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희망 없다”...암호화폐 거래소들 연이어 해외로 눈 돌여
암호화폐 ‘메카’였던 한국, 이대로 경쟁력 무너지나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국내 1위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이 지난 10월 12일 싱가포르 기업인 BK컨소시엄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BK컨소시엄은 싱가포르 현지에서 ‘성형 한류’ 열풍을 일으킨 BK메디컬그룹을 주축으로 결성된 블록체인 투자 그룹이다.

김병건 BK메디컬그룹 회장이 중심이 돼 이번 인수를 진행했다. 현재 BK컨소시엄은 빗썸 최대 주주인 비티씨코리아홀딩스 매입을 위한 본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으로 1000만 달러를 지불했다.

인수 금액은 3억5000만 달러로 내년 2월까지 잔금 납입을 마칠 예정이다. 빗썸은 향후 싱가포르 등 해외를 중심으로 사업을 확대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매각 직후 홍콩에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 덱스’를 개설하기도 했다.

빗썸뿐만이 아니다. 여러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잇달아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새둥지를 틀거나 향후 해외를 중심으로 한 사업 계획을 속속 내놓고 있다. 빗썸과 함께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의 양대 축이었던 업비트도 해외로 눈을 돌렸다.


◆합법도 불법도 아닌 암호화폐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는 싱가포르에 새로운 거래소인 ‘업비트 싱가포르’ 개설 작업을 마치고 서비스 개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를 시작으로 향후 해외시장을 중심으로 사업을 집중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국내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 중 하나인 코인원은 이미 지난 8월 인도네시아에 새로운 거래소를 만들어 서비스를 시작했다. 업비트와 마찬가지로 향후 글로벌 시장 강화에 역량을 집중할 방침이다. 코인제스트 역시 최근 미국 등 해외 5개국에 거래소를 개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거래소들은 해외 진출의 표면적인 이유를 사업 영역 확대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국내 영업 환경이 갈수록 나빠진 데 따른 결정이라는 의문이 따라붙고 있다. 거래소들이 사실상 ‘국내시장을 탈출하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암호화폐 ‘메카’였던 한국, 이대로 경쟁력 무너지나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자문위원은 “정부가 암호화폐와 관련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지 않은 채 규제 일변도의 환경을 조성한 상황”이라며 “국내에서 미래가 없다고 생각해 해외로 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국내 거래소들은 다양한 정부 규제에 가로막혀 성장 동력을 상실한 상태다. 예컨대 금융 당국의 지시에 따라 은행권은 올해 1월부터 거래소의 신규 계좌 발급을 금지하고 있다.

또 자본이 몰리는 역할을 하는 가상화폐 공개(ICO)도 국내에서 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 ‘암호화 자산 매매 및 중개업’을 벤처 업종에서 제외했다. 이에 따라 세제 혜택 등 정부 지원도 받을 수 없게 된 상황이다.

특히 거래소들이 가장 답답해 하는 것은 한국에서 암호화폐가 합법도 불법도 아닌 모호한 위치에서 규제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정확한 기준을 정해 줘야 한다. 그래야 거래소도 거기에 맞춰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할 텐데 현재까지 전혀 그런 움직임이 없다”고 토로했다.

결국 한계에 직면한 거래소들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 국내를 떠나거나 해외 사업에 집중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얘기다.


◆“거래소들도 자정 노력 기울여야 발전”

거래소들이 하나둘 해외로 눈을 돌리면서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던 국내 암호화폐 산업 경쟁력이 저하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그간 한국은 암호화폐와 그를 대표하는 기술인 블록체인 산업의 중심지로 각광받았다. 이와 관련한 트렌드와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선 한국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비탈릭 부테린 이더리움 창업자가 지난해 한국을 3차례 정도 방문했다. 수많은 산업군이 있는데 부테린 창업자 정도의 국제적인 인지도를 가진 인사가 한국을 1년 동안 이렇게 많이 찾은 적이 과연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그만큼 한국이 암호화폐의 중심지 역할을 해 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국내 1호 ICO로 잘 알려진 보스코인의 전명산 최고전략책임자(CSO)의 말이다.

전 CSO는 “전 세계적으로 각광 받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산업을 주도할 수 있었던 기회가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며 “그동안은 한국에 있어도 글로벌 트렌드를 알 수 있었지만 이제는 해외로 나가야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상황이 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의 말처럼 일본·미국·독일 등 해외 주요 국가들은 한국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 나라들이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를 느슨하게 한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암호화폐를 금융자산으로 인정하고 여기에 알맞은 규제를 마련해 나가고 있다.

미국만 보더라도 지난해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와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 비트코인 선물 상품을 출시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모회사 인터컨티넨탈(ICE)은 올해 12월 암호화폐 거래 플랫폼 백트(Bakkt) 출범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백트는 첫 상품으로 비트코인 선물을 출시할 것을 공식화했다. 암호화폐가 가진 자산으로서의 기능을 인정한 셈이다.

일본도 이미 지난해부터 암호화폐를 결제 수단으로 인정하고 다양한 법과 제도를 정비했다. 최근 빗썸과 업비트의 발길이 향한 싱가포르도 ICO와 블록체인 사업을 제도권하에서 관리하고 지원한다. 이를 통해 전 세계 투자자들을 그러모으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제라도 정부가 암호화폐나 블록체인을 하나의 산업으로 인정하고 적절히 규제한다면 관련 산업이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회에서도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10월 11일 열린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일부 의원들은 정부가 블록체인 활성화를 위해 암호화폐 거래소 합법화 및 ICO 금지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만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여전히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쳐 실질적인 규제 완화가 이뤄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물론 이 같은 정부의 태도를 무작정 ‘잘못’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거래소 역시 정부가 비판적인 의견을 견지하게 된 원인을 제공했다는 이유에서다.

최공필 위원은 “거래소들도 코인 상장 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보안 체계를 구축했어야 했다. 이런 부분이 미비하다 보니 거래소 자체가 투기판이 됐고 해킹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며 “이에 따라 정부 역시 규제를 들이밀 수밖에 없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수수방관하는 정부도 문제지만 거래소들 역시 그간의 과오들을 철저히 분석하고 개선해야 한다. 이후 함께 머리를 맞대고 발전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nyou@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6호(2018.10.29 ~ 2018.11.0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