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비트코인에서 갈라져 나온 비트코인 캐시의 재분열…결국 ‘암호화폐 생태계’가 가야 할 길
‘빅홀더들’의 미래를 건 하드포크 전쟁
(사진)비트코인 캐시 SV를 지지하는 크레이그 라이트

[오태민 크립토비트코인 연구소장, '스마트콘트랙 : 신뢰혁명' 저자] 비트코인 가격이 곤두박질쳤다. 3개월 이상이나 6400달러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다가 4300달러까지 추락하는 데 1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같은 시기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암호화폐 공개(ICO)에 대해 증권 발행과 동일시하는 강력한 규제를 발표했다. 또 기대를 모았던 백트(BAKKT)의 비트코인 관련 금융 상품 출시가 내년 1월로 연기된다는 뉴스도 영향을 미쳤다. 백트는 세계 최대의 증권거래소인 뉴욕증권거래소의 지주회사가 설립한 암호화폐 투자 기업이다.

이처럼 다양한 이슈가 있었지만 실은 무엇보다 비트코인 캐시의 내전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비트코인 캐시의 내전이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비트코인의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는 현상에서 암호화폐의 역사적 특성을 읽을 수 있다.

2017년 11월 비트코인 캐시는 비트코인에서 갈라져 나왔다. 비트코인과 비트코인 캐시는 자신들이 10년 된 원조 블록체인이라고 주장할 만큼이나 서로 닮았다. 채굴자들도 비트코인과 비트코인 캐시를 쉽게 넘나들면서 채굴하고 있다. 채굴 코인 가격을 채굴에 들어가는 전기로 나눈 채굴 수익률은 거의 동일하다는 사실로 이를 알 수 있다. 비트코인은 가격이 비싼 대신 채굴 경쟁이 치열하다. 반면 비트코인 캐시는 가격이 싼 대신 채굴 경쟁이 덜하다. 어느 쪽이건 가격에 비해 경쟁이 치열해지면 채굴할 코인을 바꾸는 방식으로 대응하기 때문에 수익률은 결국 같아진다. 두 코인의 채굴 수익률 동조화는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완전경쟁 시장의 균형이론이 현실에서 작동한다는 것을 우아하게 보여준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비트코인 캐시의 하드포크는 채굴자들에게 선택지를 제공한 셈이 됐다. 비트코인 채굴자들이 비트코인 가격에만 의존하지 않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이는 비트코인과 비트코인 캐시 모두에게 득이었다. 두 코인의 내분으로 비트코인이 붕괴한다는 당시 주류 언론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하드포크 이후 비트코인 가격이 올랐고 비트코인 캐시도 꽤 높은 가격을 가지고 출발했다.
‘빅홀더들’의 미래를 건 하드포크 전쟁
(사진) 비트코인 캐시 ABC를 지지하는 로저 버.

경제적 합리성 뛰어넘은 정치적 투쟁

하지만 이번에 비트코인 캐시의 하드포크는 비트코인 캐시는 물론이고 비트코인, 더 나아가 암호화폐 시장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두 진영이 상대를 제압하는 데 자원을 집중했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투쟁은 경제적인 합리성을 뛰어넘는다. 경제적 인간은 타인의 이익과 상관없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하지만 정치적 인간은 남보다 우월한 지위를 추구한다. 이번 비트코인 캐시의 하드포크에서는 경제적 합리성이 아니라 정치적 파워게임이 작동했다. 양측은 자원을 퍼부어 상대보다 우위에 서고자 했다. 문제는 비트코인 캐시의 주축들이 비트코인 초기 투자자들로서 이른바 ‘빅홀더들’이었다.

이들은 비트코인을 내다판 돈으로 자신들의 코인을 매집하는 방법도 불사했다. 게다가 거대한 채굴업자들까지 가세하면서 사태가 확산됐다. 자기 코인의 해시파워를 증가시키기 위해 비트코인에 투입될 채굴 파워를 임의로 끌어왔다.

실제로 갈라진 두 코인의 합으로 계산한 비트코인 캐시의 가격이 50% 가까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 캐시의 해시파워는 크게 늘었고 비트코인의 해시파워는 줄었다. 이런 선택을 한 이들이야말로 경제적으로는 가장 큰 손실을 봤다. 하지만 싸움은 기선제압이 중요했다. 초반 싸움에서 기울면 장기적으로는 한 진영이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캐시의 대표자 격인 로저 버(비트코인 캐시 ABC 진영)나 크레이그 라이트(비트코인캐시 SV 진영)는 비트코인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이들은 그간 비트코인은 변질됐고 비트코인 캐시가 진정한 비트코인이라고 주장해 왔다.

끝없는 분열과 결집, 탈중앙화의 원리

하지만 자신들이 보유한 비트코인을 한꺼번에 시장에 던져 비트코인에 가공할 타격을 주는 공격을 감행하지는 않았었다. 자신들의 이념을 위해 재산을 내던질 생각까지는 하지 않을 만큼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내전에서 이들은 상대를 꺾기 위해 비트코인은 물론이거니와 자신들이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을 최대한 쏟아부은 것으로 추정된다.

비트코인에는 이번 사태가 꼭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비트코인을 비난하면서도 비트코인을 많이 보유하고 이들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즉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비트코인과 비트코인 캐시의 디커플링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비판자들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각 코인이 자신의 코인을 믿는 이들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것은 장기적으로 긍정적이다. 어차피 하드포크를 통해 코인 생태계가 끝없이 분할되는 것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P2P를 선택한 바로 그 시점에 예정된 일이다.

중앙의 리더십을 부정하는 것이 블록체인의 핵심 철학이다. 생각이 같은 이들이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법 외에는 중앙이 없는 상태에서의 거버넌스 문제를 해결할 길은 없다. 지난 10년간 이뤄진 하드포크들은 주로 합의의 실패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드포크의 진정한 기능은 다양성이라는 원심력과 동질성이라는 구심력, 두 힘을 모두 끌어들여 코인 생태계를 아마존 정글처럼 이뤄가는 데 있다.

다른 생태계를 반대하고 묵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생태계의 철학적 순수성을 지켜 자신들만의 이상을 현실화하는 데 하드포크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자기 살을 도려내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비트코인은 지난 10년간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면서 한 발짝씩 나아갈 줄 아는 합리적인 사람들과 함께 성장해 올 수 있었다.

[돋보기] ‘하드포크’, 규제 우회해 새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법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돈을 빠르게 모으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미 있는 코인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면 비트코인과 같이 검증된 기존의 코인을 하드포크해 신규 코인을 제너레이션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비트코인의 장부를 복사해 비트코인 캐시를 만들었듯이 이미 성숙한 코인의 장부를 복사해 코인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은 암호화폐 공개(ICO)에 비해 두 가지 이점이 있다.

첫째, 코인을 보급하기 위해 무리해 에어드랍할 필요가 없다. 이미 코인이 퍼져 있는 상태에서 생태계를 출발하기 때문이다. 에어드랍은 코인을 불특정 다수에게 공짜로 주는 방식인데 그 때문에 초기에 토큰의 가격을 안정시키기 어렵다. 하지만 비트코인을 장부 복사해 신규 코인을 만들면 공짜로 많은 양의 코인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없으므로 코인 생태계가 비교적 이른 시간 안에 성숙한다.

둘째, 발행 주체가 대량의 토큰을 미리 팔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증권 관련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미국 규제 당국은 대부분의 ICO가 증권법에 저촉된다고 밝혔다. 토큰의 성격이 아니라 발행자와 투자자의 관계에서 유가증권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이 최근 미국 법원의 판례다.

장부 복사나 하드포크는 발행자와 투자자라는 이해 당사자를 전제할 필요가 없이 코인 생태계를 구축한다. 다만 신규 코인의 성장을 도모할 주체가 코인 가치를 증진시키기 위해 사용할 공공자원이 없다는 것 때문에 하드포크가 ICO를 대체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다양한 해법이 있다. 다만 비트코인 현상의 핵심이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이 아니라 글로벌하고 투명하며 희소한 발행을 보장하는 화폐 현상이 본질이라는 관점을 전환해야만 해법이 보이기 시작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0호(2018.11.26 ~ 2018.12.0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