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강국 코리아 CEO 릴레이 인터뷰

3D시스템즈코리아는 한국 3D산업 1세대인 배석훈 박사가 1998년 창업한 3D 스캐닝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지난해 10월 미국 상장 기업 3D시스템즈와의 인수·합병(M&A) 전까지 ‘아이너스기술’로 불렸다. 대기업 못지않은 연봉과 복지, 자율적인 기업 문화 등으로 ‘꿈의 직장’으로 분류돼 유명세를 탔던 곳이다. 지난해에는 최고 실적을 내 전 직원이 발리로 워크숍을 다녀오기도 했다.

창업자 배석훈 사장의 뒤를 이어 2대 사장인 허정훈 대표는 지난해 또 하나의 꿈을 향해 도전장을 던졌다. 2004년 이미 동종 업계 세계 1위가 됐지만 3D 스캐너 시장 성장을 위해 전략적 M&A를 택한 것. 허 대표는 “합병 6개월이 지났는데 기대했던 대로 시너지 효과가 나고 있다”며 “3D 프린팅 기술의 선두 기업과의 합병으로 3D 스캐너, 3D 콘텐츠, 3D 프린터와 관련된 허브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허정훈 3D시스템즈코리아 대표이사 “3D 기술의 ‘포털’ 로 키울 겁니다”
어떻게 3D 스캐닝 기술을 개발하게 됐나요.

제 전공이 3D 소프트웨어 기술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분야였습니다. 캐드(CAD)연구실에서 3차원 외산 제품을 많이 다뤘는데 국내 개발자들의 능력으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같은 연구실 석·박사들과 함께 당시 유명하지 않았던 3차원 스캐닝 기술(3차원 스캐너를 통해 스캔을 하면 3차원 데이터가 나오는 기술)로 창업하게 됐습니다.

처음엔 스캐너를 직접 만들었는데 전공 분야가 캐드이다 보니 스캐닝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게 속도도 더 빠르고 시장 반응도 좋았습니다. 창업 6개월 후 전공 분야인 소프트웨어에만 집중해 M&A 전까지 같은 아이템으로 개발해 왔습니다.

3D 스캐닝 소프트웨어는 어디에 적용할 수 있나요.

우리의 주력 제품인 래피드폼(rapidform)은 쉽게 설명하면 ‘포토샵’ 같은 역할을 하는 소프트웨어입니다. 3차원 스캐너에서 나온 데이터는 점들의 집합으로 돼 있고 불필요한 데이터와 노이즈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바로 쓸 수 없습니다.

이것을 래피드폼을 통해 쓸 수 있는 데이터로 만들어 주는 겁니다. 활용 분야는 다양합니다. 자동차·항공·선박·빌딩·지형 등의 형상 정보를 취득해 제품 설계나 품질관리에 쓸 수 있습니다. 숭례문 등 문화재를 복원할 때 도면 데이터를 만들어 낼 수도 있고 영화 제작에도 활용됩니다.

요즘 주목받는 3D 프린팅을 위해서는 3D 스캐닝이 필수인가요.

필수는 아니지만 두 시장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3D 프린팅 업계의 과제는 활용 분야를 넓히는 것인데, 3차원 콘텐츠가 많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죠. 이때 3D 스캐닝 기술이 3차원 모델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3D 스캐닝 업계에서 볼 때도 디지털 결과물을 실제 제품의 생산·설계·제조와 연관시키려면 결국 실물이 필요한데 3D 프린터를 통해 실물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3차원 스캐너로 스캔하고 래피드폼에서 데이터를 완벽하게 만든 후 3차원 프린터로 인쇄하면 처음 찍었던 제품과 동일한 3차원 물체가 만들어지는 프로세스로 두 시장의 동반 성장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미국 3D시스템즈와 인수·합병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인가요.

창업 당시 많은 사람들이 3차원 스캐닝 시장을 유망하다고 전망했고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봤습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많은 벤처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었고 우리는 후발 주자로 들어가 2000년에 첫 제품을 출시했습니다. 미국·캐나다·유럽 등에서 먼저 시장을 만든 상황에서 우리가 4년 만에 세계 시장점유율 1위의 쾌거를 달성했죠. 그때부터 시장점유율을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전체 시장을 키우는 데 우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3차원 스캔 데이터를 더 많은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시작했고 2006년 출시 이후 예상대로 과거 성장 속도보다 빠르게 스캐닝 시장 성장을 일궜습니다.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시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 바로 M&A였습니다. 3차원 프린터 시장과 만나면 동반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2010년부터 적절한 파트너를 찾기 위한 조사 및 분석한 결과 전 세계 3차원 프린터 시장 1위 기업인 3D시스템즈를 최적의 후보로 꼽게 됐습니다. 마침 3D시스템즈도 소프트웨어 시장에 전략적으로 뛰어드는 상황에서 우리의 기술력을 필요로 했습니다.
허정훈 3D시스템즈코리아 대표이사 “3D 기술의 ‘포털’ 로 키울 겁니다”
국내에는 적절한 기업이 없었습니까.

국내도 좋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바는 창업 초기부터 글로벌 마켓이었습니다. 실제로 현재 매출의 80%를 해외에서 올리고 있습니다. 일본과 미국 시장이 각각 30%로 가장 크고 유럽과 아시아퍼시픽도 20%씩 차지하고 있습니다. 주요 고객들도 아우디·포드·제너럴모터스(GM)·도요타·폭스바겐·소니·파나소닉·히타치 등 세계 유수의 기업이 많습니다. 세계시장에서 리더십을 갖는 것을 목표로 시작했고 M&A도 같은 관점에서 세계 1위 3D 프린터 기업과 한 것입니다. 업계에서는 두 기업의 만남이 꽤 화제가 됐습니다.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해외시장을 해답으로 생각하지만 시장 진출이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해외에서 러브콜을 받는 비결이 있습니까.

어떤 좋은 전략보다 좋은 게 실행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포함해 전 직원이 직접 해외 고객들을 만나면서 상담 교육도 하고 요구하는 것들을 개발에 반영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브랜딩 패키지 소프트웨어’라고 해서 전 세계 고객들의 니즈를 통합 반영한 제품을 선보였습니다. 사용자 경험(UX)을 디자인하는 방법으로 각기 다른 니즈를 일반화했습니다.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을 위해 필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젊은 개발자들은 대부분 애플리케이션이나 모바일, 클라우드 기반의 소프트웨어에 쏠려 있는 상황입니다. 시류를 따라가지 않고 자신만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발굴해야 세계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정부 정책도 한 분야에 몰리는 경향이 있는데, 좀 더 다양한 분야로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3D시스템즈코리아로 이름을 바꾸면서 회사 방향이나 전략도 수정됐습니까.

기존 사업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좀 더 사업 영역을 확장할 계획입니다. 기존 아이너스기술의 고객은 모두 기업 대상의 B2B였습니다. 3D시스템즈는 컨슈머 시장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어 3D시스템즈코리아 또한 일반인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펼칠 계획입니다. 예전에는 일반 고객들이 3D를 직접 경험해 보기 쉽지 않았지만 앞으로 3D시스템즈코리아를 통해 경험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3D 스캐너로 시작해 3D 콘텐츠를 만들고 곧바로 3D 프린팅으로 출력해 볼 수 있는 ‘쇼룸’을 오픈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국내 3D 기술과 관련된 포털이 되고 싶습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