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에 부는 ‘스포츠 투자’ 열기

지난 8월 17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최대 통신사 사우디텔레콤은 영국의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5년간의 스폰서 계약을 했다. 계약 금액은 1000만 파운드(약 198억 원). 4년간 약 5600만 파운드(약 1123억 원)를 받는 미국 보험 회사 AIG의 유니폼 스폰서 계약을 빼고는 최대 규모다. 사우디텔레콤은 맨유의 홈구장인 ‘올드 트래포드’ 안팎에 광고를 할 수 있게 됐고 휴대전화를 통해 맨유의 경기 하이라이트나 소식 등을 전할 수 있게 됐다.오일 달러가 넘치는 중동에 스포츠 투자 열기가 넘치고 있다. 사우디텔레콤의 맨유 지원은 가장 최근의 사례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중동 국가와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스포츠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붓고 있다. 국제 경기를 유치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쓰는가 하면 스포츠 인프라 구축에도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KHP컨설팅그룹에 따르면 올 들어 걸프만 국가들과 요르단은 모터 스포츠와 관련 비즈니스에만 120억 달러를 지출했다. 전통적으로 매 사냥, 말이나 낙타 경주 등에만 관심 있던 중동 국가들로서는 엄청난 변화다.TV 중계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중동을 알릴 수 있는 각종 대형 국제 대회 유치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아부다비는 2009년 피파(FIFA) 클럽 월드컵을 개최한다. 바레인은 2004년부터 자동차 경주 선수권 대회인 ‘포뮬라 원(F1) 그랜드 프릭스’를 개최해 왔으며 아부다비는 내년에 첫 번째 대회를 연다. 스포츠 컨설턴트들은 이 같은 중동 국가들의 움직임은 궁극적으로 그들의 브랜드 가치를 전 세계적으로 높이고 관광 산업을 활성화해 원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전략으로 분석하고 있다. 바레인에서 이뤄진 한 리서치 조사는 지난해 F1 대회의 경제적 효과를 5억4800만 달러로 추산했다.스포츠 비즈니스 쪽으로도 많은 돈이 흘러들어가고 있다. 아부다비 국영 투자 기관인 무바달라는 스포츠카 회사 페라리의 지분 5%를 매입했으며 바레인의 국영 회사인 뭄탈라카트 지주사는 또 다른 스포츠카 회사인 맥라렌의 지분 30%를 보유하고 있다. 2006년 두바이 국영 기업 두바이월드가 설립한 레저코프는 남아프라카 골프 복합단지에서부터 미국 콜로라도주 아스펜 인근에 있는 스키 리조트 지분까지 다양한 투자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 스포츠 구단 등과의 스폰서십도 확대되고 있다. 아부다비의 신생 항공사인 에티하드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 구단 첼시, 영국 런던의 할리퀸스 럭비클럽, 헐링(hurling: 아일랜드식 필드하키) 등과 스폰서십 패키지를 맺고 있다. 에미레이트항공은 런던 아스날 축구클럽의 최대 스폰서다. 중동지역 내에서는 두바이 카타르 아부다비가 유럽 프로 골프 투어 대회를 개최한다. 내년 11월에는 두바이에서 두바이 월드 챔피언십이 열린다. 올 초 열렸던 두바이 데저트 클래식 대회에 참석한 타이거 우즈는 참가비로만 200만 달러를 받았다는 설이 있다.이웃 나라들에 비해 석유 자원이 적은 두바이는 일찌감치 경제 기반을 다양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스포츠 투자에 눈을 돌렸다. 두바이는 현재 6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다기능 경기장과 2만5000명의 관중이 들어갈 수 있는 크리켓 경기장, 주거지와 상업지역에 둘러싸인 하키장과 농구장 등이 있는 스포츠시티를 건설 중이다. 두바이는 국제크리켓위원회(ICI) 본부도 유치했다. ICI는 96년 동안이나 런던에 있었지만 비과세 혜택과 스포츠시티 내 크리켓 아카데미 건립 등의 매력적인 조건 때문에 두바이로의 이전을 결정했다.그러나 이 같은 정부의 열성적인 스포츠 투자에도 불구하고 정작 현지 국민들은 축구를 빼면 스포츠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편이다. 여름이면 기온이 섭씨 40도까지 치솟는 이곳에서 많은 젊은이들은 운동을 즐기기보다 냉방이 잘돼 있는 쇼핑몰 등에서 시간을 보내는 걸 선호한다. 스포츠 컨설턴트 회사 옥타곤의 닉 마세이 유럽 및 중동지역 최고경영자(CEO)는 “지금까지는 ‘경기장을 지어 놓으면 사람들이 올 것’이라는 식이었지만 투자를 하고 관중이 오도록 유도하지 않으면 저절로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과잉 시설을 지으면 난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박성완·한국경제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