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서 꽃피는 '혁신 DNA'…한국의 스마트 파머들

본격 도입되는 '스마트 팜'
혁신적 생산성 향상으로 농가 소득도 '업그레이드'

'드론에서 로봇까지' 첨단 기술로 재탄생…농업의 '화려한 귀환'
#. 120년 후의 개척 행성으로 떠나는 초호화 우주선 아발론호. 우주선에는 채소를 기르고 동물을 사육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약 4개월간 5258명의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분량이다. 어디, 그뿐인가. 인공지능(AI)이 갓 재배한 채소와 신선한 고기를 이용해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어 제공한다. 2017년 개봉된 영화 ‘패신저스’의 주요 장면들이다.

공상과학(SF) 영화에서나 다룰 법한 미래 농업이 오늘날 우리 가까이에 다가왔다. 농촌 인구의 감소와 고령화, 기후변화의 심화로 국내 농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농업과 정보기술(IT)을 융합한 ‘스마트 팜’이 주목받고 있다.

스마트 팜은 단순한 신기술 도입에 그치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드론·사물인터넷(IoT)·AI·로봇 등을 활용해 농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중심축 역할을 한다. 특히 스마트 팜은 농업을 한국의 미래 성장 산업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농업의 화려한 귀환, ‘스마트 팜’은 어디까지 왔을까.

◆드론·인공지능·로봇 등 첨단기술 총망라

‘전 세계 인구수 100억 명 돌파.’ 2055년 미래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뉴스다. 유엔 경제사회국이 발표한 ‘2017년 세계 인구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세계 인구는 75억5000만 명, 2023년 80억 명을 처음 돌파한 뒤 2055년 100억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선진국의 출산율은 낮아지는 추세이지만 인도와 아프리카 등의 폭발적인 인구 증가에 힘입은 결과다.

인구 증가로 생길 가장 큰 문제는 식량 부족이다. 유한한 땅, 한정된 식량 자원, 거기에 비료와 제초제 남용에 따른 환경오염까지…. 늘어날 인구수에 비해 미래 먹거리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세계자원연구소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2050년에는 2006년의 식량 생산량보다 69%를 더 증산해야 한다.

너무 먼 미래의 이야기여서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면 국내로 눈길을 돌려보자. 농림축산식품부가 펴낸 ‘2018 양정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국내 잠정 식량자급률은 48.9%다. 2016년의 50.8%보다 1.9%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우리 국민이 소비한 식량의 절반 이상을 수입으로 충당한 셈이다. 이렇게 식량자급률이 50%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14년 이후 3년 만이다.

식량자급률이 뒷걸음질한 것은 국내 생산 기반이 약화된 것에 그 이유가 있다. 농업은 경제의 근간이자 필수 산업임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3D(노동자들이 일하기 꺼리는 업종을 지칭)’ 업종으로 분류돼 천덕꾸러기가 됐다. 청년들이 시장 진입을 꺼리며 농촌 인구의 감소와 고령화가 지속됐고 농가 소득은 꾸준히 정체됐다.

여기에 기후변화로 작물 생산이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곡물 자급률이 하락하고 농업의 성장 속도도 감소됐다. 이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식량자급률이 계속 뒷걸음질해 우리 국민의 안정적 먹거리 확보를 어렵게 할 것이란 얘기다.

이 때문에 과학기술, 특히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기술을 농업에 접목해 농업 생산성을 높이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 선두 주자가 ‘스마트 팜’이다.

스마트 팜은 농사 기술에 IoT와 빅데이터 등을 활용해 시공간의 제약 없이 최적의 생육 환경을 자동제어하는 ‘지능화된 농장’을 의미한다. 스마트 팜은 경험과 감각에 의존하는 기존의 전통 농장과 달리 센서와 데이터에 기반하는 미래 농장이다.

스마트 팜을 통해 농업의 현안인 노동력 부족, 생산성 저하, 농가 소득 정체 등을 단번에 해결하는 것은 물론 노동력·에너지·양분 등을 종전보다 덜 투입하고도 농산물의 생산성 향상과 품질 제고도 가능하다. 일거양득이다.

서울대가 2016년 스마트 팜 도입 농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도입 농가의 생산량은 전보다 27.9% 증가한 반면 병해충·질병 발생은 53.7% 감소했다. 생산성 향상을 이끌어 냈지만 고용노동비용은 오히려 전년보다 15.9% 감소했다. 스마트 팜이 우리 농업의 경쟁력 제고를 촉진할 효과적 대안으로 각광받는 이유다.
'드론에서 로봇까지' 첨단 기술로 재탄생…농업의 '화려한 귀환'
'드론에서 로봇까지' 첨단 기술로 재탄생…농업의 '화려한 귀환'
급성장하는 농업용 로봇 시장

현재 스마트 팜을 구성하는 기술 요소들을 보면 4차 산업혁명에 쓰이는 핵심 기술들이 모두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빅데이터·AI·IoT 등의 IT가 농업용 로봇과 드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과 만나 스마트 팜 기술 발전을 가속화하고 있다.

고령화와 일손 부족을 해결할 수 있어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농업용 로봇’은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의 복합체다. 작물의 생육 환경에 대한 모니터링과 같은 단순 측정에서부터 크기·형태·색상 등 작물의 상태에 따라 다양한 작업을 판단해 수행하는 복합적인 업무까지 할 수 있다. 쓰임새도 다양하다. 자동화된 식물 공장의 로봇은 물론이고 자동 육묘 및 파종 로봇, 벼농사 제초 로봇, 과수원 내 자율주행 로봇은 물론 젖먹이(착유) 로봇도 있다.

수요가 증가하면서 세계 로봇 시장에서 차지하는 농업 로봇의 시장 규모도 커지고 있다. 세계 로봇 시장 규모가 179억 달러 수준인 가운데 현재 농업 로봇 시장은 9억5600만 달러 정도로 평가된다. 이는 농업을 비롯해 물류·의료·안전과 같은 산업 분야에서 이용되는 전문 서비스 로봇 시장 규모(46억 달러)의 약 20.1% 수준이다.

2020년이면 농업 로봇 시장은 191억 달러 규모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한 예로 젖먹이 로봇은 대당 가격이 3억~4억원에 달하는 고가이지만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보급화됐다. 세계에 2만5000여 대가 보급됐고 국내에는 70여 대가 보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농업용 첨단 기술에서 또 빠질 수 없는 것은 ‘드론’이다. 초기에는 농약 살포 등의 방제 작업에만 사용됐지만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면서 농업용 드론을 통한 파종과 병해충 예찰, 수확량 예측이 가능해졌다. 드론 가격은 평균 2000만~3000만원(배터리 제외)으로 고가지만 보급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 2월 말 기준으로 국내에 보급된 드론 개수는 총 706개, 무인 헬기 245개까지 더하면 총 951대의 농업용 무인기가 국내 상공에서 활약하고 있다. 용도별로는 방제용이 91.4%로 압도적으로 많다. 시비·파종용과 예측용은 각각 2.8%, 0.7% 수준이다.
'드론에서 로봇까지' 첨단 기술로 재탄생…농업의 '화려한 귀환'
‘식물 공장(스마트 온실)’ 역시 스마트 팜의 대표적인 사례다. 식물 공장은 건물로 된 인공 자동화 설비 안에서 IoT 기술을 이용해 농작물 재배 시설의 온도·습도·일조량·이산화탄소·토양 등을 측정 분석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제어장치를 구동해 적절한 상태로 변화시키는 지능화된 온실을 말한다.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로 원격 관리할 수 있기 때문에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계획적인 생산이 가능하다.

국내에서도 ‘한국형 식물 공장’이 빠르게 개발되고 있다. 한국형 식물 공장은 센서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환경을 조성하는 복합 환경제어 시스템과 폐쇄회로(CC)TV를 통해 출입 관리와 작물의 생육 상태를 관찰할 수 있는 영상 관제 시스템, 3차원(D), 열화상 카메라를 통해 작물 생육 정도와 상태를 자동으로 측정하는 작물 생육 정보 자동 측정 시스템 등으로 구성된다.
최근에는 병해충 발생 정도를 조기에 미리 예상하고 머신러닝을 이용해 무인 방제 의사결정을 유도하는 병해충 자동 진단 시스템도 더해지고 있다.

일례로 전북 익산 왕궁면에 있는 한국형 식물 공장의 선진 모델 농가인 로즈밸리는 복합 환경제어 시스템 등의 식물 공장 기술 도입 후 생산성이 크게 증가했다. 최근 3년간의 토마토 생육을 조사한 결과 기존보다 생산량이 62.5% 증가하고 경영비는 21.4% 감소하는 등의 성과를 거뒀다.

이 밖에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 중 하나인 빅데이터는 소비자의 농산물 구매 성향 분석, 차량 이동 등을 통해 축산 질병 예측 등에 적용할 수 있다. 나노·바이오 기술은 우수 종자 관리, 축산 질병 탐색, 원산지 식별에 적용할 수 있다.
'드론에서 로봇까지' 첨단 기술로 재탄생…농업의 '화려한 귀환'
선진국도 꽂힌 스마트 농업

앞으로도 스마트 팜은 기술이 계속 고도화되면서 혁신적으로 진화할 전망이다. 이미 스마트 팜 시스템의 선진국인 네덜란드에서는 SF영화를 방불케 하는 기술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네덜란드의 스마트 팜 대표 기업인 프리바는 식물 공장을 넘어선 농장 빌딩을 기획하고 있다. 건물 옥상에 온실을 설치해 농작물을 재배하고 건물 내부에서 물고기를 양식하면서 물고기가 만들어 낸 질소 노폐물을 식물이 이용하고 또다시 식물이 발생시키는 산소를 수조에 공급하는 시스템이다. 똑똑한 농장을 넘어 지속 가능한 농장으로의 도약이다.

또 네덜란드의 IT 기업인 필립스는 태양광이나 토양 없이 채소의 연중 생산이 가능한 식물 공장을 만들기 위해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 다른 유럽 국가인 독일에서도 농업 로봇의 실용화를 앞당기기 위한 개발이 한창이다. 독일의 프라운호퍼연구회 연구진은 일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오이 재배 로봇을 개발해 현재 실험 중이다. 이 로봇은 두 개의 팔을 가지고 있는데 카메라 센서가 오이를 식별한 뒤 부서지지 않게 집어 수확하는 것이 특징이다. 연구진은 앞으로 잘 익은 오이만 골라내는 기술을 탑재해 상용화에 나설 계획이다.

초대형 농가가 밀집한 미국에서도 혁신적 실험이 진행 중이다. 미국 일리노이대 과학자들로 구성된 벤처기업 어스센스는 지난 3월 ‘에너지혁신서밋테크놀로지 쇼케이스’에서 길이가 33cm에 불과한 로봇을 공개했다.

이 로봇의 이름은 ‘테라센티아’로, 머신러닝 기능을 탑재해 스스로 공부한 뒤 작물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잎의 크기를 측정해 작물이 잘 자라고 있는지, 열매가 잘 여물었는지 등을 확인해 사용자에게 실시간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모습을 시연했다. 어스센스는 3년 내로 농장에 테라센티아를 보급할 계획이다.
'드론에서 로봇까지' 첨단 기술로 재탄생…농업의 '화려한 귀환'
특허 출원 건수 연평균 11% 증가

국내에서도 스마트 팜을 위한 미래 기술의 연구·개발(R&D)이 착착 진행 중이다. 특허청에 따르면 최근 식물 공장 관련 특허 출원이 급속하게 늘고 있다.

2008년 1건에 불과하던 식물 공장 관련 특허 출원 건수는 2010년 30건으로 급증한 후 2012년 43건, 2014년 60건, 2016년 85건으로 점점 증가했다. 2017년에는 61건이 출원돼 2010년 이후 연평균 약 11%의 출원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기업이 42.9%로 가장 많았고 교육기관(21.5%)과 개인(20.8%)의 출원 비율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테면 지능형 조명과 영상 분석 기술을 이용해 재배 식물의 성장 단계와 성장 정도를 판단하고 식물 종별, 성장 주기별, 식물의 크기와 영양 성분 함유량에 따라 필요로 하는 인공광의 조건을 제어하는 기술 그리고 농작물 이미지를 분석해 농작물의 영양 상태와 발달 과정, 생리 장애를 포함한 생육 과정을 진단, 대응하는 기술 등이 대표적인 국내 특허 사례다.

정부 역시 스마트 팜 확산을 농업의 핵심 성장 동력으로 보고 스마트 팜을 확산시키기 위해 정책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2010년 220억원에 불과하던 스마트 팜 보급 예산은 올해 761억원으로 늘었다.

특히 식물 공장 등을 구축한 시설원예 중심으로 스마트 팜 보급 면적을 확대해 2017년 4010헥타르(ha)에서 2022년까지 7000ha로 늘릴 계획이다. 자동 급이기와 IT 기자재가 보급된 스마트 축사는 2017년 790호에서 2020년까지 5750호로 늘릴 계획이다.

특히 정부는 기존 농가 단위의 스마트 팜 보급 전략을 보완해 지원 대상을 전후방 산업 전반으로 확대하고 대규모 확산 거점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22년까지 ‘스마트 팜 혁신 밸리’를 4개로 확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현재 경북 상주와 전북 김제 등 두 지역이 최종 선정됐다.

이진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은 “스마트 팜은 다양한 분야의 연구와 연구 주체들의 융합 연계가 필요한 과학기술 기반 혁신 성장의 대표 사업”이라며 “미래 스마트 팜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와 국민 체감 성과 창출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경비즈니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4호(2018.10.15 ~ 2018.10.2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