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제 42호 (2013년 09월)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서민] 외모로만 평가받던 난 기생충과 닮은꼴

나의 꿈 나의 인생

이분 참, 스스로 “못생겼다”고 진지하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쿨하게 말씀하신다. 그러니 굳이 외모에 대한 질문을 어렵사리 꺼내야 하는 낯 뜨거움이나 수고로움도 사라진다. 남달리(?) 눈에 띄는 얼굴을 소재로 시작된 대화는 스스로 “잿빛투성이였다”고 고백하는 어린 시절, 역시 주류와는 거리가 먼 기생충 전공,

“내 세상이 열렸다”던 30대를 거쳐, 의대 교수와 빵 터진 방송인 이야기까지, 조용히 하지만 키득거리며 이어져 갔다. 대화를 마칠 즈음 든 생각. 그가 남다른 이유는 보기 드문 얼굴 때문만은 아니었다. 얼굴만큼이나 생각이 남다른 사람. 서민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과 교수다.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1967년생
1992년 서울대 의학과 졸업
1998년 서울대 대학원 기생충학 박사
1999년 단국대 의과대학 기생충학과 교수(현)




단국대 의대와 병원은 충청남도 천안에 있다.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과 교수이니 그의 직장 역시 천안이다. 운 좋게 서울 여의도에서 약속을 잡았던 터라, 천안까지 내려가지 않게 해주신 호의에 감사드림이 첫인사였다.


Q 서울에 일이 많아서 왔다 갔다 하느라 힘드시겠다.

몇 년 전 아예 집을 천안으로 옮겼다. 잘 안 움직일 줄 알았는데, 요즘 책 영업 뛰느라 바쁘다. (서 교수는 얼마 전 ‘기생충 열전’이라는 책을 펴내 과학 분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예전만 해도 영업이라는 게 애들 데리고 가서 책 사재기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고 나서 술, 밥 사는 게 영업이라고 생각했다. 올해부턴 바뀌었다. 인터뷰를 많이 한다. 알아보는 사람도 많아져 사재기도 어렵더라. 어머니와 서점에 갔더니 계산대에서 “얘가 우리 아들이다”고 자랑하시는 게 아닌가. 그 후로 그런 영업은 자제하고 있다.



Q 베스트셀러가 됐으니 굳이 사재기 같은 영업은 안 뛰어도 되지 않나.

과학 분야에선 계속 상위권이다. 그런데 과학 1위 해봤자 종합으로 따지면 별것 아니다. 매일 인터넷 서점에 들러 판매 결과 확인하는 게 하루 일과였는데, 한 달쯤 지나니 순위도 점점 떨어져서 나도 시들해졌다. 외부 강연 한 번 하니 확실히 순위가 오르더라. 종합으로 하면 200위권이다.

Q 의학 기생충 교과서도 아닌 대중서를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마땅히 볼 만한 기생충 관련 교양서가 없어서 책을 쓰기로 했다. 2011년에 서문부터 정말 멋지게 써놨다. 그러고서 두 달을 노는 사이 정준호 박사가 먼저 기생충 책을 쓰셨다. ‘아차, 선수를 뺐겼구나’ 굉장한 충격이었다. 기생충 책 시장이 그리 크지도 않은데 말이다. 보니 너무 잘 쓰셨더라. 그 책은 기생충과 인간의 진화를 다뤘고, 나는 증상 위주로 썼다. 또 내 책엔 유머가 많다.



Q 정식으로 책을 내기 전에 포털에 연재한 글이 확 떴는데.

사실 영화 ‘연가시’ 흥행이 계기가 됐다. 네이버에서 기생충을 소재로 10회 연재를 제의했다. 내 입으로 말하기 그렇지만 폭발적 반응이었다. 집사람이 “알바 푼 거 아니냐”고 의심할 정도였으니. ‘어떻게 악플이 하나도 없을 수가 있느냐’부터 ‘포털에 처음으로 댓글을 단다, 너무 글이 좋아 안 달 수가 없다’ 같은 게 대표적이다. 그래서 20회까지 늘었다. 그러는 동안 여러 출판사, 사실 두 곳에서 입질이 왔는데, 그중 하나가 을유문화사였다. 큰 출판사여서라기보다 “버려진 개를 키우고 있다, 보러 오시라”는 말에 넘어갔다. 참고로 난 개에 한해서 극우강경파다. ‘사람 위에 개 있다’는 생각 때문에 아파트 주민과 마찰도 많다. 버려진 개를 키운다는 건 천사를 의미한다. 바로 OK 했다. 편집자가 미인이기 때문이라는 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보기 전에 결정했으니까. 덕분에 기생충 사진들이 올 컬러로 들어갔다. 사진 크기는 일부러 조그맣게 했지만.



Q 우여곡절 끝에 나온 책도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지금까지 낸 책 중 최고의 반응이다. 사실 그전 책이 잘 안 팔렸다. 그래서 절필을 선언했는데, 남들이 그런 사실 자체를 잘 몰라 슬그머니 다시 낸 거다. 진중권 교수가 “책은 적당히 무식할 때 내라”는 말을 했는데, 너무 완벽하려면 평생 못 낼 것 같았다. 부끄럽지만 그전에 낸 책은 쓰레기다. 기생충에 관한 대중서는 이번 책 전에 딱 두 권이었다. 그전에 내가 쓴 건 언급하기도 부끄럽다. 자랑이지만 이번에는 공부를 많이 했다. 쓰다가도 ‘내가 이런 면이 있었네’ 했다. 역시 공부해야 한다.



Q 방송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쌓은 게 도움이 됐겠다.

원래 내 꿈은 인지도를 좀 높여서 강연을 하는 거다. 학생들이어도 좋고, 사회인이어도 좋다. 그런데 인지도가 너무 낮아 강의가 안 들어오더라. 별짓 다 해도 안 되더라. 방송은 사실 적성에 안 맞는 일이다. 말 잘하는 사람 많은데 나까지 끼어서 할 필요가 있겠나 싶다. 근데 워낙 출연료를 많이 주더라. 한 달쯤 돼서 함께 출연하는 박지훈 변호사와 “우리 잘리지 말자”고 다짐했다. 이젠 시키는 거 다 하고, 심지어 누드도 찍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Q 적성에 안 맞는 일을 단지 돈 때문에 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초창기 야외촬영 같은 건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출연료 몇 번 받고 나니 그런 것도 즐겁더라. 천직이라 생각하면서 연기도 배우고 있다. 방송 중간중간 다른 사람들 연기를 보고, 이 대목에선 어떻게 하나 공부한다.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우고 있다. 요즘은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벌써 끝났느냐며 아쉬워한다. 아이도 없이 개만 세 마리 키우니 학원 보낼 돈도 필요 없는데, 아내를 사랑해서 방송에 출연하는 거다.

아내 사랑 콘셉트로 송금해주면 남편으로서 굉장히 뿌듯하다. 돈 때문이 아니라 아내를 기쁘게 해주느라 방송 출연한다고 얘기하고 싶다. 2007년까지만 해도 술 먹고 길바닥에서 쓰러지는 게 일과였다. 주 5회 마셨다. 어차피 혼자 살겠다 다짐한 터라 300명 정도로 이뤄진 사조직을 운영했다. 결혼하게 되면서 조직을 와해시켰다. 2008년 1월, 마흔한 살에 결혼했다. 남자는 결혼을 늦게 할수록 미모의 아내를 얻는다는 게 내 지론이다. 20대엔 나를 거들떠도 안 보던 여자들이 30대가 되니 달라지더라.



Q 컬투의 추천이 출연에 결정적이었지만, 소질이 없으면 힘든 게 방송 아닌가?

‘컬투의 베란다쇼’ 전에 KBS 지식콘서트에도 나갔다. 거기서도 컬투가 사회를 봤는데, 3회 연속 출연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프로 자체가 5회 만에 폐지됐다. ‘역시 그렇구나’ 생각했는데, 그때 컬투가 나를 좋게 본 것 같다. 이번에는 PD 중 한 명이 나의 격렬 지지자이기도 했다. 나이를 어느 정도 먹다 보니 알게 모르게 경험이 많이 쌓이더라. 어떤 아이템을 해도 걸리는 게 하나씩은 있다. 예를 들어 비만이 주제라면 ‘내가 과거에 비만이었다’고 하는 식이다. 제기차기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 취미가 없어서 겨우내 혼자서 제기만 찼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이미 700개를 넘었고, 대학 때는 2500개를 찼다. 그런데 대회에 나갔더니 1만 개 차는 사람도 있더라.



Q 어릴 적 얘기를 하시니, 성장 과정이 사뭇 궁금해진다.

굉장히 불우했다. 아버지도 나를 미워하셨다. 못생겼다고. 지금 생각하면 당신을 닮아서인 듯도 하다. 남자는 나이 마흔 넘으면 자기 얼굴 책임져야 한다는데, 나는 책임지고 싶지 않다. 어릴 땐 숫기도 없고 혼자 지낼 때가 많았다. 너무 엄하셨던 터라 많이 맞고 자랐다. 그 때문에 마음고생도 컸다. 말도 더듬고 틱 장애까지 있었다. 스무 살까지는 인생이 잿빛이었다. 삶에 대한 대책도 전혀 없었다. 대학 가니 조금씩 나아졌고, 서른이 넘으니 비로소 내 세상이 열리더라.



Q 그래도 서울대 의대 가셨을 정도니, 머리는 좋으셨나 보다.

공부를 삶의 수단으로 삼은 것 같다. 공부가 좋다기보다는 벼랑에 선 느낌이었다. 그거 아니면 살길이 없었다. 서울대 의대 간 것도 진짜 운이 좋았다. 지금 같으면 절대 못 간다. 중학교 때는 성적이 신통찮았다. 그러다 고1 때부터 공부했다. 요즘은 중학교면 모든 게 정해지지 않나. 그때는 과외도 금지였다. 시골서 올라온 동기들 보면 월수입 12만 원 써내는 친구들도 있었다. 요즘 의대에는 없어 보이는 애가 없다.



Q 의대에 왜 진학한 건가.

법대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적성검사에서 갑자기 의예과가 나왔다. 하루 고민하다 이과로 바꿨다. 요즘 기생충 전문가로 TV에 나오는 모습을 아버지가 보셨으면 조금은 좋아하시지 않았을까 한다. 어머니가 비뚤어지지 않도록 많이 잡아주셨다.



Q 돈 잘 버는 성형외과, 피부과, 그도 아니면 명의 소리 듣는 외과도 있는데, 왜 하필 기생충학이었나?

나도 처음에는 의대 가면 의사 하는 줄 알았다. 직접 환자 배 가르는 게 좀 무섭더라. 손가락 잘린 환자 치료하고, 욕창 드레싱하고. 실습 돌면서 너무 무서웠다. ‘평생 이런 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우울해지기도 했다. 당시 기생충학과 교수님이 온화하신 분이라 연구실에 자주 갔는데 ‘의대에서도 이런 일 하며 살 수 있겠구나’ 싶었다.



Q 기생충 전문가로 유명하신데, 선택 동기가 너무 밋밋한 거 아닌가.

의대를 나와도 외모가 이래서인지 좋은 평가를 받은 기억이 별로 없었다. 기생충도 마찬가지다. 외모로만 평가받는 편견의 집대성이다. 세균에 비해 훨씬 착한 애들인데 욕은 더 먹는다. 나도 여자에게 “저~” 하고 말만 해도 “으악” 하고 도망가곤 했다. 굉장히 억울하다. 집사람도 내게 항상 피해의식에 절어 있다고 말하곤 한다. 지하철에서도 내가 앉아 있으면 자리가 나도 피해 가거나, 커플은 여자가 아닌 남자가 내 옆에 앉는다. 고등학교 때까지 “너처럼 못생긴 애는 처음 봤다”는 얘기를 면전에서 하는 애도 많았다. 하도 그런 말을 많이 듣고, 상처도 덧나다 보니 웬만한 외모 얘기로는 상처받지 않는다. 집에서라도 격려해줬음 좋았을 텐데, 아버지가 그런 분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신문에 칼럼 한 번도 못 쓰셨고 TV 출연도 못하셨으니 지금 내 모습을 보면 좋아하실 것 같다.



서 교수의 부친은 어려운 환경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검사 출신이라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형편과 세상을 원망하며 산 세월이 더 길었다. 그런 실의는 결국 아들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다. 서 교수는 부친의 진심을 돌아가시고 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일기장에는 ‘난 민이가 정말 싫다’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서 교수는 그마저도 “아버지의 진심을 확인해서 오히려 홀가분했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덧나기를 거듭한 상처가 단단해질 대로 단단해진 것 같았다.



Q 교수이자 학자다. 예능에 출연해 망가지는 걸 비난하는 이는 없나? 학계가 특히 보수적인데.

방송 출연보다 논문을 많이 쓰는 교수다. 올해만 해도 벌서 7권을 썼다. 그러니 인정해주는 듯하다. 어릴 땐 ‘들개’처럼 놀러다니기만 했다. 학회에선 발표도 못하고, 만찬회 때 술이나 마셨다. 교수님들도 한심해하긴 마찬가지였다. 외국인이 소개를 부탁하면 “He is only playing”이라고 소개해주셨다. 학계라는 곳이 공부 안 하면 밑바닥 생활인 거다. 그러다 2007년부터 논문을 죽어라 썼다. 언제부턴가 제일 많이 논문 쓰는 교수가 됐고, 그걸 놓치고 싶지 않더라. 논문, 연구, 방송을 위해 포기한 게 테니스랑 가정이다. 집에 와서도 일만 하니 아내와 시간을 많이 못 보내 미안하다. 강아지들과 놀아주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논문 안 쓸 순 없고.

결혼은 선을 봐서 했다. 선만 보면 5만 원씩 용돈 주겠다는 어머니 말씀에 자주 나갔다고 한다. 5만 원 중 2만 원은 찻값 하고, 나머지는 술 먹는 데 썼다. 어느 날 역시 5만 원에 눈이 어두워 선을 보러 나갔는데, 이제껏 본 사람 중 제일 예쁜 이가 앉아 있더란다. 놓치기 싫어 결혼했다. “서민을 검색하면 서민 교수 부인까지 연관 검색어에 뜬다”며 “얼굴이 아주 예술”이라고 깨알 같은 자랑을 잊지 않는다.



Q 사모님 불만이 상당하시겠다.

불만이 있긴 한데, 돈 받을 땐 좋아한다. 그래도 설거지는 계속 하고 있다. 엊그제는 달래주는 의미로 해외여행 얘기가 나왔는데, 생각해보니 올 12월까지는 안 되겠더라. 아무래도 ‘컬투의 베란다쇼’에서 빨리 잘려야 가능할 것 같다. 내심 9월 개편 대상이겠거니 했는데, 안 잘리더라. 이중적인 마음이 있다. 여기처럼 돈 주는 데도 없는데 하는 생각. 반면 천안에 내려와 친구도 없는 아내를 보면 맘이 아프다. 지금 하고 있는 일 중 하나를 포기하라면 방송일 거다. 가끔 “방송 잘 보고 있다”며 인사하는 분들에겐 역습을 가한다. “뭘 봤느냐”며.



Q 신문 칼럼 등을 통해 진보 코드로 분류된 것 같다. 일베가 무섭진 않나?

제일 무서운 사람이 변희재 씨다. 그분 사이트에 가보니 논문검증위원회가 있더라. 나는 다 영어로 써서 크게 걸릴 것 같지는 않긴 한데. 어쨌든 그분 안 건드리려고 노력한다. 고소당하면 힘들더라. 아파트 회장 선거 때 상대 후보를 비방해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아파트를 망치던 수구세력이었다.



Q 그래도 보수는 실존하는 세력 아닌가. 부담스럽진 않나?

우리나라 보수는 지지하기엔 너무 구린 구석이 많더라. 사실 난 민주주의에 반하는 철인정치를 주장하는 사람이다. 강준만 선생에게 의식화돼서 그쪽 세계를 잘 떠나지 못한다. 유럽에선 보수적인 기준인데 한국에서는 진보로 분류된다. 친구들 만나면 정치 얘기는 잘 하지도 않는다. 신문에 글 쓰는 거 아는 교수님도 별로 없다. 부담스럽진 않다. 오히려 억울할 때가 많다. 누님이 전화해서 “이석기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항의하는 게 아닌가. “문제 있다”고 하니 “그렇지? 다행이다” 하면서 끊었다. 따지고 보면 방송 출연도 신문 칼럼에서 출발한 거다. 그래서인지 글로 인정받는 게 제일 기쁘다. 고향 같은 느낌이랄까. 나를 최초로 인정해준 게 바로 글이었다. 그전까진 너무 없이 살아서 인정에 목말라 있었다. 글이 그걸 이뤄준 셈이다.



Q 요사이엔 칼럼을 많이 안 쓰는 것 같다.

신문 연재는 끝났다. 대신 블로그에 올리는 글 중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말 안 하고 실어도 좋다고 했다. 그래서 가끔 올라간다. MB 때는 샤워하다가도 소재가 굴러나올 정도로 무궁무진했다. 직접 나서서 삽질이라도 하시는 스타일 아닌가. 하다못해 유행어도 많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같은. 5년 동안 정말 주저함 없이 글을 썼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많이 다르다. 아랫사람들에게 시키고 잘못되면 해결하시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글 쓰기 소재로 제약이 많다.



Q 재밌는 얘기로 돌아가보자. 원래 남 웃기는 재주가 있었나?

타고났다면 초등학교 때 그렇게 우울하진 않았을 거다. 웃기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공부도 애들 웃기려 한 게 잘 안 돼서 하게 된 거다. 노력만큼 재능이 있었다면 훨씬 재밌었을 텐데. 유머를 독학했다. 학원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남들이 안 웃기다 해도 뻔뻔하게 밀고 나가야 되는데, 그런 게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동네에선 짱 먹을 정도는 되는 것 같다. 30년 했는데 그 정도는 해야지. 웃긴 말 적어서 외우고, 코미디도 열심히 보고 했다. 요즘 보면 대학생들은 개콘 유행어 따라하는 정도밖에 안 한다. 창의적이지 않다. 유행어에 매몰되면 자기 유머를 할 수 없다. 특히 외모가 안 되는 애들은 나처럼 노력해서 자기만의 유머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수학여행 따라가면 전부 ‘잠시만요, 들어가실게요’만 하더라. 무슨 발전이 있겠나. 외모가 안 되면 특히 더 노력하라.



Q 대학생들에게 들려주고픈 얘기가 있다면.

제발 책 좀 많이 읽어라. 지금 읽지 않으면 나중에 시간도 없다. 읽으면 다 자기 것 된다. 나도 논문 안 쓰다 쓰게 된 비결이 책이다. 책 많이 읽으면 어떤 직장에서 어떤 일을 한다 해도 큰 자산이 된다. 나처럼 과학 하는 사람은 논문을 정말 잘 쓰게 된다든지. 이런 데이터로 어떻게 이런 논문을 썼나 스스로 감탄하곤 한다. 책을 십몇 년 읽으니 논문도 날아다니게 되더라. 고찰이 잘 되기 때문이다. 2주에 한 권만 읽어도 졸업하면 100권이다. 그 정도만 해도 큰 자산이다. 종이책 가지고 다니면 친구 기다리는 10분에도 의외로 많이 읽을 수 있다. 게임, 카톡. 특히 카톡이 없어져야 나라가 산다고 생각한다. 한 문장으로 말해도 될 걸 세 문장으로 나누는 게 속성 아닌가. 거기에 익숙해지다 보면 긴 문장은 낯설게 마련이다. 요새 학생들은 패기가 없단 얘기가 많이 들린다. ‘왜 짱돌을 안 드느냐’는 거다. 하지만 예전처럼 놀고 데모만 해도 취업 잘되던 시절이 아니다. 20대에 대한 질타에 상처받지 않았으면 한다. 꼭 정치의식이 아니더라도 취업, 스펙 때문에 대학 생활을 즐기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다. 기성세대로서 미안한 부분이다.



Q 기생충 학자시니, 마지막으로 기생충에 대해 묻자. 어떻게 하면 안 걸리나?

평소처럼 살면 된다. 얼마 전 자라회를 보양식으로 먹은 분들이 있었다. 8명 전부 기생충에 감염됐다. ‘그런 걸 어떻게 먹어’ 하는 것만 먹지 않으면 걱정 안 해도 된다. 생선회 정도는 괜찮다. 기생충은 대부분 약 먹으면 낫는다. 그래도 한 달 이상 고생하게 마련이다. 일부러 구충제를 먹을 필요는 없다. 구충제 먹어도 예방은 안 된다. 걸린 것을 타격할 순 있어도. 유충이나 알은 구충제로도 효과가 없다.




글 장진원 기자│사진 서범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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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3-10-13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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