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이더의 성장 있어야 빠른 확산 가능…비트코인·달러·부동산 등 활용 움직임도
디파이가 넘어야 할 큰 산…‘본원담보’의 한계
(사진) 암호화폐거래소 직원들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의 시세와 차트를 점검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김경진 해시드 심사역]디파이(DeFi : 탈중앙화 금융)는 최근 블록체인업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디파이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혹자는 디파이의 수요가 시세 변동을 통해 차익을 얻기 위한 거래, 즉 투기에 몰려 있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한다. 하지만 주식 시장을 움직이는 원동력 중 하나가 투기라고 해서 이를 문제 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본 시장에서 투기 심리는 시장의 역동성과 유동성을 만드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디파이에 대한 우려 중 가장 합리적인 우려는 바로 담보 자산의 한계다.

디파이는 개인의 신원을 확인하지 않고 믿을 만한 중개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무엇보다 담보 자산이 중요하다. 현재 활발하게 사용되는 다양한 디파이 프로토콜들도 담보 자산 없이는 무용지물이다. 미국 달러와 연동된 다이(DAI)와 같은 합성 자산(synthetic asset)도 담보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합성 자산도 발행되기 위해서는 다른 담보 자산을 요구한다.

그래서 현재 디파이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담보 자산은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기축 통화 역할을 하는 이더(ETH)다. 또 이더를 기반으로 여러 프로젝트들이 발행한 ERC20 토큰들도 담보로 기능하고 있다. 이렇게 합성 자산이 아니면서 독립적으로 기능하는 담보물을 통화 이론의 본원 통화(base money)에 빗대 본원 담보(base collateral)라고 부르고 있다.

앞으로 디파이 전체 시장 규모는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디파이 관련 사업을 하려는 창업자들이나 금융 기업 그리고 디파이에 투자하려는 투자자들이 궁금해 할만한 질문이다.

디파이의 시장 규모를 측정하는 지표는 TVL·거래량·사용자 수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지표는 TVL이다. TVL은 예치 자산 총가치(Total Value Locked)의 영문 앞 글자로, 스마트 콘트랙트에 예치된 자산 가치의 총합을 의미한다.

TVL 기준으로 볼 때 디파이 시장 규모는 금융에서 통화량을 구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산출할 수 있다. 통화량은 흔히 중앙은행에서 발행한 본원 통화에 통화승수를 곱한 것으로 표현한다. 이때 본원 통화는 중앙은행이 발행한 실제 화폐량을 의미하며 통화승수는 은행의 지급준비제도에 의해 실제로 추가 유통되는 돈의 비율을 의미한다. 비슷하게 디파이의 TVL을 본원 담보×담보 승수로 계산할 수 있다. 담보 승수(collateral multiplier)는 디파이 프로토콜들이 요구하는 최소 담보 비율과 자산이 합성되는 횟수에 의해 결정된다.

◆이더의 시총도 17조에 불과해

통화승수와 담보 승수의 차이점은 지급준비율과 최소 담보율에서 나온다. 지급준비율은 100%보다 작기 때문에 대출이 반복될 때마다 통화승수는 크게 증가하며 무한히 커질 수 있다. 반면 최소 담보율은 100%보다 크기 때문에 자산의 합성이 반복되더라도 담보 승수의 증가 폭이 작고 최대 크기에 제한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TVL을 키우는 방법은 바로 본원 담보의 총량을 키우는 것이다. 현재 본원 담보로서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자산인 이더의 시가총액은 17조원 정도다. 발행된 모든 이더가 담보로 잡힌다고 하더라도 본원 담보가 17조원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앞으로 디파이가 발전하면서 우마(UMA)와 같은 합성 토큰 발행 프로토콜을 통해 현실 세계의 주식을 거래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본원 담보의 규모가 너무 작다면 매력도가 많이 떨어진다. 애플의 시가총액은 현재 1경4000조원이 넘는다. 발행된 모든 이더를 전부 담보로 활용해도 애플 주식 전체 발행량의 1.14%밖에 합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초과 담보 비율까지 감안하면 1%보다 한참 아래 수준으로 떨어진다.

또 이더를 중심으로 구성된 담보 자산은 단순히 규모 이상의 잠재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바로 단일 지점 실패(single point of failure) 문제다. 단일 지점 실패는 블록체인과 탈중앙화가 방지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문제다. 하나의 지점에서 실패하더라도 그것이 전체 시스템을 붕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해하기 쉬운 금융권 사례로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있다. 부실 채권을 담보로 한 파생상품들이 무분별하게 발행되면서 리스크의 규모를 키웠고 담보물의 가치가 급락하자 그 위에 쌓인 모든 상품들이 휴지 조각으로 변했다.

이더가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같은 부실 자산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제대로 된 가치 평가 방법론을 갖추고 충분한 거래 유동성을 확보하기 전까지는 가치 변동성이 매우 큰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본원 담보 역할을 하는 이더의 가치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급락하면 이더를 담보로 한 여러 합성 자산들의 지불 능력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담보 자산의 규모와 다양성을 키워야만 디파이 산업의 규모를 키울 수 있다. 일각에는 디파이 프로토콜의 효용성만 잘 성장시켜도 본원 자산의 규모를 키울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즉 디파이 프로토콜의 효용성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이더가 담보로서 스마트 콘트랙트에 잠기게 된다. 이를 통해 거래시장에 공급되는 이더의 양이 감소하게 되는데 기축 통화는 이더이기 때문에 이더의 수요는 동시에 증가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이더의 가격은 상승하게 된다. 이더의 가격이 상승하면 이더의 발행량이 같더라도 총 TVL은 증가할 수 있다.

◆디파이의 성장도 ‘본원 담보’ 연구에서 출발


디파이 프로토콜을 발전시키는 것 이외에 담보 자산 자체의 혁신을 꾀하는 움직임도 존재한다.

첫째는 비트코인을 디파이로 가져오려는 움직임이다. 비트코인에는 스마트 콘트랙트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더리움과 비교해 응용 사례를 만드는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BTC)의 시가총액은 160조원으로 이더 시총의 9배에 달한다. 이러한 비트코인을 담보로 가져올 수 있다면 시장 규모를 단숨에 10배로 키울 수 있다.

비트코인을 담보로 사용하려는 시도는 크게 두 가지 부류다. RSK는 비트코인에 스마트 콘트랙트를 구동할 수 있는 레이어를 덧씌우는 방식으로 디파이를 접목하려고 한다. 반면 wBTC나 tBTC는 비트코인을 이더리움 네트워크에 ERC20 형태로 가져와 사용하는 시도다. 다만 두 경우 모두 스마트 콘트랙트 레이어가 순수한 비트코인 네트워크만큼의 신뢰도를 제공하기 어렵다는 것이 잠재적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둘째는 금이나 법정화폐·부동산·주택 등의 현실 자산을 토큰화해 담보로 사용하려는 움직임이다. 이 방향은 잘만 실현된다면 시장 규모를 현실 경제만큼 키울 수 있다. 하지만 이 방향은 탈중앙화된 방법으로 실현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예를 들어 금을 토큰화한다고 하자. 누군가가 금을 맡기고 금 토큰을 발행하려면 금을 맡아주는 중개자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금 토큰을 가지고 금을 청구할 때 금을 돌려줄 중개자가 필요하다. 이 중개자는 물리적인 공간에서 물리적인 힘을 가지고 금을 보관해야 한다. 그러므로 스마트 콘트랙트가 아닌 물리적인 실체가 있는 존재여야 한다. 특정 중개인이 존재하는 시스템을 탈중앙화 금융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남는다.

현재 디파이 전체에 잠겨 있는 자산의 총가치, 즉 TVL은 7900억원 수준이다. 이는 이더 시가총액의 4.6%밖에 되지 않고 비트코인 시가총액의 0.5%밖에 되지 않는다. 담보 승수까지 고려하면 디파이의 본원 담보 총량은 더 작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담보물의 가치보다 다른 요소들이 디파이의 성장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본원 담보 규모의 범위를 확대하지 않고 디파이가 현실 세계의 금융 시스템과 경쟁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디파이의 성장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사업을 전개하려는 스타트업·금융기업·투자자 등은 본원 담보에 대해 정교하고 구체적으로 예측해 내야만 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8호(2020.01.06 ~ 2020.01.1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