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청와대에선]
-지지율 안정·공수처법 통과·고용지표 개선 등으로 주요 국정 현안에 한층 ‘자신감’
문재인 대통령, 새해 들어 단호해진 배경은
(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에서 1월 7일 신년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한경비즈니스 = 김형호 한국경제 기자] 새해 들어 청와대 내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화법도 한결 단호해졌다. 지난 1월 2일 신년 인사회에서 “권력 기관이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 법적·제도적 개혁을 멈추지 않겠다. 대통령으로서 헌법에 따른 권한을 다하겠다”고 했다. 강한 어조로 검찰 개혁 드라이브를 예고한 것이다. 이날 오후에는 인사 청문회가 끝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전격 임명했다. 1월 7일 신년사에서도 문 대통령은 강경 발언을 이어 갔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지지 않겠다”며 강력한 추가 대책을 예고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문 대통령의 어법이 새해 들어 조금 달라진 것 같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 관계자는 “청와대 내에서도 문 대통령이 주요 국정 과제와 현안들에 대해 한층 자신감을 갖고 말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했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새해 들어 문 대통령의 행보가 달라진 원인으로 몇 가지 꼽고 있다.

우선 ‘대통령 1호 공약’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안의 연말 국회 통과에 크게 고무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숙원이었던 공수처법은 문 대통령의 검찰 개혁 의지를 반영하는 상징적 법안이다. 지난해 4월 이 법안이 패스트 트랙
(신속 처리 법안) 안건으로 지정됐지만 법안의 처리 여부에 대해서는 청와대 참모들도 자유한국당 등 보수 야당의 반발이 워낙 거세 ‘반신반의’ 수준이었다.

◆여당, TF 꾸려 공수처법과 검경수사권조정안 처리 훈련

선거법과도 맞물려 있어 통과가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한국당 등 보수 야당이 ‘설마 되겠어’라며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던 것도 통과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에서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조용히 물밑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문재인계인 A 중진의원이 TF팀장을 맡아 이인영 원내대표, 윤호중 사무총장 등과 공수처법 처리를 위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준비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여권의 핵심 인사는 “보수 야당은 안될 것이란 확신 속에 협상에 일절 임하지 않았다. 모두가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역으로 파고들어 국회 처리를 위해 전략을 준비해 왔다”고 말했다. 공수처법 통과 이후 문 대통령의 검찰 개혁 의지는 한층 강경해진 모습이다. 1월 8일 추 장관이 검찰 인사를 통해 윤석열 검찰총장의 핵심 측근들을 대거 교체한 것은 대표적인 ‘명승암강(明升暗降 : 직급은 높이고 힘은 빼앗는 인사)’ 전략으로 꼽힌다. 윤 총장의 측근들을 승진 전보 조치하면서 힘을 빼는 방식의 인사권 행사를 통해 윤 총장에게 사실상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새해부터 법적·제도적·행정적 권한을 통한 권력 기관 개혁을 수차례 천명한 만큼 검찰을 향한 ‘개혁 몰아치기’는 당분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고용과 소득 분배 지표 변화도 영향을 미친 듯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취임 이듬해인 2018년에는 최저임금 인상 여파에 따른 일자리 감소 등 고용 지표 악화로 언론의 ‘맹폭’을 받았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소득 주도 성장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됐다. 지난해 신년사에서 문 대통령이 “일자리 감소가 가슴 아프다.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많다”며 고용 악화에 유감을 밝힐 정도였다.

하지만 올해는 “신규 취업자가 28만 명 증가해 역대 최고의 고용률을 기록했고 청년 고용률도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평가했다. 40대와 제조업 고용 부진을 우려했지만 전년에 비해 고용 상황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났다. 야당에서는 “현실 인식이 결여된 자화자찬성 신년사”라는 혹평이 이어졌고 전문가들은 재정 투입을 통한 노인 일자리 증가에 따른 착시 현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여러 지적이 있지만 고용 지표가 2018년에 비해 개선되고 있는 것은 맞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상반기까지는 재정 투입이 일자리 지표로 이어지지 않아 청와대 내부에서도 ‘도대체 그 많은 자금이 어디로 흘러가느냐’는 회의론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하반기부터 지표상으로 효과가 나타나면서 문 대통령이 정책 결과에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연말부터 ‘조국 사태’에서 벗어나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안정화 추세를 보이는 것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각종 여론 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40%대 중반에서 50% 초반에 형성돼 있다. 긍정 평가가 부정 평가를 앞지르는 여론 조사가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는 국정 지지율 안정화와 별도로 문 대통령의 개인적 호감도를 눈여겨보고 있다. 청와대 정기 여론 조사에서 대통령 호감도는 꾸준히 60%대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취임 이후 국정 지지율이 출렁인 적이 있지만 호감도는 단 한차례도 60%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며 “지난해 연말을 기점으로 지지율이 다시 안정화 추세로 전환됐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중, 한·일 관계 꼬인 실타래 풀려가는 것도 긍정 요인

취임 초반부터 꼬여 있던 한·중 관계와 최근 1년 새 급격히 나빠진 한·일 관계가 개선 실마리를 찾아가는 것도 새해부터 국정 운영에 속도감을 내는 한 요인으로 꼽힌다.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문제로 2017년부터 얼어붙었던 한·중 관계는 지난해 말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확연히 달라지는 모습이다. 중국 인민일보가 같은 날 저녁 진행된 중·일 정상회담보다 한·중 정상회담을 머리기사로 배치한 것도 달라진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란 관측이다. 오는 3~4월께로 예정된 시 주석의 방한을 계기로 사드 사태로 발생한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이 완전 해제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악화 일로를 걷던 한·일 관계 역시 최근 돌파구를 찾아가고 있다. 대법원의 강제 징용 판결과 지난해 7월 일본 정부의 소재 부품 수출 규제,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호협정) 종료 결정 맞대응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양국 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하지만 연말 중국 청두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 기간 마주한 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대화를 통한 해법 모색에 합의하면서 실타래를 풀어 가고 있다. 한·일 양국의 국민적 정서 등을 고려할 때 하루아침에 모든 조치를 원상회복시키기는 어렵지만 양국 모두 더 이상의 확전을 원하지 않는 만큼 조금씩 물꼬를 틀 것이라는 게 청와대의 기대다.

그동안 발목을 잡았던 주요 외교 악재들이 조금씩 해소되는 것과 달리 남북한 관계는 문 대통령에게 새로운 복병이 되고 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남북한 관계는 문 대통령이 국내외 악재에 봉착할 때 지지율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하지만 북·미 비핵화 협상이 장기 교착 국면에 빠져들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한반도 비핵화의 촉진자 역할을 자처했던 문 대통령을 향한 북한의 냉대가 이어지면서 공간 마련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신년사에서 “북·미 대화가 본격화되면서 남과 북 모두 북·미 대화를 앞세웠던 것이 사실”이라고 언급한 것은 그동안 북·미 대화만 기다리며 스스로의 공간 확보에 소홀한 측면이 있다는 문 대통령의 성찰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연초부터 “평화는 행동에서 나온다”, “운신의 폭을 넓혀 나가겠다” 등의 발언을 내놓은 데는 향후 남북한 교류를 확대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관측이다. 일각에선 이 과정에서 미국과의 공조에 균열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chsan@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9호(2020.01.13 ~ 2020.01.1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