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시총 30조 핀테크 기업 스퀘어의 성장 동력으로…‘중립적’ 비트코인에 미래 걸다
잭 도시 트위터 CEO가 비트코인을 예찬하는 이유
(사진) 잭 도시 트위터 CEO
[한중섭 '비트코인 제국주의' 저자] 잭 도시 트위터 최고경영자(CEO)는 비트코인 예찬론자로 유명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세계는 궁극적으로 하나의 화폐를 가질 것이고 인터넷 역시 단일 화폐를 가질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것이 비트코인이라고 생각한다.”
리브라협회를 출범시키며 디지털 화폐에 대한 야욕을 보이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와 달리 도시 CEO는 트위터 코인 발행설을 일축하며 비트코인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도시 CEO가 트위터 코인이 아닌 비트코인에 주목하는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그가 경영하는 또 다른 회사 스퀘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운영하는 엘론 머스크 CEO처럼 도시 CEO도 동시에 복수의 회사를 경영하는 몇 안 되는 실리콘밸리의 혁신가다. 도시 CEO는 트위터뿐만 아니라 스퀘어라는 핀테크 회사를 창업해 경영하고 있다. 오전에는 트위터에, 오후에는 스퀘어에 출근하는 식이다. 국내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스퀘어는 미국의 대표적인 핀테크 기업 중 하나다.
스퀘어는 2009년 설립된 회사로, 모바일 결제 솔루션을 지원하는 핀테크 회사다. 스퀘어의 시가총액은 약 30조원에 육박하는데 이는 트위터와 비슷한 규모다.
◆‘금융업’ 장벽 뛰어넘을 수 있는 비트코인
스퀘어는 ‘캐시 앱’이라는 모바일 결제·송금 애플리케이션(앱)을 운영하고 있다. 경쟁 서비스 대비 캐시 앱의 차별점은 비트코인 관련 서비스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캐시 앱 유저는 비트코인 매매·예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스퀘어의 2019년 2분기 실적에서 비트코인 관련 매출액은 1억2500만 달러(약 1451억원)를 기록했는데 이는 전 분기 대비 두 배 정도 증가한 것이다. 비트코인이 스퀘어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것이다. 비트코인의 인기를 등에 업은 캐시 앱은 승승장구하며 경쟁사인 페이팔과 벤모를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스퀘어 사업을 하면서 도시 CEO는 금융업이 굉장히 폐쇄적이라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규제, 통화의 상이성, 현지 금융회사와의 제휴 등으로 핀테크 기업은 사실상 인터넷 DNA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한국 유저가 싸이월드에서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갈아타기 쉽지만 토스나 카카오 페이, 네이버 페이 대신 스퀘어를 사용하기는 쉽지 않다. 스퀘어가 한국에서 원화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트위터의 유저 수가 3억 명이 넘는 것에 비해 캐시 앱의 유저 수가 1500만 명밖에 되지 않는 이유다. 이는 비단 스퀘어뿐만 아니라 모든 핀테크 기업이 겪고 있는 문제다. 핀테크 기업이 내수 시장을 벗어나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비트코인의 등장은 도시 CEO에게 상당한 영감을 준 것으로 보인다. 어떠한 기업이나 정부의 개입 없이도 분산적 신뢰에 기반해 네트워크가 작동하는 비트코인. 망할 것이라는 수많은 사람들의 저주에도 불구하고 10년 넘게 꿋꿋이 생존한 비트코인. 2017년 버블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브랜드를 각인시킨 비트코인. 도시 CEO는 비트코인의 잠재력을 엿봤고 그것이야말로 인터넷 DNA를 지닌 디지털 머니라고 생각했다.
도시 CEO는 비트코인을 단순한 투기성 자산이 아니라 인터넷 화폐로 만들고 싶어 한다. 2019년 9월 도시 CEO는 “비트코인은 아직 화폐로 기능하지는 않는다”고 말하며 비트코인의 한계를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비트코인을 통해 스퀘어의 비즈니스를 획기적으로 바꾸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도시 CEO는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스퀘어 산하에 ‘스퀘어 크립토’라는 부서를 만들어 비트코인 기술 개발과 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스퀘어 크립토는 페이스북·빗고·라이트닝랩·구글 출신들을 영입해 비트코인 드림팀을 꾸려 도시 CEO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일종의 별동대다. 스퀘어가 모바일 결제에 강점을 보이는 회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도시 CEO는 비트코인을 결제 시장 혁신에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비트코인은 대안적인 가치 저장 매개체인 ‘디지털 금’에 비유된다. 비트코인이 결제 시장에서 활용되는 것은 거의 없다. B2C 결제 시장에서 활용되기에는 비트코인이 너무 비싸고 느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당한 수준의 유저와 자본을 보유한 글로벌 기업이 이 시장에 뛰어든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론적으로 많은 비트코인을 수탁하는 회사는 오프체인 솔루션(블록체인에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된 외부 원장을 활용해 기록)을 활용해 비트코인 결제를 지원할 잠재력이 있다. 고객이 예치한 비트코인, 실시간 법정화폐-비트코인 환전, 블록체인이 아닌 자체 원장을 활용해 거래 내역을 사후 정산하는 것이다. 이때 고객은 자신이 비트코인으로 결제하는지 여부를 알아채지 못하고 편리하고 쉬운 방식으로 결제 서비스를 이용하게 된다. 마치 우리가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할 때 TCP-IP 프로토콜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솔루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들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 비트코인 결제 모바일 앱이 대중화돼야 한다. 둘째, 충분한 규모의 비트코인이 안전하게 수탁돼야 하며 셋째, 소비자와 상점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수준으로 비트코인과 법정화폐 간 환전이 매끄럽게 진행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상점은 카드·부가가치통신망(VAN) 등 중개 수수료를 절약하고 이 중 일부를 소비자에게 혜택으로 제공해야 비로소 비트코인은 결제 시장을 혁신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먼 것이 사실이다.
◆트위터의 선택에 한국 기업도 주목해야
결제 시장을 혁신해 비트코인을 인터넷 화폐로 만들려는 도시 CEO의 비전이 실현될 수 있을지 여부는 미지수다. 하지만 페이스북·텔레그램·카카오·라인 등 쟁쟁한 인터넷 기업들이 자체 디지털 화폐를 만들고 생태계 확장을 꾀할 때 비트코인에 집중하는 도시 CEO의 행보는 확실히 주목할 만하다. 도시 CEO는 상황 파악 능력이 뛰어나 보인다. 그는 트위터 코인을 발행해 봐야 페이스북 리브라의 적수가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트위터가 트위터 코인을 발행한다고 상상해 보자. 20억 명이 넘는 유저 수를 가진 페이스북 리브라 대비 트위터 코인을 사용할 트위터·스퀘어의 유저 수를 합쳐봐야 리브라 대비 약 15% 수준에 불과하다. 규모의 경제에서 밀려 네트워크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없다. 훨씬 큰 네트워크를 보유한 페이스북과 똑같은 방식으로 경쟁할 바에야 이미 지난 10년간 사람들에게 가치를 인정받아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비트코인에 집중하겠다는 것이 그의 전략이다.
도시 CEO의 행보는 블록체인 관련 신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국내 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국내 기업들 중 트위터 스퀘어만큼의 글로벌 유저·자본력·브랜드를 갖추고 있는 곳은 거의 없다. 국내 기업들이 블록체인 사업을 내수용이 아닌 글로벌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체 생태계를 꾸리는 것보다 도시 CEO처럼 비트코인에 베팅하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9호(2019.11.04 ~ 2019.11.1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