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안심 최우선으로 급성장, 까다로운 조합원 눈높이 맞춰
생협의 이단아 ‘생활클럽’… 90% 이상 자체 상품
(사진) 일본의 생활클럽 광고.




[한경비즈니스=만들면 사주는 수동적인 고객은 사라졌다. 고객은 적극적인 소비 주체로 탈바꿈했다. 이러한 변화는 패러다임마저 뒤흔든다. 상식 파괴다. 기존 방식으로는 대응하기 힘들어졌다.


독점 제품처럼 대체재가 없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울며 겨자 먹듯 살 수밖에 없다. 이때는 배짱 영업도 가능하다. 다만 이러한 사례는 사라지고 있다. 대안이 없어 지갑을 여는 수동적인 구매 행위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로운 맞수의 등장 때문이다.


소비자가 직접 생산자로 변신하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소비자가 직접 만들겠다는 일종의 소비혁명이다. 대표적인 것이 ‘생협’이다.


◆소비자가 직접 생산·판매해 ‘고품질’ 자랑


일본에선 최근 ‘생활클럽연합회’란 생협 조직이 화제다. 원래 일본의 생협 활동은 유명하다. 생협 천국이란 수식어처럼 코프미라이·팔시스템 등 다양한 생협이 활동한다. 가격은 비싸도 친환경 품질을 내세워 시장 경쟁자를 위협하는 선까지 성장했다.


2011년 지진 이후 방사능 염려가 높아지면서 가족 먹거리의 안전·안심을 챙기려는 주부 고객의 만족도가 높다. 초고령사회에 힘입어 고령의 독신 고객에게도 생협은 든든한 생활 지원군이다. 그 덕분에 생협은 969개 조합, 6783만 명의 조합원을 자랑한다(후생노동성 2016년). 여기엔 공제사업뿐만 아니라 의료 생협 등 다양한 라인업이 포진한다. 생협만으로도 일상생활에 무리가 없다.


그중에서도 생활클럽이 단연 돋보인다. 눈에 띄는 성장 행보로 생협의 이단아로 불리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지녔다. 다른 생협은 조합원의 세대교체 속에 멤버의 확장이 그런저런 수준인 반면 생활클럽은 매년 1만 명의 신규 회원이 새롭게 가입한다. 물론 수백만 조합원을 가진 대형 생협에 비하면 여전히 중소 규모다. 38만 명의 조합원과 33개 개별 생협을 토대로 100여 명의 노동자가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부심이 엄청나다. 가령 생활클럽이 운영 주체인 슈퍼마켓 ‘데보’는 수도권에 50개 점포를 갖추며 승승장구 중이다. 안심하고 안전한 식생활을 위한 철저한 품질관리 때문이다. 의심스럽거나 불만스러운 기성 제품을 포기한 대신 조합원의 까다로운 눈높이에 맞춰 대안 제품을 직접 생산·판매·소비한다. 50년의 출범 역사 이후 품질 원칙이 고집스레 고수됐다.


생활클럽의 주인공은 소비자다. 보통의 소비자는 생산·유통·판매와 거리가 있다. 만들면 사는 수동적인 고객이다. 그런데 생협은 다르다. ‘소비=생산’을 아우르며 스스로 필요한 것을 만들고 판매한다. 이들은 안전·안심이 전제된 먹거리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이 때문에 생활클럽은 식품첨가물의 경우 일본 정부가 인정한 819개조차 엄격하게 더 줄여 단 85개만 허용한다. 지난 2월까지 누적된 방사능 검사도 10만5000건에 육박한다. 사용한 것을 모두 밝힌다는 자신감은 가공식품의 솔직한 원재료 공개 기재로 이어진다. 엄격한 공정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거래 불가다.


농약 사용부터 포장 재질까지 까다롭게 취급하니 거래 메이커 중 일부는 포기할 정도다. 역으로 이는 조합원의 신규 가입을 유도하는 일등 공신이다.


생활클럽은 태생부터 믿을 만한 먹거리를 지향했다. 1965년 우유 1병에서 시작된 혁명적 아이디어가 원류다.


당시 소비자를 실망시킨 우유 가격 인상 조치에 대항하기 위해 3엔 싼 우유를 공동 구입하면서부터다. 조합원이던 주부들이 믿고 마시는 맛 좋은 우유를 찾아내는 공부 모임이 생협 조직으로 연결됐다. 1979년 다양한 식품 문제가 빈발하던 가운데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만들자’고 결심, 낙농가와 협업해 우유 공장을 설립했다. 제조·물류·가격 등 메이커 우선주의 우유와의 결별 선언이었다.


최근엔 토종 닭고기 생산에 도전했다. 98%의 닭이 수입 품종이란 점에 불만을 갖고 순수 일본산 닭을 키우는 생산자를 어렵게 접촉해 토종 닭고기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3대 이상 일본에서 길러진 귀중한 닭이어서 생산 효율이 낮지만 반발은 거의 없다. 생산자조차 비용 편익을 걱정했지만 조합원의 건강은 타협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생협의 이단아 ‘생활클럽’… 90% 이상 자체 상품
(사진)생활클럽 슈퍼마켓 '데보(위)'와 판매 농식품.


◆생협이 파는 건 ‘상품’이 아닌 ‘소비재’


생활클럽의 차별적인 행보는 또 있다. 다른 생협은 대형 메이커 상품까지 확대·판매하는 전략을 채택했지만 생활클럽은 90% 이상이 오리지널 자체 상표(PB) 제품이다. 모두 소비자이자 조합원인 이들의 손에서 만들어진 제품이다.


원하는 안심 제품을 조합원과 메이커가 이인삼각의 협력 체제로 독자 생산한다. 메이커로부터 납품받아도 생산 과정에 적극 개입해 사실상 자작(自作) 제품이다. 상품명·포장·디자인은 원천적으로 생협이 결정한다.


상품 기획·개발도 마찬가지다. 기존 제품의 품질 불신에서 비롯된 대안 조직답게 신뢰와 애정이 높다. 이 때문에 기존 제품을 ‘상품’이라고 부르며 그들의 ‘소비재’와 구분한다. 이윤 추구가 아닌 생필품의 소비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대체적인 상품 개발은 ‘조합원으로 팀 구성→시판 제품 조사→메이커와 가격 협상→제조 현장 체크’의 공정을 따른다.


수도권에서 화제인 슈퍼마켓 데보도 생활클럽이 운영한다. 인기 비결은 다른 곳에 없는 다양한 상품군이다. 압도적인 자연의 맛도 자랑거리다. 일본산 토마토를 익힐 때 물 한 방울 넣지 않은 명품 케첩에서부터 천연 양 내장에 친환경으로 기른 돼지고기를 넣어 풍미를 높인 소시지까지 판다. 굴을 통째 넣은 조미료도 인기다.


합성 보존재나 착색료를 일절 넣지 않은 자연의 맛을 살린 상품 판매다. 식품 품질에 민감한 소비자에게 ‘무엇을 사든 믿을 수 있는 슈퍼’라고 평가받는 이유다. 생산자와 조합원의 신뢰 구축도 좋다. 생활클럽에선 매일처럼 생산자와 조합원의 교류회가 개최된다. 매년 2000회 이상 식재료를 확인하기 위해 현장 방문도 잇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