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아마존·구글·페이스북·마이크로소프트 등 ‘이종 결합’ 주도…기술의 융합 속도 더 빨라질 것
[전승우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글로벌 전자 상거래 기업 아마존은 빠른 성장성은 물론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온라인 서점으로 출발해 커머스 플랫폼으로 유명한 아마존이지만 신선식품 매장 홀푸드를 인수하는 한편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아마존웹서비스(AWS)로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드론·로봇·우주 관광 등 본업과 연관성이 적은 사업까지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대중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에 따라 아마존이 새롭게 시작하는 사업은 정보기술(IT)업계는 물론 글로벌 경제의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명품 하드웨어’로 시장 장악력 높이는 플랫폼 기업들
아마존의 신사업 중 특히 관심을 끄는 것 중 하나는 바로 하드웨어 사업이다. 아마존은 이전부터 전자책 킨들을 시작으로 파이어 스마트폰, 태블릿 등 여러 종류의 하드웨어 개발에 관심을 보였지만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자레인지·시계 등 실생활과 밀접한 전자 기기까지 직접 제작하는 등 흡사 하드웨어 제조 기업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마존이 출시한 전자레인지는 60달러에 불과한 가격이지만 아마존의 강점인 음성 인식 인공지능(AI) 알렉사(Alexa)를 탑재한 스마트 스피커 에코(Echo)와 연동할 수 있다. 사용자는 버튼 조작 대신 말로 음식 조리를 작동할 수 있다. 또 아마존이 출시한 벽시계 역시 에코를 통해 타이머를 작동하거나 알람을 설정할 수 있고 서머타임 시기에 맞춰 자동으로 시간을 재설정하는 등 이색 기능을 제공한다.

아마존의 하드웨어 진출은 에코의 출시로 본격화됐다. 알렉사를 호출해 다양한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에코는 스마트 스피커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음성 인식 기술은 꾸준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적용 사례를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스마트 스피커 시장의 성장은 음성 인식의 저변을 빠르게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 에코는 초기에는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이 제한적이었지만 음악 재생, 알람, 스트리밍 오디오, 날씨, 생활 정보, 주변 기기 제어 등 신규 기능을 꾸준히 추가해 인기 가전 기기로 자리 잡았다.

이런 움직임이 아마존만의 일이 아니다. 대표적 인터넷 플랫폼 기업인 구글 역시 본업보다 눈에 띄는 하드웨어 출시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구글이 만든 스마트폰 픽셀은 우수한 카메라 성능과 AI 비서 등 다양한 기능을 탑재해 큰 화제를 모았다. 스마트 스피커 시장에서도 구글 홈이 빠른 속도로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구글은 과거 모토로라 인수를 통해 스마트폰 넥서스를 출시했고 증강현실(AR) 기능을 지원하는 구글 글라스 등 다수 하드웨어를 만들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구글은 미래 신기술을 연구하는 구글 X를 통해 다양한 하드웨어 기술 개발을 지속했다. 이런 노력이 이어지면서 현재 구글은 자체 개발한 AI 반도체를 알파고를 구동하는 클라우드 컴퓨터에 적용하는 등 부품과 완제품을 아우르는 하드웨어 기술 개발과 투자로 새로운 IT 제조 기업으로 주목 받고 있다.

하드웨어로 플랫폼 영향력 강화
가상현실(VR) 헤드셋, AI 디스플레이 스피커 등을 출시한 페이스북이나 노트북, 태블릿 PC 등 IT 기기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보이는 마이크로소프트 등 소프트웨어 기술로 성장한 IT 기업들의 하드웨어 시장 진출은 글로벌 IT업계의 눈에 띄는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IT 붐을 이끌고 있는 기업들은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 역량으로 막강한 플랫폼을 구축해 시장 판도를 바꿨다. 저명한 벤처캐피털리스트인 마크 안드레센 페이스북 이사는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잡아먹는다”고 주장할 만큼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은 업종과 분야를 가리지 않고 커지고 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역량, 특히 막강한 플랫폼을 구축한 기업들은 역으로 하드웨어 시장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구글·아마존·페이스북 등 플랫폼 기업들이 앞다퉈 하드웨어 시장에 진출하는 배경은 하드웨어 사업을 통한 수익 창출보다 자사 플랫폼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볼 수 있다.

이미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한 아마존의 과제는 이제 플랫폼의 영향력 확장이다. 특히 플랫폼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아무리 탄탄한 입지를 구축한 플랫폼이라고 하더라도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소셜 미디어, 전자 상거래, 미디어 등 서로 다른 영역에서 성장한 플랫폼이더라도 진출 영역을 확장하면서 다른 플랫폼과 경쟁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다른 플랫폼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자사 플랫폼의 저변 확대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많은 플랫폼 기업들은 사람들의 활용도가 큰 하드웨어를 직접 제작하는 전략을 추진하게 됐다. 사람들이 하드웨어 사용을 늘릴수록 자연스럽게 플랫폼에 접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들 기업들은 이런 전략이 통한다면 자사 플랫폼 충성도가 높은 고객들을 빠르게 늘릴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게다가 하드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풍부한 데이터를 확보해 플랫폼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플랫폼의 가치는 접속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를 통해 공유되는 데이터의 양에 비례한다. 하드웨어를 통해 플랫폼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생산·공유하는 데이터는 플랫폼의 역량, 예컨대 고객에 대한 인사이트 발굴과 AI 기술 고도화 등 여러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한편 자사 플랫폼 역량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기기의 출시도 중요해지고 있다. 이미 다수의 플랫폼 기업들이 하드웨어 기업과 활발하게 협력하면서 자사의 플랫폼을 탑재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기업들의 제품이 플랫폼을 완벽하게 지원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하드웨어 기업들이 자신들의 특성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탑재하면서 플랫폼의 강점이 충분히 나타나기 어렵다는 것도 새로운 고민으로 부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플랫폼 기업들은 자사의 역량을 충분히 구현할 수 있는 하드웨어 생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플랫폼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한편 자사 플랫폼에 유리한 하드웨어 트렌드를 제안해 IT 산업의 판도를 이끌겠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아우르는 전략 강조
이제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하나에 주력하기보다 양쪽 모두를 아우르려는 전략이 한층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특정 분야의 강점만으로는 미래 성장을 담보하기 어려운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이 때문에 서로 다른 분야의 주도 기업들이 새롭게 부상하는 시장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많은 플랫폼 기업들의 하드웨어 도전은 광범위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하드웨어 기기 개발과 판매가 훨씬 수월해지면서 차별화된 아이디어와 기술을 갖춘 하드웨어를 활용하려는 전략이 한층 두드러질 수 있다. 과거 제품 성능의 지속적 개선이 하드웨어 시장의 핵심 경쟁력이었다면 앞으로는 플랫폼·서비스 등 핵심 IT 역량을 어떻게 하드웨어 제품에 수월하게 접목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종 기술 간 융합은 미래 IT 산업에서 더욱 주목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독자적인 전문성 강화는 물론 이전에 연관성이 적었던 분야까지 적극적으로 아우르는 노력도 한층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과 소비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예측하기가 매우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IT 산업 내 다양한 기업들의 영역 파괴 바람이 거세질수록 과거에는 쉽게 상상하지 못했던 제품과 서비스가 등장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플랫폼과 서비스 기업의 하드웨어 도전, 하드웨어 기업이 플랫폼 기업에 버금가는 콘텐츠나 서비스를 출시하는 등 새로운 흐름은 IT 산업의 미래를 조망하기 위해 주목해야 할 중요한 트렌드가 될 수 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선제적으로 발굴하기 위해 산업과 산업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기술과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려는 전략이 IT 기업들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명품 하드웨어’로 시장 장악력 높이는 플랫폼 기업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8호(2020.01.06 ~ 2020.01.1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