한 제 경험을 채울 수 있는 분이 필요했습니다.”

박 대표는 해외 법인인 삼진인터내셔널 대표직만 그대로 수행하며 해외 사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삼진어묵은 2017년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했다. 글로벌 식품 기업 비첸향의 제안으로 다인종·다문화 국가인 싱가포르에서 한국의 어묵을 선보였다. 국내 수산업계 최초로 브랜드·매장·콘셉트·메뉴·시스템·노하우 등 브랜드 로열티까지 수출하며 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박 대표는 ‘어묵의 문화를 만들다’는 경영 철학을 토대로 어묵을 하나의 식문화로 정립할 계획이다. 해외에서는 동남아시아 시장에 더욱 집중할 예정이다. 그는 “동남아시아 시장은 국가의 성장과 함께 소비력이 점점 커나가고 있다"며 "전 세계에 어묵이 새로운 식문화로 자리잡을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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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8호(2019.08.19 ~ 2019.08.2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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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9-08-20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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