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오피스’ 바람 뜨겁다

기능과 성능이 개선된 스마트폰 도입과 유무선 통합 서비스의 확대로 ‘모바일 오피스’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모바일 오피스는 각종 정보기술(IT) 기기를 활용해 사무실 안과 밖을 가리지 않고 실시간으로 일처리가 가능한 환경을 뜻한다.

통신 및 IT 기업에는 새 먹을거리로, 이를 도입한 기업들에는 효율성 증대와 사내 커뮤니케이션 향상 수단으로, 직원들에게는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수단으로 각광받는 ‘모바일 비즈니스’ 현장을 밀착 취재했다.
‘손안의 사무실’…‘m 비즈’ 혁명 스타트
글로벌 제약 회사인 한국릴리의 이선영 대외협력팀 부장은 아침 9시 30분까지 회사에 출근한다. 다섯 살 딸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출근해도 충분한 시간이다. 그렇다고 그가 ‘뺀질이’ 사원은 아니다.

회사가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운 ‘유연근무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때때로 오후에 출근하기도 한다. 집에서 가까운 서울 강남 지역에서 미팅이 있을 경우 회사에 ‘얼굴 도장’을 찍을 필요 없이 바로 현장으로 직행한다.

이 부장은 “와이브로를 통해 회사 서버, e메일 계정 등에 언제 어디서든 접속이 가능해 결재와 문서 작성 등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과 똑같이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며 “‘효율성’을 중시하는 외국계의 특성상 상사의 ‘눈치’를 볼 일도 없다”고 말했다.

한국릴리 파이낸스팀에 근무하는 성은진 부장은 아예 재택근무를 선택했다. 한국릴리는 유연근무제도를 통해 생산성이 높아지자 2008년 말부터 국내에서는 다소 파격적인 완전 재택근무제도를 실시했다.

성 부장은 집 안에서는 데스크톱과 유선전화를 통한 ‘홈 오피스’로, 집 밖에서는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활용한 ‘모바일 오피스’로 업무를 본다. 성 부장은 “출산 후 일과 육아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었는데 회사가 실시하고 있는 재택근무 제도로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춰 나가는 것이 가능해졌다”며 “이동 시간이 줄어들고 편안한 환경에서 일처리를 할 수 있어 능률도 오른다”고 말했다.
‘손안의 사무실’…‘m 비즈’ 혁명 스타트
한국릴리에서는 현재 성 부장 외에도 15여 명의 직원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최근 ‘손안의 사무실’ 모바일 오피스를 도입하는 기업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모바일 오피스는 노트북 컴퓨터나 스마트폰과 같은 단말기를 통해 사무실 밖에서도 사내 네트워크에 접속해 회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뜻한다.

모바일 오피스에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는 기능과 성능이 개선된 스마트폰과 모바일 오피스 솔루션 때문이다. 여기에 노트북 컴퓨터 등을 거치는 모바일 네트워크와 유무선 통합의 도구가 된 와이파이(Wi-Fi) 확대도 한몫하고 있다.

모바일 오피스가 정착되면 재택근무나 원격 근무가 정착되고 이는 ‘실시간 기업’이라는 진일보한 기업 문화는 물론 새로운 고용 패턴까지 낳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특히 육아·가사 문제 등으로 일자리를 유지하기 어려운 여성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전망이다.

모바일 오피스 환경으로의 진화는 산업적 측면에서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먼저 통신 및 IT 관련 기업의 경우 새로운 먹을거리의 창출이 가능하다. 2009년 2조9000억 원 규모의 모바일 오피스 관련 시장은 2014년까지 5조9000억 원의 시장으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도입 기업은 효율성의 극적인 상승도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모바일 오피스 구축에 가장 적극적인 업체들은 역시 SK텔레콤이나 KT 등 통신 업체들이다. 정체 상태인 개인용 통신 시장의 돌파구로 새롭게 태동하는 기업 통신 시장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은 최근 ‘IPE(Industry Productivity Enhancement)’를 미래 성장의 핵심 카드로 지목했다. ‘산업 생산성 증대’를 뜻하는 IPE는 통신을 다른 산업에 접목해 함께 성장하자는 의미다.

이 전략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게 바로 모바일 오피스다. 모바일 오피스 시장이 커지면 자연스레 기업 시장으로의 접근이 쉽게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SK그룹, 신개념 모바일 오피스 ‘도입’

이에 따라 SK그룹은 지난 3월 28일 모든 계열사에 모바일 오피스를 구축한다고 발표했다. 그룹에 먼저 높은 수준의 모바일 오피스를 도입해 이에 대한 운영 노하우를 쌓아간다는 전략이다.

테이프는 SK텔레콤이 끊는다. SK텔레콤은 5월부터 신개념 모바일 오피스를 전면 도입한다. 1차적으로 전 임직원에게 스마트폰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기존 사내 전산망인 티넷(T.net)에서 구현한 그룹웨어에 영업 전산, 문서 관리 시스템(ECM) 등을 추가할 예정이다. 8월에는 SK에너지와 SK네트웍스 등 다른 계열사들도 순차적으로 모바일 오피스 시스템을 구축한다.
‘손안의 사무실’…‘m 비즈’ 혁명 스타트
이들 계열사의 모바일 오피스는 SK텔레콤이 구축하는 ‘그룹 모바일 포털’을 중심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정만원 SK텔레콤 사장은 “새 모바일 오피스는 재고 관리, 원격 검침 등을 비롯해 업무의 모든 것을 모바일로 하는 방식”이라며 “계열사 간 서비스를 묶어 시너지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KT는 최근 2012년까지 모바일 오피스 가입자를 100만 명으로 확대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에 따라 KT는 모바일 오피스 플랫폼을 개발해 지난 1월부터 상용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플랫폼은 자사가 출시하는 모든 단말기를 지원할 수 있도록 개방형으로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모바일 오피스를 위한 구축 비용이 필요 없어 이를 도입한 고객사의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KT는 또 단말기·네트워크·서버 간 보안을 적용하고 보안 문서를 지원하는 등 보안성도 높였으며 그룹웨어와 푸시메일(회사 서버와 통신사 서버를 연계해 통신사 서버에서 단말기를 가진 직원에게 e메일을 전달하는 방식)을 이용하는데 필요한 데이터 요금도 월정액 5000원으로 무제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SKT나 KT 등 통신사뿐만 아니라 IT 솔루션 기업들도 모바일 오피스 시장 진출에 열심이다. 삼성SDS는 지난해 선보인 ‘모바일데스크’를 올해 그룹사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으로도 확대할 계획이다.

모바일데스크는 다양한 모바일 단말기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e메일, 결재, 일정 관리, 직원 조회 등 모바일 오피스 기능을 구현해 주는 서비스다. 또 마이크로소프트 익스체인지와 IBM 도미노는 물론 국내 기업들이 많이 사용하는 여러 그룹웨어를 지원해 기업들은 주요 업무를 모바일 환경에서 처리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SK C&C 역시 자체 개발한 모바일 뱅킹 솔루션 ‘모바일 온(Mobile On)’을 북미 지역 등 해외시장에서 공급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 밖에 SAP코리아·한국사이베이스·한국IBM·한국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스마트폰을 활용한 모바일 오피스 관련 솔루션을 내놓고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손안의 사무실’…‘m 비즈’ 혁명 스타트
모바일 오피스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이를 서비스하는 기업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의 효율성을 크게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는 KT와 함께 지난 1월 스마트폰을 이용해 전 직원이 시설을 유지·보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글이나 말 대신 부품의 바코드를 찍어 고장 신고를 하고 긴급 상황에는 신고자가 스마트폰으로 매뉴얼을 보고 수리까지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2000여 명의 전담 인력만이 하던 수리 업무를 6500명의 전 직원이 나눠 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꾼 것이다.

KT경영연구소는 ‘모바일 오피스 구축의 경제적 효과’라는 보고서를 통해 이 사례를 분석하면서 도시철도공사가 앞으로 5년간 비용의 40배가 넘는 효과를 낼 것으로 내다봤다. 구축에 들어간 비용이 102억 원인 반면 4000억 원이 넘는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포스코와 동부그룹 등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공장을 관리하는 ‘스마트 팩토리’ 구축에 나섰다. 제철소·반도체 생산 공장 등에 통신망과 각종 센서를 설치하고 스마트폰을 이용해 이를 제어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포스코가 구축 예정인 ‘유무선 통합 프로젝트’는 스마트폰인 블랙베리 기반의 모바일 오피스다. 포스코는 앞으로 4년간 사내 모든 유선전화를 무선전화로 대체하고 포항과 광양 제철소에 광대역부호분할다중접속(WCDMA)망을 이용한 광대역 유무선 통합망 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포스코는 이에 따라 3월부터 직원 700여 명에게 스마트폰을 지급했다. 지난해 12월 그룹장 이상에게 300여 대를 지급한 것을 포함해 1000대가 넘는 규모다.

지난해 9월 기준 전체 회사 사무직 직원 수가 1516명이니 사실상 사무직 직원 대부분에게 스마트폰이 지급돼 본격적인 ‘모바일 오피스’가 가동된 셈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출근과 동시에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오늘 처리해야 할 주문서를 입력하고 출하 지시나 운송 조회, 생산 속보 등 다양한 정보를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다”면서 “긴급 재해 생산 진행 현황과 같은 경우 그동안 사무실에 돌아와 확인해야 했지만 지금은 바로 바로 현장에서 납기나 출하·운송과 관련해 확인해 줄 수 있어 훨씬 더 빠른 업무를 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동부그룹은 계열사를 대상으로 제공 중인 그룹 통합 EP(Enterprise Portal) 서비스를 모바일상에서 구현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동부그룹 임직원들은 올 상반기 내에 보안 때문에 현재 사내 인트라넷에서 이용하고 있는 e메일, 전자 결재, 게시판, 일정·명함·주소록 관리, 임직원 조회 등 기본 서비스는 물론 업무 프로세스 관리 시스템인 비즈니스프로세스관리(BPM)까지 스마트폰을 통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또 삼성그룹 일부 계열사 역시 모바일 오피스를 도입했다. 삼성SDS·삼성네트웍스·삼성증권 등은 이미 지난해 초부터 스마트폰으로 결재까지 하는 모바일 오피스를 운영한다.

스마트폰으로 삼성 사내 인트라넷인 ‘싱글’에 접속해 각종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임원들 중심으로 이를 적용해 온 삼성의 전자 계열사들도 지난해 말부터 일반 직원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 밖에 CJ제일제당·아모레퍼시픽·현대중공업·두산·대한항공·현대하이스코·씨티은행·LIG넥스원·한영회계법인·서울아산병원·다음 등도 모바일 오피스를 업무에 활용하고 있는 기업들이다.

‘디지털 스트레스’ 높아져

모바일 오피스는 행정 분야로도 빠르게 번지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스마트폰에 기반한 행정 서비스를 시범적으로 도입한다고 지난 3월 30일 밝혔다. 행안부는 이를 위해 4월 사업자를 선정하고 메모 보고 및 공지 사항 등 그룹웨어 서비스를 8월까지 제공할 방침이다. 행안부는 또 전자 결재와 e메일을 시범 사업으로 할지를 놓고 국가정보원 등과 협의해 보안성을 검토할 계획이다.

물론 모바일 오피스의 도입이 기업의 생산성을 단시간 안에 극적으로 올려주기는 힘들다. 오히려 도입 초반에는 모바일 오피스 도입에 따른 ‘스피드 스트레스’로 직원들의 불만이 높아질 가능성도 크다.

실제로 삼성그룹 사보 ‘삼성앤유’가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바에 따르면 모바일 오피스 도입의 단점으로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는 메일 때문에 업무 강도만 높아질 것”이라는 응답이 35%를 차지했으며 “느리게 사는 삶,아날로그적인 삶에 대한 향수가 더 커질 것”이라는 응답도 18%를 차지했다.

또 스마트폰을 잘 활용하는 직원과 그렇지 못한 직원 간의 차이를 뜻하는 ‘스마트폰 갭’이 등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업들은 모바일 오피스의 도입으로 당장의 생산성 향상보다 커뮤니케이션 문화와 조직 구조를 바꾸는데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실제로 모바일 오피스를 조기 도입한 두산의 박용만 회장은 아이폰으로 트위터에 접속해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업무 지시를 내리는 등 신속하고 격식 없는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또 김인 삼성SDS 사장은 수행 비서 없이 ‘모바일 데스크’에 접속해 결재하며 스마트폰으로 e메일을 검색하고 스케줄을 관리하고 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kbizweek.com / 사진=서범세·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