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제 96호 (2013년 05월)





정해광 아프리카미술관장 "미지의 세계가 주는 치명적 매력"

THE COLLECTOR

‘가난하고 지저분한 나라, 전쟁이 끊이지 않고 온갖 질병에 노출된 나라.’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일반인의 생각은 그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아프리카 미술에 대한 태도 또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을 수밖에. 아프리카 미술을 처음 접했을 때의 그 신선한 충격을 잊을 수 없다. 미지의 세계가 주는 강렬하고 치명적인 매력이라고나 할까. 정해광 관장의 ‘친절한’ 해석이 더해지니 감동은 극대화된다.




갤러리가 즐비한 종로구 사간동. 숱하게 지나다녔던 그 길에서 ‘뜻밖의’ 장소를 발견했을 때의 기분은 TV 화면을 통해 아프리카 미술을 처음 봤던 그때의 감정과 비슷했다. 예상치 못한 기분 좋은 선물을 받은 기분이라고 할까.

건물과 건물 사이, 안으로 쏙 들어간 자리에 위치한 그곳은 바로 아프리카미술관. 스페인에서 유학 중이던 1989년, 마드리드의 벼룩시장에서 아프리카 조각을 접하고 거기에 ‘꽂힌’ 뒤 25년 가까이 아프리카 미술에 ‘중독돼’ 살고 있는 철학박사 정해광 관장이 설립한 그곳은 알고 보니 이미 수많은 아프리카 미술 마니아들의 아지트였다.

미술관을 방문한 날, 때마침 정 관장이 대여섯 명가량 되는 여성 관람객들에게 직접 작품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었다. 아프리카미술관에 가본 사람들 대부분이 ‘큐레이터의 인상적인 설명’을 미술관에 호감을 갖게 된 계기로 꼽을 정도로 ‘스토리’가 풍부한 곳이지만, 정 관장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 운이 좋은 셈이었다.

역시 그의 ‘입담’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미술관 입구 쪽에 위치한 조각에서 안쪽 회화로 이어지는 그리 길지 않은 동선이지만, 그 사이에 들은 아프리카 미술 이야기는 귀를 매료시키고 마음을 들뜨게 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했던, 떠올렸던 아프리카는 극히 단편에 불과했음을, 그들이 얼마나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심성의 소유자인지를, 하여 아프리카 미술이 끌어당기는 그 강력한 마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정 관장의 말처럼 ‘흰색도 밝고, 검은색도 밝은’ 아프리카 미술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프리카 미술에 대한 ‘인간적인’ 접근

짐작했겠지만 정 관장의 아프리카 사랑은 ‘중독’이란 표현으로도 부족할 정도다. 스페인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국내로 돌아와 한양대 등에서 강의를 하면서도 틈만 나면 아프리카로 날아가 미술품을 수집했고, 위험천만한 순간을 숱하게 겪으면서도 아프리카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도무지 식을 줄 몰랐다.


그렇게 해서 모은 소장품만 회화 450여 점에 조각 500~600점 등 총 1000점이 넘는다. 작품 대부분이 창고에서 ‘울고’ 있는 게 그에겐 가장 가슴 아픈 일. “통장에 돈이 있은 적이 없다”고 ‘쿨’하게 말할 만큼 경제적인 출혈은 그리 대수도 아니다. 그게 컬렉터의 진정한 자세라고 생각하는 그에겐 더더욱.



아프리카 미술이 일반인들에겐 아직 생소한 게 사실이에요.

“잘사는 나라에 대해서는 아주 사소한 것에도 관심을 갖는데 아프리카는 그 반대죠. 아프리카 대륙 54개국에 대한 이미지가 모두 ‘전쟁과 기아’로 박혀 있어요. 물론 아프리카 사람들이 힘들고 어려운 건 사실인데 과연 감성마저도 그런가 하면 아니란 겁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배타적이고 편견이 심한 것 같아요.

아프리카 음악에 대해서는 딴지를 안 거는데 미술에 대해선 심지어 화가들조차 아프리카에 현대미술이 있느냐고 반문할 정도니까요. 아프리카 미술은 마니아들이 있죠. 의사, 교수 등 아프리카에 가봤거나 그 대륙에 대해 공부를 해본 분들은 대부분 그 매력에 빠져들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그림을 일상적으로 구매하는 분들 입장에서는 미지의 세계죠.”



아프리카 미술의 강력한 매력이 뭔가요.

“크게 두 가집니다. 하나는 작가들이 그림을 일로서가 아니라 아이가 놀이삼아 그리듯 그린다는 겁니다. 우리가 어릴 적 동네 담벼락에 낙서하듯 말이죠. 그러니 아프리카 미술 안에서는 우리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는 거예요.

또 하나는 바로 색채감이에요. (그는 이 지점에서 세네갈의 작가 두츠의 작품을 예로 들었다.) 두츠의 작품 속에서 황색은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의 황량함에서 비롯된 것이고, 소금호수의 분홍색도 세네갈의 국목인 바오밥나무의 하얀색도 보고 느낀 그대로를 표현한 겁니다. 아프리카 작가들은 색을 자연에서 체험하고 깨달아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거죠. 즉, 자연이 화가의 색을 만드는 거예요. 그러니 한번 보면 그 색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게 마력이죠.”



그럼 정 관장님이 아프리카 미술에 꽂힌 것도 그 두 가지 이유 때문인가요.

“그건 또 달라요. 제가 원래 휴머니티에 관심이 많은데 스페인에서 박사 과정을 할 당시 아프리카 미술을 보고 딱 ‘휴머니티’가 보이더군요. 가령 여성의 가슴을 강조한 조각이나 그림이 풍요와 다산을 상징한다고 해석되는데 제 생각엔 풍요는 맞아도 다산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슴을 강조하는 게 자식을 배불리 먹이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인 건데 다산은 서구의 정치적 해석이 들어간 거죠. 이건 잘못됐다, 인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 학문적으로 꽂힌 거예요.”



아프리카 미술에 대한 휴머니티적 시각이 이전에도 있었나요.


“저만의 독창적 시각이죠. 서구에서는 그들의 시각으로 바라봐요. 그게 보통은 기독교적 유전자에서 비롯된 종교적 시각과 그와 연결된 정치적 시각이죠. 저의 시각은 윤리적으로 연결됩니다. ‘아프리카의 철학과 종교’를 쓴 석학 음비티는 ‘아프리카는 지극히 종교적이다’라고 했는데 저는 그게 49라고 봅니다. 나머지 51이 윤리적이라고 보죠. 사소한 차이인 것 같지만 그 차이는 확연해요. 물론 아프리카에 수많은 신들이 있는 건 맞는데 그 중간엔 반드시 인간이 있거든요. 저는 사람들이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시각을 교정하고 있는 거예요.”



그 시각 교정이 해외에서도 이뤄지고 있습니까.

“저의 해석에 대해 ‘맞다, 틀리다’라고 논할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산을 오르는 수많은 길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정석’이라고 불리는 가장 보편적인 루트가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까지의 서구의 해석이 반드시 ‘정론 길’은 아니란 거죠. 어쩌면 진짜 길은, 가장 아름다움을 보는 코스는 제 해석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시류가 맞는지 저의 해석에 수많은 외국인들이 수긍해요. 얼마 전에는 세계적인 프랑스 컬렉터가 자신의 소장품들을 가지고 제가 기획한 전시를 하고 싶다며 찾아왔더라고요. 물론 지금은 내 목소리가 학계에서 중요한 역할이 아니지만 시간이 더 지난 후 이게 더 아프리카적인 해석이구나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기존의 해석을 폄훼할 수는 없는 거고요.”



해외 컬렉터들이 아프리카 미술에 주목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시아권만 빼고는 세계적인 트렌드예요. 아프리카 내 자체 시장이 형성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는데 중요한 건 아프리카에 광물자원이 엄청나다는 겁니다. 지금 중동의 석유 재벌들이 그러하듯이 광물 재벌들이 나오고 하면 아프리카 미술 시장이 중국처럼 될 수도 있겠죠.”

세계가 주목하지만 시장에선 저평가된 ‘보물’들 컬렉터로 시작한 정 관장은 이제 아프리카 미술 기획자이자 비즈니스맨으로 역할이 발전했다. 물론 아프리카 미술에 대한 멈출 수 없는 애정이라는 근간은 같다. 더 많은 작품을 사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작품을 사고파는 비즈니스가 있었던 것. 2008년 아프리카미술관을 오픈하면서 대학 강의를 그만뒀을 정도로 지금 그에게 아프리카 미술은 오롯이 ‘전부’다.



처음엔 조각 컬렉션으로 시작했다가 회화로 확장했다죠.


“2002년인가 관훈갤러리에서 쇼나 조각을 전시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림에 관심을 가져보라는 지인의 조언을 들었어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조각을 사 모으면서 되판다는 생각을 전혀 못하기도 했지만, 조각은 판매가 안 되는 측면도 있었어요. 종교적으로는 우상의 개념이 있을 수 있고, 또 목조는 금이 가기도 하는 등 한계가 있죠. 게다가 더 이상 조각 작품을 구하기도 어려웠어요.

시골의 면 단위까지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소더비에서 얼마에 판매되는지를 사람들이 알게 됐으니까요. 예전에는 한번 가면 문화재급, 국보급 작품들을 많이 만났는데 지금은 5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죠. 설령 만난다 해도 가격이 예전보다 10배 이상 뛰었어요. 결과적으로 회화로 눈을 돌리길 잘했죠. 판매의 측면도 있지만 그 나름의 매력이 강하거든요.”



아프리카 미술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보람이 크겠어요.

“작가들과의 관계가 돈독한 편인데 그들이 제가 쓴 작가 연구를 보면 대체로 많이들 놀라요. 무의식의 영역을 현실로 풀어내주는 게 바로 저라면서 말이죠. 세네갈 작가 두츠를 비롯해 20여 명은 되는 것 같은데, 그런 걸 보면 컬렉터 이전에 학자로서 큰 보람을 느끼죠. 또 재작년인가에는 오사카에서 열린 국제학술제에서 ‘예술작품을 통해 본 아프리카의 행복 이데아’에 대해 발표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어요.

일본 도쿄에서는 그 내용으로 출판도 했죠. 아프리카의 예술 세계가 학술적 세계로 넘어가면서 사람들이 좀 다르게 봐주니 기분 좋은 일이에요. 물론 앞으로 연구할 게 더 많아요. 저는 예술윤리학으로 부르는데, 아직까지 문화윤리학은 있어도 예술윤리학은 없거든요. 제가 작가에 대해 쓰는 건 예술윤리학인 것 같아요.”



1년에 100일은 아프리카에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100일 이상 있기도 했고, 학교에 소속돼 있을 때는 방학 때 가서 살았죠. 전에 그냥 컬렉터일 때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미술관을 오픈하면서는 비즈니스가 돼 아쉬운 면이 있어요. 조각 하나 사면서 이틀 동안 이야기를 한 적도 있고, 작가들이나 골동품 상인들과 이야기도 정말 많이 했고, 한 장소에서 한 달을 머물었던 적도 있는데 지금은 딱 보면 가격이 나오니 과정이 쉬워졌죠.”



위험천만한 순간도 많았을 텐데요.

“해외여행을 1982년부터 했는데 그땐 해외여행 자유화도 아니었어요. 여행을 워낙 좋아하긴 했어도 특히 아프리카에 가는 건 병에 걸리는 것을 각오해야 했죠. 2003년인가엔 실제로 말라리아에 걸려 한 달간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는데, 그땐 의사가 살지 죽을지 말을 못할 정도로 위험했어요. 그래도 아프리카에 가는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던 건 그냥 ‘사랑’이에요. 자식에게 무조건적으로 그러는 것처럼, 콩깍지가 씌면 어쩔 수 없어요.(웃음)”



아프리카 미술에 대한 사명감도 있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경제적으로만 자유로워진다면 미술관을 크게 오픈해 더 많이 알리고 싶어요. 한편으로는 아프리카에 미술학교를 만들어 재능도 키우고 잘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아프리카는 노동을 해서는 신분 탈피가 안 되는 나라이고, 미술적 재능이 있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개인적으론 공부도 더 하고 싶고요.”



아프리카 작가 중 우리가 주목해야 할 작가는 누굴까요.


“작가마다 특징들이 다 달라요. 의미론적으로는 키부티를 들 수 있어요. 인간과 자연의 하모니를 다루는 작가인데 일본에서는 ‘솔드 아웃’되는 작가죠. 도화지에 색연필과 잉크로 그림을 그리는데 미술사적으로 의미도 있고 가치도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키마티를 정말 좋아해요. 두츠나 릴랑가는 현실적인, 시장에서 굉장히 주목받는 작가들이에요.

그럼에도 정말 저평가돼 있죠. 세계적 작가인 릴랑가의 작품이 호당 50만 원에 판매되니 말 다했죠. 릴랑가 정도면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해도 충분한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의 한계가 벽인 것 같아요.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걸 수밖에 없는 한계 말입니다. 그걸 깨는 데 저도 한몫하고, 더불어 많은 이들이 아프리카 미술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아프리카 미술은 제목이 없는 게 특징이다. 보는 이들이 ‘편견’없이 작품을 봤으면 하는 생각에서다."


박진영 기자 bluepjy@kbizweek.com
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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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3-05-24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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