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Ⅰ]
- 대규모 조직 개편 통해 첨단 소재 부문에 힘 실어…글로벌 M&A도 추진 중
“첨단 소재에 미래 걸었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의 특명
(사진)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한경비즈니스 = 이홍표 기자] LG화학이 사업 구조 재편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미래 먹거리인 전기차 배터리에 이어 첨단 소재 투자를 확대하는 모양새다. 주력 사업인 석유화학 업황이 부진하지만 전지와 첨단 소재 등 사업의 경쟁력을 높여 매출 상승세를 이어 가겠다는 복안이다.

LG화학은 최근 다국적 화학 기업 다우듀폰으로부터 솔루블(soluble)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재료 기술을 사들였다. 기술 인수 대금은 2000억~3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솔루블 OLED 재료 기술은 용액 형태(솔루블)의 OLED 재료를 잉크젯 인쇄 기술로 패널에 얹어 기판을 만드는 방식이다.

현재 국내 업체들이 채택하고 있는 유기물질을 진공 상태에서 가열한 뒤 증발시킨 상태로 OLED 패널에 붙이는 ‘증착 방식’보다 재료 효율성이 뛰어나고 공정 속도도 빨라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기술로 평가받는다. 색 재현율 역시 더 높다.

LG화학은 이번 인수를 통해 솔루블 OLED 재료 기술에서 핵심 기술을 단번에 확보하게 됐다. 인수 범위는 △듀폰의 솔루블 OLED 재료 기술과 노하우 △물질·공정 기술 특허 540여 건 등 무형자산 △연구·생산 설비를 포함한 유형자산이다.

LG화학은 새로 확보한 솔루블 OLED 재료 기술과 기존의 연구·개발(R&D)을 통해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OLED 소재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LG화학은 이를 계기로 듀폰과 첨단 소재 분야에서 더 다양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이번 인수로 솔루블 OLED 재료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며 “철저한 준비로 최상의 상품을 고객에게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LG화학이 전통적인 석유화학에 쏠려 있는 매출 비율을 분산해 사업을 다각화하는 사업 재편을 계속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솔루블 OLED 재료 기술 확보 역시 이의 일환으로 분석한다.

LG화학은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28조1830억원, 영업이익 2조2461억원을 거뒀다. 매출은 전년 대비 9.7% 증가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1년 새 23.3% 감소했다. 미·중 무역 분쟁 여파에 미국 에탄분해설비(ECC) 대규모 증설, 중국 수요 부진 등 각종 악재로 석유화학 부문 실적이 악화된 때문이다.

올해 분위기 역시 그리 좋지 않다. 1분기 영업이익은 275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7.7% 감소해 반 토막 났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석유화학제품 업황이 바닥을 다지고 있지만 여전히 시황을 긍정적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차입금과 이자비용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절치부심한 LG화학은 올해 매출 목표를 전년 대비 13.5% 증가한 32조원으로 잡았다. 2025년까지 ‘글로벌 톱5 화학 회사’로 진입한다는 비전도 내세웠다. 이에 따라 LG화학은 고강도 자동차 경량화 소재, 디스플레이 소재, 양극재(배터리 소재)를 비롯한 친환경 에너지 분야 소재 사업에 주력할 예정이다. 구광모 LG 회장은 1월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에 과감히 도전하고 ‘고객을 위한 혁신’이 끊임없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하자”고 말했다.

LG화학의 변화는 전임 박진수 부회장의 뒤를 이어 3월부터 본격적으로 LG화학을 이끌게 된 신학철 부회장이 맡는다. 신 부회장은 글로벌 기업인 3M 출신이다. LG화학이 최고경영자(CEO)를 외부에서 영입한 것은 1947년 창립된 이후 처음이다. 그만큼 LG화학이 변화에 목말라 있다는 의미다. LG화학은 “신 부회장이 급변하는 사업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면서 조직 문화와 체질 변화,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적임자로 판단해 영입하게 됐다”고 밝혔다.

신 부회장은 1984년 3M 한국지사에 입사했다. 이후 필리핀 지사장, 미국 본사 비즈니스 그룹 부사장을 거쳐 한국인 최초로 3M 해외사업을 이끌며 수석부회장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전문 경영인으로 평가된다. LG화학은 “신 부회장은 글로벌 사업 운영 경험은 물론 소재·부품사업 전반에 통찰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이런 역량을 바탕으로 LG화학이 세계적 혁신 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사실 신 부회장이 성과를 내는 일은 구광모 회장에게도 중요하다. 신 부회장의 선임은 구본무 LG 전 회장 시대를 이끈 부회장단 6명 가운데 첫 인사 교체였다. 신 부회장이 탁월한 경영 수완을 보인다면 LG그룹의 구광모 시대를 열어젖힌 상징적 인물이 될 수 있다.
“첨단 소재에 미래 걸었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의 특명
◆기초 소재 부문 영업이익률 축소 중

기초 소재 부문은 LG화학의 핵심이다. 2017년 전체 영업이익의 95.9%를 담당했고 2016년에는 107.4%의 비율을 차지하며 다른 부문의 영업 적자를 만회해 주던 현금 창출원이다. 하지만 업황 악화로 실적이 크게 줄면서 새 돌파구를 찾아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기초 소재 부문에서 수천억원의 영업이익 감소가 발생하면 다른 부문의 성장을 위한 투자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신 부회장은 기초 소재와 연계된 첨단 소재 부문의 강화에 경영의 무게 추를 둔 것으로 파악된다. 신 부회장은 3M에서 글로벌 R&D와 전략·사업 개발을 총괄하는 수석부회장을 지내며 글로벌 사업을 운영하는 역량을 입증했다. 전자소재사업부장을 거쳐 소재 부문과 관련된 감각도 있다. 글로벌 사업 역량과 소재 부문 감각이 첨단 소재 사업의 성장에 큰 힘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엿볼 수 있는 것이 취임 후 단행한 첫 대규모 조직 개편이다. LG화학은 4월 초 첨단소재사업본부를 신설하는 등 기존 4개 사업본부, 1개 사업부문을 4개 사업본부 체제로 하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LG화학은 조직 개편을 통해 사업 조직을 기존 기초소재·전지·정보전자소재·생명과학사업본부와 재료사업부문에서 석유화학·전지·첨단소재·생명과학사업본부로 개편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직 개편의 핵심은 첨단소재사업본부 신설이다. 첨단소재사업본부는 고기능 소재 분야에서 고객별로 차별화된 맞춤형 솔루션을 보다 빠르게 제공하기 위해 기존 정보전자소재사업본부와 재료사업부문 그리고 석유화학사업본부 내 엔지니어링 플라스틱(EP)사업부를 통합해 출범한 대형 조직이다. EP는 자동차·전기전자·항공 분야 등에서 금속의 대체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고성능 플라스틱이다. 금속과 같은 강도를 유지하면서 무게는 가벼워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고객 밀착 대응력을 높이고 사업 시너지 효과 창출을 극대화해 초기 시장을 선점할 수 있도록 기존 ‘제품’ 중심 조직을 ‘미래 시장과 고객’의 관점에서 자동차소재·정보기술(IT)소재·산업소재 등 3개 사업부로 재편한 것이 특징이다.

자동차소재사업부는 EP 사업을 중심으로 자동차 관련 고강도 경량화 소재 사업을 선도하고 IT소재사업부는 4차 산업혁명 영향으로 급변하고 있는 디스플레이 소재 시장을 선점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LG화학은 최근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성장 덕에 전기차용 전지부문이 가파른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만약 전기차 배터리를 납품하기로 한 글로벌 완성차 회사에 소재도 공급하게 된다면 LG화학은 기초 소재 부문의 부진을 보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기차와 관련한 사업의 입지도 확대할 수 있다.

LG화학은 최근 전기차 모터의 핵심 소재인 페라이트 자석을 생산하는 회사 우지막코리아의 지분을 230억원에 100% 사들였다. 이에 앞서 자동차 접착제를 만드는 회사인 미국의 유니실도 인수했다. 완성차 회사들이 자동차 경량화를 위해 용접보다 자동차 접착제를 찾는 경향에 발을 맞추는 것으로 보인다.

또 중국 화난공장에 1291억원을 투자해 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스티렌(ABS)의 생산능력을 15만 톤에서 30만 톤으로 늘렸다. ABS는 자동차 경량화용 소재로, 완성차 회사들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시장조사 회사 테크내비오에 따르면 LG화학이 확장을 진행하고 있는 자동차 접착제와 자동차 경량화용 소재 시장은 2015년 340억 달러 규모에서 2020년 512억 달러 규모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초대 사업본부장은 기존 정보전자소재사업본부장인 유지영 부사장이 맡는다. 첨단소재사업본부 매출 규모는 지난해 연간 기준으로 약 4조7000억원 수준이다.
“첨단 소재에 미래 걸었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의 특명
◆대규모 조직 개편으로 새 진용 짜

기초소재사업본부는 명확한 사업 영역과 전략 방향으로 성장을 추구하기 위해 석유화학사업본부로 명칭을 변경하고 차별화된 기술력과 운영 역량을 바탕으로 기초 원료에서부터 촉매, 최종 제품에 이르기까지 수직 계열화를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LG화학은 먼저 기초 소재 부문에서 고부가 제품 비율을 더욱 높이고 미래 유망 소재를 적극 육성할 계획이다. 특히 ABS, 고부가 폴리올레핀(PO) 등 핵심 사업에 대한 투자를 늘려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의 사업 구조를 구축할 방침이다. 현재 LG화학은 2조6000억원을 투자해 여수공장에 나프타 분해 설비(NCC) 80만 톤과 고부가 PO 80만 톤을 각각 증설하고 있다.

산업소재사업부는 고성장이 예상되는 양극재를 비롯해 친환경 에너지 분야의 산업용 소재 사업 경쟁력 강화에 주력한다. 이 밖에 본부 내 상품기획 기능을 확대해 철저히 고객 관점의 개발 전략을 수립하고 핵심 원재료부터 각 영역의 합성·가공기술 등을 결합해 LG화학만의 차별화된 가치를 고객에게 제공할 방침이다.

또한 LG화학은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서 글로벌 주요 생산 회사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큰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11월 폴란드 생산 공장을 증설하기 위해 6513억원을 투자하기로 했고 10월에는 중국 난징에 둘째 생산 공장을 짓기 시작해 2023년까지 2조1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LG화학은 최근 생명과학부문에서도 투자를 이어 가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 큐바이오파마와 손잡고 면역 항암제 신약 3개를 공동 개발하기로 계약했다. 지분 투자, 계약금, 개발 단계별 수입을 모두 합하면 투자금액은 최대 4500억원 규모에 이른다. 정확한 계약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난해 12월 11일 영국 아박타와 손잡고 단백질 치료제를 개발하는 계약도 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LG화학이 첨단 소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글로벌 화학 기업 바스프의 엔지니어링플라스틱(EP)사업부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회사 측은 바스프 EP사업 인수와 관련해 “확인해 줄 수 없다”며 말을 아끼고 있지만 ‘신사업 육성을 통한 수익성 확보’라는 전략을 감안하면 적극 추진할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5월 5일 솔베이 EP사업부 매각을 담당한 라자드 현지 법인으로부터 쇼트리스트(최종 후보자)선정을 통보받고 최근 실사를 진행 중이다. 연간 솔베이 EP사업부의 영업이익이 760억원 수준(6000만 유로)인 점을 고려할 때 매각 측은 이익의 약 7~8배인 6000억원 정도를 매각가로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LG화학과 최종 본입찰 참여를 두고 고민할 경쟁사로는 글로벌 소재사 랑세스와 어센드, 중국의 화학그룹 킹파 등이 거론된다.

매각 대상인 솔베이의 EP사업부문은 2017년 글로벌 화학사 바스프와 벨기에 화학사인 솔베이 간 합병 과정에서 매물로 등장했다. 당시 유럽연합(EU) 내 일부 국가에서 기업 결합 신고를 반려하면서 사업부 매각 등 조건부 승인 조치를 내렸다. 이에 따라 매각 측은 지난 1월 예비 입찰을 거쳐 올 하반기 매각을 목표로 시한을 정해 거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957년생으로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한국 3M에 입사해 1995년 필리핀 3M 지사장에 올랐다. 1998년 미국 3M으로 옮겨 사무용품 제품 및 연마재사업부 이사, 전자소재사업부 부사장, 산업용접착제 및 테이프산업부 부사장, 산업용비즈니스 총괄 수석부사장을 지냈다.

2011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 3M의 해외사업부문 총괄 수석부회장을 맡았고 최근까지 미국 3M의 글로벌 연구개발(R&D), 전략 및 사업개발, 공급망 관리(SCM), 정보통신 등을 책임지는 총괄 수석부회장을 지냈다. 2019년 3월부터 LG화학 부회장을 맡고 있다.
“첨단 소재에 미래 걸었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의 특명
(사진) LG화학 대산공장

[돋보기] 첨단 소재 사업 육성에 사활 거는 대기업들

최근 국내 화학 회사들은 소재 사업 육성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기존 석유화학 분야의 성장이 주춤한 상태에서 기업의 새로운 성장 축으로 삼겠다는 의지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소재 사업 부문을 분리해 ‘SK아이이테크놀로지’를 출범시켰다. SK이노베이션이 100% 지분을 보유한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전지부터 영상표시장치, 정보통신 기기 관련 소재를 다루는 글로벌 소재 솔루션 기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전기차 배터리에 사용되는 리튬이온배터리분리막(LiBS)과 폴더블폰 등에 쓰이는 투명 폴리이미드(PI) 필름 생산에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소재 사업 강화를 위한 대규모 투자도 이뤄지고 있다. 폴란드 서부 실롱스크에 배터리 핵심 소재인 LiBS 생산 공장을 건설하며 투자금액은 약 4300억원이다. 지난해 착공한 중국 장쑤성 창저우 공장에 이어 둘째 해외 LiBS 생산 기지로, 2021년 양산을 목포로 하고 있다.

(주)두산은 4월 15일 열린 이사회에서 소재·연료전지부문을 분할하기로 결정했다. 8월 13일 예정된 임시 주주총회에서 승인을 얻으면 10월 1일 두산솔루스(소재부문·가칭)와 두산퓨얼셀(연료전지부문·가칭)이 출범한다.

이 중 두산솔루스는 전지박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의 원천 기술을 보유한 전자 소재, 의약품·화장품 등에 활용되는 바이오 소재 사업에 주력할 방침이다. (주)두산은 OLED 시장이 스마트폰 중심에서 자동차 패널과 TV 등으로 확대되고 있어 소재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자회사인 롯데첨단소재가 올 1월 터키의 엔지니어드 스톤 1위 회사인 벨렌코의 지분 72.5%를 인수했다. 미국 등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고급 인테리어 소재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롯데첨단소재는 여수공장에 9만 장의 엔지니어드 스톤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타 업종인 철강업계에서도 소재 사업에 뛰어들었다. 업계 맏형 포스코가 선두에 서있다. 철강업계 주요 공업용 소재인 내화물 업체였던 포스코케미칼은 2010년 LS엠트론에서 음극재 사업을 인수한 데 이어 올해 양극재를 생산하는 포스코ESM까지 흡수하며 첨단 소재 전문 기업으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양·음극재는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로, 포스코 역시 자동차 관련 첨단 소재 사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주목한 셈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4호(2019.05.13 ~ 2019.05.1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