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833호 (2011년 11월 23일)

[세계 싱크탱크를 가다12]권력·자본서 ‘독립’… 대안 싱크탱크

한국형 싱크탱크의 모색 下 김광수경제연구소·희망제작소

한국의 싱크탱크는 크게 두 가지 베이스에서 출발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대외경제정책연구연 등 정부가 출연한 국책 연구 기관들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경제성장을 뒷받침할 경제·사회 부문의 이론적 분석과 전망이 절실해졌고 이를 국가적 차원에서 국책 싱크탱크 설립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기업을 배경으로 하는 산하 기관들이다. 1980년대 중반 증권사의 경제연구소 설립을 기점으로 삼성·LG·현대 같은 대기업들이 경제연구소 설립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한 전략 분석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러한 양대 축에 변화가 시작된 건 2000년대 들어서다. 순수한 의미의 민간 싱크탱크와 시민사회를 주축으로 한 대안 연구소들이 자리를 잡아가면서부터다. 2000년대 이후 등장한 민간 싱크탱크 중 인상적인 활동으로 주목받는 곳을 꼽자면 경제 부문에선 ‘김광수경제연구소’를, 정치·사회 부문에서 ‘희망제작소’를 주목해야 한다.



국내 유일 독립 민간 경제연구소

김광수경제연구소는 올해로 설립된 지 만 11년을 넘겼다. 국책 기관이 아닌 다음에야 모두 민간 연구소로 분류할 수 있지만 대규모 자본과 인력 확보가 가능한 대기업 계열 경제연구소를 제외하고 이만큼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독립’ 민간 경제연구소는 이들을 빼고는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광수경제연구소는 이름에서 나타나듯 김광수 소장이 직접 세웠다. 김 소장은 연구소 설립 전까지 노무라종합연구소 서울지점의 연구실장으로 일했다. 김 소장은 알려져 있듯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김광수 경제보고서’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적 상황에서 개인이 연구소, 그것도 경제연구소를 세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게 김 소장의 말.

세계적 경제연구소나 컨설팅 기관들이 세계 곳곳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것처럼 어마어마한 자본과 네트워크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정보기술(IT)이 발전하면서 현지 사무실이나 몇 천 명에 달하는 연구·정보수집 인력이 필요 없어졌다. 각종 자료와 지표들이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엄청난 투자 없이도 경제 싱크탱크를 세우는 게 가능한 지식정보화 시대의 시작을 몸으로 느꼈다고 한다.

김광수경제연구소는 경기도 일산의 오피스텔 건물에 몇 십 평 정도의 사무실을 얻어 운영 중이다. 처음에는 김 소장을 포함해 두 명뿐이었던 연구원도 지금은 출판 부문을 포함해 10여 명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다. 눈으로 보이는 규모에선 대기업 경제연구소들과 비할 바가 못 되지만 이들이 생산해 내는 콘텐츠는 ‘독특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시장에서 꾸준히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다.

김 소장은 콘텐츠의 독특함을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결과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대형 연구 기관들이 쏟아내는 대동소이한 자료 대신 중·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들을 정확한 데이터와 분석에 의해 제공한다는 것이 연구소의 목표다.

정부나 모기업의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한,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한 첫째 조건은 역시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다. 2003년부터 시작한 출판 사업이 대표적이다. 이와 함께 기업과 공공 기관을 대상으로 ‘경제보고서’를, 일반인을 대상으로 ‘경제시평’을 유료로 내놓고 있다. 1개월에 1번꼴로 발행되는 경제보고서는 연간 300만 원, 매주 발행되는 경제시평은 연간 20만 원의 유료 회원제다. 김 소장은 “망하지 않고, 빚지지 않고 이만큼 유지해 온 것도 한국 사회에선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현재 경제시평은 이미 세계 20여 개국에서 구독하고 있다. 대부분 현지 기업 주재원과 교포들인데, 이들의 손으로 현지어로 번역된 내용들이 일정 시차를 두고 외신에 소개되는 경우도 빈번해지고 있다는 게 김 소장의 말이다.

김광수경제연구소의 또 다른 핵심은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포럼’과 오프라인 기반의 ‘공부방’ 모임이다. 포털 사이트에 카페 형식으로 개설된 포럼은 회원 수만 10만 명에 달한다. 2007년부터 지역 모임 형태로 출발한 공부방은 2010년 들면서 시민 공부방으로 명찰을 바꿔 달았다. 전국적으로 50여 개가 조직돼 있고 서울은 각 구마다 모임이 마련돼 있다.

정치·사회 분야에서 단연 주목받는 싱크탱크는 ‘희망제작소’다. 2005년 설립 제안을 시작으로 2006년 3월에 창립된 희망제작소는 작년 한경비즈니스의 ‘100대 싱크탱크’ 조사에서 이 분야 1위를 차지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희망제작소는 얼마 전까지 박원순 현 서울시장이 상임이사로 재직하며 이끈 단체다.

연구소의 모토는 ‘시민에 의한, 시민이 중심이 되는 연구’다. 특정 분야에 조예가 깊은 박사급 연구원들이 1년에 두어 편 내는 논문은 희망제작소의 목표가 아니다. 현장에 접근하거나 자료를 재구성하기도 어려운 문서 대신 조금이라도 더 현장에 가까운 연구와 활동을 벌인다는 것이 ‘21세기 신실학운동’이라는 말 속에 담겨 있다.



시민의 아이디어를 정책으로

연구 논문 위주의 기존 싱크탱크 콘텐츠와 달리 희망제작소에는 컨설팅 보고서가 많다. 이미 넘쳐나는 거대한 공론 대신 구체적이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눈에 보이는 사회 변화를 설계한다는 목표 때문이다.

희망제작소는 시민운동가들의 주도로 설립된 단체답게 모든 조직과 프로젝트의 주체가 시민이다.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수용하고 여기서 새로운 정책을 모색하는 ‘소셜이노베이션센터’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지역 활성화·재생·문화 등을 목표로 하는 ‘뿌리센터’, 공공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센터’ 등이 희망제작소의 핵심 조직이다.

최근 희망제작소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은 ‘시니어사회공헌센터’를 기반으로 하는 ‘해피 시니어’ 사업이다. 고위 공무원·금융권·학계·언론 등 전문직 퇴직자들이 1차 대상으로, 자신의 재능을 기부할 수 있는 이들의 교육이 주된 내용이다. 이들을 시민사회 단체와 연결, 일종의 현장 실습을 마친 후 새로운 사회적 기업이나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게끔 돕는다.

희망제작소는 중소기업을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내는 경제 주체로 보고 창의적 소기업(희망 소기업) 발굴과 지원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들의 창의성을 토대로 새로운 경제 생태계를 만든다는 목표다. 정부 추진 정책인 미소금융(마이크로 크레디트)이나 사회적 기업 개념도 희망제작소에서 처음 출발했다.

희망제작소도 김광수경제연구소와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회원들의 후원으로 운영된다. 7500명 정도의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후원금이 가장 중요한 재원으로, 후원금은 1만 원부터 자유롭게 낼 수 있다.

현재 매달 들어오는 후원금은 8000만 원 정도이고 재정 내역은 홈페이지를 통해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다. 안정감 있으면서도 독립적인 연구와 활동을 위해서는 전체 운영비의 50% 이상을 후원금으로 채워야 한다는 게 윤석인 부소장의 말이다. 현재는 3분의 1 수준. 윤 부소장은 “후원 회원을 적어도 1만 명 이상으로 늘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지금까지 진행해 온 사업들을 지속 가능하도록 시스템화하는 것이 게 희망제작소의 당면 과제다.



김광수 김광수경제연구소장
“위기 징후 심각…대안 정치 나설 것”

1997년 12월 3일 임창열 당시 부총리는 국제통화기금(IMF)과 구제금융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냈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12월 5일 ‘김광수 경제보고서’라는 제목의 리포트가 발표된다. 노무라종합연구소 서울지점의 김광수 연구실장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내놓은 리포트다.

‘IMF’나 ‘구제금융’이라는 용어조차 모르던 당시의 관료들에게 외환위기의 개념과 외환 부족 사태의 원인, 정부의 정책 실패 과정 등을 자세히 분석한 보고서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로부터 3년 후에 세운 김광수경제연구소는 척박한 민간 경제연구소의 토양에서 10년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영향력을 확대해 오며 국내 대표 경제 싱크탱크로 자리 잡았다.



1997년에 리포트를 쓰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1997년 초부터 이미 ‘한국이 위험하다’는 말이 나왔어요. 인도네시아나 태국은 사실상 외환위기 상태였죠. 97년 10월 초 한국 정부가 일본에서 투자 로드쇼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한국 경제를 잘 알고 일본어도 능통한 사람을 찾던 차에 제게도 연락이 왔습니다. 로드쇼 참여를 요청 받는 순간 ‘끝났구나’ 생각했어요.

당시 외화보유액이 300억 달러면 충분했는데, 30억 달러도 안 되는 수준이었거든요. 사실상 디폴트 상태였죠. 결과적으로 금융 자유화 과정에서 정책의 실패가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이런 사태가 왜 일어났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관료들이 무지했습니다. 12월 5일 ‘김광수 경제보고서’라는 제목으로 첫 번째 보고서를 냈죠. 그랬더니 청와대 등 온갖 곳에서 연락이 오더군요.

굳이 개인 연구소를 세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외환위기를 겪으며 한국에 ‘두뇌’가 없다는 것을 통렬히 느꼈습니다. 재벌계 연구소나 국책 기관들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위기를 막을 수 있었겠죠. 1990년대까지는 장식품에 불과했다고 생각합니다. 두뇌는 없고 몸만 있으니 IMF에서 ‘이렇게 구조조정해라’하는 것을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 두 번째로는 개인 연구소를 세울 수 있는 인프라가 마련됐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막대한 자금과 인력이 필요했지만 2000년대 들어 IT가 발전하면서 지식정보화 시대로 접어들었어요. ‘지식정보가 돈이 안 된다면 도대체 뭐가 된단 말인가’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철저하게 실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고요.

김광수경제연구소만의 강점은 무엇입니까.

처음엔 저까지 두 명이 시작해 지금은 전문 연구원만 7명입니다. 대형 기관에 비교하면 턱없이 작은 규모죠. 다만 우리는 신뢰할 수 있는 전문적 연구에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조그만 연구소에서 펴낸 리포트를 돈 내고 본다는 건 엉터리는 아니라는 뜻이죠. 대형 싱크탱크에서 펴낸 대동소이한 자료와 달리 좀 더 객관적인 데이터와 분석에 따른 연구를 지향합니다. 그러다 보니 ‘왜 김광수만 다르게 얘기하느냐’는 말도 종종 듣는데, 종국엔 우리의 분석과 전망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신뢰성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대표적인 예가 ‘부동산 거품론’인데, 우리 연구소에선 한국 경제의 뇌관이라고 줄곧 주장해 왔죠.

공공 정책 분야에 강하다는 평입니다.

초창기에는 기업 컨설팅을 목표로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독립하고 나니 일이 들어오지 않더군요. 이른바 네임밸류 문제였죠. 고민 끝에 내놓기 시작한 게 정책 연구였습니다. 기업은 컨설팅 내용이나 결과에 대해 영업상 공개하지 않을 때가 많은데 공공 부문은 국책 기관이든 재벌 연구소든, 우리든 모두 공개되고 때론 언론에 보도되기도 하더군요. 다른 기관들과 공개적인 비교도 가능했는데, 특히 국책 연구 기관들이 욕을 많이 먹었죠. 그 후 정책 용역을 많이 받았는데 처음으로 민간 연구소가 정책 연구 시장을 뚫은 것이죠.

연구소 10년을 돌아보신다면요.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매년 조금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보다 일반 국민과 정부, 기업 등에 김광수경제연구소라는 이름이 알려지고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게 가장 큰 무형의 자산입니다. 객관적·전문적이면서도 신뢰할 수 있는 연구 기관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엄청난 자산이라고 생각해요.

한국 경제의 위기 진단은 어떻게 보십니까.

1990~2000년대 들어 성장 동력이 제조업 기반의 실물경제에서 금융이나 부동산 같은 자본경제로 기울었습니다. 자산 가치가 늘면 부자가 되고 그러면 소비가 는다는 자산 효과로 성장의 틀이 바뀌어 버린 거죠. 이러면 투기가 요동하고 주기적인 경제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혼란의 증폭도 갈수록 커지고 있죠. 떨어진 생산 경제의 효과를 벌충해야 하는 반작용까지 더해졌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파국입니다.

정부의 경기 부양책이나 금융 완화책을 제외하면 민간 스스로의 성장은 모두 마이너스로 돌아섰습니다. 한국은 정도가 심각하죠. 온 신경을 곤두세워 연구 중입니다만 특별한 대응 수단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일본도 부동산 거품 붕괴에 대한 대응책이 없기 때문에 장기 불황에 빠졌고 미국과 유럽도 금융 완화책을 들고나오는 겁니다. 자산시장에서 발생한 거품은 시장에 의해 꺼지도록 가만 놓아 두는 것이 오히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걸 보여주는 듯해요.

최근 ‘창당’ 이야기도 들립니다.

맞습니다. 진입 장벽이 쉽진 않지만 올해 안에 정식 정당으로 등록하고 내년 4월 총선에서 실질적인 결과를 얻는다는 계획입니다. 20세기의 경제 패러다임은 이미 무너지고 있습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죠.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기성 정치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변화는 필연적이고 이미 일어나고 있어요. 지식 정보를 기반으로 한 무형의 파워가 자본과 제도화된 권력을 대체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지식으로 무장한 평범한 사람들이 새로운 정치 세력을 만들자는 것이죠. 포럼 회원, 공부방 모임 등 우리를 지지하고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세새대희망당’ 창당을 준비 중입니다. 내년에 현실적인 결과를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경제·정치의 세대교체를 위해 노력해 나갈 겁니다. 경제는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정치적으로 무능한 사람들의 도덕적 해이만 커지고 이에 대한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20~40대에 이르는 자식 세대들로의 물갈이뿐입니다. 개성과 가치관이 뚜렷하고 사고방식도 유연하고 다양한 세대죠. 이들은 상대를 인정할 줄 알아요. 하나라도 알고 더 배운 세대가 지식정보화 시대를 이끌어 가야 합니다.

정치인 김광수를 볼 수 있는 겁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가 직접 나서기보다 유능한 인재들을 뽑아 이들을 훌륭한 정치인으로 키워 내는 교육을 맡을 계획입니다. 10~20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정책이 필요한데, 지금의 정치권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정책 대안을 연구하고 조언하는 것이 제 역할이자 경쟁력이겠죠.

내년의 한국 경제 전망은 어떻습니까.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고 봅니다. 미국과 유럽 경제 위기가 끝나지 않은 가운데, 특히 한국은 부동산 문제가 크게 걸려 있어 갑자기 툭 하고 끊어질 가능성 있어요. 일본·미국·유럽도 서서히 위기가 발생한 게 아니죠. 위기라는 말이 나온 순간 푹 하고 꺼져 버리고 맙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예요. 지금으로선 거의 파산에 가까운 위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일단 빚이 너무 많습니다. 공공·가계·금융 모두 마찬가지죠. 문제는 엄청난 빚을 내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적 부문은 토건에, 가계 금융은 부동산 관련 투자에만 쏠려 있죠. 이 자체로 가치를 창출하기 힘들고 또 이미 거품이 꺼지고 있습니다. 천문학적인 부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큽니다. 비관론이 아니라 현실의 데이터가 그렇다는 겁니다.



취재=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사진=서범세·김기남 기자 joycine@hankyung.com·knk@hankyung.com│후원=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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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1-11-2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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