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스타트업

계속 한길을 가다가 뜻밖에 새로운 세계를 만날 때도 있다. 한눈팔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꾸준히 하다가 그 분야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도 하고 자신의 능력과 꿈에 걸맞은 역할을 찾아가기도 한다.

돈 되는 것, 요즘 뜨는 것, 빨리 유명해질 수 있는 것, 이런 것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리고 너도나도 잘되는 것만 하려고 애쓰는 세상이다. 하지만 우리가 듣고 싶은 스토리는 따로 있다. 우직하게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다. 비록 힘들고 답이 잘 보이지 않더라도 자신의 길을 가는 그런 이야기를 우리는 내심 바라고 있다. 자신은 못하더라도 누군가는 하길 바랄지도 모른다.

히즈쇼는 그런 바람을 어느 정도 충족해 주는 회사다. 이 회사를 설립한 백종호 대표에게서 화려한 외형을 발견하긴 힘들다. 하지만 그는 한눈팔지 않고 우직하게 자신의 일을 해 온 것 같다. 아직은 섣불리 그의 성공을 예단하기 힘들지만 그에게서 희망을 발견한다. 세상에는 누가 뭐래도 이처럼 자신이 믿는 바를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희망이 있다고 말이다.
백종호 히즈쇼 대표 ‘성경을 재미있게’…블루오션 개척 나서다
애니메이션에 인생을 건 청년

백 대표는 1997년 경희대 예술디자인학부에 입학,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다. 그는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그래서 선택한 전공과 진로가 일관된 인물이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게 꿈이었기에 관련 분야를 전공했고 대학 졸업 후 바로 경희디지털미디어센터에서 애니메이션 기획 프로듀서(PD)로 일을 시작했다.

자신이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대학을 졸업하던 때 기독교 콘텐츠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관심과 한국에서 상당히 대중화된 기독교 관련 문화를 보면서 성경과 기독교 교육 등 기독교 콘텐츠가 그 자체로 충분히 비즈니스화할 만하다고 판단했다. 처음엔 자신이 사업을 하게 될 줄 생각하지 못한 그는 자신이 잘하는 ‘기독교 콘텐츠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에 집중했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는 하이브리드정보기술이란 회사에서 역시 애니메이션 기획 PD 업무를 하는 등 주로 기획 업무를 하던 그의 영역이 확대된 것은 2008년부터다. 그해 6월부터 백 대표는 티오씨크리에이티브에서 애니메이션 제작 일을 맡게 됐다. 감독이 되자 사실상 소사장과 같은 그런 생활이 시작됐다고 한다.

“기획하고 제작을 총괄하고 필요한 자금도 융통하고 인력도 뽑고 사장과 비슷한 그런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2008년 기독교 장로회총회 교육자원부에서 주관하는 ‘더스토리박스바이블’ 시리즈를 맡게 되면서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애니메이션 한 편을 만들 때 6, 7명으로 3~4개월 정도 소요됐다고 한다.

무려 26부작으로 만들어진 이 애니메이션은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됐다. 당시 문화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미국 뉴욕 키즈 스크린 서밋(Kids Screen Summit)에 참가해 애니메이션, 특히 기독교 애니메이션 산업의 세계시장 규모를 가늠할 수 있었다.

처음 자신이 모든 것을 총괄한 애니메이션이 호평을 받으면서 동화책으로도 출간됐고 아이패드 애플리케이션(앱)으로도 출시됐다. 2009년 크리스마스이브에는 MBC에서 크리스마스 특선 만화로 방영돼 처음으로 공중파를 타기도 했다. 이 작품은 2011 환태평양국제기독교영화제에서 부산국제영화제(PIFF) 경쟁 부문 대상을 받아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회사에 소속돼 있었지만 그는 대부분의 과정을 기획하고 책임지는 그런 구조 속에 있었다. 그런 역할을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할 바엔 내가 나가서 내 일을 해도 되지 않을까.’ 당연히 들 법한 의문이다. 그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회사를 나왔다. 2010년 말 추운 겨울날이었다.

그는 회사를 나와 바로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다. 먼저 자신이 생각하는 사업을 구상해 봤다. 그가 생각하는 것은 성경을 기반으로 한 기독교 교육용 애니메이션. 좀 쉽게 하는 방법은 있었다. 교회나 선교 단체 등의 지원을 받아 프로젝트 형식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방식이었다. 리스크는 적었지만 그는 이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국내시장에 머무를 생각이 없거든요. 예전에 했던 여러 가지 경험을 떠올려 봤을 때 국내보다 해외에 더 큰 시장이 있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해외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위해선 온전하게 사업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교단이나 선교 단체 등의 지원을 받아서는 온전한 사업화가 힘들거든요.”
백종호 히즈쇼 대표 ‘성경을 재미있게’…블루오션 개척 나서다
온전한 사업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먼저 시장의 평가를 받는 것이다. 아직 준비가 덜 된 그로서는 시장의 평가 전에 관련 단체의 평가를 받을 필요가 있었다. 그가 구상하는 사업 모델을 구체화한 다음 창업진흥원에 들고 갔다. ‘3D성경애니메이션을 이용한 교육어플개발’이라는 과제명으로 그의 사업은 예비 기술 창업자 지원 사업에 선정됐다.

본래 갖고 있던 돈 5000만 원에 창업진흥원 지원 자금을 합해 1억 원으로 2011년 6월 법인을 설립했다. 스타트업으로서는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애니메이션 제작을 생각하면 부족한 액수였다. 처음엔 혼자서 시작했다.

“그래도 창업을 하니까 오히려 좋더군요. 그전에도 어차피 혼자서 고민하고 작업했는데 이젠 내 이름을 걸고 내 일을 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혼자서 기획안을 만들고 사업 전략을 구상한 그는 천천히 팀을 모았다. 6개월이 훨씬 지나 올해 초가 돼서야 팀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9개월이 넘는 준비 과정을 거쳐 올 11월 초 첫 작품이 나왔다. ‘히즈쇼 바이블’이다.
백종호 히즈쇼 대표 ‘성경을 재미있게’…블루오션 개척 나서다
스마트 모바일 시대의 ‘베지테일’꿈꿔

3D 성경 애니메이션 ‘히즈쇼 바이블’은 율동과 스티커북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가미해 어린이들이 성경을 재미있게 배우도록 했다. 천지창조에서 시작돼 성경 속 유명한 이야기들이 애니메이션으로 펼쳐진다.

애니메이션 일변도가 아니라 실제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가수 휘타가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성경 이야기를 하고 힙합 그룹 히스팝이 성경 구절을 랩으로 들려줘 호기심을 자극한다. 애니메이션은 총 26부작이다. 가정용인 홈 에디션과 교회용인 처치 에디션으로 구분돼 출시된다.

백 대표는 “향후 히즈쇼 바이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이용해 캐릭터쇼, 캠프 프로그램, 여름 성경 학교 프로그램 등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의 1차 목표는 2013년 여름 성경 학교다. 전국의 교회 주일 학교와 중고등부 학생들이 여름 캠프를 떠나는 시즌에 맞춰 이에 특화된 콘텐츠를 선보일 계획이다. 1000만 명 안팎(가톨릭 포함)으로 추산되는 기독교 신자를 감안했을 때 이 중 10%인 100만 명에게 우선 확실하게 어필할 수 있으면 초기 시장 안착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게 백 대표의 판단이다.

물론 그의 최종 목표는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것이다. 만국 공통인 성경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만들기 때문에 언어적·문화적 장벽이 낮다. 더 중요한 것은 의외로 이런 회사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선교 단체들이나 기독교 출판사들이 일부 애니메이션이나 기독교 관련 콘텐츠 사업을 하고 있지만 주로 스토리에 초점을 맞춰 비주얼적인 측면이 약하다. 히즈쇼는 비주얼뿐만 아니라 음악·캐릭터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두루 강점을 갖고 있어 이런 부분을 살리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직도 대부분의 기독교 관련 콘텐츠는 과거 TV 시대나 PC 시대에 만들어진 것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히트를 친 기독교 애니메이션 베지테일과 같은 그런 콘텐츠는 모바일 시대에 더 큰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히즈쇼가 모바일 시대의 베지테일이 되고 싶은 거죠.”



임원기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wonkis@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