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만의 기업 가치 100배 키우기]
-가족기업의 성장 속도 비가족기업보다 빨라…가까울수록 ‘원칙’ 중시해야


[신현만 커리어케어회장] Q. = 저와 동생은 1년 뒤 아버지로부터 기업의 경영권을 물려받기로 예정돼 있습니다. 아버지는 회사를 창업한 이후 줄곧 회사를 이끌어 오셨는데, 지난해 수술 이후 건강이 매우 약해지셨습니다. 아버지는 연로하신데다 건강까지 악화하자 최근 공개적으로 경영 일선에서 퇴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셨습니다. 이에 따라 저와 동생은 경영 상황을 파악하면서 한편으로 중·장기적으로 회사의 지배구조와 사업구조를 어떻게 재정비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영전략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기고 우리는 대주주로 남을 수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물론 아버지는 전문경영인 체제가 안고 있는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경영에 참여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과거 잠시 전문경영인에게 경영 책임을 맡겼을 때 회사가 심하게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우리가 경영을 주도하는 게 옳은지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가족 경영 체제보다 전문경영인 체제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시각이 더 우세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가족 경영 체제가 전문경영인 체제보다 더 비효율적일까요. 가족 경영 체제가 성공하려면 어떤 점을 살펴야 할까요.
‘성과 중심·독립적 이사회·승계 준비’  가족경영기업의 인사관리 포인트
A. = 가족 경영 체제와 전문경영인 체제는 각각 분명한 장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잘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나뉘어 있습니다. 전문경영인 체제에 더 큰 점수를 주는 사람들이 좀 더 많긴 하지만 가족 경영 체제의 강점을 더 높게 평가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재벌의 폐해가 많이 거론되면서 ‘족벌 경영’이라거나 ‘세습 경영’이라며 가족 경영 체제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에선 긍정적 평가가 적지 않고 가족 경영 체제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가족 경영 체제의 장점으로 확고한 주인의식, 강력한 리더십, 과감한 투자, 신속한 의사결정을 꼽을 수 있습니다. 특히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장기적 성장을 도모하기 때문에 재무적인 위험관리가 전문경영인 체제에 비해 훨씬 철저하다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지역이나 산업과 무관하게 가족기업의 총주주수익률(TSR)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월드지수와 유럽지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를 2~3%포인트 앞서고 있습니다. 또 장수하는 대규모 가족기업은 비가족기업에 비해 성장 속도가 빠르고 위기 대응 능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시장 수익률도 높다는 연구 조사 결과가 많습니다.

-유럽의 가족 경영 기업 최대 90% 달해

이렇게 가족 경영 체제의 장점이 많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가족기업이 번창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 소속 국가들의 전체 기업 가운데 가족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60~90%나 됩니다. 가족 경영 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기업이 모두 규모가 작은 자영업체는 아닙니다. 세계 1000대 기업 가운데 3분의 1 정도는 창업자 일가가 경영권을 행사하거나 경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 대기업의 30%, 동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대기업의 60% 이상이 가족 경영 체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기업만 하더라도 한국의 현대차나 기아차뿐만 아니라 일본의 도요타, 독일의 BMW와 포르쉐, 프랑스의 푸조, 이탈리아의 피아트도 모두 가족 경영 체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가족 경영 체제는 이렇게 많은 강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국가가 나서 가족 경영 체제를 적극 확산시켜야 한다는 의견까지 내놓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은 데이비드 랜디스 하버드대 교수입니다. 그는 “가족기업의 실적이 더 우수하기 때문에 전문경영인 체제의 기업(managerial enterprise)을 위한 제도적 여건이 미비한 개발도상국에서는 가족 경영 체제의 기업을 경제 발전 수단으로 적극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가족 경영 체제가 장점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상당히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어 잘못 경영하면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되고 결국 파산하는 기업도 부지기수입니다. 가족 경영 체제는 가족 간 갈등이 기업으로 쉽게 전이됩니다. 가족 구성원들이 경영에 참여하기 때문에 가족이 화합하고 단결하면 조직력이 강해지지만 가족이 갈등하고 분열하면 조직력이 약해지고 내분으로 조직이 깨질 수도 있습니다.

-단지 ‘친인척’이란 이유만으론 안 돼

가족 경영 체제의 기업에서는 또 무분별한 친인척 등용이나 정실인사, 외부 인력 활용 미흡, 기업가 정신 약화와 같은 문제가 자주 발생합니다. 전문경영인 체제에 비해 사안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지 못하거나 엄정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것도 큰 약점입니다. 가족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면 기업의 수익성이 4%포인트 이상 크게 낮아질 뿐만 아니라 상당수가 흑자에서 적자로 전환됐다는 조사 결과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 조사에서는 또 수익성이 낮은 분야는 전문경영인이 최고경영자(CEO)를 맡은 기업보다 오너 가족이 CEO를 맡은 기업이 파산 신청을 하거나 청산 절차에 들어가는 확률이 높았습니다.

그러면 가족 경영 체제의 문제점은 어떻게 보완해야 할까요.

첫째, 철저한 역량과 성과 중심으로 인사를 해야 합니다. 가족 경영 체제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약점은 공정한 인사관리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데도 가족 구성원이나 그들의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고위직으로 채용해 주요 보직을 맡기는 곳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가족 경영 체제의 기업들은 최대한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려고 노력합니다. 대주주인 가족 구성원들의 경영 참여를 원칙적으로 제한하는 겁니다. 능력도 없이 가족이라는 이유로 간부급으로 채용하고 대표이사나 주요 임원을 맡기는 일부 한국 기업들의 모습과 전혀 다릅니다. 만약 어쩔 수 없이 가족 구성원들이 경영에 참여해야 하면 처음부터 고위직이나 핵심 직무를 주지 않습니다. 철저히 역량과 성과에 걸맞은 직무를 맡기죠. 특히 가족 구성원들이 다른 기업이나 기관에서 경험을 쌓지 않으면 고위직을 맡기지 않습니다. 회사에서 경력을 시작할 때도 말단 직무부터 맡깁니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가도록 하는 것이죠.

일부 기업들은 외부 전문가들을 투입해 경영에 참여하는 가족 구성원들의 역량과 성과를 매년 평가하기도 합니다. 회사의 주요 리더십이 될 사람들이기 때문에 관심을 기울이는 겁니다. 이 같은 평가 결과는 이사회에 보고돼 리더십 선발과 운영에 참고 자료로 활용하도록 합니다. 마치 대통령 비서실의 인사담당비서관이 주요 공직자와 공직 후보자들을 관리하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역량을 평가하고 검증하는 겁니다.

둘째,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합니다. 가족 경영 체제가 안고 있는 도덕적 해이나 좁은 안목을 극복하려면 반드시 객관적 시각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역량이 뛰어나도 내부 인사들만으로는 균형적 시각을 갖추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가족 구성원들이 주요 보직을 맡고 있거나 조직에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기업의 내부 인사에게 객관적 시각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최근 국내 주요 금융지주나 대기업에서 CEO 후보 선출 과정이 비판의 대상이 된 것도 이사회가 독립적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내이사는 물론이고 사외이사까지 사실상 대표이사가 추천해 선임하다 보니 사외이사로 구성된 CEO후보추천위원회도 대표이사의 영향력 범위 안에 놓이게 됩니다. 이에 따라 CEO 후보는 결국 현재의 대표이사가 결정하는 셈이 된 겁니다. 만약 현재의 대표이사가 연임하겠다는 의사를 갖고 있다면 자신이 자신을 추천해 대표이사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는 셈이죠.

따라서 이사회는 최대한 대표이사의 영향권 밖에 있는 외부 인사들로 구성돼야 하고 그 운영에 대한 독립성도 철저히 보장돼야 합니다. 대표이사로서는 자신이 하는 일에 시어머니처럼 잔소리하는 이사회가 싫을 수도 있지만 그래야 의사결정이 잘못되는 것을 줄일 수 있고 합리성이 왜곡되는 것을 피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경영권 승계를 철저히 준비해 승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피해야 합니다. 가족 경영 체제의 최대 리스크는 경영권 승계의 파행 가능성입니다.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재산과 직책을 놓고 가족 구성원 간 갈등이 자주 벌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조직과 사업이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한국의 대기업들도 LG그룹 같은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가족 구성원끼리 갈등이 불거졌습니다. 부자간이나 형제간 다툼으로 기업이 심각한 상처를 입었고 이 상처를 치료하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갔습니다.

-가족 구성원 간의 갈등 미리 막아야

그런데 이런 일들은 비단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닙니다. 조셉 판 홍콩 중문대 교수가 대만·홍콩·싱가포르의 가족기업 경영권 승계 과정을 조사한 결과 CEO 교체 전후 8년 동안 해당 기업들의 주가 가치가 평균 60% 가까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는 이런 현상이 중국에서도 발견된 것으로 볼 때 특정 지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경영권 승계의 리스크를 줄이려면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준비해야 합니다. 독립적인 이사회 구성원들이 CEO승계위원회를 만든 뒤 외부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야 합니다. 회사의 주요 현안을 점검하고 이를 감당할 수 있는 CEO의 자격을 정한 다음 후보자 물색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헤드헌팅 회사 같은 외부 전문 기관에 의뢰해 후보자를 찾고 철저히 검증해야 합니다. 또 후보자들에게 회사의 주요 현안을 알려주고 선정된 뒤 권한과 책임이 순조롭게 이양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잘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안착시키는 것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니까요.

가족 경영 체제는 많은 장점을 갖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약점도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어떤 경영 체제가 옳을지 고민할 게 아니라 현시점에서 어떤 경영 체제가 회사에 적합한지 따져봐야 합니다.


[본 기사는 한경 비즈니스 제 1182호(2018.07.23 ~ 2018.07.2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