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철저하게 ‘경제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비트코인…‘투자비용’이 하방경직성 만든다
'그럴 것 같다’는 없는 냉정한 비트코인의 세계
많은 이들이 비트코인 열풍을 17세기 유럽의 ‘튤립 열풍’에 비유한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튤립과 다르다. ‘내재 가치’가 없고 ‘담보물’도 없기 때문이다.

[오태민 크립토 비트코인 연구소장·‘비트코인은 강했다’ 저자,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매커니즘캠퍼스 출강] 미국의 CNN은 10월 31일 ‘무엇이 짐바브웨의 비트코인 열풍을 촉진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짐바브웨에서 비트코인 가격이 급격히 오르는 현상을 보도했다.

짐바브웨에서는 1BTC의 가격이 1만 달러를 넘었다. 최근 정부가 달러 대신 달러 보장 채권을 유통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짐바브웨는 통화 체계가 완전히 붕괴됐다가 미국 달러를 쓰면서 안정됐다.

중앙은행이 2015년 짐바브웨 달러를 폐지하기로 결정했을 때 3경5000조 짐바브웨 달러가 1달러에 교환됐다.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잡았지만 미국 달러의 부족과 정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다시 통화 주권 회복을 도모하고 있다.

과도기적으로 달러를 정부가 보증하는 달러 채권으로 유통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의 보증에도 불구하고 달러 채권의 가격은 액면가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폭락했다. 외국인들은 아예 받아주지도 않는다. 또다시 통화 공황의 악몽에 시달리는 국민들이 비트코인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짐바브웨의 경제 규모가 작기 때문에 짐바브웨에서 비트코인의 수요가 폭발한 것이 최근 비트코인 가격 급등의 원인이라고 진단하는 분석가들은 별로 없다. 하지만 2016년 10월부터 시작된 비트코인 가격의 4차 도약은 당시 베네수엘라와 인도의 화폐개혁이 촉발한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총누적 채굴량은 1650만 BTC이지만 20% 정도만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다. 따라서 지구 어딘가에서 갑자기 비트코인 수요가 생기면 가격 상승 압력이 의외로 강력하다. 비트코인의 총가치가 지금보다 훨씬 커져야만 이런 현상이 완화된다. 가격이 오를수록 0.1BTC나 0.01BTC 단위로 사고 팔리기 때문이다.

◆투자는 조심 또 조심해야

블록체인은 혁신적 기술이지만 ‘킬러 애플리케이션(앱)’이 아직 없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비트코인이야말로 블록체인 최초이자 최고의 킬러 앱이다. 은행들에 둘러싸여 있고 믿을 만한 정부가 통화를 관리하는 나라에 사는 이들에게 비트코인은 별 쓸모없는 투기 수단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전 세계 160개 국가 중에서 그런 나라는 손에 꼽을 정도다. 통화 남발 때문에 땀 흘려 일해 저금한 돈의 가치가 휴지가 되는 부당함을 주기적으로 감내해야 하는 지구촌 대부분의 시민들에게 비트코인은 믿을 수 있는 ‘비인격적 시스템’이자 정부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구하는 게 어렵지 않은 거의 유일한 ‘외환’이다.

물론 비트코인에 투자하려면 정말 조심스럽게 투자해야 한다. 최근 가격이 빠르게 올랐으니 급격하게 떨어질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하지만 ‘비트코인 가격은 거품’이라는 주장은 상식적일지는 몰라도 논리적으로는 맞지 않다. 비트코인은 내재 가치가 없고 보장하는 담보물도 없다. 이 때문에 100만원이라고 하더라도 거품이라고 볼 수 있고 1만원이라고 해도 거품이다. 실제로 비트코인 가격이 40만원대에 머무르던 2015년에도 파이낸셜타임스의 담당 기자는 비트코인 가격이 전형적인 거품이라고 분석했다.

비트코인은 환상이거나 대단한 발명품, 둘 중 하나다. 기존의 관점에서 보는 ‘거품’이라는 회색지대는 존립 근거가 약하다. 그래서 비트코인 가격은 다른 금융자산과 달리 ‘사느냐 죽느냐’라는 이분법에 의해 움직여 왔다.

비트코인은 어떤 가격대에서 오래 머무를수록 그 가격 이하로는 잘 내려가지 않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가격의 하방 경직성이다. 가격의 하방 경직성은 전기요금을 지불해야만 하는 채굴 때문에 생기는 속성이다.

전기요금을 지불하는 사람들에게만 보상으로 새로운 비트코인이 제공되는 구조는 어느 가격대가 지속된 다음 가격이 폭락하는 것을 막게 한다. 미시경제학과 게임 이론에도 해박한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과 상호작용하는 인간의 행동 양식까지 고려하며 시스템을 구축했다. 비트코인 시스템의 안정성은 이런 총체적인 얼개에 의해 뒷받침된다.

비트코인 가격이 갑자기 10배가 됐다고 생각해 보자. 그만큼 가격이 오른 외부적 이유가 있었겠지만 시스템의 내부적 요인만 따져보면 이렇게 빠르게 오른 가격은 불안정한 상태가 확실하다. 단기 투자자들이 이익을 실현할 유인이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게 뛰어올랐다고 하더라도 그 가격대를 당분간 유지했다면 가격은 점점 안정적인 상태에 접어든다. 채굴자들의 채굴 경쟁이 심화돼 채굴비용이 증가하면서 채굴비용은 결국 비트코인의 시장가격에 육박한다. 더 이상 낮은 가격에 비트코인을 얻을 수 없는 채굴자들은 가격이 폭락하더라도 자신이 투입한 전기료를 회복할 때까지 비트코인의 처분을 늦추며 기다린다.

담보물의 가치에 좌우되지 않는 비트코인은 어느 가격도 될 수 있는 자의성을 갖는다. 이는 투자자들을 난감하게 만드는 속성이다. 하지만 어느 가격에 머무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 가격 이하로는 잘 떨어지지 않는 하방 경직성도 갖는다. 비트코인의 가격 차트를 훑어보면 지난 9년간 법칙처럼 작용한 하방 경직성을 누구라도 발견할 수 있다.

급격히 오르던 가격이 내리기 시작하면 갑자기 실체가 없는 전자코드를 구입했다는 생각에 압도되곤 한다. 가지고 있는 비트코인을 1분 1초라도 빨리 던져버려야 할 것 같은 공포감에 휩싸일 그때 ‘가격의 하방 경직성’을 떠올린다면 조금은 평안한 마음으로 기다릴 수도 있다. 없는 것 보다 나은 이런 모형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막아줄지도 모른다.



[돋보기] 비트코인 가격과 채굴 난이도의 함수관계
연간 5000억의 자금이 투자돼 온 비트코인

비트코인 가격의 침체기였던 2014년 후반기부터 2016년 7월까지 평균가격은 1BTC당 40만원이었다. 이 시기는 비트코인 시스템의 견고함이 증명된 기간이다. 당시 비트코인은 10분당 25BTC가 새로 생겼다. 하루에 3600BTC다. 채굴자는 비트코인을 시장에 팔아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하고 전기료를 내야 한다. 따라서 비트코인의 채굴비용을 뒷받침하는 자본의 순유입이 있어야만 비트코인 가격은 유지된다. ‘3600BTC×40만원=14억4000만원’이므로 하루에 이만큼의 자금이 채굴 산업에 유입돼야만 비트코인은 40만원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침체기임에도 불구하고 연간 5000억원 이상의 자금이 비트코인에 투자돼 왔다고 해석할 수 있다.

2년 전인 2015년 11월에 비해 현재의 난이도는 대략 20배 정도 증가했다. 채굴량은 25BTC에서 12.5로 줄었기 때문에 채굴 참여자들의 소득이 2년 전과 비슷하다고 전제하면 2년 전에 비해 가격은 40배 정도 증가해야 한다. 컴퓨터의 기술적 발전과 채굴 방식의 효율화 등을 최대한 고려해도 20배 이상은 돼야 한다. 2년 전 가격은 330달러 수준이었고 11월 1일 비트코인은 6600달러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