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두 개의 굵직한 사건 수사한 미 연방 검사 출신…실리콘밸리 최대 VC가 ‘찜’

[오태민 크립토비트코인 연구소장, '스마트콘트랙:신뢰혁명' 저자] 실리콘밸리 최대의 벤처캐피털 안드레센 호로위츠는 지난 6월 3억 달러의 가상통화 투자 펀드를 발표했다. 안드레센 호로위츠는 동시에 공동 최고관리자 중 한 명을 여성이자 미연방 검사였던 캐서린 혼 씨를 임명해 주목받았다.

혼 씨는 한때 암호화폐업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비트코인 관련 범죄 전문 검사였다. 혼 씨는 익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비트코인을 결제 대금으로 받은 암시장의 아마존이라고 불렸던 ‘실크로드 사건’을 수사했다. 또 범죄 자금을 국제적으로 환전해 준 암호화폐 거래소 BTC-e의 관계자인 알렉산더 비닉 씨를 체포했다. 이처럼 혼 씨는 암호화폐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미 연방 정부의 비트코인 수사에 관여했다.

이후 혼 씨는 검사직을 뒤로하고 스탠퍼드대에서 암호화폐에 대해 강의하면서 미국 최대 거래소 코인베이스의 이사를 겸하는 비트코이너로 변신했다.

그는 사이버 보안 분야에도 관여하고 있다. 그는 해커원(HackerOne)의 독립 감독관을 맡고 있다. 해커원은 버그 수배(Bug Bounty)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버그 수배는 화이트 해커들이 프로그램의 오류를 찾아주면 보상하는 시스템이다. 이런 집단지능을 이용하면 스마트 콘트랙트나 암호화폐 관련 플랫폼이 네트워크에 론칭하기 전에 위험요소를 차단할 수 있다.

미국의 언론사 쿼츠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혼 씨는 검사를 그만두려는 시점이던 2012년 비트코인을 처음 알았다고 한다. 강력 조직범죄 수사에 신물이 난 그에게 상관이 ‘비트코인을 기소해 보라’고 주문했다.

혼 씨는 비트코인을 공부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비트코인은 기소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마치 인터넷이나 현금이 범죄에 이용된다고 해서 인터넷이나 현금을 기소할 수 없듯이 비트코인과 비트코인 관련 범죄는 분리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게 됐다.

실제로 2013년 미국 상원에서 최초로 열렸던 비트코인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법무부 관계자들도 혼 씨와 의견이 같았다. 그들은 비트코인 자체가 범죄는 아니라고 말했는데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발언이었다. 그만큼 비트코인에 대한 미국 사회의 첫인상도 한국만큼 나빴다.
암호화폐의 스타 여성 CEO로 뜬 ‘캐서린 혼’
◆너무도 ‘투명’한 비트코인 거래

혼 씨는 수사 당시 비트코인 커뮤니티로부터 많은 정보와 협조를 받았다고 회상했다. 그가 검사직을 그만두고 암호화폐업계에 뛰어든 것도 이때 비트코인 커뮤니티로부터 얻은 좋은 인상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비트코이너들은 범죄를 싫어하는 건전한 시민들이었다. 그들로부터 얻은 정보는 비트코인 관련 수사에 도움이 됐다.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무엇보다 투명한 블록체인의 속성 그 자체였다.

당시 비트코인에 열광했던 지하세계의 무법자들은 비트코인의 익명성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다. 비트코인의 익명성은 제한적이다. 오히려 비트코인의 거래 흔적은 영원히 남기 때문에 어느 한 지점에서 꼬리가 잡히면 연관된 거래처가 모두 드러나고 만다. 수사기관으로서 무엇보다 좋은 사실은 거래 내역을 보는 데 영장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금융회사들은 수사기관들의 문의에 제대로 답하지 않거나 답하더라도 오래 걸렸다. 하지만 블록체인은 언제나 투명하게 노출돼 있다. 결정적인 꼬리만 잡으면 거미줄처럼 연결된 생태계를 모두 밝혀내는 데 어려움이 없다.

실크로드 수사에 참여했던 정부 관계자들이 비트코인을 착복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비밀경호국의 션 브리지 씨와 마약단속반의 칼 마크 포스 씨는 실크로드의 운영자 로스 윌리엄 울브라이트 씨와 비밀 접촉을 통해 수사 정보와 비트코인을 맞바꾸는 검은 거래를 했다. 압수 수색의 혼란을 틈타 울브라이트 씨의 지갑에서 비트코인을 훔치기도 했다. 이들을 기소해 법의 심판을 받게 한 것도 당시 캐서린 혼 검사였다.

법의 절차를 밟아 비트코인의 경로를 추적했다면 수사기관에 있었던 브리지 씨나 포스 씨도 자신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수사를 방해하거나 증거를 은닉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범죄자들이나 수사관들 모두 비트코인의 투명한 속성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기에 범죄 유혹에 쉽게 넘어갔던 것이다.

최근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논평가들은 북한이 유엔의 경제제재를 피해 중국이나 제삼국과의 밀무역에 비트코인을 활용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 국가안보국(NSA) 리실라 모리우치 전 동아시아태평양 사이버안보담당관의 발언이 근거다.

그는 북한이 2017년 채굴이나 해킹 등으로 획득한 비트코인 수가 최소 1만1000여 개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해킹이나 채굴에 관여했다고 해도 비트코인을 밀무역에 사용하기는 어려운데 NSA가 북한의 비트코인 소유 규모를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이유다. 북한 수중에 들어간 것으로 의심되는 비트코인을 따라가면 누군가는 현금과 거래하는 시점에서 남긴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정보를 역으로 추적하면 거래 관계자들의 실체가 드러난다. 게다가 국가 차원의 거래여서 액수가 제법 크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다. 북한과 제삼국의 기업들이 비트코인을 활용해 국제사회의 눈을 피하려고 할 수는 있지만 이는 신기술에 대한 오해에서 출발한 자기들만의 낙관일 뿐이다. 오히려 글로벌 무기 거래 생태계 전체를 노출하는 꼴이 될 것이다.

혼 씨에 따르면 수사 관계자들은 비트코인의 특성에 대해 빠르게 학습하고 있고 정부 내에서 비트코인 자체를 죄악시하는 분위기는 사라지고 있다. 최근 미국 규제 당국의 관심은 비트코인에서 암호화폐 공개(ICO)로 옮겨지고 있다고도 했다. 한 강연회에서 혼 씨는 미 정부의 일관성 있는 규제를 이른 시간 내에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터넷 초기에도 업계는 일관되고 투명한 규제를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규제를 빨리 만드는 것보다 시간이 걸리는 편이 더 낫다고 평가했다. 새로운 기술과 산업의 부상 초기에 발 빠르게 만든 규제라면 상당한 오해가 뒤섞인 상태다. 그런 규제로는 기술의 발달을 따라가지도, 기술의 부작용을 제어하지도 못한다. 암호화폐 산업을 둘러싼 규제 당국 내부의 혼선과 지연은 당연하면서도 바람직한 현상일 수 있다는 논리다.

[돋보기] 암호화폐의 투명성을 높이는 스타트업들
블록체인을 추적해 암호화폐 관련 수사에 정보를 제공하는 스타트업들이 성업 중이다.

영국 회사 엘립틱은 이미 2013년 10월 설립돼 유럽경찰국(Europol)이나 미국연방수사국(FBI)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의 암호화폐 기업 비트퓨리는 2018년 초 크리스털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크리스털처럼 투명한 블록체인의 거래 내역을 시각화해 의심스러운 거래와 관련 조직을 파악하는 혁신적인 도구인데 프로젝트가 본격화될 때까지 대략 2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의심스러운 거래는 시스템이 자동으로 위험 점수를 매기고 관련 거래 모두를 시각화하면서 추적을 시작한다. 개별 주소를 모두 포착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비트코인 주소와 연계된 기업이나 조직의 반복 거래의 상거래 특성 대부분을 특정할 수 있다고 한다.

해시오션이라는 회사는 클라우드 마이닝 서비스를 내걸고 자금을 그러모았지만 약 1년 후 사라졌다. 이 회사를 크리스털에서 확인하면 마이닝을 한 흔적이 전혀 없다. 모은 돈으로 상층부에 배당을 주는 단순한 피라미드 사기였다. 크리스털 서비스가 본격화되면 일반인들도 이런 사기를 미리 알 수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7호(2018.08.27 ~ 2018.09.0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