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757호 (2010년 06월 09일)

“웹2.0 시대…수평적 리더십 길러야”

안철수·박경철의 ‘리더십 특강’ 지상 중계

안철수와 박경철.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의사 출신이지만 지금은 다른 분야에서 더 유명하다. TV 토크쇼에 출연할 만큼 둘 다 대중적 인기가 높고 혈액형도 AB형으로 똑같다. 깎은 듯한 단정한 외모에 틈만 나면 책을 펴는 이름난 독서광이라는 점도 닮은꼴이다. 하지만 가장 큰 공통점은 사람과 사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다.

이들이 올 초부터 대학생을 위한 지방 순회 강연에 함께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종종 공개 대담에 나서 화제가 되는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처럼 두 사람의 만남은 의미심장하다. 몸을 고치는 의사에서 사회를 고치는 경제·경영 전문가로 변신한 이들의 강연 현장을 취재했다.

지난해 10월 서울의 한 대학에서 강연 초청을 받은 안철수(48) 카이스트 석좌교수는 박경철(46)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에게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미국 유학 시절 인상 깊게 봤던 질문을 주고받는 대담 형식의 강연을 떠올린 것이다.

마침 박 원장도 이 제안을 환영했다.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못지않게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박 원장이 묻고 안 교수가 답하는 독특한 강연 형식이 만들어졌다.

예상보다 반응이 뜨거워 올 초부터 아예 전국 투어에 나섰다. 지난 3월에는 조선대에서, 4월에는 인천대에서 강연했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한 것은 아니다.

공개 메일(donodonsu@naver.com)을 받아 매번 강연 대상을 선정하고 있다. 방학 기간을 제외하고 내년까지 월 1회 정도 강연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지난 5월 24일 안 교수와 박 원장의 세 번째 ‘특별 대담’이 열린 부산 경성대 콘서트홀은 일찍부터 몰려든 학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객석 통로까지 꽉 채웠는데도 건물 밖까지 길게 늘어선 줄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2시간 가까이 두 사람이 주고받는 이야기에 학생들은 하나가 돼 웃고 발을 구르며 빨려 들어갔다. 이날의 화두는 ‘리더십’이었다.

박경철 원장(이하 박) : ‘지방 순회 강연’이라는 이름이 조금 묘하기는 한데, 광주와 인천에 이어 부산이 세 번째입니다. 이런 강연을 하게 된 데는 기성세대로서의 미안함이 있습니다. 우리 세대는 나름대로 기회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지요. 누구나 성실하게 하면 기회를 가질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근면의 힘으로 뭔가 성취할 수 있는 시대라고 말하기 어려워요.

기성세대는 못 먹고 못 살던 데서 이만큼 발전했다는 자부심으로 자신들의 성공 방식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며 줄을 세우려고 하죠. 이 때문에 생기는 수많은 갈등과 대립이 참 안타까워요. 여러분 세대의 눈높이에서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방법은 찾자는 데 안 교수님과 뜻을 같이하게 됐지요. 오늘 주제는 리더십입니다. 흔히 리더십이라고 하면 최고경영자(CEO)를 떠올리는데, 리더십은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죠. 안 교수님, 리더십이란 무엇입니까.

안철수 교수(이하 안) :
리더십은 다른 공부와 다른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리더십에 대한 책을 많이 읽고 내용을 다 암기한다고 해서 리더십이 생기지는 않아요. 머리에 담는 지식만으로는 리더십이 만들어지지 않는 거죠.

리더십은 어떤 기회를 통해 깨달아야만 얻을 수 있어요. 깨달으면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운명이 바뀝니다. 오늘 이 자리가 여러분에게 깨달음을 주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리더십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려워요. 대비되는 개념을 먼저 살펴보면 이해하기가 훨씬 쉽죠. 리더십과 대비되는 말은 관리예요. 과연 리더와 관리자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관리자는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돈으로 주어진 목표에 도달하는 사람이에요. 반면 리더는 결과가 동일할지 모르지만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구성원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사람이죠.

관리자는 일이 중심이고 사람은 수단이라고 믿지만, 리더는 항상 사람을 중심에 놓습니다. 관리자는 자신이 답은 내고 결정 하지만, 리더는 좋은 질문을 던져 구성원들이 스스로 답을 찾아내게 합니다.

박 : 평소 탈권위적 리더십을 강조하시는데, 어떤 겁니까.

안 : 20세기와 21세기의 가장 큰 차이를 하나만 말한다면 탈권위주의를 들 수 있어요. 과거에는 일부 계층과 전문가가 정보와 권력을 독점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가공된 것만 대중에게 던져줬어요. 하지만 21세기로 넘어오면서 대중이 오히려 더 많은 정보를 갖게 됐고, 적극적인 공유 움직임도 나타기 시작했지요. 정보기술(IT) 분야에서 말하는 ‘웹2.0’이 바로 그런 개념이에요.

이런 변화는 리더십도 마찬가지죠. 20세기까지는 리더십이 카리스마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 특정 지위에 올라 지위가 주는 고급 정보를 바탕으로 예산권이나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을 뜻했어요. 리더로부터 리더십이 나온 거죠.

하지만 지금은 어떤 리더가 있다고 해서 모두가 무조건 믿고 따르지 않아요. 믿고 따라 갈만한 가치가 있는지 스스로 판단해 믿을만한 사람일 때 따라갑니다. 이제 리더십은 구성원이 리더로 인정하고 선물로 주는 것이죠.

박 : 말씀을 들으니 요즘 인기 있는 트위터가 떠오르네요. 트위터에는 자발적으로 따라오는 ‘팔로워’가 있어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죠. 아무리 권위 있는 사람이라도 듣기 싫으면 바로 끊어버리죠. 아이폰이 준 충격도 엄청납니다.

1990년대 중반쯤 인터넷 사용이 본격화됐는데, 인터넷 세상의 등장이 어떤 의미인지 그때는 잘 몰랐어요. 인터넷이 지금처럼 세상의 중심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그때 변화를 정확하게 읽은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 됐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안 : 아이폰을 보면서 어쩌면 이것이 탈권위주의라는 21세기의 시대정신이 실체화된 증거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탈권위주의와 수평적 사고, 융합의 시대는 모두 연결되는 단어들이죠.

얼마 전 만난 한 대기업 임원이 아이폰의 파급효과가 생각보다 커 놀랐지만 우리 제품의 사용법을 개선하고 기능을 추가하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는 말을 하더군요. 사실 그 말을 들으면서 걱정이 됐어요. 아직도 이분들이 한 눈을 감고 3차원으로 봐야 할 것을 2차원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분은 하드웨어 관점에서만 아이폰을 본 거죠.

아이폰은 단순한 또 하나의 단말기가 아닙니다. 하나의 플랫폼이죠. 그것 자체가 우선은 인터넷 기기이자 전화기이지만, 동시에 그걸 통해 콘텐츠 기업과 프로그램 개발자들이 수평적 비즈니스를 할 수 있게 해 주는 하나의 터전을 만들어 줬어요. 닌텐도 ‘위’와 소니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을 생각해 보죠.

가정용 게임기 경쟁이 하드웨어 싸움이라면 당연히 소니가 이겨야 해요.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예요. 소니는 하드웨어 성능이 워낙 뛰어나 과신한 측면이 있어요. 반면 닌텐도는 스스로의 힘은 미약하지만 게임 회사들을 수평적 관계 속으로 끌어들여 자기편으로 만들었어요. 요즘 경쟁은 연합군 간의 경쟁입니다. 바로 수평적 네트워크 비즈니스 모델이죠. 애플은 이런 흐름을 꿰뚫고 있는 거죠.

강연장에 들어오지 못한 학생들은 건물 밖에서 스피커를 통해 중계되는 강연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박 : 한국인은 특히 수평적 관계에 약한 것 같아요.

안 : 우리는 항상 사람을 만나면 학번을 물어요. 위인지, 아래인지 서열을 알아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에요. 수평적 세상에서는 그런 게 장애 요인이 됩니다. 이제는 위나 아래가 아니라 나와 동등한 관계로 상대를 볼 수 있어야 해요. 이를 토대로 상대의 장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해요.

박 : 만나면 학벌 따지고, 지연 따지고, 좌우 따지는 것이 우리 기성세대의 문화입니다. 과거에는 저 멀리 달리고 있는 선진국을 따라잡는 게 지상 목표였어요. 강박의 시대였죠. 빨리 따라잡다 보니 앞에서 거치적거리면 넘어뜨리고 애써 모른 척 달려갔어요.

적당한 편법도 필요했지요. 기업은 일본 제품을 베끼고, 대학에서는 논문을 베꼈죠. 부끄럽지만 이제 와서 잘잘못을 따지기는 사실 어려워요. 이제는 우리가 선두권입니다.

과거에는 앞사람 뒤통수 보고 무조건 달리기만 하면 됐지만 지금은 무조건 달리다간 잘못하면 절벽이에요. 누군가는 지도를 꺼내 방향을 살펴야 하고, 누군가는 톱으로 나무를 베어야 하고, 또 누군가는 이들을 위해 밥을 지어야 하는 시대가 된 거죠. 이 모든 사람을 한자리에 모아서 지혜롭게 길을 찾아가는 것, 그게 바로 수평적 리더십이죠. 하지만 학생들 입장에서 보면 이런 이야기들이 너무 관념적인 것으로 느껴지지 않을까요. 당장 흔히 말하는 ‘스펙’을 포기할 수 있을까요.

안 : 살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고민할 당시에는 정말 힘들어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지요. 하지만 도쿄대 강상중 교수는 ‘고민하는 힘’이라는 책에서 고민은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고민하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어요. 또 고민은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해 줍니다.

고민하고 선택하는 순간이 오면 자신의 본모습과 대면하게 됩니다. 인간은 자기 합리화에 능한 동물이기 때문에 의외로 관념 속의 자기 모습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아요. 스스로 모험심이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고민과 선택의 순간이 닥치자 안전한 선택을 하는 자신을 보게 되는 거죠. 정치인도 마찬가지죠. 정치인을 제대로 판단하려면 그의 이야기에 귀를 막고, 그가 한 선택만 보면 됩니다.

박 : 인간의 삶에서 보면 여러분 때의 젊은 신체는 세포가 가장 치열하게 투쟁하는 시기입니다. 근육은 근육대로, 심장은 심장대로 숨이 터질 듯이 움직이죠. 그러다 나이가 들수록 안정화돼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어쨌든, 제 질문에 답을 피하셨는데요.(웃음) 많은 분들이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학생들을 보고 ‘왜 한 곳만 보느냐. 다른 길도 얼마든지 있고, 중소기업에도 기회가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기성세대의 비겁함 아닐까요.

안 : 느리지만 세상은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잘 아는 분 중에 ‘아래아한글’보다 먼저 워드프로세스를 만든 분이 있어요. 결과적으로 시장에서 실패했는데, 이분이 얼마 전 삼성전자에 전무로 특채됐습니다. 그걸 보면서 세상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걸 실감했지요.

지금까지 대학 동기 중에서 중소기업으로 가거나 창업한 사람이 나중에 대기업 임원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그게 바뀐 거죠. 바깥에서 비록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그 과정에서 열심히 해 능력을 인정받으면 대기업 같은 또래보다 훨씬 더 높은 자리에 얼마든지 갈 수 있게 된 거죠. 사실 실리콘밸리에서는 흔한 모습이에요.

박 :
우리 시대는 출발지와 종착지가 같았다고 할 수 있어요. 대기업 들어가서 과장·부장 달고 임원이 되는 식이죠. 하지만 여러분 시대에는 출발점과 종착점이 같다는 것은 비극이고 어떻게 보면 ‘루저’에요.

대기업에 들어가 출발해야만 성공이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하는 생각은 버려야 해요. 큰 꿈을 갖고 경험을 쌓으면 훨씬 더 먼 종착점에 도달할 수 있어요. 이제는 정의로움에 대한 개념도 달라져야 할 것 같아요. 안 교수님이 생각하는 ‘정의’는 무엇입니까.

안 : 예전에 ‘세상에 악한 사람은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인간은 이야기를 해 보면 나름대로 자기 가정을 사랑하고, 사명감도 있고, 생각도 있다는 거죠. 만화에 나오는 것 같은 100% 나쁜 사람은 없다는 말이에요. 다만 사람들은 타협할 뿐이죠. 제 경험으로 보면, 원칙을 지키면 어느 순간에는 불이익을 당하는 시점이 반드시 옵니다.

그때 타협하고 마는 거죠. 대부분 가족을 위해, 조직을 위해 타협하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합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지금처럼 어렵게 만드는 거죠. 그들은 자신을 악한 사람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해요.

박 : 현재 안철수연구소와 포스코의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데, 사람을 뽑을 때 어떤 기준으로 합니까.

안 : CEO를 할 때 그 사람이 현재 어떤 일을 할 수 있느냐보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느냐를 보려고 노력했어요. ‘스킬 세트’보다 ‘탤런트’를 보고 뽑은 거죠. 또 경험상 과정과 결과가 모두 중요하지만 과정을 좀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사고방식이나 철학에서 함께 일하기가 조금 더 편했어요.

마지막으로 좋은 답을 만드는 사람보다 좋은 질문을 하는 사람을 뽑으려고 했어요. 면접 마지막에는 항상 회사에 대해 궁금한 점이 없느냐고 물어요. 저한테는 그 답변이 가장 중요한데, 계산적으로 생각해 궁금한 게 없다고 하면 뽑힐 확률은 제로죠. 질문의 깊이를 보면 얼마나 사전조사를 하고 고민했는지, 얼마나 열정을 갖고 있는지 단번에 드러납니다.

박 : 젊음은 뜨겁습니다. 가슴에 불덩어리를 안고 살죠. 그걸 쉽게 토하려 하지 말고 꾹꾹 눌러 응축시켜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기성세대가 강요한 질서에 매몰되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가질 때가 많아요.

앞으로 기성세대와 다른 생각, 다른 발상, 다른 과정으로 자신을 잘 연마한 사람이 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그런 주인공이 단 한 명만 나와도 오늘 이 자리의 의미는 충분합니다.

부산=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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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0-06-08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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