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 IT가 금융업 주도하는 ‘테크핀’ 시대 도래…악의적 조작 위험 등 우려 목소리도
[전승우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금융과 IT의 융합인 핀테크를 넘어 향후에는 IT가 금융업을 주도한다는 테크핀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주장도 대두되고 있다
골드만삭스 AI ‘워런’, 애널리스트 15명이 4주 할 일 5분 만에 처리
미래 예측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중의 가장 큰 관심사다. 앞으로 발생할 사건을 정확히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다면 막대한 부를 축적하거나 위기 발생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고대부터 점이나 주술 등 미래를 예상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성행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를 예상하기 위해 저명한 전문가의 의견에 주목한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번번이 예측에 실패한다. 지구촌 최대의 축구 축제인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축구 황제 펠레는 해당 대회의 우승팀을 예상하지만 그가 지목한 팀은 여지없이 우승에 실패했다. 이런 현상이 번번이 계속되면서 ‘펠레의 저주’라는 말도 등장했다. 반면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는 독일의 수족관에 살던 파울이라는 문어가 독일 팀 경기 결과는 물론 최종 우승팀까지 정확히 맞혀 전 세계의 화제로 떠올랐다.
금융 투자 역시 미래 예측이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대표적 분야다. 글로벌 경제 동향은 물론 다수 산업과 기업의 변화 그리고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뉴스까지 금융 상품의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투자자들은 금융 시장이 향후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촉각을 기울이지만 뚜렷한 해답을 얻기는 매우 힘들다.
금융 시장 이론과 현황에 정통한 전문가들이라도 실제 투자 성과는 대중의 기대에 훨씬 못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2000년 월스트리트저널은 전문가 투자자와 아마추어 투자자 그리고 원숭이 등 세 그룹이 주식 시장에 상장된 기업을 고르게 한 후 이들이 선택한 기업에 대한 투자 수익률을 비교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풍부한 정보를 이해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가장 좋은 수익을 거둘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1등은 다름 아닌 원숭이 그룹이었다.
노련한 전문가들이 원숭이보다 낮은 성과를 올린 주된 요인을 인간의 심리에서 찾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인간은 항상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린다는 고전 경제학의 가정은 현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간은 정보를 객관적으로 해석하기보다 더욱 높은 수익을 좇거나 반대로 손실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인공지능 금융 투자의 부상
전통 산업과 정보기술(IT)의 융합이 가속화되면서 금융업에서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단순 업무 자동화나 비효율적 시스템 개선 등 과거의 IT 활용이 주로 비용 절감에 초점을 맞췄다면 오늘날 IT는 적극적 수익 창출 활동에 중점을 두고 있다. 즉 인간의 불완전한 판단과 감정에 따른 비효율성을 근본적으로 차단해 높은 투자 수익률을 얻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서둘러 IT 역량 확보에 나서고 있고 새롭게 부상한 스타트업도 기술을 앞세워 금융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겠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금융업은 오랜 시간에 걸쳐 수많은 종류의 데이터를 풍부하게 축적했기 때문에 AI 활용이 용이한 대표적 산업으로 손꼽힌다. 데이터 마이닝 등 과거의 여러 데이터 처리 기술이 데이터 분석·가공을 통한 시사점 제공에 그쳤다면 AI는 데이터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언제, 어떻게 금융 자산에 투자할지 능동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특히 딥러닝으로 대변되는 머신러닝 알고리즘의 발전으로 AI는 투자 횟수가 축적될수록 정확하게 판단하는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또한 AI는 인간의 오판 위험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매우 객관적인 시각에서 투자를 결정할 수 있다. 반복되는 투기 광풍과 폭락의 역사는 대부분 정보의 확증 편향이나 군중 심리 등 인간의 비이성적 사고에서 비롯됐다. 반면 AI 투자 시스템은 오로지 본질에 충실한 합리적 전략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여러 금융회사들이 AI를 활용한 투자 서비스에 뛰어들고 있다. IT와 금융의 융합이 활발해지면서 금융회사들은 IT, 특히 AI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아마존·구글·IBM 등 글로벌 IT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AI 서비스를 수월하게 구축할 수 있는 플랫폼을 출시하면서 금융회사들이 빠른 속도로 자사의 비즈니스에 AI를 접목할 수 있게 됐다.
골드만삭스는 ‘켄쇼’라는 AI 스타트업과 함께 AI 시스템 ‘워런(Warren)’을 만들었다. 워런은 전문 애널리스트 15명이 4주에 할 수 있는 데이터 수집·분석, 미래 시장 예측 등 엄청난 작업을 5분 만에 처리할 수 있다고 한다.
경제 데이터가 폭발적으로 산출되면서 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시사점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과거보다 더욱 많은 전문가들이 필요하지만 워런과 같은 AI 시스템의 등장은 반대로 노동력을 절감시킬 수 있다.
자산 운용사 블랙록 역시 AI를 활용한 투자에 적극적이다. 블랙록은 지금까지 유수의 전문가들을 적극적으로 영입,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블랙록은 향후에는 AI가 인간보다 더욱 정확한 투자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방침 아래 블랙록은 인간의 판단이 중요한 액티브 펀드에서도 AI 시스템의 활용 비율을 꾸준히 높이고 있다.
AI를 개인의 투자 포트폴리오 자문에 사용하는 ‘로보어드바이저’도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투자 자문 서비스는 지금까지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웠지만 AI 기술을 활용해 누구나 저렴한 비용에 자신의 성향에 맞는 투자 조언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런 장점이 부각되면서 최근 기업들은 투자자 개인은 물론 시장의 풍부한 정보를 조합해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제공할 수 있는 로보어드바이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는 자사의 어드바이저 서비스에 AI 챗봇 ‘루보(Luvo)’를 도입했다. 원래 루보는 간단한 안내 서비스에 불과했지만 딥 러닝 등 첨단 AI 기술을 도입해 활용 범위가 급격히 확대됐다.
루보는 사전에 정의된 질문에 대한 고객의 답을 토대로 유사 성향 고객들의 포트폴리오, 향후 경제 시황, 경기 변동 등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고객에게 적합한 금융 상품과 자산 포트폴리오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새로운 리스크 방지도 필요
향후에도 AI 금융 투자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늘 것으로 보인다. 막대한 양의 데이터 축적은 물론 컴퓨팅 파워의 발전 등 AI 활용 기반이 더욱 탄탄해지고 있다. 따라서 더욱 다양한 유형의 투자 활동에 AI 기술이 접목될 여지가 크다.
AI가 투자 산업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한편으로 이에 대한 기대가 과도하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아무리 AI라고 하더라도 수많은 투자가들이 참여하는 시장의 흐름을 이기기 쉽지 않고 나아가 AI 투자가 확산될수록 각종 문제들이 등장할 위험도 크다는 것이다. 예컨대 인간이 주도하는 투자와 달리 AI 알고리즘으로 이뤄지는 투자 활동은 빠르고 광범위하게 이뤄지므로 적시적 개입이 쉽지 않고 엄청난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AI 알고리즘을 악의적으로 조작하려는 시도도 큰 위험이 될 수 있다. 컴퓨터 시스템에 대한 무차별 해킹 공격 등 사이버 범죄는 여러 산업에서 큰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금융업에서도 악의적 목적으로 고안된 AI 기술이 개인과 시장의 질서를 교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아직까지는 AI 활용에 대한 정확한 검증과 처벌 규정 등 각종 제도 마련 역시 미흡한 수준이다. 이 때문에 영국과 미국 등 다수 선진국들은 AI 알고리즘의 오류를 관리하기 위한 법적 제도 마련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금융과 IT의 융합인 핀테크를 넘어 향후에는 IT가 금융업을 주도한다는 테크핀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주장도 대두되고 있다. IT를 금융업에 활용하는 차원을 넘어 금융과 IT 산업의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지는 트렌드의 중심에는 첨단 IT, 특히 AI의 부상이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AI가 바꾸게 될 금융 시장의 판도를 예상하고 그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 역량과 전략 수립, 나아가 테크핀 시대의 잠재 리스크 대비가 미래 금융 기업의 핵심 과제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
골드만삭스 AI ‘워런’, 애널리스트 15명이 4주 할 일 5분 만에 처리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4호(2019.12.09 ~ 2019.12.1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