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미 의회 청문회에서 페이스북 ‘난타’…‘디지털 금융 플랫폼’의 신뢰 문제 해결해야
멈춰 선 페이스북 리브라…부각된 비트코인 가치
[오태민 마이지놈박스 블록체인연구소장] 주요 국가의 수장으로는 처음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비트코인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 미국 대통령이 비트코인은 돈이 아니고 범죄의 수단으로 쓰인다고 했으니 비트코인 가격이 1만 달러(1176만원) 고지를 상실할 만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은 소셜 네트워크 행사 직후 나왔는데 비트코인보다 리브라가 타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에서 은행업을 하고 싶으면 은행 규제에 따르라고 했다. 미국 행정부가 리브라 프로젝트를 거대 소셜 미디어의 금융업 야망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리브라는 달러를 보장하는 스테이블 코인은 아니다. 하지만 돈을 받고 권리의 증서를 디지털의 형태로 제공한다고 볼 때 사실상 양도성 예금이거나 증권이다. 만약 리브라가 은행업 면허를 취득하지 않고 사업을 하게 되면 대중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글로벌 기업들은 누구나 예금을 유치해 신용 창출에 나설 것이다. 기업들의 도산으로부터 예금자를 보호하기 위해 최종적으로 예금을 보장하는 기구가 필요하게 될 것이고 이들 기업은 이 기구의 관리 감독을 받게 될 것이다. 사실 이런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금융 시스템이 형태를 갖춘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7월 16일 열린 미국 의회의 리브라 청문회는 차라리 훈계에 가까웠다. 의원들은 페이스북이 개인 정보도 관리하지 못하면서 새로운 화폐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느냐고 질타했다. 자기 관리부터 하라는 말이다. 물론 미국이 디지털 화폐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페이스북이 민주주의와 시장 질서를 해치고 있다는 미국 정계의 험악한 목소리를 고려하면 페이스북에 금융 권력까지 부여하는 결정을 손쉽게 내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페이스북의 설득 논리는 이미 알려져 있다. 비트코인과 암호화폐들의 무정부성을 명분으로 내세워 관리 가능한 디지털 화폐를 미국이 주도하자는 것이다.

◆리브라는 ‘이뤄질 수 없는 꿈’일 수도

페이스북은 비트코인과 암호화폐를 이용해 팁을 주고받는 애플리케이션(앱)을 차단해 왔다. 페이스북이 암호화폐 앱을 허용하지 않은 것은 자금 세탁이나 사행성 조장 같은 공익 때문이 아니었다. 페이스북은 비트코인의 빠른 성장을 원하지 않았다. 그전에 비트코인을 명분으로 페이스북코인을 발행해 성장시키는 시간을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이 비트코이너들의 조언에 따라 ‘좋아요’ 대신 소액의 팁을 주는 앱을 일찌감치 허용했더라면 콘텐츠 생산자와 이익을 나눠 갖는 모델을 창출해 시장을 휩쓸 수 있었다. 무엇보다 비트코인과 암호화폐들이 페이스북 사용자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현실을 근거로 리브라의 허용을 강하게 요구할 수 있었다.

무정부적인 비트코인이 횡행하는 것보다 미국 정부의 명령에 따라 언제라도 중단할 수 있는 리브라가 널리 유통되는 편을 정부도 선호할 것이라는 페이스북의 낙관은 한 가지 치명적 요인을 간과하고 있었다.

은행들의 야심이다. 비트코인의 파괴성을 일찌감치 주목한 것은 은행들이었다. 물론 은행들은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을 애써 구별하면서 비트코인의 성장을 막아 보려고 했다. 하지만 페이스북이 사실상 예금 기반의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려고 한다면 은행들은 정부를 움직여 이를 차단하고 자신들이 주도권을 잡으려고 할 것이다. 이번에 리브라 청문회를 연 주체도 상원의 은행위원회이고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도 은행업계를 대변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리브라처럼 새로운 회계 단위로서의 디지털 화폐 대신 달러에 연동된 코인을 페이스북 플랫폼에 올리면서 예금의 판매(코인의 발행)와 환급(달러와 교환)을 페이스북이 아닌 기존의 은행들이 주도하게 한다면 미국 정부와 금융회사의 지원을 받기는 더 편할 것이다. 그러면 페이스북은 새로운 암호화폐의 발행 주체가 될 수 없지만 온라인 금융 플랫폼이라는 위상을 얻을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인데 IBM의 월드와이어와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 파이낸스라는 거대한 신흥 시장을 놓고 불꽃 튀는 경쟁을 벌여 나갈 것이다.

그럼에도 문제는 남는다. 세계의 시민들이 페이스북을 통해 달러코인을 확보하도록 다른 나라 정부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리브라를 달러에 연동하지 않으려고 한 것도 페이스북이 글로벌 체제의 이해 조정을 고려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국경을 넘나드는 디지털 통화는 그 자체가 현재의 화폐 시스템과 화해가 불가능한 꿈에 가깝다. 정부들의 규제를 지키면서 리브라를 운용하겠다는 말로는 리브라의 존재 자체가 규제 위반이라고 생각하는 정부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 결국 국가 화폐들을 존속시키면서도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디지털 골드라는 매개체가 필요하다. 교환에 대한 보증이 필요 없으면서도 사실상 가치물로 인정되는 금과 같은 무언가가 디지털의 형태로 존재한다면 각국의 은행들은 자국 화폐와 이 디지털 골드의 교환을 매개하면서 디지털 환경에서도 새로운 금융 사업을 영위할 수 있다. 이때 디지털 골드의 가격 변동성은 더 이상 흠이 아니다. 오히려 가격이 변동될수록 일반인들의 접근을 억제할 수 있고 동시에 가격이 안정된 각국의 디지털 코인을 확산시키는 데도 유리하다.

리브라의 주장대로 디지털 금융 플랫폼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각국 정부들이 자기 화폐의 정체성을 당분간 방어하면서 은행들의 사업 영역도 확보하려면 리브라처럼 안정된 디지털 화폐가 아니라 투자적 성격이 강한 대신 가격 변동이 심하고 보증도 필요 없는 비트코인이 선택지로서 더 유리하다. 리브라의 정치적 해법을 찾다 보면 결국 비트코인에 가까워지고 만다.

[돋보기] 비트코인과 비트코인캐시 그리고 비트코인SV

비트코인의 본질적인 속성을 놓고 오랫동안 내전이 이어지고 있다. 거래비용을 최소화해 누구나 지불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비트코인캐시와 비트코인SV가 비트코인으로부터 갈라져 나왔다. 반면 비트코인은 분산성과 무정부성이라는 가치를 강조한다. 아무리 선의의 변화라도 누군가가 주도해 빠른 속도로 변화하면 이후에도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어지므로 예측성이 훼손된다는 것이다.

이들 세 진영은 각기 자신들이 원래의 비트코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비트코인SV는 최근 가격 변동이 심하다. 이유는 이 코인의 리더인 크레이그 라이트 엔체인 수석연구원이 비트코인을 설계한 진짜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것이 미국 법원과 특허청에 의해 증명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실망감이 교차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캐시는 한때 ‘비트코인 예수’로 불리던 로저 버와 채굴계의 황제 우지한이 주축이다. 비트코인캐시는 비트코인보다 저렴한 거래비용을 강조하고 비트코인SV보다 분산성과 현실 적용성을 강조한다. 비트코인은 원래 철학에 맞게 주체라고 불릴 만한 이들이 없지만 이론적 리더로는 사토시 나카모토보다 먼저 암호화폐 세계에서 활동했던 아담 백 블록스트림 최고경영자(CEO)나 암호학자 닉 사보 등이 활동하고 있다.

크레이그 라이트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그가 사토시 나카모토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보다 훨씬 쉽고 단순하다. 이 때문에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사토시 나카모토로 인정받는 일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설사 크레이그 라이트가 진짜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것이 명징하게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비트코인의 위상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물론 비트코인SV 가격이 크게 오르겠지만 비트코인캐시의 영역을 빼앗는 정도에서 멈출 가능성이 높다.

비트코인은 이미 수수료나 용량 문제를 해결할 필요도 없고 사토시 나카모토도 필요 없다는 보수적인 가치와 불변성이라는 믿음에 근거를 둔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4호(2019.07.22 ~ 2019.07.2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