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일본, 엔화 연동 ‘스테이블 코인’ 시범 운용…‘사이드체인’ 활용 사례로 주목

엔화를 블록체인 세상의 기축통화로?
[오태민 마이지놈박스 블록체인 연구소장] 2019년 들어서도 암호화폐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이런 가운데 일본 정부가 엔화에 연동된 코인 발행을 시범적으로 허가했다고 밝혔다. 일본 블록체인 개발 업체 크립토가라지의 ‘세틀넷’ 시스템이 1월 21일 규제 당국으로부터 시범 운용을 허가받았다.

세틀넷은 엔화 연동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을 발행하고 거래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이다. 낙관적으로 확대해석하면 일본 정부가 엔화를 블록체인 세상의 기축통화로 만들기 위해 전략적 행보를 보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물론 대부분의 비트코인 투자자들은 이 뉴스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듯하다. 시장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세틀넷의 특징은 비트코인의 사이드체인(side chain)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비트코인 코어 진영과 밀착된 회사인 블록스트림이 개발한 ‘리퀴드 비트코인(L-BTC)’을 기반으로 한다. 사이드체인은 간단히 말해 비트코인 기반 위에서 돌아가는 부가적인 블록체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이드체인은 비트코인을 중시하는 비트코인 코어 진영이 ‘밀고 있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의 잔돈은 무한정 분할될 수 없기 때문에 통화로서 기능하기 어렵다는 공격에 대해 비트코인 코어 진영은 사이드체인으로 간단하게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고 반박한다.

1비트코인은 1억 개의 사토시로 나눠진다. 코드상에서 1비트코인은 1억이라는 정수다. 비트코인 가격이 올라가 1사토시도 상당한 액수에 이른다면 사토시가 잔돈의 역할을 할 수 없다. 사토시를 더 작은 수로 분할하려면 코드를 바꿔야 하는데 비트코인의 프로그램 변경은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는 가칭 ‘잔돈 체인’이라는 또 다른 블록체인으로 해결할 수 있다. 누군가 비트코인 블록체인에서 1사토시를 동결하고 그 열쇠를 잔돈 체인에 제시해 100‘잔돈’을 얻는 식이다. 반대로 누군가 100개의 ‘잔돈’을 모으면 비트코인의 블록체인에 동결됐던 1사토시를 움직일 수 있다. 이 교환을 중재하는 사람도 필요 없고 1‘사토시’와 100‘잔돈’을 교환하려는 당사자들 간에 서로 전혀 모르거나 심지어 동시에 존재하지 않아도 이 거래가 성립된다면 ‘잔돈 체인’을 비트코인의 사이드체인이라고 부른다.

이제 태동기에 불과한 블록체인 기술

블록체인 회의론자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옹호론자들조차 실제로 블록체인을 운영하거나 경험해 본 이는 드물다. 그래서인지 블록체인에 대한 담론들은 관념적인 접근을 중시하는 학자풍의 논객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어휘와 범주를 중시한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개념과 신조어가 등장하는 현실이 암시하듯 편의적으로 쳐진 범주의 울타리는 엉성하기 마련이다. 현상이 어지러울수록 체계를 세워 접근해야 하므로 엉성한 범주라고 해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지금은 블록체인 기술의 태동기다. 있어야 할 것들은 너무 없는 반면 조만간 사라질 시도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태동기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편의적으로 만든 어휘들을 지나치게 신뢰하다가는 오히려 범주라는 미로에 갇힐 수 있다. 사이드체인이라는 어휘도 범주가 되기에는 아직 엉성하고 모호한 개념이다.

사이드체인이라는 발상은 비트코인을 보완하는 데서 출발했다. 속도나 용량 그리고 스마트 콘트랙트 정보의 삽입을 지원한다. 그런데 일정한 액수의 비트코인을 동결한 키를 활용해 건너갈 수 있는 블록체인을 사이드체인으로 정의내리면 거의 대부분의 블록체인이 다른 블록체인의 사이드체인이 될 수 있다. 암호화된 키를 활용해 거래를 동결하거나 동결을 해제하고 다시 거래할 수 있는 기능은 블록체인의 기본적인 속성이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자체는 적대적 환경에서 살아남도록 분산성을 최대한 유지해야 하므로 실용적인 활용에는 여러 제약이 따른다. 비트코인 코드의 근본적인 수정 없이도 사이드체인을 가지고 거대한 블록체인 생태계의 다양성을 활용하면 실용성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블록스트림을 중심으로 한 비트코인 코어 개발자들의 주장이다. 결국 모든 블록체인이 서로에 대해 사이드체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만약 블록체인을 활용한 수많은 생태계가 서로 연결돼 하나의 정글을 이룬다면 그 정글은 수평적일까. 이 질문에 대한 비트코인 코어 진영의 대답은 경험적이다. 자연 상태에서는 허브와의 일대일 관계망이 중심이 된 한 방사형 구조가 가장 저렴하다. 그렇다면 블록체인들로 구성된 정글의 허브가 무엇일지를 가늠하는 것이야말로 암호화폐 투자자라면 반드시 스스로 답을 얻어야 할 물음일 것이다.
엔화를 블록체인 세상의 기축통화로?
(사진)아담 백 블록스트림 최고경영자

[돋보기] 사이드체인을 가능케 하는 아토믹 스와프
세틀넷의 코인이 엔화와 연동된다면 이는 누군가가 엔화 교환을 보증한다는 의미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태환이라고 한다. 태환은 주체가 필요하므로 정책적이다. 달러는 더 이상 금태환을 하지 않는다. 세틀코인이 비트코인의 사이드체인을 기반으로 한다는 말은 세틀코인으로 비트코인을 교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를 비트코인 태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 이유는 보증하는 주체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 아토믹 스와프(atomic swap)라고 한다. 아토믹 스와프는 시스템에 의해 집행된다. 정책적이지 않으니 중지될 염려도 없다.

제삼자의 중재가 없고 거래 상대에 대해 완전히 무지(zero-knowledge) 상태임에도 안정적으로 교환할 수 있는 것이 아토믹 스와프의 기준이다. 2017년 가을 비트코인 코어 진영의 과학자들은 비트코인과 라이트코인 간 아토믹 스와프 거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아토믹 스와프는 사이드체인의 핵심 장치인데 이질적인 블록체인들을 서로 연결하는 일종의 접착제인 셈이다. 대면 상태가 아닌 온라인 세상에서는 상대가 돈만 받고 물건을 보내지 않을 수 있는 위험을 제거해야 한다. 온라인 북스토어로 시작한 아마존도 이 위험을 제거하는 솔루션이 사업의 핵심이었다. 이 위험 넘어서는 것은 비즈니스의 근간이기도 하다. 만약 블록체인 생태계가 거대해지고 그 생태계를 아토믹 스와프들이 연결하면 에스크로를 기본 기능으로 하는 사업들은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게 된다.

비트코인이 궁극적으로 거대 금융 기업을 파괴할 것이라는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과격주의자)들의 주장은 블록체인들이 시스템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는 생태계라는 관점에서 저울질해 봐야 한다. 비트코인의 속도나 용량 혹은 가격의 변화를 언급하면서 이 주장을 폄훼하는 이들은 오늘날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의해 서서히 모습을 보이고 있는 온라인 정글이라는 실체를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하루 종일 그 정글 속에 머무르면서도 그 파괴적 혁신에 대해 눈감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2호(2019.02.18 ~ 2019.02.2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