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판에선]
-‘민생 경제’ 외치는 여당도, ‘무능 국정’ 따진다는 야당도 반짝 출석했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
의석엔 20명만…이런 ‘대정부 질문’ 왜 하나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9월 30일 오후 1시 30분 국회 본회의장. 정기국회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이 시작될 시간이었지만 의원석엔 20여 명만 앉아 있었다.

여러 차례 참석 독려 방송이 나간 뒤 1시 50분쯤이 돼서야 본회의 개의 정수(재적 의원 5분의 1인 60명)가 채워졌고 회의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의원들이 ‘북한의 핵 고도화와 미사일 도발 규탄 및 재발 방지 촉구 결의안’ 등을 처리한 뒤 대정부 질문이 본격 시작된 것은 오후 2시 30분이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이 끝난 2시 45분쯤 김광림 자유한국당 의원의 질문을 앞두고 본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한국당 소속 이주영 국회부의장이 문희상 국회의장에게서 본회의 사회권을 넘겨받고 의장석에 앉자 민주당 의원석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민주당 의원들은 앞서 9월 26일 여야 원내 지도부와 협의 없이 본회의를 정회한 이 부의장이 사회를 보려고 하자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요구하며 거세게 항의했다. 민주당 의원석에선 “사과해”, “사퇴해”라는 고함이 합창하듯 터져 나왔다.

이에 맞서 한국당 의원들은 “조국 사퇴” 구호를 외쳤다. 고성이 오가고 몸싸움이 벌어졌다. 싸움이 시작되자 여야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속속 들어왔다. 힘을 보태기 위해서였다. 의원들의 거친 발언과 삿대질이 오가면서 대정부 질문은 45분 정도 중단됐다.

이 부의장이 유감 표명을 하면서 본회의는 가까스로 재개됐다. 김광림 의원의 질문이 시작되자 싸움을 마친 의원들은 하나둘씩 본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오후 3시쯤 본회의장에 230여 명에 달했던 의원들이 ‘전투’를 끝낸 지 10분 정도 지난 3시 40분쯤엔 50여 명으로 줄었다. 이마저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둘씩 자리를 뜨면서 5시께 40여 명, 6시께 30여 명, 본회의를 마친 저녁 7시 42분께는 20명이 본회의장을 지켰다.

그나마 대부분 휴대전화를 보거나 졸거나 다른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등 ‘딴짓’을 했다. ‘민생 경제’를 외치는 여당 의원들도, ‘무능 국정’을 따지겠다던 야당 의원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정부 질문이 열린 다른 날도 마찬가지였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출석한 9월 26일 정치 분야 대정부 질문과 10월 1일 교육·사회·문화 분야 질문에서도 초반 200명이 넘던 출석 의원 수가 대정부 질문을 마칠 때쯤엔 20여 명으로 줄었다. 오히려 대정부 질문 방청객 숫자가 의원들보다 많았다.

◆ 판박이 질문에 앵무새 답변…“대정부 질문 폐지하자”

대정부 질문은 국회법(122조 2)에 따라 국회 본회의 회기 중 기간을 정해 국회의원이 외교·행정·경제·사회·통일·문화 등 국정 전반 또는 국정의 특정 분야에 대해 정부에 질문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 2·4·6월과 정기국회 때 실시된다.

1948년 제헌국회 때부터 이어져 온 대정부 질문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 야당이 합법적으로 투쟁을 벌일 수 있는 유일한 장(場)으로 그 나름의 역할을 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언론 자유가 확보되고 정책 결정 과정이 비교적 투명해지면서 대정부 질문의 유용성에 대한 논란이 일어 왔다.

관례화한 지각 개의, ‘고장 난 레코드’처럼 되풀이되는 판박이 질문과 앵무새 답변, 주제에 벗어난 질문, 저조한 출석률, 고함과 몸싸움은 대정부 질문 때마다 보이는 익숙한 풍경이다. 의원들이 대정부 질문을 지역구 민원 청탁장으로 여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9월 30일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야 질문 의원 13명 가운데 이혜훈 바른미래당 의원 등 3명만 뺀 10명이 주제에서 벗어나 ‘조국 사태’를 집중 거론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경제 현안보다 검찰의 수사 관행에 대해 따져 묻거나 촛불 집회를 언급하며 검찰 개혁을 강조하는 데 치중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조 장관을 둘러싼 의혹을 부각시키며 여권이 검찰 수사에 부당하게 압력을 넣고 있다고 비판하는 데 집중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의원들의 판박이 질문에 연신 “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을 반복했다. 상당수 의원들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에 예산 배정을 촉구하는 등 민원을 넣기도 했다.

대정부 질문 무용론이 제기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0년 2월 당시 김형오 국회의장은 “대정부 질문 동안 본회의장 출석 의원이 방청객 수보다 적어 의장으로서 창피하기 짝이 없을 정도”라며 “의원들이 참여도 하지 않고 일방적 정쟁의 도구로 활용되는 대정부 질문이라면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고 말했다.

2013년 4월 25일엔 정치·외교·통일·안보에 관한 대정부 질문에서 본회의 속개를 위한 의원 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자 당시 사회를 보던 박병석 국회부의장이 의원들을 호명하며 출석 체크를 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출석을 확인한 의원들은 300명 가운데 59명에 불과했다.

국회의원들의 저조한 출석률로 위법 논란이 나온 지 오래됐지만 의원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국회법 73조에 ‘본회의는 재적 의원 5분의 1 이상 출석으로 개의하고 회의 중 이에 못 미칠 때 국회의장은 회의 중지 또는 산회를 선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교섭단체 대표가 의사 정족수 충족을 요청하는 경우 외에는 효율적인 의사 진행을 위해 회의를 계속할 수 있다’는 규정을 활용해 출석률이 아무리 저조해도 ‘그들만의 질문·답변’을 이어 오고 있다.

◆ 전문가들 “대정부 질문 대신 상임위 활동 강화 필요”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대정부 질문 운영 방식이라면 없애거나 대폭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의원들이 여론의 집중도가 높은 대정부 질문에서 주목받으려고 하다 보니 튀는 발언을 하게 되고 정쟁으로 이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대정부 질문 대신 각 상임위원회 활동을 강화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적지 않이 나온다. 본회의를 열고 대정부 질문을 하는 것이나 상임위에서 장관을 불러 질의하고 답변하는 것이나 그 내용면에서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국회 고위 관계자는 “방송으로 생중계되는 대정부 질문이 ‘말의 잔치, 보여주기식 쇼’에 그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소수의 인원으로 밀도 있는 질의 답변이 가능한 상임위 회의가 집중도를 훨씬 높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대정부 질문이 아예 없다. 그 대신 각 상임위원회와 소위원회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된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이런 점을 감안해 ‘법안소위원회 정례화 및 복수화’ 내용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을 추진해 왔고 법안은 지난 4월 본회의를 통과했다.

상임위에 소관 법안 심사를 담당하는 소위원회를 2개 이상 둘 수 있도록 하고 소위를 매월 2회 이상 열도록 했다. 하지만 지난 7월 17일 법이 발효된 이후 지금까지 이를 지킨 상임위는 17곳 가운데 정무위 등 2곳밖에 없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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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5호(2019.10.07 ~ 2019.10.1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