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미국통’ 손태승·‘일본통’ 진옥동·‘중국통’ 지성규…국내시장은 성장 한계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시중은행들이 새로운 수장으로 ‘국제통’ 은행장들을 전진 배치하며 해외시장 개척에 사활을 걸고 있다. 시중은행 빅4 중 3곳이 이에 해당된다. 하나금융지주는 지난 2월 말 ‘중국 전문가’로 꼽히는 지성규 KEB하나은행(이하 하나은행) 부행장을 새 은행장으로 내정했다. 지난해 12월 신한은행장으로 내정된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부사장은 ‘일본통’으로 불린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은 ‘미국통’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국내 은행들은 한계에 부딪친 국내 이자 수익 성장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동남아 등 글로벌 시장 진출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이 같은 은행권의 고민과 전략이 최고경영자(CEO) 인사에 반영된 결과다.


◆우리은행, ‘전략통’ 손태승 회장


2017년 취임 후 1년여 만에 지주사 체제 전환에 성공한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의 전공 분야는 ‘글로벌 사업’이다. 1959년생으로 성균관대 법학과, 서울대대학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7년 우리은행의 전신인 한일은행에 입행했다. 미국 LA지점장과 글로벌사업본부 집행부행장 등을 거친 ‘미국통’이다. 글로벌사업본부 집행본부장, 글로벌부문 부문장을 거쳐 2017년 행장에 선임됐다. 해외 기업 설명회를 통역 없이 직접 진행할 정도로 영어에 능숙해 은행장이 된 뒤에도 기존에 담당했던 해외 사업을 은행장 업무와 병행했다고 한다. 전략기획부문 등에서 핵심 요직을 거친 ‘전략통’의 면모도 갖추고 있다.
‘3인 3색’ 국제통 은행장 시대…글로벌 시장에서 대격돌 예고
지난해 우리은행의 글로벌 부문은 2000억원 수준의 순익을 냈다. 전년 대비 19.7% 증가했다. 2017년 행장으로 취임한 이후 캄보디아 WB파이낸스 등을 인수, 국내 최대 수준인 26개국 441개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한 결과다.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 해외 진출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각 국가에 적합한 방식으로 진출 전략을 세운 점이 적중하면서 빠르게 해외 사업을 안정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은행은 현재 10% 수준의 글로벌 순익 비율을 내년 말까지 30%로 높인다는 목표다.

손 회장이 글로벌 사업 강화를 위해 특히 힘쓰고 있는 부분은 ‘인재 양성’이다. 금융지주 회장 취임과 동시에 강조한 것 역시 “글로벌 수준의 리스크 관리와 내부 통제 역량을 갖추고 글로벌 전문 인력 양성에 힘써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글로벌 사업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글로벌 인력을 확보, 현지 시장조사와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선결돼야 한다는 판단이다.


우리은행은 현재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지역 전문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2002년 금융권 최초로 ‘글로벌 전문 인력 제도’를 만들어 53개국에 182명의 인력을 배출했다. 지난해에는 23명을 파견했고 올해도 필리핀·미얀마·인도 등 8개 국가에 글로벌 전문 인력 약 15명을 파견했다. 우리은행은 글로벌 전문 인력 제도를 토대로 동남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해외 점포 수를 500곳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신한은행, ‘고졸 신화’ 진옥동 내정자


신한금융은 2년 전부터 그룹 차원에서 ‘2020 스마트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아시아 리딩 금융그룹으로 도약하기 위해 2020년까지 그룹 내 글로벌 부문의 순익을 20%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비전이다. ‘2020 스마트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는 사실상 ‘마지막 해’인 올해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 막중한 임무를 띠고 지난해 12월 깜짝 발탁된 이가 진옥동 신한은행장 내정자다. 3월 26일 공식 임기 시작을 앞두고 있다.


진 내정자는 1961년생으로 서울덕수상고를 졸업한 뒤 1980년 IBK기업은행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86년 신한은행으로 자리를 옮겨 인력개발실·고객지원부·종합기획부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국내 은행권에서 오랜만에 탄생한 ‘고졸 신화’의 주인공이다. 진 내정자는 1993년 한국방송통신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 중앙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3인 3색’ 국제통 은행장 시대…글로벌 시장에서 대격돌 예고
그는 신한금융그룹 내 대표적인 ‘일본통’으로 1997년 신한은행의 창립 근거지인 일본 오사카지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신한은행 여신심사부 부부장과 자금부 팀장을 지내다 2009년 오사카지점장을 맡으며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은행원 경력 38년 중 18년 이상을 일본에서 지냈다. 일본 신한은행의 현지 법인 전환을 주도, 신한은행의 일본 법인인 SBJ 부사장과 법인장 등을 역임했다. 일본 내에서 소매 영업을 하는 유일한 외국계 은행인 SBJ은행의 높은 성장을 이끌어 내며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다. 무엇보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경력을 쌓으며 신한금융 재일교포 주주들과도 돈독한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 근무 당시의 활약에 힘입어 2017년 일본 SBJ 법인장(상무)에서 부행장보를 거치지 않고 신한은행 부행장으로 파격 승진했다. 이후 불과 3개월 만에 신한금융지주 부사장으로 발령 받아 모두를 놀라게 했던 그는 2년 만에 또다시 은행장으로 ‘초고속 승진’하게 됐다.


취임 후 진 내정자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는 ‘2020 스마트 프로젝트’의 달성이다. 2018년 신한은행의 글로벌 순익은 3215억원으로 전년 대비 36.8% 늘었다. 시중은행들 가운데 가장 높은 액수다. 전체 순익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3% 정도로, 진 내정자는 이를 20%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그는 올해 해외 법인의 무리한 사업 영역 확장이나 새로운 국가 발굴보다 기존에 진출한 20개 국가에서 내실화에 집중할 방침이다. 기존 사업의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고 대손충당금을 낮춰 손익을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은행 차원에서 해외 IB 사업 전문성을 확보해 글로벌 수익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진 내정자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과제는 ‘조직의 안정’이다. 진 내정자는 평소 차분하고 꼼꼼한 성격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온화한 리더십을 통해 그룹 내부에서 두터운 신망을 받고 있다. 최근 신한은행은 ‘신한 사태’와 ‘채용 비리 사태’ 등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했던 게 사실이다. 이와 같은 분위기를 쇄신하고 조직의 안정화를 이끌 사령탑으로 진 내정자가 적격이라는 평가다.


◆하나은행, ‘소문난 워커홀릭’ 지성규 내정자


하나은행은 지난해부터 하나금융그룹 차원에서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핵심 과제로 추진 중이다. 2025년까지 그룹 전체 수익의 40%를 해외에서 거두겠다는 의지를 담은 ‘2540 전략’이다. 이 전략의 기반을 닦은 이가 지성규 하나은행장 내정자다. 지 내정자는 3월 21일 공식 취임을 앞두고 있다.


지 내정자는 1963년생으로 주요 시중은행장 가운데 가장 젊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91년 하나은행에 입행해 30년 가까이 몸담고 있다. 그는 하나금융그룹 내 대표적인 중국통이다. 은행원 생활 대부분을 홍콩과 중국에서 보냈다. 2001년 하나은행 홍콩지점장을 시작으로 2007년 중국법인인 하나은행중국유한공사 설립단 팀장, 2010년 하나금융 차이나데스크팀장을 거쳐 2011년 하나은행 글로벌전략실 실장(본부장)을 역임했다. 은행장 내정 전까지 하나은행 글로벌사업그룹 부행장과 하나금융지주 글로벌 총괄 부사장으로 일했다.
‘3인 3색’ 국제통 은행장 시대…글로벌 시장에서 대격돌 예고


눈에 띄는 것은 2014년 하나은행중국유한공사 은행장 경력이다. 2015년 옛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국내법인 통합에 앞서 중국 현지 법인끼리의 통합이 먼저 이뤄졌다. 2014년 12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중국 현지법인이 통합해 하나은행중국유한공사를 출범했는데 당시 은행장으로 이 모든 과정을 진두지휘했다. 하나은행 중국법인의 순이익은 2015년 205억원 수준에서 2017년 373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지 내정자는 ‘소문난 워커홀릭’이다. 중국 선양지점에서 근무할 당시 매일 새벽 4시 차를 몰고 베이징으로 달려가 점심시간에 예비 고객들을 만난 뒤 한밤중에 선양으로 돌아오는 일을 1년간 반복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 결과 부임 첫해 순대출자산 7600만 달러를 기록하며 당초 목표치를 250% 초과하는 실적을 올려 모두를 놀라게 했다.


지 내정자의 취임 후 그가 제시한 ‘2540 전략’이 한층 더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하나은행은 이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 뉴욕, 영국 런던, 싱가포르 등에 투자금융(IB) 업무를 운용 중이다. 전략 지역에 파견 직원을 늘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하나은행의 지난해 글로벌 순이익은 2855억원으로 전년(2388억원) 대비 20% 증가한 액수다. 하나은행 중국법인은 국내 금융사들의 해외 영업점 가운데 가장 높은 실적을 거두고 있다.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6호(2019.03.18 ~ 2019.03.2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