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시스템 전체를 파괴하지 않고는 기록 변경 어려워…‘조작 이익’보다 비용이 더 크게 설계
‘시간의 구조화’ 블록체인 조작이 불가능한 이유
(사진) 프랑스 매체 캐피털은 삼성이 프랑스의 암호화폐 지갑 제조 기업 레저에 260만 유로(33억5000만원)를 투자했다고 4월 24일 보도했다. 144만 개가 팔려 나간 레저의 대표 상품 나노S.

[오태민 마이지놈박스 블록체인 연구소장] 블록체인은 신뢰를 비용의 함수로 만든 구조물이다. 핵심 원리가 비용이기 때문에 구조는 상대적 다양성을 가진다. 블록체인을 연속적인 스펙트럼으로 봐야 하는 이유다. 블록체인의 다양성이야말로 블록체인의 철학을 이해하고 추종하는 블록체인 원리주의자들을 종종 실패로 이끄는 요인이다.

블록체인의 가장 본질적인 기능은 기록을 변경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이 속성은 블록체인 아키텍처가 분산과 시간이라는 두 축으로 디자인돼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런데 막상 분산이라는 개념은 규정하기 어렵다. 단순히 동일한 서버가 여러 대 있다고 해서 기록 조작을 막을 수는 없다. 한 회사가 많은 서버를 가지고 블록체인을 구성하고 있다면 다소 번거롭기는 하지만 조작이 가능하다. 이해관계가 어긋나는 당사자들 간에 서버가 분산돼야 협잡이나 매수가 어렵다. 기록을 조작해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주체가 다른 서버 관리자를 매수하는 데 투입할 수 있는 최대 비용보다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다른 참가자들이 잃게 되는 최소한의 손실이 더 클 때만 분산성이 의미를 갖는다.



◆‘비트코인 51% 공격’은 이제 사실상 불가능

비트코인은 거짓 기록을 승인하기 위해 채굴 파워의 50% 이상을 확보해야 하는데 거짓 기록을 통해 얻는 이익보다 시스템 전체가 신뢰를 잃어버림에 따라 다른 채굴자들에게 미치는 피해가 훨씬 크기 때문에 부정행위가 없다고 간주할 수 있다.

이 문제를 설명하면서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싼 그림을 비트코인으로 구입하는 예를 들었다. 채굴 파워의 51%를 지배하고 있는 누군가는 이중 지불을 정상 거래로 기록할 수 있다. 그가 화랑에서 그림을 들고 나와 차에 탄 뒤 그림 값으로 지불했던 비트코인을 다른 지갑에 다시 송금하는 거래를 발생시키고 이를 스스로 채굴할 수 있다. 화랑은 그림과 비트코인을 모두 잃게 된다. 이 채굴자는 값비싼 그림을 거저 얻은 셈이지만 비트코인 시스템이 신뢰를 잃게 되므로 가격이 폭락하고 그가 지배적 지위를 얻기 위해 투입했던 값비싼 채굴 장비와 전기료를 복구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이 모든 일이 1~20분 안에 이뤄져야 한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현실에서 51% 채굴 파워를 가진 이가 부당한 이익을 취할 기회가 없다고 봤다. 왜냐하면 비싼 그림을 팔고 1~20분도 기다리지 않고 구입자를 놓아주는 것을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시스템 전체를 누군가 지배한다고 하더라도 6블록 이전의 기록은 변경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졌다. 블록 간 경과 시간의 평균값이 10분이므로 대략 한 시간 전의 기록이다. 값비싼 물건일수록 결제 후 양도까지는 지연되기 마련이다. 구입자가 비트코인 시스템을 지배하는 이라고 하더라도 판매자가 이중 지불에 속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뜻이다.

비록 다양한 이해관계인들이 수평적인 관계에서 서버를 공유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블록체인 아키텍처는 신뢰성을 부여하는 힘을 갖고 있다. 시간을 물리적으로 구조화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이라는 어휘도 시간과 관련이 있다. 블록은 일정한 시간 동안 발생한 사건(event)들을 모아 담아둔 상자와 같다. 이 상자들은 연결돼 있고 순서는 뒤바뀔 수 없다. 만약 특정한 사건 기록을 바꾸고자 한다면 사건 기록이 담겨 있는 상자만이 아니라 그 이후의 상자들을 모두 바꿔야 한다. 블록체인은 시간을 구조화했기 때문에 시스템 전체를 파괴하지 않고서는 기록을 바꾸기 어렵다. 마치 금고 안에 값비싼 그림이 들어 있지만 부정하게 열면 금고 자체가 그림과 함께 파괴되는 것과 같다.

회사의 핵심 장부를 블록체인으로 구조화한 회사에서 서버 접근 권한을 가진 임원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장부의 일부 내용을 수정하고자 한다. 그는 기록을 변경할 수는 있지만 결과적으로 시스템 자체를 파괴하게 된다. 회사로서는 손실이 더 커질 수 있지만 임원은 시스템 전체를 파괴하지 않고 원하는 기록만 바꾸는 길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부정행위를 주저할 수밖에 없다. 이는 회사가 단독으로 블록체인 서버를 운영할 때의 이야기이고 만약 다른 협력 회사들과 블록체인을 구동하고 있다면 이 임원은 시도조차 하기 어렵다.

블록체인의 서버들이 이해가 상충되는 이들 간에 분산돼 있지 않으면 블록체인을 주도하는 기업의 이익을 희생하면서까지 시스템의 일관성을 유지시킬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이 회사의 이익이 고객이나 협력회사의 이익과 배치되면 시스템을 아예 새로 구축하는 방식으로 기록을 변경할 수도 있다. 그러면 회사는 애써 구축한 자사 블록체인에 대한 공신력과 기록 변경의 이익을 저울질할 것이다.

특정한 블록체인의 구조를 이해하면 이 플랫폼에 대한 신뢰성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블록체인은 신뢰를 비용의 문제로 치환해 준다. 블록체인에 대한 회사의 지배력이 어느 정도인지, 플랫폼 자체를 뒤엎었을 때 회사가 겪는 어려움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사람들은 각각의 블록체인에 담을 수 있는 신뢰의 무게를 예측할 수 있다. 예측 가능성은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하는 시장과 만났을 때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협력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기도 하다.



◆‘비트코인 나쁘고 블록체인 좋다’ 역시 난센스

블록체인 원리주의자를 만족시키는 시스템은 비트코인이 유일하지만 현실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로의 변형은 불가피하다. 블록체인의 원리와 철학적 가치는 그 나름대로 존중하면서도 조금은 열린 자세로 현실의 변화 발전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원리주의자들의 반대편 극단에는 ‘비트코인은 나쁘고 블록체인은 좋다’는 헛된 주술이 자리한다. 두 극단을 피해 블록체인 지능을 높일 수 있어야만 블록체인이라는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돋보기] 적대적 환경을 전제한 비트코인

블록체인 거래 정보는 수치와 텍스트 형태다. 코인이나 토큰의 거래는 수치화된 기록으로 저장된다. 비트코인은 수치 정보가 중심이다. 일반 텍스트를 더 담을 수 있으면 블록체인의 활용도가 커진다. 하지만 여기에는 많은 비용이 수반된다. 여러 대의 서버가 동시에 거래를 승인하게 하려면 거래 기록이 되도록 가벼워야 한다. 복잡한 기록을 담게 하려면 용량을 늘려야 하고 용량을 늘리면 여러 대의 서버를 운영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비트코인의 서버 운영비용은 참여자들이 분담한다. 코인이라는 형태로 경제적 이익을 참여자들이 얻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의 가격이 올라갈수록 서버 운영자도 늘어나므로 시스템은 더욱 강건해진다. 비트코인은 정부라는 막강한 공격자를 염두에 두고 설계됐기 때문에 분산성을 위해 다른 요소를 희생할 수밖에 없었고 수치 정보, 즉 코인 거래를 위한 장부에 특화됐다.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삽입하는 블록체인들이 개발되고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도 비트코인이 적대적 환경에서 생존하는 모습을 주지시켰기 때문이다. 적대적 환경을 간주하고 만들어진 비트코인이 일상생활에서 어떤 용도에 최적화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생태계 전체의 강건성을 지탱하는 기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간주하는 것은 현실 부정일 뿐이다. 그리고 이 현실 부정의 대가는 무척 비싸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2호(2019.04.29 ~ 2019.05.0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