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균 27% 고성장 전망, 미국·중국 공세에 글로벌 비중 하락
커지는 e스포츠 시장… '종주국' 한국은 뒷걸음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엄마, 스포츠 하고 오게 천원만 주세요.” 2013년 네이버에 ‘e스포츠’란이 신설됐을 때 흔히 볼 수 있는 댓글이었다. e스포츠를 스포츠로 인정하지 않고 폄하하는 조롱 섞인 반응이다.

e스포츠 종주국이랄 수 있는 한국에서조차 마니아 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e스포츠가 이젠 국제 스포츠 무대에 등장했다. 국내 지상파도 사상 최초로 e스포츠 경기를 실시간 중계했다.

게임 산업, 중계 플랫폼, 구단 등 다양한 산업 생태계 전반의 성장과 함께 공식 스포츠 인정을 앞두고 있는 e스포츠가 성장할 수 있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중국과 북미의 거침없는 투자 속에서 앞으로도 한국은 e스포츠 종주국의 명예를 지킬 수 있을까.
커지는 e스포츠 시장… '종주국' 한국은 뒷걸음
금메달은 땄지만 메달 집계엔 반영되지 않았다. 선수의 병역 면제 혜택도 없다. 하지만 종목 채택과 특정 선수 출전만으로도 인기 종목 못지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시범 종목으로 채택돼 국제 종합 스포츠 대회 데뷔전을 치른 ‘e스포츠’의 이야기다.

이번 아시안게임 e스포츠에선 리그오브레전드(LOL), 스타크래프트2(스타2) 등 6개 세부 종목이 진행됐다. 한국은 이 가운데 개인전인 스타2에 1명, 단체전인 LOL에 6명 등 프로게이머 7명이 국가 대표로 출전했다.

그 결과 스타2에서 조성주 씨가 금메달을, LOL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국가 대표 명단에 LOL 세계 최고 선수로 꼽히는 이상혁(페이커) 프로게이머가 포함되면서 전 세계 e스포츠팬들 사이에 “어차피 LOL 우승은 한국”이라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한국, 아시안게임에서 금 1개·은 1개

아쉽게도 금메달은 놓쳤지만 이번 아시안게임 출전을 통해 e스포츠의 달라진 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e스포츠가 단순한 게임 대회를 넘어 공식 스포츠 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는 첫 발판이 됐기 때문이다.

아시안게임을 개최하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산하 단체다. IOC가 e스포츠의 올림픽 정식 편입을 고려하고 있다는 의미다.

최근 올림픽 관계자들의 연이은 e스포츠에 관한 긍정적인 발언도 이를 뒷받침한다. 토니 에스탕게 2024 파리올림픽유치위 공동위원장은 “e스포츠가 스포츠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며 “2024 파리 올림픽에서 e스포츠 정식 종목 채택을 두고 IOC와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2년 항저우 아시안 게임부터는 e스포츠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예정이다.

e스포츠는 온라인 게임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 간 기록 또는 승부를 겨루는 경기 및 부대 활동을 의미한다. 게임을 통한 경기뿐만 아니라 중계방송과 관련 커뮤니티 활동까지 아우른다.

글로벌 게임 시장 조사 업체 뉴주(Newzoo)에 따르면 2018년 글로벌 e스포츠 매출액 규모는 9억1000만 달러(1조219억원)로 전년 대비 38.2%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1년까지 매출액 성장은 연평균 27%에 달하는 고성장이 예상되는 산업이다. 글로벌 스포츠 시장 성장률 3%와 비교해 압도적이다.
커지는 e스포츠 시장… '종주국' 한국은 뒷걸음
게임 산업과 인터넷 플랫폼 성장이라는 날개를 달면서 e스포츠의 성장 잠재력은 더 높게 평가받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e스포츠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한국 e스포츠 시장은 약 830억원 규모로 전년 대비 약 14.9% 성장했다. 스폰서 시장 규모는 축구·야구에 이어 국내 3위 수준이다.

e스포츠 시장의 성장은 단순히 게임 제작 산업만의 성장을 의미하지 않는다. e스포츠 시장 생태계의 주체는 게임 개발사·퍼블리셔(유통사)·플랫폼·프로게이머·구단 등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축구나 야구 산업 생태계와 비슷하다.

특히 온라인 스트리밍 등 플랫폼의 발달은 e스포츠의 잠재력을 끌어올린 직접적인 요인이 됐다. e스포츠에서는 게임을 직접 하는 것만큼이나 ‘보는 것’도 중요하다.

뉴주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e스포츠 시청자는 3억8500만 명이었고 2020년에는 e스포츠 시청자가 약 5억9000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큼 유튜브·트위치·아프리카TV 등 게임을 중계하는 동영상 플랫폼은 e스포츠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플랫폼이 성장하면서 게임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콘텐츠와 연계된 광고·스폰서십·시청자 후원 관련 매출도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글로벌 IT 공룡들은 e스포츠를 차세대 먹거리로 여기고 있다. 아마존은 게임 스트리밍 서비스의 고성장을 예상하고 2014년 트위치를 9억7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트위치는 2017년 실시간 시청자 수가 95만 명 수준으로 MSNBC(89만 명), CNN(78만 명) 등 메이저 채널을 뛰어넘었다.

트위치 관련 매출은 2020년 최대 2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서는 4년 내에 트위치가 넷플릭스와 같은 왕좌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2016년 게임 스트리밍 서비스 빔(Beam)을 인수한 이후 믹서(Mixer)라는 브랜드로 재탄생시켰다.

스트리밍 플랫폼은 단순히 중계 영상을 제공해 광고 수익만 얻는 것이 아니라 게임 개발, 콘텐츠 소비, 수익화가 하나의 플랫폼에서 일어나는 통합 모델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 시장이 커지면서 e스포츠 구단에 대한 투자도 늘고 있다.

2013년 이후 실리콘밸리에서 일어난 e스포츠 관련 투자 중 e스포츠 구단에 대한 투자는 총 6400만 달러로 전체 투자 금액의 약 2%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구단에 대한 투자 대부분이 2017년 이후 일어난 만큼 성장 잠재력이 큰 분야다.

기존 스포츠 구단도 e스포츠 구단에 뛰어들고 있다. 2016년 유럽의 주요 명문 스포츠클럽인 발렌시아·파리생제르맹(PSG)·샬케04 등의 구단들도 e스포츠팀을 신규 창단했다. 지난해 5월에는 레드불이 유럽 지역 기반 LOL팀을 창단했다. 국내에서는 SK텔레콤·KT·한화생명 등 14개 e스포츠 프로구단이 총 28개 팀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게임학회장을 맡고 있는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 e스포츠 구단이 모기업의 마케팅을 위한 코스트센터로 활용됐다면 지금은 제반 인프라가 발달하고 스폰서십이 크게 증가하면서 자체 수익성을 갖춘 사업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팀에 대한 투자뿐만 아니라 e스포츠 대회 자체에 대한 기업 후원도 늘고 있다. 지난해 LOL 글로벌 리그인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에는 메르세데스-벤츠·코카콜라·인텔·로레알 등 많은 글로벌 기업의 후원이 이어졌다.

프로게이머들이 받는 연봉도 e스포츠 시장의 성장을 보여준다. 프로게이머들은 구단 연봉, 대회 우승 상금, 기부금, 스트리밍 수익, 기타 수익(TV·광고 출연료)으로부터 수익을 창출한다. SK텔레콤 T1팀에 소속된 프로게이머 이상혁 선수의 연봉은 30억원으로 국내에서 활동하는 모든 스포츠 선수를 통틀어 1위로 알려져 있다.

한국이 e스포츠 종주국이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인터넷 발달과 스타크래프트 출시, PC방 활성화가 한국 e스포츠 시장의 씨앗이 됐다.

1990년대 출시된 스타크래프트는 e스포츠의 성격인 ‘경쟁’을 기반으로 했고 스타 열풍으로 인해 우후죽순 생겨난 PC방들은 자체적으로 소규모 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PC방 대회는 동네 단위, 구 단위, 시 단위, 전국 단위로 확대됐다. 2000년대에는 ‘프로게이머’라는 새로운 직업이 탄생했고 전 세계에서 최초로 프로e스포츠 정규 리그가 출범했다.
커지는 e스포츠 시장… '종주국' 한국은 뒷걸음
◆6개 종목 가운데 한국 게임은 ‘0’

지금은 당연해진 게임 중계방송도 한국이 최초로 이룩한 성과다. 2000년대 e스포츠 전문 방송 온게임넷이 세계 최초로 탄생하고 이후 경기를 중계하는 케이블방송이 늘면서 e스포츠 전성기가 시작됐다.

특히 2004년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결승전 때 광안리에 10만 명의 관객이 운집한 사건은 한국 e스포츠의 대중화를 보여주는 일화다.

한국 선수들의 역량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글로벌 e스포츠 시장에서 한국의 입지는 줄어들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한국의 e스포츠 시장 규모는 2015년 723억원에서 2016년 830억원으로 14.9% 늘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에서 15%로 오히려 4%포인트 줄어들었다.

커진 파이의 대부분은 미국과 중국이 가져가고 있다. 뉴주에 따르면 올해 e스포츠 산업 예상 수익(9억600만 달러) 중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18.1%(1억640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북미 지역(3억4500만 달러·38.07%)에 이어 둘째로 높다. 한국(6%)의 세 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특히 중국 대형 IT 업체들의 e스포츠 주도권 잡기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텐센트는 지난해 ‘e스포츠 5년 계획’에 따라 2022년까지 산업 규모를 총 1000억 위안(약 16조원)으로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상하이를 비롯해 안후이성 우후, 쓰촨성 청두, 장쑤성 쑤저우 등 각 도시와 손잡고 e스포츠 관련 테마파크와 산업단지 등을 건설하는 협약을 맺었다. 알리바바는 자회사 알리스포츠를 통해 e스포츠 올림픽 정식 종목화를 추진하고 있다. OCA와 파트너십을 체결하며 아시안 게임에 e스포츠를 포함시키는데 영향을 미쳤다.

e스포츠의 위상을 볼 수 있던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종주국인 한국은 소외됐다. 아시안게임 e스포츠에서 6개 종목으로 채택된 게임인 리그오브 레전드(미국), 스타크래프트2(미국), 클래시로얄(핀란드), 하스스톤(미국), 위닝일레븐(일본), 펜타스톰(중국)에서 한국 개발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e스포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전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게임업계의 발목을 잡는 과도한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 셧다운제(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심야 시간의 인터넷 게임 제공을 제한하는 제도), 온라인 게임 결제 한도, 웹보드게임 규제 등이 국내 게임에만 적용되다 보니 실효성 및 역차별 논란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또한 한국 게임 업체가 다양한 장르 게임 제작에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위 교수는 “그동안 한국이 개발한 게임은 대부분 롤플레잉게임(RPG)에 치중돼 있었고 수익화에 치중돼 게임의 다양성이나 재미 요소를 부여하는 질적인 성장을 이루진 못했다”며 “많은 유저들이 비판하듯 확률 아이템을 통한 당장의 수익성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생명력이 길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는 게임을 다양하게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 김철학 한국e스포츠협회 사무국장

“중국·미국 투자 규모 따라잡기 어려워…인적자원 생태계 구축 나서야”

커지는 e스포츠 시장… '종주국' 한국은 뒷걸음


e스포츠가 아시안게임 시범 종목으로 채택됐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국가 대표 선수들을 직접 지원한 김철학 한국e스포츠협회 사무국장을 만나 문제점과 해결책을 들어봤다.

▶e스포츠가 아시안게임 시범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달라진 위상을 체감하고 있습니까.

“e스포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것은 확실히 실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e스포츠가 스포츠인지 아닌지에 대해 논란이 있는 상황인 것은 사실입니다. 앞으로 정식 스포츠로서의 e스포츠에 대한 인식 전환과 지지를 이끌어 내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이 e스포츠의 종주국이지만 최근 미국이나 중국과의 머니파워에서 밀리고 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한국의 e스포츠는 1990년대 말부터 시작돼 어느덧 약 20년의 역사를 이어 가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최초로 프로e스포츠 정규 리그를 운영했고 e스포츠 전문 방송이 탄생하고 국제e스포츠연맹을 창설하는 등 글로벌 e스포츠 역사에서 한국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 온 것은 사실입니다.

한국e스포츠의 강점은 우수한 선수 풀과 함께 오래 축적된 선수 양성 노하우, 팀 운영 시스템, 방송 기술 등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시장 규모와 현실을 감안하면 해외의 엄청난 경제적 투자가 한국에선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 대신 우리가 가진 최대 장점인 선수들의 경기력, 즉 ‘인적자원’을 탄탄하게 길러낼 수 있는 안정적인 생태계 구축을 위해 정부와 민간이 함께 투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이 현재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으로 공공재로 인식되는 일반 스포츠와 달리 e스포츠 종목 게임은 특정 기업의 상품 성격이 강해 올림픽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있는데요.

“e스포츠가 다른 스포츠와 다른 점 중 하나는 종목에 대한 소유권이 명확하다는 점입니다. 각 게임마다 게임사가 지식재산권(IP)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e스포츠라는 틀 안에 다양한 게임들이 흥망성쇠를 겪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부 종목들이 변경되더라도 e스포츠라는 큰 틀은 계속 유지되며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스포츠는 하나의 종목으로 정의할 수 없는 여러 종목들이 섞여 있는 또 하나의 종합 대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e스포츠 종목의 트렌드는 꾸준히 지속될 수도, 여러 번 변화될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 국제e스포츠연맹과 산하 회원국들이 함께 고민하고 OCA·IOC와 지속적으로 논의해 공동의 합의점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9호(2018.09.10 ~ 2018.09.1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