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 2008년 금융위기 속에서 탄생한 비트코인
- 흔들리는 글로벌 공급망 속 제 역할 할까
코로나19로 ‘진정한 시험대’에 오른 비트코인
(사진) 비트코인 첫째 블록과 그 안에 담긴 문구.

[한경비즈니스 칼럼 = 오태민 지놈체인 대표, ‘비트코인은 강했다’·‘스마트콘트랙 : 신뢰혁명’ 저자] 2014년 가을, 비트코인 커뮤니티가 크게 요동쳤다. 미국의 뉴욕 주가 비트라이선스 법제안을 발표하자 규제를 받아들이고 주류 사회에 안착하는 계기로 삼자는 규제 수용파와 비트코인이 인터넷의 독립 화폐로 남아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법안 보이콧파로 나뉘었다.


비트코인 재단을 비롯해 어느 정도의 규제는 불가피하는 쪽으로 대세가 기울자 보이콧파 중 일부는 자신들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가지고 있던 비트코인을 투매했다. 주문 한 번에 1000개씩 물량이 쏟아지자 시장은 매물을 수용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60만~70만원 하던 비트코인이 몇 주 사이에 30만원까지 떨어졌다. ‘마약 할 권리’ 같은 헛된 기대를 품었던 초창기 비트코인 주도 세력들이 완전히 이탈하거나 생각을 고쳐먹기 전까지 이전 가격은 회복되지 않았다. 무려 2년이 지나서야 폭락 이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2014년 5월, 필자는 ‘비트코인은 강했다’를 출판해 지인들에게 나눠 줬다. 가까운 친척과 친구들은 직접 찾아가 커피 값을 내면서까지 설명해 줬고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을 열게 하고 얼마의 비트코인도 보내 줬다. 무료 공개강좌도 열었다.


그런데 몇 달 만에 비트코인 가격이 절반으로 폭락했으니 가족과 지인들에게 신뢰를 잃어 버렸다.


2018년 이후 지금까지 비트코인은 아무리 못해도 600만원은 넘는다. 2014년 가을, 비트코인 가격이 30만원대까지 낮아진 다음부터 지인들에게 책을 보내고 무료 강의를 하고 가까운 친구들을 쫓아다니면서 설득하는 일을 그만뒀는데 ‘과연 잘한 일이었을까’라고 가끔 자문하게 된다.
지난 3월 중순, 비트코인은 1주일 만에 40%나 가격을 잃었다. 1000만원 하던 비트코인이 며칠 만에 600만원까지 떨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금을 포함한 거의 모든 자산 가격이 떨어졌지만 하락 폭과 속도에서 비트코인은 다른 자산들을 압도했다. 비트코인에 대해 어떤 좋은 말을 해도 변명으로 들릴 수밖에 없는 상태로 회귀했다.


◆지난 100년간 98%의 가치를 잃은 달러




달러는 지난 100년 동안 98%나 가치를 잃었다. 지구적인 전염병 사태처럼 절실한 이유가 있을 때마다 통화량을 늘린 때문이었다. 경제가 마비 상태에 들어서면 정부는 어떻게 해서라도 경제 주체들의 웅크린 마음을 펴 줘야 한다. 이때 효과도 빠르고 정치적으로도 어렵지 않아 쉽게 손이 가는 선택은 바로 시장에 자금을 대량으로 주입하는 것이다.


그런데 비트코인은 2008년 리먼브라더스 부도로 시작된 월가 금융 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세상에 나왔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첫째 블록에 영국 재무장관이 부실 은행들을 위해 구제 금융을 쏟아붓기로 했다는 그날, 영국 신문의 헤드라인을 새겨 넣었다.


그리스 국가 부도(2011년), 키프로스 은행 지급 불능(2013년), 베네수엘라 초고 인플레이션(2016년), 인도의 화폐 개혁(2016년), 짐바브웨의 2차 통화 위기(2017년)에 따른 위기와 혼란 속에서 비트코인은 주목받으며 성장해 왔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 사슬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사건들은 주변부에서 일어났던 화폐·금융 위기다.


2020년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양적 완화와 유동성 주입이 비트코인 등장 이후 처음으로 맞이하게 된 ‘종이돈’들의 위기다.


라울 폴 전 골드만삭스 유럽헤지펀드 판매 책임자는 전염병 사태의 여파가 금융을 보는 젊은 세대의 시각을 완전히 바꿀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는 피할 수 없는 격변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자산의 절반 정도는 반으로 나눠 각각 비트코인과 금에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도 자신의 트위터에 비트코인을 사야 할 때라고 올렸다. 정부가 주는 돈을 써버리지 말고 금이나 은이나 비트코인을 사라고 권장했다. 달러가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달러 저축은 바보짓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비트코인을 사면 당장 큰돈을 벌 수 있다고 떠드는 사람은 멀리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총체적 격변의 시기를 맞아서도 비트코인은 공부할 가치가 조금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은 더욱 멀리해야 한다. 전자가 예언자를 자처하는 흔한 죄를 짓고 있다면 후자는 현실과 지식을 한꺼번에 무시하는 희귀 병을 앓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비트코인은 이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지적인 현상이다. 무엇보다 비트코인의 존재 자체가 오늘날 국제 질서의 숨겨진 전제와 특징들을 보여준다. 미국의 지정학 전문가 피터 자이한 자이한온지오폴리틱스 설립자는 코로나19 사태 직전 출판한 책 ‘분리된 국가(Disunited Nations)’에서 2020년부터 브래튼우즈 체제가 유통 기한이 끝났다는 사실이 본격적으로 눈에 띄기 시작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가 말하는 브래튼우즈 체제는 단순히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국제 무역 결제 시스템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세계화의 골조인 글로벌 공급 사슬망을 떠받치는 총체적인 시스템을 가리킨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5년 동안 지속되던 글로벌 정치·경제 질서가 근본적으로 변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수명이 다 돼 위태롭던 구조물에 이 전염병 사태가 돌이키기 어려운 타격을 입힐 것으로 보인다.


비트코인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하는 사람들의 지적 체계는 바로 자이한 설립자가 말하는 브레튼우즈 체제와 관련이 있다. 그들은 브레튼우즈 체제로부터 기인한 많은 것들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질서는 미국에 의한 거의 무한정한 유동성 공급과 압도적인 해군력에 의한 해상 무역로의 안전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소련의 몰락과 미국 셰일 혁명에 의한 에너지 자급 등 지난 30년간 진행된 복합적 요인에 의해 이 질서의 전제 조건들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고 한다. 오늘날 화폐와 금융 질서에 대한 일반인들의 상식은 브레튼우즈 체제의 지속을 전제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이 체제가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는 냉정한 사실을 받아들여 할 시점이라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상당하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끝났다”는 피터 자이한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경제 교육을 받아 온 사람이라면 비트코인을 상식적으로 용납하기 어렵다. 국가들을 묶어 주는 화폐 네트워크와 금융망은 별다른 불편 없이 잘 돌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외국의 생산자와 협상하고 가격이 맞으면 계약하고 계약하면 돈을 보내고 돈을 보내면 식량이나 원자재를 구할 수 있다는 당연한 전제가 흔들릴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코로나19의 급속한 진행 속에서 처음에는 마스크와 의료 용품 그리고 쌀과 중요 식량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지던 질서가 흔들리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실제로 관찰하고 있는 중이다.


비트코인 투자는 종이돈의 남발에 대한 보험의 성격도 있다. 하지만 화폐 금융 질서가 흔들리면 글로벌 공급 사슬망의 약한 고리들부터 끊어지기 시작한다. 앞으로 아프리카와 남미의 상황을 주시해 볼 필요가 있는 이유다. 신뢰가 무너지면 금융망은 제구실을 할 수 없다. 특히 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국가에서의 개인과 기업의 금융 자산은 국가에 의해 손쉽게 갈취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달러 송금이 사실상 금지된 국가의 국민들은 달러를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다. 외국 바이어가 아무리 달러를 송금해도 약탈적 환율 때문에 금융망을 통해 받은 돈으로는 원료를 구입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 처한 이들의 관점에서 대안을 상상해 볼 수 있어야 한다.


비트코인의 진정한 시험대는 정부의 탄압이 아니다. 바로 이와 같은 화폐 금융 시스템의 오작동 가운데 비트코인이 어떠한 일을 해내는지 보여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11년 만에 비트코인의 첫 시험 무대가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2호(2020.04.13 ~ 2020.04.1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