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언제나 후발 주자였지만 ‘다름’을 통해 시대를 선도한 애플…“기술은 예술과 통한다”

[김용석 성균관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노랗게 물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고 그것으로 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서양 미술의 흐름에서 찾는 애플의 혁신성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의 일부 구절이다. 애플은 남이 가지 않는 새로운 길을 만든 기업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일상을 확인하고 정보를 검색하고 상품도 구매하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눈다. 아이폰이 세상에 나오면서 스마트폰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니다.

2009년은 애플의 아이폰이 국내에 처음들어온 시기다. 삼성은 아이폰의 대항마로 옴니아 2라는 모델을 내놓지만 완패 당하는 수모를 겪게 된다. 하지만 삼성은 옴니아 2의 실패를 디딤돌로 삼았다. 피처폰 시대의 부동의 1위였던 노키아는 어떠했나. 위기의 구원투수로 마이크로소프트 출신의 최고경영자(CEO)를 영입해 윈도폰을 새롭게 출시하지만 이 또한 아이폰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결국 2013년 노키아 휴대전화사업부는 문을 닫게 된다. 당시 노키아 CEO는 기자 회견에서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우린 결국 패배했다.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었고 적들은 너무나 강했다.”

스티브 잡스의 혁신성은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나온다
아이폰과 스티브 잡스는 늘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도대체 스티브 잡스가 추진했던 혁신성은 무엇일까. 세계 최초·최고의 기술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다. MP3 플레이어는 한국이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98년 3월 정보통신 전시회인 세빗(CeBIT)에서 디지털캐스트라는 국내 스타트업 기업이 엠피맨(mpman)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을 열었다. 아이팟은 한국 제품에서 기본 콘셉트를 얻은 셈이다.

그러면 스마트폰은 누가 세계 최초로 개발했을까. 당연히 애플은 아니다. 1992년 콤덱스(COMEX)라는 컴퓨터 산업 전시회에서 IBM이 사이먼(Simon)이라는 이름으로 공개하면서부터다. 기본적인 전화 통화뿐만 아니라 e메일·팩스·호출이 가능하고 계산기·달력·시계·게임이 가능했다. 지금의 스마트폰이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혁신 제품이었지만 사업화에 실패했다.

애플의 MP3 플레이어와 스마트폰은 경쟁사보다 개발이 많이 늦었다. 스마트워치도 삼성보다 1년 이상 늦게 상용화했지만 현재 1등을 차지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의 창조성과 혁신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가 처음부터 새롭게 만들어 놓은 것은 없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을 애플의 혁신성·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애플이 추진했던 혁신성을 서양 미술에서 찾아보자.

첫째, 르네상스 미술에서는 인간 중심 사고를 엿볼 수 있다. 이것은 서양 미술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그리스·로마 미술을 계승했다. 인간 중심 사상을 바탕으로 이상미·조화미·균형미를 추구했다. 중세의 화가는 상상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눈으로 그렸지만 르네상스 화가는 자신의 눈, 즉 인간의 눈으로 표현했다. 신에서 인간 중심으로의 변화다. 자기 눈에 가까운 곳은 크게, 먼 곳은 작게 보인다. 회화의 원근법은 중세가 아닌 르네상스 시대에 발명됐다.

스티브 잡스는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서 있으려고 노력했다. 제품이 사용자들에게 오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인간 중심 제품 개발의 중요성을 설명한 바 있다. 한마디로 고객의 욕구를 이성(기술)이 아닌 감성(인간)에서 찾은 결과다.

둘째, 인상주의 화가들의 혁신적인 시도를 들 수 있다. 인상주의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사실주의까지 이어져 왔던 명료한 데생, 입체감, 정확한 명암법 등을 깼다. 회화 대상을 평면적으로 묘사했다. 짧고 거친 붓 터치로 형태보다 순간적으로 변화하는 빛의 효과를 통해 생생함을 추구했다.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다.

1791년의 일이다. 프랑스 정부는 화가들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릴 목적으로 미술 전시회, 즉 살롱전을 시작했다. 살롱전에 입상한 작품은 명성을 얻는 것뿐만 아니라 정부가 화가의 판권을 보장해 주는 혜택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심사 기준은 전통적 기법이 우선시됐고 사진과 같이 세밀한 그림을 추구했다. 5000여 점의 출품작 중 3000여 점이 탈락하는 일이 벌어지자 예술가들의 항의가 매우 거셌다. 이에 1863년 프랑스 정부는 낙선한 화가들을 중심으로 ‘낙선전’이라는 전시회를 마련해 준다. 낙선전은 혁신적인 그림을 전시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다르게 생각하기(think different)’의 의미
1863년 낙선전에 에두아르 마네는 ‘풀밭 위의 점심 식사’라는 그림을 출품했다. 이 그림은 논란의 대상이 되면서 마네는 유명한 인물이 됐다. 이 그림은 인상주의가 탄생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너무 파격적이었던 이 그림을 관람자들이 우산으로 찢어버리려고 해 3m 높이에 걸어야 했다. 전통적인 화가들이 경전처럼 모셔 왔던 원근법과 명암법을 지키지 않았다.

그 이후 예술계에서 소외됐던 모네·세잔·드가·피사로·르누아르·시슬레 등의 화가들이 1874년 독립 전시회를 열게 된다. 또 한 번 당시의 화단을 경악하게 한다. 그림들은 형체조차 명확하지 않았다. 그리다가 만 듯한 이 그림들은 ‘인상적이라는 조롱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클로드 모네의 ‘인상, 해돋이’에서 인상주의라는 이름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미술 작품을 만드는 것이나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나 혁신적인 일은 늘 어렵다.

모네는 마네보다 여덟 살이 아래다. 그는 마네에 대한 경의의 표현으로 ‘풀밭 위의 점심 식사’ 작품을 따라 그렸다. 이 그림의 포즈와 배치는 또 라파엘로 산치오의 데생에 의해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가 만든 동판화 ‘파리의 심판’을 모방한 것이었다.
서양 미술의 흐름에서 찾는 애플의 혁신성
서양 미술의 흐름에서 찾는 애플의 혁신성
빈센트 반 고흐는 처음으로 모사한 그림이 밀레의 ‘만종’이었고 ‘씨 뿌리는 사람’은 모작을 12편이나 했다고 한다.

또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은 입체파(큐비즘)의 서막을 연 작품이다. 이 그림은 후기 인상파의 대표 인물인 세잔의 ‘목욕하는 여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피카소의 작품을 보고 어느 누구도 표절이라고 하지 않는다.

1997년에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창업한 애플에서 쫓겨났다가 다시 돌아와 광고를 통해 애플의 철학을 발표한다. ‘다르게 생각하기(think different)’다. 이것은 새로운 출발의 시작이었다. 이는 미술 세계에서 대가의 그림을 모방하고 새롭게 재해석해 창의적 그림을 얻어내는 것과 같다. 현재 있는 것에서 다름을 찾겠다는 것이다.

이 광고에서는 동서양의 남과 다른 생각을 가졌던,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로 세상을 훌륭하게 변화시켰던 위인들이 나온다. 피카소, 에디슨, 존 레논, 달라이 라마가 그들이다. 이 광고에서의 선언이 실천으로 이어져 2001년 아이팟, 2007년 아이폰, 2014년 애플워치가 출시되면서 모두 세계 1등 제품으로 성공하게 된다.

그림 안에는 그 시대의 인간의 사유와 삶의 모습들,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창조적 활동의 모습이 녹아 있다. 한 그림을 감상한다는 것은 화가가 그 시대를 살아가면서 느끼고 고민한 땀과 호흡을 함께하는 것이다.

애플의 혁신성은 르네상스 미술의 인간 중시, 인상주의 미술의 전통적인 회화 방식의 파괴, 현재 있는 것에서 다름을 찾고자 하는 것들과 일맥상통한다. 스티브 잡스가 기존 MP3 플레이어, 휴대전화 제품에서 새롭게 혁신 제품인 아이팟과 아이폰을 만들어 낸 생각과 실천은 살롱전의 권위에 저항하고 이전의 회화 양식을 거부하면서 새로운 회화의 시대를 열었던 서양 화가의 혁신적인 노력에서 찾을 수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9호(2020.03.23 ~ 2020.03.2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