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값만큼 싼 고기 값 올려야 vs 세금 올려도 큰 변화 없을 것
육류세 도입 나선 ‘채식주의 천국’ 독일
[베를린(독일) = 박진영 유럽 통신원] 최근 사회민주당(SPD)과 녹색당 등 일부 독일 정치인들은 육류에 대한 부가가치세(VAT)를 기준금리인 19%까지 올릴 것을 제안했다. 현재 독일에서 육류는 빵·과일·채소 등과 같이 주식으로 간주돼 19%가 아닌 7%의 부가가치세 인하율이 적용되고 있다.
프리드리히 오스텐도르프 녹색당 농업정책 대변인은 “고기에 대한 부가가치세 인하를 폐지하고 동물 복지를 위해 이를 표기하는 것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이 제안에 대해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기독교민주당(CDU) 농업부 대변인인 앨버트 슈테그만은 “이 세금은 건설적인 제안이 될 수 있다”고 공개 지지한 뒤 “하지만 추가적인 세수는 축산 농가들의 구조조정을 돕는 데 활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육류세’라고 불리는 이 세금 인상안은 담배·비닐봉지 등에 붙은 일종의 ‘죄악세(sin tax)’처럼 부정적인 요인 때문에 붙은 세금으로, 동물 윤리와 환경적 측면에서 그간 꾸준히 논의돼 왔다.
각 정당과 정치인들마다 ‘육류세’의 사용처에 대한 의견이 약간씩 다르지만 대체로 세금 인상에 따른 세수를 활용해 농가의 시설 개량을 도와 동물 복지를 증진하고 기후변화에 맞서며 육류 소비를 줄임으로써 독일인들의 건강을 증진시킨다는 점을 목표로 한다.
◆1인당 육류 소비량 높은 독일, 낮은 고기 값 때문?
독일은 서구 사회에서 채식주의자 비율이 높은 나라 중 하나다. 동물성 식품을 전혀 섭취하지 않는 완전 채식주의자들만 130만 명에 달하고 독일 전체 인구 8200만 명 중 800여만 명이 베지테리언으로, 이 수치는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국민의 육류 소비량은 여전히 높다. 1961~2011년 1인당 육류 소비량은 연간 64kg에서 90kg까지 증가했고 이후 소비량이 점차 줄면서 현재는 1인당 연간 약 60kg을 소비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게다가 매년 1인당 약 20kg의 고기가 동물 사료와 다른 육류 품목으로 가공되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집계한 1인당 세계 육류 평균 소비량이 40kg인 것과 비교해 상당히 높은 수치다.
육류세 도입을 찬성하는 이들은 이처럼 높은 육류 소비량의 이유가 낮은 가격의 육류와 육류 가공품 때문이라고 본다. 독일의 육류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다른 제품에 비해 육류를 선택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거의 모든 슈퍼마켓에서 비슷하게 낮은 가격대의 고기들을 많이 판매하기 때문에 할인 쿠폰조차 필요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에 대해 동물보호단체인 ARIWA(Animal Right Watch)의 리더인 아킴 슈탐베르거 씨는 “현재는 고기 값이 너무 싸 사람들이 물을 마시듯 먹는다”고 비판한다.
고기 값이 싼 이유는 기본 세율보다 낮은 부가가치세 적용 때문만은 아니다. 대량생산을 통해 공급이 많기 때문이다. 육류 산업은 독일의 주요 경제 분야로, 25대 육류 회사들이 2018년 270억 유로(약 35조3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비평가들은 육류 회사들이 형편없는 농장 환경과 도살장, 노동자들과 동물의 복지를 희생시키면서 자신들의 이윤을 극대화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상반기 독일에서 돼지·소·양·염소 등 2940만 마리가 도살돼 390만 톤의 고기로 처리됐다. 이는 독일이 세계 최고의 육류 생산 국가에 계속 이름을 올리게 하는 결과다.
물론 독일에서는 가축에 대해 동물복지법이 적용되고 있지만 동물 보호 단체들이 공개하는 몰래 카메라 사진이나 동영상 등을 통해 많은 동물들이 농장에서 고통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독일 사회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환경 친화적인 유기농 육류 제품보다 값싼 고기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일반 제품의 4배 가까운 유기농 제품 가격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세금 인상보다 궁극적 해결책 찾아야
육류세 도입을 둘러싼 찬반 의견은 팽팽하다. 찬성론자들은 비만 등을 줄이기 위해 유럽의 많은 나라와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 도입돼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둔 설탕세를 예로 들며 육류세 도입으로 육류 가격이 높아지면 소비량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늘어난 세금으로는 동물 복지 개선이나 농부·노동자들의 복리후생 등에 기여할 수 있고 육류 소비 감소는 또한 온실가스 배출량의 감소로 이어져 환경에 크게 기여할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육류와 육류 가공품 섭취로 생길 수 있는 질병을 예방하는 등 국민 건강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란 예측이다.
아닌 게 아니라 현재의 육류 공급량을 유지하기 위한 대량생산 시스템에서는 동물 윤리를 말하기 어려운 환경이고 유엔보고서에 따르면 농업과 임업 및 기타 토지 이용이 전체 온실가스 배출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붉은색 고기와 육가공품이 암·뇌졸중·당뇨병 등 여러 질병과 관련 있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되고 있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육류세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이 세금의 도입이 동물 복지 개선은 물론이고 육류 소비량 감소에 그다지 영향을 끼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농부들의 이익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동물 권리 옹호론자인 슈탐베르거 씨는 육류세를 도입하면 소비자들은 동물들이 더 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있다는 잘못된 확신을 갖게 되고 이는 오히려 육류 소비 안정화 효과를 줄 것이라며 “이는 육류 제품에 대한 부가가치세 인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고 말한다.
그뿐만 아니라 세금 인상이 저소득층에게는 더 싸고 덜 건강한 육류 제품을 사도록 강요할 것이고 부유층에게는 육류 소비를 줄이도록 설득하기에 충분한 인상 폭이 아니라는 측면에서 효과적이지 않다는 게 반대론자들의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세금을 통한 방식이 아니라 보다 궁극적인 해결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베른하르트 크뤼스켄 독일농민협회 사무총장은 서구식 육류 소비수준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이기보다 독일이 보다 기후 친화적인 생산방식을 개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뿐만 아니라 환경 옹호론자들은 교육을 통한 해결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동물 윤리와 환경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건강한 음식을 요리하는 법 등을 가르치는 것이 세금 인상보다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한편 육류세를 둘러싼 국가적 논의에 대해 귄터 오에팅거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고기는 EU 단일 시장에서 주요 식품이라는 이유를 들며 국가적인 조치에 대해 경고성 주장을 내놓았다. 세금 인상으로 독일 내 육류 가격이 비싸진다고 하더라도 수출육의 가격은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설탕세가 도입된 후 이 세금의 영향을 받은 몇몇 나라의 국민이 인근의 다른 나라에서 관련 제품을 저렴하게 구매했던 것처럼 독일 내 고기 값이 오른다고 하더라도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몇 년째 육류세 논의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실제로 육류세가 실행되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보는 데는 이런 배경도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9호(2019.11.04 ~ 2019.11.1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