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페이스북도 거래소 인수 ‘눈독’…비트코인이 ‘기축통화’로 부각될 수도


[오태민 크립토 비트코인 연구소장, ‘스마트 콘트랙 : 신뢰혁명’ 저자] 라인이 싱가포르에서 암호화폐 거래소를 개설한다. 라인은 네이버의 자회사로, 전 세계 2억 명의 활동 유저를 보유한 일본 최대 메시징 애플리케이션(앱) 기업이다.

라인은 6월 28일 암호화폐 거래 서비스 ‘비트박스(BITBOX)’를 7월 중 시작한다고 밝혔다. 비트박스에선 비트코인·이더리움·라이트코인 등 30여 종에 이르는 암호화폐를 거래할 수 있다. 라인은 지난 1월 말 이미 일본 금융청에 거래소 설립을 신청했다.

혁신의 정점에는 토큰 이코노미라고 불리는 결제 혁명이 자리한다. 이데자와 다케시 라인 최고경영자(CEO)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은 거대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기술로 글로벌 메가 뱅크의 등장을 촉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암호화폐 거래소는 바로 메가 뱅크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확보해야 할 거점인 셈이다. “회사의 관심은 거래 수수료가 아니다”는 이데자와 CEO의 말은 글로벌 금융망 구축을 향한 라인의 야심을 한 번 더 확인해 줬다.

카카오가 세계 최대 규모의 거래소 중 한 곳인 업비트를 운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규제 당국의 눈 밖에 날 수 있는 민감한 사업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제도 정비가 시작되기도 전에 대기업이 뛰어들었다는 것 자체가 특이한 일이다. 위험을 감수할 만한 이익이 걸려 있다고 판단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페이스북 역시 미국 최대의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를 인수할 계획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세계적인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소문의 진원지인 만큼 단순한 풍문으로 흘려듣기는 쉽지 않다.

-페이스북, 블록체인 사업부 신설

올해 초 암호화폐와 암호화폐 공개(ICO)에 관한 광고 금지를 시작했던 페이스북이 불과 6개월여 만에 선별적으로 광고를 허용하기로 한 것도 주목해야 한다. 페이스북은 이에 앞서 올해 5월 회사 창립 이후 최대의 조직 개편을 통해 최고기술책임자(CTO) 직속에 블록체인 사업부를 뒀다. 이 때문에 페이스북의 블록체인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블록체인 사업부를 총괄하는 데이비드 마커스가 코인베이스의 이사를 겸하고 있다는 사실이 두 회사의 인수·합병(M&A) 소문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는 주식거래소와 유사하다. 신규 코인과 토큰들의 가격이 유력한 거래소에서 거래되는지에 따라 폭등하기도 하고 폭락하기도 한다. 즉 ‘암호화폐 거래소 상장’이 ‘주식거래소 상장’보다 더 크고 빠른 이익을 의미하기 시작했다. 암호화폐 거래소는 암호화폐 세계의 관문이자 권력이다. 페이스북·네이버·카카오가 암호화폐 거래소 사업에 관심이 없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많은 사용자는 거대한 커뮤니티의 형성을 의미하고 커뮤니티의 형성은 바로 화폐 창출의 핵심이다. 결국 페이스북과 같은 거대 소셜 미디어와 네이버·카카오 같은 포털들은 독자적으로 비트코인과 같은 화폐를 창출하는 데 마음이 있다. 그래서 거래소는 독자적인 코인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할 전략적 요충지다.

독자적으로 블록체인을 구축하려는 구글의 행보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이더리움 개발자 비탈릭 부테린 씨는 구글이 자체 블록체인 플랫폼 구축을 위해 자신에게 접근했다고 말한 바도 있다.

독자적인 블록체인 플랫폼은 독자적인 암호화폐와 기술적으로 겹친다. 영국 투자회사 블랙모어그룹의 필립 눈 CEO는 “만약 구글·트위터·페이스북이 자체적인 암호화폐를 만든다면 이미 확보한 사용자 기반 때문에 거대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20억 인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결제 수단이라는 사실만 놓고 보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공룡들의 자체적인 화폐는 단번에 달러나 위안화의 지위에 도전할 수도 있다. 실제로 페이스북은 ‘페이스북 크레디트’라는 프로젝트로 온라인 기축통화에 도전했다가 좌절해 본 경험도 있다.

공룡들이 주도하는 암호화폐는 리더십을 찾아보기 어려운 비트코인보다 대중의 신뢰를 얻는 데도 유리하다. 비트코인은 용량 확대 같은 문제조차 수년간 해결하지 못하는 등 거버넌스의 문제가 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혹은 골드만삭스가 만들거나 주도할 코인들은 거버넌스 문제가 없다. 확고한 거버넌스는 여러 가지 위기 상황과 시스템 장애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또한 신뢰받는 글로벌 기업들이 가치와 사용을 보장하기 때문에 무정부적인 암호화폐들보다 가격이 안정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기도 편리하다. 비트코인과 같이 리더십이 부족한 암호화폐들이 거쳐 온 시행착오를 생략할 수 있으므로 인터넷 공룡들이 주도하는 암호화폐들의 확산 속도는 빠를 것이다.

거버넌스 암호화폐들의 성공으로 비트코인 가격은 하락하거나 심지어 몰락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가능성도 있다. 기업들이 각자의 암호화폐를 온라인 세계의 기축통화로 만들기 위해 배타적인 블록을 쌓고 쟁투를 벌이는 와중에 비트코인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될 수 있다. 상호 배타적인 화폐 블록들을 중재하는 역할에 비트코인이 최적이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거버넌스가 없기 때문에 특정 화폐에 대해 가치중립적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때문에 비트코인은 각기 다른 화폐 커뮤니티를 이어주는 기축통화가 될 수 있다.

[돋보기] 비트코인이 갖는 가치중립성의 힘

빠르게 부상하던 암호화폐 이오스(EOS)가 최근 거버넌스 논쟁에 휩싸였다. EOS코어중재포럼(ECAF)은 해킹 공격 용의자로 추정되는 계좌를 동결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중앙 기구의 빠른 대처 자체가 오히려 블록체인의 비가역성과 탈중앙성을 훼손한다는 반론이 크게 일었다. 급기야 이오스 창시자 댄 라리머마저 커뮤니티의 분열을 야기한 동결 조치에 불만을 토로했다.

이오스의 거버넌스 논쟁은 2016년 더다오(The Dao) 사태와 이더리움의 하드포크를 연상시킨다. 더다오 토큰은 2016년 6월 기준 이더리움 발행 총량의 15% 정도를 투자로 모았다. 그런데 더다오 토큰의 3분의 1이 해커의 수중에 들어가게 됐다. 해킹된 이더리움은 당시 가치로 5000만 달러어치에 이른다. 해킹은 이더리움 자체의 문제가 아니었다. 더다오의 애플리케이션 코드에 흠이 있어 일어난 일이었다. 해킹이 발생하자 이더리움재단은 재빠르게 하드포크해 피해자를 구제하고 해커의 토큰을 무효화하는 결정을 내렸다. 결과적으로 재단의 빠른 대응은 피해를 최소화하고 향후 이더리움의 빠른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사람들은 시스템 초기에 겪기 마련인 시행착오로 받아들였다. 비트코인의 리더십의 부재와 이더리움의 민첩한 대응은 뚜렷한 대조를 이뤘다.

하지만 재단의 민첩한 대응은 암호화폐 투자자들의 잠재의식에 분명한 흔적을 남겼다. 이더리움의 중립성이 훼손됐다는 것이다. 해커는 코드의 결함을 찾아냈다. 코드가 법이라면 해커는 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 법을 이용해 이익을 얻은 셈이다. 중립적인 시스템은 이런 경우 선악의 판단을 보류해야 한다. 중립성을 지키지 못하면 향후 발생할지 모르는 많은 문제에 끌려들어가 계속해 개입해야만 한다. 선악의 판단은 주관적이다. 그러므로 가치판단이 지배하는 시스템의 미래는 불안정하다.

비트코인은 사소한 문제조차 해결할 수 있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이 없다. 하지만 세상이 가치중립적인 기준을 간절히 원할 때 비트코인의 바로 이 단점이 가장 핵심적인 장점으로 부각될 것이다.

캡션
MWC 2017에 참석해 라인의 성장 전략을 발표하는 이데자와 다케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