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1분기 생산량 10년 만에 최저…르노삼성 노조 파업 이어 현대차·한국GM도 ‘파업 으름장’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국내 자동차업계에 ‘생산 절벽’과 ‘노조 리스크’의 그늘이 덮치며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국내 자동차 생산량은 95만4908대로,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 1분기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르노삼성은 지난해 10월부터 이어진 파업으로 만신창이가 된 상태다. 여기에 현대차와 한국GM 노조도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한국 자동차 생태계 유지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연 400만 대 생산 체제가 무너질 것이란 우려마저 나온다.
‘생산 절벽’에 ‘노조 리스크’까지…앞날 깜깜한 車업계
◆르노삼성, 7개월간 2806억원 손실

르노삼성 노조는 지난해 10월부터 7개월째 부분 파업을 이어 가고 있다. 파업 횟수는 총 62차례(250시간)로, 이 기간 매출 손실액은 2806억원에 달한다. 협력 업체의 손실액도 1500억원 수준이다.

르노삼성 노조는 기본급 10만667원 인상과 자기계발비 2만133원 인상, 단일 호봉제 도입, 특별 격려금 300만원 지급, 축하 격려금 250%, 2교대 수당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이어 왔다.

사 측은 기본급을 동결하는 대신 기본급 유지 보상금 100만원과 성과 격려금 300만원 등 최대 1720만원의 일시 보상금을 지급하는 안을 제시했다. 부산공장의 인건비가 이미 르노그룹 내 세계 공장 중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는 게 기본급 동결의 주된 이유다. 르노삼성 생산직 노동자의 2017년 기준 평균 소득은 7800만원이다.

하지만 사 측의 이 같은 제안에 대해 노조 측이 추가 인원 200명 투입 또는 생산 라인 속도(UPH) 하향 조절, 작업 전환 배치 때 노조 합의 등의 추가 요구 사항을 꺼내들면서 노사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진 상태다.

노조 측의 이 같은 요구는 기본급 인상보다 부산공장의 생산 경쟁력을 더욱 악화시키는 억지 주장이라는 게 사 측의 주장이다. 노조의 요구는 단지 회사의 한 해 실적을 악화시키는 것을 넘어 향후 신규 프로젝트 유치 여부와 직결된 중·장기적 경쟁력 약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노조가 요구한 200명 추가 투입은 부산공장 생산직 임직원 수 1829명의 약 11%에 달하는 인력을 충원해 달라는 얘기인데다 UPH를 시간당 60대에서 55대로 내리라는 것은 하루 기준 80대(주야간 각 40대), 한 달 기준 약 2000대, 1년 기준 약 2만4000대의 생산량을 줄이라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르노삼성은 지난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40% 정도 감소한 3만8752대의 차량을 생산하는 데 그쳤다. 생산 절벽으로 4월 29일부터 닷새가량 일시적으로 공장 가동을 중단(셧다운)해야 할 처지다.

도미니크 시뇨라 르노삼성 사장은 부산시청에서 4월 16일 오거돈 부산시장과 만난 자리에서 “부산공장은 생산 물량 가운데 65%를 수출하고 있는 만큼 지금과 같은 2교대 근무 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노사분규를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노조가 전환 배치 때 노사 합의를 요구한 것에 대해선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국GM, 정상화 작업 1년 만에 파업 직전

군산공장 폐쇄와 법인 분리 문제로 진통을 겪었던 한국GM 노조는 지난해 5월 경영 정상화 작업에 들어간 지 1년 만에 다시 파업에 내몰리기 직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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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 노조는 4월 22일부터 이틀간 연구·개발(R&D) 분리 법인인 GM테크니컬센터코리아(GMTCK) 소속 조합원 2067명을 대상으로 쟁의행위 찬반 투표를 했다. GMTCK 소속 조합원 1891명이 투표에 참여해 1707명(총원 대비 찬성률 82.6%)이 찬성표를 던졌다. 노조 측은 사 측과의 교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곧바로 파업에 나설 예정이다.

노조 측은 한국GM에서 분리된 GMTCK가 기존 임금 체계와 복지 혜택, 인사 규정을 담은 단협을 그대로 승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 측은 생산직 중심의 단협을 R&D와 사무직 위주인 신설 법인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한국GM의 올 1분기 생산량은 3만8201대로, 전년 동기 대비 4.5% 줄었다.

현대차 노조도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현대차 노조는 4월 23일 ‘선제적 총파업·총력투쟁으로 노동법 개악 박살낸다’는 제목의 소식지를 통해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 등이 발의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은 노조 파괴법”이라며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한국당이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하는 즉시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 투쟁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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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의원 등 17명이 발의한 개정안은 단체협약 유효기간 확대(2년→3년), 사업장 점거 금지, 쟁의행위 기간 대체 근로 금지 규정 삭제, 특정 노조 가입을 강요하거나 위력을 사용해 파업 참가를 강요하는 행위 금지 등을 담고 있다. 현 정부 들어 비대해진 노조 권력을 법적으로 견제해 기업의 경영 여건 악화와 일자리 감소를 막겠다는 취지다.

현대차 노조는 사 측과도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노조 측은 올해 임단협 협상안에 ‘통상임금 미지급금 요구안’을 올리고 본격 투쟁에 나설 예정이다. 기아차 노사가 3월 합의한 통상임금 미지급분 지급액(1인당 평균 1900만원)만큼 돈을 더 달라는 주장이다.

사 측은 통상임금 소송에서 1·2심 모두 노조가 승소한 기아차와 회사가 이긴 현대차의 상황이 엄연히 다르다는 생각이다.

현대차 노사는 생산직 신규 채용 규모를 놓고도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4월 18일 보도 자료를 통해 “2025년까지 조합원 1만7500명이 정년퇴직할 예정인 만큼 정규직 1만 명 충원 요구 투쟁을 벌인다”고 선언했다.

사 측은 4차 산업혁명과 ‘전기차 시대’를 앞두고 기술직(생산직) 일자리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에 비해 구조가 단순하다. 전기차 조립 전용 라인 구축 시 연료·배기·컨트롤·흡기 시스템과 엔진 서브 부속품 등 다수의 공정이 사라진다. 생산 인력도 20~30% 감소할 수밖에 없다.

현대차 관계자는 “노조가 주장하는 정년퇴직자 1만7500명 가운데 생산직 인력은 1만 명 수준”이라며 “전기차 시대에 따른 제조 공정의 변화로 기존 작업 공정의 축소는 물론 공정 인원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인 만큼 고용 문제 등에 대한 해법을 노사가 함께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독일의 폭스바겐이 비용 절감과 전기차·자율주행차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 2023년까지 7000명을 감원하기로 하는 등 해외 완성차업계는 선제적 구조조정에 여념이 없다”며 “국내 완성차업계 노조도 자기 밥그릇만 챙기기보다 산업 전반의 생존 여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choie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2호(2019.04.29 ~ 2019.05.0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