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제 981호 (2014년 09월 15일)





[테크 트렌드] 가창 오리떼 군무 원리 재현한 스웜 로봇

단순한 행동 원리 따라 초소형 로봇 이합집산…중앙집중 구조 약점 보완

‘2014 글로벌 로봇 캠프’에서 로봇들이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얼마 전 주요 방송과 일간지에는 ‘집단 협력 행동을 하는 로봇’, ‘매스게임하는 로봇’ 등등의 제목의 보도와 기사로 잠시 떠들썩했다. 화면을 가득 채운 1024개의 로봇들이 무선 신호로 명령이 떨어지자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이내 정렬해 K 모양을 이루더니 다시 다른 명령이 떨어지자 별(★) 모양으로 늘어섰다. 수많은 사람들이 불시에 모여 플래시몹(falsh mob)을 하거나 경기장에서 매스게임을 하듯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로봇들의 모습에 많은 이들은 흥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한 흥미로움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 로봇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크기는 불과 지름 3cm, 그러니까 500원짜리 동전보다 조금 큰 정도다. 크기만 작은 게 아니라 기능도 별것이 없다. 사람과 비슷하게 험한 길을 척척 걸어 다니는 유연한 다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철사 세 가닥으로 딛고 빨빨 움직이는 수준이다. 주변을 관찰하는 센서도 고작 10cm 남짓한 주변의 적외선만 감지할 정도다. 그렇다고 그 안에 비장의 고도 인공지능 컴퓨터가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흔히 구할 수 있는 저렴한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장착됐고 개당 제작비는 1만5000원 정도다.

그러면 이런 볼품없고 무식한(?) 로봇이 어떻게 명령에 따라 여러 모양을 척척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가장 생각하기 쉬운 방법은 사람이 조작하는 중앙 컴퓨터가 각각의 로봇이 움직일 다음 위치를 계산해 알려주는 것이다. 매스게임도 사전에 짜인 각본에 따라 다음 순간에 어느 곳으로 이동할지 미리 다 정해져 있듯이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런 숨겨진 제어 컴퓨터라든가 사전에 약속된 프로그램도 없었다. 외부 연구자가 발신하는 명령이라고는 개략적인 모양에 대한 단순한 지시 사항일 뿐이었다. 사실 이 수수께끼와도 같은 로봇 동작에는 우리 주변의 미미해 보이는 생명체의 운동 원리가 숨어 있다.


30년 전부터 시스템의 집단행동 연구
우리가 겨울철이 되면 종종 뉴스에서 접하는 자연계 손님 중 하나가 가창오리 떼다. 머나먼 북방에서 날아와 우리 땅에서 겨울을 나는 가창오리는 낮에는 먹이 활동을 하다가 해질 무렵 다 함께 날아올라 수만 마리가 함께 어우러져 거대한 군무를 연출한다.

이런 멋진 패턴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놓고 과학자들이 씨름한 결과 밝혀진 사실은 이렇다. 각각의 오리가 매우 단순한 몇 가지 행동 원리만 따라 움직여도 된다는 것이다. 이때 단 세 가지면 충분하다. 각 오리는 우선 주변 오리들과 어느 이상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또한 주변 오리들이 움직이는 평균적인 속도로 조절한다. 마지막으로 주변 오리들이 움직이는 방향을 보고 역시 평균적인 방향으로 이동 방향을 조절한다. 이것만 따르면 이 거대한 군무는 완벽히 재현된다.

다시 말해 중앙 통제자나 고도의 지능 없이도 주변 이웃 개체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시스템의 멋진 집단행동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과학자들은 이렇게 개체들의 자발적이며 상향적(bottom-up)인 과정을 통해 거대한 질서가 만들어지는 현상을 자기 조직화(self-organization)라고 이름 붙이고 30여 년 전부터 복잡계 과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다각도로 탐구해 왔다.

앞서 설명한 가창오리 떼의 군무 외에도 이른바 사회적 동물(social animal)로 불리는 개미와 꿀벌 등의 생태도 이와 맞닿아 있다. 개미나 꿀벌도 역시 지능이나 통신 수단은 한정적이지만 이러한 개체들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거대한 개미집이나 벌통을 만들고 효과적으로 자손을 길러 내는 유기적인 분업 체계를 갖고 있다. 이처럼 각각의 존재는 미미하지만 집단적으로는 한층 고도화된 시스템을 이루고 있는 무리들을 ‘스웜(swarm)’, 이렇게 나타나는 집단적인 지성을 ‘스웜 지능(swarm intelligence)’이라고 한다.

하버드대 연구진이 공개한 1024개의 작은 로봇, 즉 ‘킬로봇(kilobot)’은 바로 이러한 자연 생명체들의 행동 원리를 모방, 발전시킨 것이다. 각각의 로봇들은 주변 로봇들 중 적외선을 방출하는 로봇을 감지해 그쪽을 향해 스스로 움직이고 그 옆에 딱 붙게 되면 움직임을 멈춘다. 이런 행동 원리만 저장해 놓고 있으면 어떤 로봇에 적외선을 방출하라는 간단한 지시로도 다양한 모양으로 로봇들이 알아서 정렬하는, 즉 자기 조직화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즉, 이 킬로봇에는 기능 측면이 아닌 경이로운 행동 측면의 생체 모방(biomimetic) 기술이 녹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기술은 과연 어디에 쓰일 수 있을까. 갈수록 컴퓨터가 고도화되고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하는데 굳이 이런 미개한(?) 로봇 떼거지를 만들어 낼 이유는 뭘까 궁금해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현실에서 부닥치는 문제는 이러한 자율적인 로봇 무리가 유용할 때가 많다.

우선 이를 통해 컨트롤 타워에 가해지는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우리 두뇌는 의식적으로 통제하지 않더라도 자율적으로 기능한다. 급박한 대응을 요구하는 신경 자극은 두뇌까지 가지 않고 척수 단에서 행동을 명령하기도 한다. 아무리 컴퓨터가 고도화되더라도 모든 계산을 한곳에서 처리해야 한다면 상당한 무리가 따르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폭주하는 계산 요청 때문에 대응이 한없이 지연될 수도 있다.


스웜 로봇의 강점은 ‘견고함’
하지만 이 외에도 정말로 중요한 이점이 있다.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1:보이지 않는 위험’을 떠올려 보자. 영화 말미에 어둠의 세력의 사주를 받고 나부 행성을 침략한 드로이드 군대는 격전 끝에 나부 행성을 지키는 나부·건간족 연합군에 사실상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이 순간, 우주에서 이들 군대를 지휘하는 모선이 어린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좌충우돌 활약으로 격파되면서 상황은 극적으로 반전된다. 컨트롤 타워를 상실한 드로이드 군대가 움직이지 못하는 고철로 변해 버린 것이다.

만약 이 드로이드 군대가 킬로봇처럼 자율적인 행동 양식을 갖추도록 만들어졌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아나킨이 모선을 격파했더라도 드로이드 군대의 피해는 크지 않았을 것이다. 정교한 작전 수행에는 지장이 있고 더 큰 피해를 봤을지는 몰라도 나부 행성의 점령을 위해 주변의 적들을 분쇄하고 수도를 향해 진격하라는 기본 지침이 변하지 않는 이상 드로이드들은 꾸역꾸역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해 결국 승리를 거머쥐었을 것이다.

이처럼 자기 조직화하는 스웜의 진정한 위력은 외부의 공격이나 내부의 고장 등 우발적인 위협 요인에도 본연의 기능을 잃지 않는 ‘견고함’에 있다. 화성의 표면을 샅샅이 훑는 탐사 미션만 봐도 현재 투입하는 탐사선(로버)은 지구에서 원격조종으로 움직이고 대당 가격이 수십억 원에 달한다. 만약 예기치 않은 고장으로 이 로버가 작동을 멈추면 미션 전체가 실패로 돌아간다. 이를 보다 간단하지만 자율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몇 천만 원짜리 로버 100대로 이뤄진 스웜이 맡으면 어떻게 될까. 설령 몇 대가 고장 나고 지구와의 통신이 끊어진다고 해도 나머지 로버가 임무를 나눠 맡아 여전히 최종 목표는 달성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생각해 보면 스웜 로봇 연구에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국방부가 큰 관심을 갖고 많은 지원을 하고 있는 것도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미지의 행성, 치열한 전쟁터와 같이 돌발 변수가 속출하는 상황일수록 하나하나 세부적인 지침을 내리기보다 명확한 행동 원칙 몇 가지만 준수하며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성해야 목표를 달성하고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역시 각광받고 있는 드론을 이 시스템에 추가하는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앞서 킬로봇과 같은 바닥을 기어 다니는 로봇이 2차원 평면상에서 주변만을 바라보고 움직인다면 공중을 날아다니며 입체적인 조망이 가능한 드론이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해 문제 해결을 훨씬 가속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독일과 영국 주도로 제조업의 스마트 혁신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인더스트리 4.0’ 어젠다의 하부 과제 가운데에는 이러한 스웜 로봇이 생산 현장에도 투입돼 끊임없이 부품 상황을 점검하고 불량을 걸러내는 연구도 있다.

이처럼 미래 사회는 고도의 지능을 가진 인간뿐만 아니라 강력한 물리력과 인공지능을 갖춘 큼지막한 기계, 그 사이를 분주히 움직이며 집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스웜 로봇이 뒤엉킨 세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채승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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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4-09-19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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