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 topic 제 858호 (2012년 05월 16일)

직장인들이 승진 기피하는 이유는? ‘짧고 굵게’ 옛말…‘가늘고 길게’ 대세

1973년생인 박찬호 선수는 우리 나이로 올해 마흔이다. 메이저리그에서 화려했던 날도 있었고 ‘먹튀’ 소리를 듣기도 했다. 2011년 일본 리그로 옮겨 성적 부진으로 2군 생활을 하다가 2012년 한국 리그로 옮겼다. 전성기 때 연봉 100억 원이 넘던 그는 국내 투수 최고 연봉인 6억 원과 최저 연봉 2400만 원을 야구발전기금으로 기부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본 리그와 국내 시범 경기에서의 부진으로 국내 복귀에 적신호가 켜지기도 했지만 데뷔전에서 눈부신 호투로 승리 투수가 되면서 그간의 우려를 씻어냈다. 이후 타선의 도움을 받지 못해 패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선발 투수로서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역시 우리 나이로 올해 마흔이 된 넥센 히어로즈의 송지만은 ‘얼굴은 40대, 몸은 20대’로 유명하다. ‘식스 팩’ 몸매로 후배들을 주눅 들게 만든다는 그는 출전 기회가 줄었지만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다. 후배들을 위해 길을 비켜줘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엔 “내가 그만둔다고 못하던 후배가 갑자기 잘하진 않는다”고 답한 바 있다. 프로에선 나이보다 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최전성기가 아니더라도 꾸준히 오랫동안 현역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개인의 노력 외에 조직의 필요성이 뒷받침돼야 하는 부분이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최대한 오래 버틴다는 점이 특징이다. 과거 운동선수들은 자신이 가장 영광스러울 때 은퇴를 선택해 명예를 지키는 것을 택했다면 지금의 트렌드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다. 송지만은 “40대 팬들이 저를 보고 힘을 낸다는 말을 들을 때 기쁘다”고 밝힌 바 있다.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초고속 승진보다 오랫동안 회사 생활을 하는 것을 선호하는 추세가 직장인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40대 임원 ‘노’, 50대 임원·6~7년 뒤 은퇴 ‘굿’

이런 트렌드는 비단 운동선수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직장인들에게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2008년 금융 위기 이전만 하더라도 직장에서의 목표는 ‘누구나 탐내는 부서에서 남들보다 빨리 승진해 임원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빨리 승진하기보다 최대한 오래 직장 생활을 하는 것으로 목표가 바뀌었다.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기업에 다니는 A 차장은 “40대에 임원으로 승진해 15년 이상 버티려면 임원으로 오를 수 있는 최고 자리인 부회장까지 가야 하는데, 사실 부회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직장인이 얼마나 있나? 임원이란 자리가 대우도 좋지만 그만큼 업무량과 책임이 따르는데, 40대 중반에 실패의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면 뭐하고 사나? 그럴 바에는 52~53세쯤에 임원을 달고 4~5년 정도 더 하는 것이 베스트”라고 전했다.

다른 대기업에 다니는 B 부장은 “예전에는 동기나 후배가 먼저 승진하는데 본인이 ‘물’ 먹으면 ‘더러워서 못 다니겠다. 내가 여기 아니면 갈 데가 없느냐’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냐’, ‘매번 어떻게 잘 될 수 있느냐’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무턱대고 승진에서 물 먹는 것은 방법이 아니다. A 차장은 “차장 5년, 부장 5년이면 승진 대상이 되는데 3년 동안 승진하지 못하면 ‘삼진 아웃’으로 자리 보전이 힘들 수도 있다”고 전했다.

직장인들이 ‘자리 보전’에 더 집착하게 되는 데는 최근 1~2년 프랜차이즈 업계의 경쟁 심화도 한몫하고 있다. B 부장은 “오랜 직장 생활 동안 배운 기술도 없고 할 줄 아는 게 회사 업무밖에 없는데, 나가면 프랜차이즈밖에 할 게 없지 않나. 그런데 주위에 프랜차이즈를 창업해 성공한 사례가 10%도 안 된다. 더구나 요즘 프랜차이즈 본사의 횡포가 장난이 아니라는데, 웬만큼 해서는 대기업에서 받던 월급만큼 벌기가 쉽지 않다. 그게 아니라면 중소기업으로 좋은 대우를 받고 옮기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 중소기업이 언제 망할지 알 수 없으니 안정적인 대기업에 붙어 있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박찬호는 최고의 자리에서 은퇴하기보다 선수 생활을 오래 하는 것을 택했다. 철저한 자기 관리는 기본이고 후배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리더십은 직장인들도 배울 만하다.


창업·이직의 길 막힌 것이 ‘자리 보전’ 이유

과거에는 직무와 관련된 기술과 인맥을 동원해 창업으로 성공한 케이스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이마저도 맥이 끊긴 상황이다. 대기업 C 차장은 “옛날엔 ‘틈새’라는 사업 기회를 찾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것도 없다. 일반 직장인이 창업해 사업을 일으킨 게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과 강덕수 STX 회장 말고는 이제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결국 사내 경쟁에 적응하지 못할 때 과거 같으면 직무 관련 노하우를 활용해 창업을 하거나 중소기업에 취업하거나, 또는 전혀 새로운 프랜차이즈 업종에 도전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대안들의 성공 가능성이 낮아지다 보니 회사를 떠날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커리어케어 김상이 부장은 “이직·전직에 대한 두려움은 불황기에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라며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높아지는 것처럼 일반 직장도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게 되는데, 40대 중·후반으로 갈수록 도전보다 안정을 추구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어 김 부장은 “10년 전 벤처 열풍이 불 때는 신입이든 경력이든 발 빨리 움직이며 새로운 기회를 찾는 것이 굉장히 많았는데,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사라졌다. 탄탄한 대기업에 가려고 하다 보니 벤처기업은 인력난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직장 생활을 오래 하기 위한 비결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40대 직장인은 ‘건강’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김상이 부장은 “건강관리가 성공의 밑천이다. 40대까지 정신없이 일하다 쓰러지는 이도 많이 봤다”고 말했다.

앞서의 A 차장도 “임원이 되면 업무량과 책임도 커지면서 스트레스도 늘어나는데 건강이 확 나빠질 확률이 커진다. 몸이 아픈데 기업이 미쳤다고 돈 주면서 ‘쉬엄쉬엄 일하라’고 하겠는가. 임원에게는 건강검진 항목도 배 이상 많고 투자도 많이 한다. 그 이유는 건강 이상으로 갑자기 업무 공백이 되면 회사로서도 큰 타격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두 번째는 자기 계발이다. 그러나 막연한 불안감에 따른 자기 계발은 금물이다. 우재룡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은 “업무 관련 지식을 개발해야지 자기 일이 마땅치 않아 영어 공부나 유학 준비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비전이 약한 상태에서 학원을 전전하는 것보다 차라리 쉬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세 번째로 대인 관계다. B 부장은 “건강·능력이 아무리 좋더라도 성격이 개차반이면 말짱 꽝이다. 평판이 나쁘면 오래 못 간다. 같은 조건에서라면 대인 관계가 좋은 사람에게 손이 가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박찬호 선수는 한화 이글스에 입단한 뒤 ‘대선배’를 어려워하는 후배들에게 먼저 다가가 농담도 하는 등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린 후배들이 자신들에게 먼저 말을 걸기가 힘드니 자신이 먼저 다가간 것이다. 송지만 역시 현대 유니콘스 해체 이후 팀을 추스르는 과정에서 선배 역할을 든든히 하면서 신뢰를 얻었다. 물론 이들은 운동선수이므로 건강관리는 기본이었다.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


당사의 허락 없이 본 글과 사진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입력일시 : 2012-05-17 15:00

가장 기대되는 인터넷전문은행의 서비스는 무엇입니까.
투표하기 결과보기

  • 한경BUSINESS 페이스북
  • MONEY 페이스북
  • MONEY 인스타그램
  • 한경BUSINESS 포스트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