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 business 제 903호 (2013년 03월 18일)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 ① ‘악당’ 샤일록은 인종주의의 희생양

김경집의 인문학 속으로

토머스 칼라일은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말했다. 셰익스피어 숭배자들은 그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들먹이고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 언사야말로 전형적인 서구 제국주의자의 천박한 사고의 극단적 사례라고 싸늘하게 내뱉는다.

인도인들이 이 말을 듣고 얼마나 기분이 나빴을까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야, 웃기지 마라. 셰익스피어 열 트럭 줘도 인도양의 무인도 하나와도 바꾸지 않겠다.” 뭐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게 도매금으로 매도할 것만은 아니다.

칼라일이 ‘영웅 숭배론’에서 이 말을 했던 것은 식민지 인도의 경제적 가치보다 셰익스피어라는 정신적 가치를 더 소중하게 여기라는 강조 어법이었으니까. 그래서 가끔은 그 본문 혹은 앞뒤 문맥을 함께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달랑 하나의 문장만 꺼내 제 입맛대로 재단하기 쉬운 법이다.

“만약 우리 영국인들에게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인도와 셰익스피어 둘 가운데 어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하겠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할 것인가. 이것은 정말 큰 물음이다. 공직에 있는 사람들은 공식적인 말로 대답할 것은 의심할 것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인도야 있건 없건 상관없지만 셰익스피어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인도는 언젠가는 결국 잃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셰익스피어를 포기할 수는 없다.”

원래 이 구절이 전문이다. 그런데 다짜고짜 다 도려내고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말만 달랑 남겨뒀으니 엉뚱하게도 셰익스피어가 오리엔탈리즘을 조장한 조역으로 등장한 셈이고 칼라일은 후안무치한 서양 놈이 되고 말았다.

칼라일은 약간 노골적인 영웅주의자였다. 낭만주의적 개인주의 입장에서 쓴 ‘영웅 숭배론’이나 ‘프리드리히 대왕’ 등을 보면 그런 요인이 분명히 있다. 그에 의하면 우주는 신적 정신의 의상(衣裳)이며 상징으로서 그것이 자연 및 역사에 나타나는데 역사에서는 대인격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즉 역사는 이 정신을 표현하는 영웅의 역사라는 것이다.

사상가이며 역사가였던 칼라일은 일생 간소한 삶으로 일관한 인격자였다. 그가 쓴 역사서 가운데 ‘프랑스 혁명사’가 유명한데 실제로 그가 일생을 걸고 연구했고 출간하려고 했던 책은 바로 영국사였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그 책을 펴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유럽의 유대인 차별과 멸시는 길고 긴 역사를 지녔다. 셰익스피어 역시 시대의 환경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꾸지 않는다?

사연은 이렇다. 그가 심혈을 기울인 영국사 원고를 J. S. 밀이 먼저 읽어보겠다며 가져갔다. 어느 날 그걸 읽다가 밀이 외출했는데 하녀가 열린 창으로 들어온 바람이 흩어버린 원고 뭉치들을 주워 벽난로 땔감으로 써버렸다. 외출에서 돌아온 밀은 경악했다. 몇 날을 고민하던 밀은 어쩔 수 없이 칼라일에게 고백했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다른 원고도 아니고 자신이 그토록 마음에 품고 다듬어 온 원고가 아닌가. 그러나 칼라일은 밀에게 마음에 담지 말라고 타일러 보냈다. 그리고 평생 그 사건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혹여 밀이 받을 비판과 악담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런 인격의 칼라일이 아무리 영웅주의자라고 하더라도 셰익스피어를 띄우기 위해 인도를 허드레쯤으로 여겼을까.

그가 셰익스피어에 대해 말했던 문맥을 살펴보면 인도를 영원한 영국의 식민지로 보지 않았으며 어차피 포기해야 할 인도와 포기될 수 없는 셰익스피어를 대조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이 쓰인 1841년쯤이면 인도는 영국의 최대 식민지이고 1877년에는 빅토리아 여왕이 인도제국의 황제로 선포된 걸 고려하면 그의 냉철한 비전을 엿볼 수도 있다. 물론 칼라일의 어법을 아무리 너그럽게 봐준다고 하더라도 그에게서 서구의 오만함과 자만심을, 제국주의적 발상을 온전히 눈감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가운데 유난히 읽기 불편한 게 ‘베니스의 상인’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쩐지 모르겠지만 필자로서는 그렇다. 그가 그려낸 인물 샤일록은 억울한 희생양이다. 그런데도 그가 억울하다고 느끼는 서구인은 그리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이유는 단 하나, 샤일록이 유대인이라는 것뿐이다. 우리는 유대인 차별이라고 하면 홀로코스트, 즉 히틀러의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대학살만 떠올리는 경향이 있지만 실상 유럽의 유대인 차별과 멸시는 길고 긴 역사를 지녔다. 그런 상황에서 셰익스피어 역시 시대의 환경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겠지만 그의 이 작품이 유대인 멸시에 한몫 거든 것만은 분명하다는 점에서 비판을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한 법정

잠깐 ‘베니스의 상인’의 줄거리를 요약해 보자. 베니스의 신사 바사니오는 파디유아의 명문가 딸 포샤에게 청혼하려는데 돈이 없었다. 그래서 친구 안토니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안토니오는 돈을 무역선에 투자해 수중에 지니고 있는 게 없었다. 안토니오는 그를 샤일록에게 소개해 돈을 빌리도록 했다.
 
샤일록은 3000다카트를 빌려주면서 신사 양반들에게 무슨 계약이 필요하느냐며 짐짓 눙치지만 사실은 그들의 자존심을 긁어 자신의 요구대로 계약 조건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였다. 신사로서 샤일록 같은 버러지에게 그냥 돈을 빌릴 수 없다며 굳이 계약 조건을 명시하자는 말에 샤일록은 기일을 어기면 안토니오의 살 1폰드(파운드)를 내놓기로 계약했다.

그렇게 해서 바사니오는 포샤와 결혼하기로 언약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낭패가 생겼다. 안토니오의 무역선이 폭풍을 만나 파산해 버린 것이다. 그러니 샤일록에게 돈을 갚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기다렸다는 듯 샤일록은 그를 법정에 고소했고 계약 증서에 따라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요구했다. 샤일록은 그렇게 자신에 대한 모욕과 멸시를 법정을 통해 되갚아주고 싶었다. 안토니오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 신사의 평판도 소용없었다.

포샤가 그 사실을 알고 재판관으로 변장하고 시녀 네리사를 비서로 변장시켜 법정에 섰다. 치열한 공방 끝에 ‘가짜’ 재판관 포샤는 이른바 ‘정의의 명판결’이라는 선고를 내렸다. 증서에는 살 1파운드를 제공한다고 했을 뿐 피를 준다는 말은 없으며 1파운드에서 조금이라도 더 잘라 내거나 덜 잘라 내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위대한’ 반전이었다.

‘사악한’ 샤일록은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꼴이 되고 말았다. 안토니오는 그래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가짜 재판관 포샤는 한술 더 떴다. 선량한 시민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했고 기독교적 가치를 능멸한 샤일록의 전 재산을 몰수한다는 것이었다.

유럽의 유대인 차별과 멸시는 길고 긴 역사를 지녔다. 셰익스피어 역시 시대의 환경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더 나아가 기독교로 개종해야 하며 그의 딸 제시카도 선량한 베니스 시민과 결혼하도록 허락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사악하고 음험한’ 샤일록은 그렇게 법정의 정의에 의해 징벌됐다. 이런 해피엔딩에 디저트가 빠질 수 없다. 침몰했다던 안토니오의 배가 무사히 항구에 입항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유럽의 독자들은 포샤의 판결을 보면서 “정의가 승리했다”며 환호작약했다. 덩달아 우리나라 독자들도 그 대목에서 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그 판결은 정말 정의로웠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그건 희대의 사기극이었을 뿐이다.

이 법정의 불의를 눈감는 데에는 중요한 편견이 작용하고 있다. 그 첫 번째 편견은 바로 유대인에 대한 왜곡이다.


김경집 인문학자, 전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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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3-03-22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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