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라이트닝 네트워크, 비싼 거래 수수료 넘어서는 대안으로…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 서다
블록체인이 만들어내는 ‘신뢰의 섬’
[오태민 크립토 비트코인 연구소장·‘비트코인은 강했다’ 저자] 올 한 해에만 15배 이상 가격이 뛴 비트코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불편하기만 하다. 비트코인 열풍은 여러 가지 과거의 미덕을 훼손한다. 쉽고 빠르게 많은 돈을 벌었다는 이웃의 이야기는 근로 윤리를 파괴한다.

기존 규범의 파괴로만 보이는 비트코인은 사실 일군의 과학자들이 한 가지 미덕에 집착해 얻은 결실이다. 바로 ‘신뢰(trust)’다. 신뢰는 그 어느 사회나 필요한 보편적 미덕이다. 미국 정부는 인터넷의 확장을 정책적으로 추진하면서 ‘정보 고속도로’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인터넷이 ‘지구적 규모의 정보 고속도로’라면 비트코인은 ‘지구적 규모의 신뢰 고속도로’를 만들고자 한다.

◆비트코인의 핵심은 ‘신뢰’

수많은 암호화폐에 관한 연구 중 비트코인에 몰두하는 일군의 과학자들은 12월 초 ‘라이트닝 네트워크(lightning network)’가 실행 직전 단계에 와 있고 베타 버전이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암호화폐 투자자들에게 이 뉴스는 중요하다. 암호화폐들 간의 경쟁 구도에서 비트코인의 지위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들은 분산 시스템이다. 따라서 중앙 서버 방식의 기존 금융망에 비해 시간당 거래 처리 용량이 제한적이다. 해킹에 취약했던 초기에 비트코인 개발자들은 36MB에 달하던 한 블록의 용량을 1MB로 줄여 놓았다.

하지만 한 번 줄인 용량을 다시 늘리는 문제를 놓고 몇 년째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올해 8월 1일 기습적으로 8MB로 용량을 늘린 비트코인캐시가 하드 포킹으로 독립했다. 비트코인캐시는 거래 수수료를 낮추는 데 일단 성공했다.

그러나 사용자가 늘어나면 용량 문제가 모든 분산 시스템의 뒷다리를 잡을 수밖에 없다. 중앙 서버 방식이라면 트래픽 증가에 따라 서버를 확충하면 해결되는 비용의 문제일 뿐이지만 분산 시스템에서는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더디고 복잡하다. 그래서 초당 거래 용량의 증가만으로는 용량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 1MB 비트코인을 고집하는 개발자들의 주장이다.

12월 10일 비트코인 거래 수수료의 중간값은 17달러에 달했다. 1달러어치의 비트코인을 보내기 위해서는 17달러를 채굴자들에게 지불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반면 비트코인캐시 거래 수수료의 중간값은 0.02달러밖에 안 된다. 두 코인의 가격의 차이도 반영해야 하므로 이를 교정하면 0.2달러다. 비트코인의 거래 수수료가 비트코인캐시보다 85배나 된다. 비트코인 가격은 활용성보다 장래성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비현실적으로 비싼 수수료 문제를 해결해야만 비트코인은 독보적인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

라이트닝 네트워크를 만들고 있는 과학자들은 불신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신뢰의 섬들을 상상한다. 그리고 이 신뢰의 섬들은 서로 연결되므로 결과적으로 지구촌 시민들은 불신의 바다에 빠지는 일 없이 섬과 섬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갑수와 영희가 서로 빈번하게 거래하는 사이라면 둘 사이의 거래를 일일이 블록체인에 기록하지 않아도 된다. 둘 만이 공유하는 장부를 유지하다가 거래를 종료하는 시점에서 블록체인에 기록하면 된다. 은행들 간의 거래를 매번 정산하지 않다가 회기 말에 한 번에 정리하는 것과 비슷하다.

암호화폐는 블록체인이라는 네트워크를 사용한다. 이 때문에 블록체인에 거래를 기록하는 행위를 온체인(on-chain)이라고 부르고 갑수와 영희처럼 블록체인 밖에서 장부를 기록하는 걸 오프체인(off-chain)이라고 한다.

라이트닝 네트워크는 오프체인을 활용한다. 모든 전송 내역을 비트코인 블록체인에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최종 결과만 블록체인에 기록하는 것이 라이트닝 네트워크의 핵심이다. 분산 시스템 용량에 부담을 주는 것은 온체인이다. 모든 노드가 동일한 장부를 기록하는 게 블록체인인데 오프체인 방식으로 이뤄지는 거래는 채굴에 참여하는 컴퓨터들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따라서 채굴자들에게 수수료를 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라이트닝 네트워크가 제로 수수료를 달성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갑수와 영희가 만든 신뢰의 섬은 다른 사람에게도 득이 된다. 첼시라는 제삼자가 있다 치자. 갑수와 첼시 사이에는 오프체인용 공동 계좌가 없다. 하지만 영희와 첼시가 공동 계좌가 있다면 갑수는 영희와의 관계를 이용해 첼시에게 비트코인을 주거나 받을 수 있다. 이 아이디어의 묘미는 갑수와 영희 그리고 첼시가 서로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무리 없이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라이트닝 네트워크는 다중 키(multi-signature)와 시간 잠금 계약(Hashed Timelock Contract)을 활용해 비인격적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갑수와 영희가 공동 계좌를 만들고 다중 키로 설정한다. 블록체인상에서 이 장부를 변경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 모두의 비밀 키가 필요하다. 오프체인에서는 둘의 합의만으로 갱신해 나가다가 장부를 청산할 때 다중 키를 이용해 온체인한다. 둘 사이에 합의된 거래들은 시간 잠금 계약을 걸기 때문에 한 사람이 합의를 뒤집고 자신에게 유리한 상태로 장부를 온체인 할 수 없다. 일단 갑수와 영희 사이에서 배신을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갑수와 첼시 사이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신뢰 프로세스가 작동하기 때문에 세 사람은 거래를 할 수 있다.

라이트닝 네트워크가 조만간 실용화돼 비트코인의 수수료가 극적으로 줄어든다면 비트코인캐시는 종말을 맞게 될까. 비트코인이 과학적 장인들의 이상주의적인 철학으로 가득하다면 비트코인캐시는 실용정신으로 무장돼 있다. 아마도 비트코인캐시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비트코인의 성공을 따라서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할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라이트닝 네트워크가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된다면 1MB 비트코인의 위상은 크게 위축될 것이다. 1MB 비트코인의 라이트닝 네트워크는 어쩌면 이상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이론에 모든 계란을 다 담는 위험한 도박인지도 모른다.

[돋보기] 라이트닝 네트워크의 미래 : 수평 네트워크에서 방사형 네트워크로 변화

라이트닝 네트워크만으로는 수평적 네트워크라는 암호학자들의 이상을 유지하면서 용량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거래를 충분하게 뒷받침하려면 공동 계좌의 수가 많아야 한다. 그래야 특정인에게 도달하기 위해 건너는 단계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 사용자가 공동 계좌를 많이 유지하려면 소유한 비트코인을 여러 계좌에 나눠야 하기 때문에 자금이 묶인다. 현실적으로는 빈부의 격차가 존재하며 성실하지 못한 참여자들 때문에 라
이트닝 네트워크를 이용하고자 하는 사용자들의 공동 계좌 유지 부담액이 더욱 늘어난다. 결국 완전히 평등한 오프체인 신뢰망을 형성하기 어렵다는 결론이다.

과학자들이 꿈꾸는 신뢰의 해양 도시를 구성하는 섬들은 그 크기가 매우 불평등해야만 한다. 블록체인은 평등한 노드들 사이의 수평적 네트워크지만 오프체인은 몇몇 허브들이 중심이 된 방사형의 신뢰망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여러 참여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부유한 허브들 간의 연결망이 고속도로라면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간선도로까지 나아가야만 연결될 것이다.

대중을 미혹하는 모든 이설의 공통점은 이상만으로 현실을 쉽게 재단하려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이론과 현실, 이상과 실용성 간의 긴장 속에 놓여 있고 앞으로도 이 긴장을 통해 발전할 것이다. 1MB 비트코인 하나만이 아니라 비트코인 캐시나 이더리움이 대립적·상보적으로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암호화폐가 시대의 사기이자 이설이 아니라는 강력한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