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급등으로 젠트리피케이션 심각한 베를린, 외국인 부동산 구매 제한 검토
구글은 ‘퇴짜’, 지멘스는 ‘환영’…대규모 캠퍼스 설립 놓고 ‘극과 극’
[베를린(독일)=박진영 유럽 통신원]“구글은 안 되고 지멘스는 된다.” 최근 독일 베를린에서는 두 개의 글로벌 기업이 정반대의 상황을 맞아 화제가 됐다.

미국 인터넷 거대 기업인 구글이 베를린에 ‘구글캠퍼스’를 설치하려던 계획을 철회한 반면 독일의 전기전자 기업인 지멘스는 미래형 혁신 캠퍼스인 ‘지멘스슈타트(city)’ 계획을 발표한 것. 이들 두 기업의 상반된 행보는 현재 베를린이 겪고 있는 심각한 이슈와도 직결된 문제라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최근 랄프 브레머 구글 독일 대변인은 베를린 창업 캠퍼스 설치 계획 철회를 발표하며 3000㎡에 이르는 캠퍼스 부지가 2개의 현지 인도주의 단체로 넘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캠퍼스가 들어설 예정이던 베를린 지역 주민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쳐 2년간 표류해 온 끝에 내린 포기 결정이다.

당초 구글은 크로이츠베르크에 사무실과 카페, 공동 작업장 등을 갖춘 신생 기업(스타트업)들을 위한 인큐베이터를 설치할 계획이었지만 크로이츠베르크 주민들의 반발이 거셌다.
◆창업 캠퍼스 설립 계획 철회한 구글

일부 시민운동가들은 탈세나 개인 데이터의 비윤리적 사용과 같은 구글의 악질적인 기업 관행을 이유로 캠퍼스 설치를 반대하기도 했지만 보다 큰 문제는 임대료 인상, 집값 급등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냉전시대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나누는 베를린 장벽을 가로지르는 크로이츠베르크는 현재 베를린에서 가장 힙한 곳으로 전 세계 여행자들이 몰리는 지역이다.

과거 베를린의 핵심이 아니었던 이곳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크로이츠베르크는 주거비용이 상승하고 상권 임대료가 급등하는 등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한복판에 서 있다.

최근 한 컨설팅 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베를린의 부동산 가격이 전 세계 그 어느 곳보다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같은 기간 크로이츠베르크의 상승률은 무려 71%에 달할 정도였다.

그런가 하면 지멘스는 베를린 슈판다우 지역에 ‘지멘스슈타트’를 설립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총 6억 유로(약 7550억원)라는 막대한 금액을 투자, 70ha에 이르는 부지를 과학기술과 비즈니스가 융합된 미래형 캠퍼스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이 캠퍼스에는 주로 에너지 관리, 전기자동차, 인공지능(AI), 데이터 분석, 블록체인 등과 같은 혁신 기술과 관련된 기업과 연구소, 생산 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번 지멘스슈타트 프로젝트를 위해 지멘스가 베를린시 당국과 협력하기로 한 가운데 구글과 달리 지멘스의 대규모 캠퍼스 계획이 환영 받고 있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지멘스슈타트가 들어설 예정인 슈판다우 지역은 베를린의 외곽으로 개발이 필요한 곳인데다 지멘스가 이 미래형 캠퍼스 내에 합리적인 임대료의 주거공간을 함께 조성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조 케저 지멘스 회장이 “유연한 노동환경과 사회적 통합, 저렴한 주거시설을 갖춘 네트워크 생태계”라고 이 캠퍼스를 표현한 것처럼 지멘스의 이번 투자 결정은 베를린시가 겪고 있는 부동산 급등 문제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구글은 ‘퇴짜’, 지멘스는 ‘환영’…대규모 캠퍼스 설립 놓고 ‘극과 극’

◆10년 새 부동산 가격 140% 폭등

구글과 지멘스 두 기업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실제로 베를린의 주택 임대료와 상업용 임대료 증가에 대한 우려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유럽 주요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임대 보호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가격이 치솟으면서 장기 거주해 온 베를린 사람들이 쫓겨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 연구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9년과 2017년 사이 부동산 가격이 독일 전역에서 61% 올랐고 베를린과 뮌헨에서는 같은 기간 약 14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가격 상승이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이 문제는 현재 베를린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이슈 중 하나가 됐다. 임대료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정기적인 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주민들은 더 강력한 임대료 인상 제한을 요구하고 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마이클 뮐러 베를린 시장은 지난 8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뉴질랜드 당국이 취한 것처럼 비거주자들의 부동산 매입을 금지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이행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베를린에 거주하지 않는 외국인들이 주택 구매 후 높은 임대료를 책정하면서 임대료 상승을 부추기고 그에 따라 부동산 투기와 과열로 실제 베를린 거주자들이 주택을 구매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지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에서는 지난 8년간 전국의 평균 임대료가 거의 두 배 오른 후 상승하는 집값을 잡기 위해 뉴질랜드에 거주하지 않는 외국인들의 기존 주택 구입을 금지하는 해외투자 개정안을 최근 통과시켰다. 현재 베를린에서는 부동산 구매 시 거주자와 비거주자의 구분 없이 자유롭고 임대료 인상은 연간 10%로 제한된다.

하지만 이 제한 조치의 실제 실행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시 당국이 제안서의 공개 날짜를 아직 정하지 않은 반면 임대료와 부동산 가격 인상의 주된 이유가 외국인 구매자가 아닌 매년 4만 명의 새 주민을 맞이하는 도시의 공급 부족 때문이라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최근 한 독일 언론의 설문에 따르면 독일인의 84%가 임대보다 집을 사는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나 눈길을 끈다. 전통적으로 자가 거주율이 유럽연합(EU) 국가 중 가장 낮고 민간 임대주택 거주율은 EU 국가 중 가장 높은 독일의 주택 시장 상황을 생각할 때 이례적이다.

이는 독일 주택 시장의 변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간 안정적인 임대료와 보수적인 모기지 등으로 구매보다 임대를 선호했던 것과 달리 낮은 금리와 그에 따른 주택 가격 상승이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0호(2018.11.26 ~ 2018.12.0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