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

‘실망만 남긴 2011년, 더 낙관하기 힘든 2012년’. ‘대전망 2012’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이렇게 요약된다. 연초만 해도 무역 호조와 투자 증가로 2008년 이후 싸늘하게 얼어붙은 글로벌 경제에 새로운 봄이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확산됐다. 하지만 유럽 지역 국가들의 재정 위기가 악화되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흔들리는 유럽연합(EU) 체제의 위기는 연말을 넘겨 내년까지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유럽 재정 위기는 넓게 보면 많은 전문가들이 이미 예견한 미국발 금융 위기의 여진이다. 미국과 유럽이라는 선진 시장의 두 축이 주저앉으면서 글로벌 경제 전체가 침체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2012년 세계경제의 기본구도는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다만 중남미와 동남아 등 일부 지역의 성장 가능성은 주목할 만하다.
美 ‘전약후강’ …동남아·남미‘주목’
‘일본 재평가될 것’ 관측도

곽수종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내년 미국 경제가 ‘전약후강’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반기는 2011년의 흐름을 이어가다가 유럽 재정 위기가 어느 정도 안정되고 미국 경제의 민간 부문 자생력이 조금씩 회복되는 하반기부터 경기가 조금씩 살아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하반기 경제가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보면 내년 미국 경제성장률은 1%대 초반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내년 미국 경제의 향방은 유럽 경제의 불확실성 해소, 유럽 금융시장의 안정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문제는 유럽 경제의 재정 건전성 문제가 단기적인 해법을 찾을 수 없는 중·장기적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2012년 상반기 유럽 경제의 재정 및 금융시장의 불확실성 문제가 안정적 해법 찾기에 성공한다면 미국 경제로선 민간 부문이 자생력을 되찾아 경기 회복에 집중할 수 있는 호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간 부문 핵심 변수로 꼽히는 이유는 미국 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경제 회복에 필요한 부양 정책을 양적 완화와 같은 통화정책에 일방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8월 부채 상한 증액 표결을 둘러싼 논쟁에서 확인된 것처럼 재정을 동원한 경기 부양책을 기대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미국은 이미 수차례의 경기 부양과 양적 완화로 약 6조 달러 정도의 돈을 풀었는데도 2011년 실질성장률이 1.5% 안팎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 부문, 즉 기업의 투자가 늘어나고 고용이 증대되는 가운데 소득 증가와 소비 증가가 가시화되지 못한다면 미국 경제의 지지부진한 회복세는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 기업들은 현재 3조 달러에 달하는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 곽 연구원은 “미국 경제 회복의 열쇠는 소비, 소비 증진의 관건은 역시 실업률 감소”라고 말했다.

새로운 위기의 진원지인 유럽 지역도 여전히 안갯속이다. 올 초만 해도 EU는 전년에 이어 순탄한 출발을 보였다. 지난 1분기 EU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0.7%, 전년 동기 대비 2.4%였으나 2분기에는 전 분기 대비 0.2%, 전년 동기 대비 1.6%로 하락했다. 그리스를 비롯한 몇몇 회원국들의 재정 위기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낙관론이 수그러들면서 주요 경제 전망치들이 일제히 하향 조정됐다.

유로 지역의 경기체감지수(ESI)는 지난 8월 98.4를 기록하며 100 밑으로 내려앉았으며 9월에는 95로 한 단계 더 추락해 향후 경기 위축을 예고했다. 민간 소비 역시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지난 1분기에 전 분기 대비 0.2%, 전년 동기 대비 0.5% 증가를 기록한 유로 지역의 민간 소비는 2분에는 전년 대비 마이너스 0.2%, 전년 동기 대비 0.6%로 악화됐다. 이러한 경기 둔화는 내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회원국들의 본격적인 긴축정책,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 등과 맞물려 내년 EU 경제는 올해보다 낮은 1.2~1.4%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경제도 낙관론과 비관론이 교차한다. 현재 일본은 빠른 속도로 재해 쇼크에서 탈출 중이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미약하나마 플러스가 확실시 된다. 1%대를 밑돌 것으로 보이지만 마이너스 성장을 피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내년 일본 경제는 유럽 위기와 엔고, 내수 침체 등 대형 악재가 건재한 가운데 재정 확대, 체질 개선, 반동 소비 등 특유의 성장 호재도 부각되고 있다. 하락 일로로 치닫는 미국이나 유럽보다 그래도 경제 상황이 낫다는 인식과 함께 내수 의존도가 높은 일본 경제의 고질병인 장기 불황이 여전하다는 점도 호재와 악재의 경계선을 나눈다.

이런 가운데 미즈호종합연구소는 2012년은 ‘일본 재평가의 해’가 될 것이라는 과감한 전망을 내놓아 주목받는다. 내년 실질 GDP 성장률이 선진국 중 선두로 예상되고 선진국 중 유일하게 재정 확대 여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근거다. 여기에 지진 피해 복구 관련 정부 지출이 내수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일본 경제의 향방과 관련해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무엇보다 중요한 변수는 국가 리더십”이라고 지적했다. 경제정책의 방향 결정은 정치철학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원전 사태 이후 확인된 일본 정부의 신뢰도와 리더십 저하는 확실히 우려할만한 수준이다. 정부의 신뢰 회복 여부가 2012년 일본 경제의 주요 이슈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다. 하지만 이러한 리더십 부재는 비단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과 유럽 역시 위기 돌파에 필요한 확실한 리더십을 좀처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YONHAP PHOTO-0583> A passenger looks for information in the departure hall of Athens' International airport during a 48 hour-general strike on October 19, 2011.
/2011-10-19 08:29:47/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 passenger looks for information in the departure hall of Athens' International airport during a 48 hour-general strike on October 19, 2011. /2011-10-19 08:29:47/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중국 소규모 경기 부양 가능성 높아

중국 경제는 여전히 견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사회과학원은 올해 9.4%, 내년 9.2% 성장을 점치고 있다. 이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국의 대외 수출이 뚜렷한 감속 징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걱정거리다.

일부 투자은행은 중국 정부의 소규모 경기 부양책을 예상하고 있다. 올 연말 또는 내년 초의 정책 기조를 온건한 긴축에서 적극적인 경기 부양으로 바꿀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대외 수출 부진과 인플레 우려가 줄어든 상황에서 GDP 1~2% 정도의 경기 부양책을 통해 경제성장률 추가 하락을 사전에 막는다는 것이다. 중국의 재정 상황을 감안하면 실현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다.

동남아와 중남미는 위기 영향권에서 한발 비켜나 있다. 동남아 주요 5개국 경제성장률은 올해보다 다소 높은 5.6%대로 전망된다. 유럽 재정 위기와 미국의 불확실성이 여전하지만 중국과 인도를 포함한 아시아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과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수출 기반 강화 덕분이다. 동남아에 대한 외국인 투자 증가도 긍정적이다.

멕시코와 달리 미국보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남미 경제도 위기 가능성이 낮은 편이다. 2000년대 중국 경제 고성장의 최대 수혜자로 기초 체력을 탄탄하게 구축해 왔기 때문이다. 중남미 경제의 최대 성장 엔진인 브라질은 2014년 월드컵, 2016년 올림픽, 고속철 사업, 심해 유전 개발, 성장 촉진 계획 등 대단위 국가 프로젝트에다 금리 인하 효과까지 겹쳐 올해보다 높은 성장이 기대된다.
美 ‘전약후강’ …동남아·남미‘주목’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