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이 공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뮤지컬 관객이 늘어나면서 투자가 적극 이뤄지고 있고, 이에 따라 뮤지컬 제작 여건이 개선돼 퀄리티 높은 공연을 양산, 다시 관객을 끌어들이는 선순환을 낳고 있다. 특히 아이돌 ‘한류 스타’의 출연으로 외국인 관객이 급증하고 있고 해외 진출 사례도 빈번하게 이뤄지는 등 뮤지컬이 문화 한류의 새로운 킬러 콘텐츠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뮤지컬 시장의 급성장 뒤에는 부작용도 따르고 있다. 작품이 많아지면서 관객들은 선택의 폭이 넓어졌지만 제작사들은 경쟁이 심해져 도리어 수익 창출이 어려워졌고 한편에서는 수익만 ‘노린’ 검증되지 않은 제작사들도 등장하고 있다.
[뮤지컬 시장 급성장의 명암] 한류 ‘킬러 콘텐츠’ 부상…부작용 뒤따라
국내 뮤지컬 시장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12년 1분기 공연 시장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12.6% 성장률을 기록 중인 가운데 뮤지컬은 무려 30% 증가율을 보이며 공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뮤지컬은 최근 5년간 연평균 성장률 20%를 웃돌며 공연 시장의 주요 비중을 차지하는 장르로 급성장하고 있다. 유료 티켓 판매 기준 2010년 현재 국내 뮤지컬 시장 규모는 2527억 원, 유료 관객 수는 534만 명에 이른다. 우리나라 뮤지컬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빠른 성장을 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국내 뮤지컬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에 대해 업계에서는 2001년 개막한 ‘오페라의 유령’을 분기점으로 본다. ‘오페라의 유령’은 당시 7개월간 장기 공연을 하며 24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약 192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를 바탕으로 이듬해인 2002년에는 뮤지컬 시장이 400억 원 규모로 커졌고 이후 매년 급성장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보통 공연계에서는 1분기를 비수기로 보기 때문에 편수도 줄고 관객이 줄어야 정상인데 올해는 이례적”이라며 “뮤지컬 ‘엘리자벳’의 흥행 열풍이 다른 뮤지컬에도 동력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올 1분기 공연 시장 통계 자료를 보면 판매 1위 공연에 뮤지컬 ‘엘리자벳’이 올라 있는 것을 비롯해 톱 10 중 무려 7작품이 뮤지컬이다.
[뮤지컬 시장 급성장의 명암] 한류 ‘킬러 콘텐츠’ 부상…부작용 뒤따라
티켓 파워 자랑하는 스타 영향력 커

뮤지컬 시장의 확대는 제작 편수의 증가와도 연결된다. 뮤지컬을 찾는 관객이 늘면서 이른바 ‘흥행 대박’을 터뜨리는 작품들이 하나둘 생겨났고 이 때문에 대형 자본이나 투자자들이 뮤지컬 쪽으로 몰리면서 제작 편수가 늘어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이 때문에 공연 수요자들이 상대적으로 다른 장르의 공연보다 뮤지컬을 접할 기회가 많아진 것과 동시에 자본의 유입으로 뮤지컬이 외형적 규모 확대는 물론 퀄리티 면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면서 다시 관객의 유입을 유도하는 선순환이 이뤄진 것.

그런데 바로 이 ‘흥행 대박’ 요소 안에 스타 마케팅이 한 축으로 자리하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스타의 ‘흥행 보증’ 파워가 점점 약해지고 있지만 공연계에서는 놀랄 만한 티켓 파워를 자랑한다. 뮤지컬계 티켓 파워 1순위인 조승우가 대표적이다. 그는 출연하는 작품마다 예매 매진 시간을 단축하며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가수 출신 한류 스타들의 뮤지컬 출연이 많아지고 있는 것도 흥행의 한 원인이다. 해외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는 케이팝의 주역들이 뮤지컬 시장으로 건너오며 국내외 관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그룹 JYJ 멤버 김준수는 뮤지컬 첫 작품인 2010년 ‘뮤지컬 모차르트!’를 비롯해 2011년 앙코르 공연에서까지 엄청난 티켓 파워를 발휘하더니 올 상반기 공연된 ‘엘리자벳’ 역시 그가 출연하는 32회 공연이 예매 오픈 10분 만에 매진되는 기염을 토했다.

한류 스타들의 출연은 무엇보다 외국인 관객 유치에 절대적 힘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해 소녀시대 티파니와 슈퍼주니어 은혁이 출연한 뮤지컬 ‘페임’은 외국인 관객이 티켓 현장 구매를 위해 매표소 앞에 길게 줄이 늘어선 진풍경이 벌어져 이슈가 됐고 역시 지난해 공연된 ‘뮤지컬 궁’과 ‘미녀는 괴로워’도 각각 아이돌 스타인 SS501 규종, 카라의 규리가 출연해 뮤지컬 한류 열풍을 이끌었다.

한류 스타의 뮤지컬 출연에 대한 상반된 시각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최근 뮤지컬 시장의 성장세가 어느 정도 아이돌 스타에 기대고 있어 콘텐츠 경쟁력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는 반면 그에 따라 국내외 관객들을 끌어들임으로써 시장의 파이를 키우고 다른 공연에까지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효과적인 측면으로 꼽힌다. 이에 대해 CJ E&M 공연사업부문 관계자는 “아이돌 한류 스타의 티켓 파워는 이제 공연계에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처음에는 뮤지컬 배우들이 그들을 많이 경계했지만 이제는 그 파워 때문에 작품이 잘되고 결과적으로 본인에게도 플러스가 된다는 생각에 인정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뮤지컬 시장 급성장의 명암] 한류 ‘킬러 콘텐츠’ 부상…부작용 뒤따라
뮤지컬 규모가 점점 대형화되는 것도 뮤지컬 시장이 커지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몇 년 전만 해도 50억~60억 원 규모면 대단한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100억 원대 제작비를 내세운 뮤지컬을 찾아보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 이에 대해 CJ E&M 공연사업부문 마케팅팀 김종원 부장은 “뮤지컬 전용극장의 건립으로 대형 공연 레퍼토리가 확충됐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대형 공연을 올릴 수 있는 무대가 몇 개 되지 않아 일시에 큰 공연을 올리는 게 불가능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뮤지컬 전용관이 속속 오픈하며 동시에 대형 공연들을 올릴 수 있게 된 것.

2006년 개관한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를 시작으로 지난해 9월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의 디큐브씨어터와 11월 한남동에 문을 연 블루스퀘어 등이 뮤지컬 전용관으로 뮤지컬 수요층을 늘리는 데 한몫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 CJ E&M과 롯데그룹도 공연의 메카인 대학로에 대형 공연장을 건축 중인데, 이들 공연장도 뮤지컬 전용관으로 손색이 없다.

물론 공연 규모의 대형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는 않다. 대형 뮤지컬 위주로 시장이 흘러가다 보면 작품성 있는 중소형 공연이 소외받게 되고 이와 함께 대형 작품을 제작하기 어려운 작은 규모의 제작사들의 존립이 어려워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걱정이다. 이에 대해 한 공연 관계자는 “현재 뮤지컬 시장은 산업화로 가는 과도기인데, 대형화는 산업이 커지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중요한 건 다양성의 문제”라고 말했다.

작은 작품이지만 알고 보면 정말 좋은 작품이 너무 많고 그 작품들을 알아보는 관객들도 많다는 것이다. 또한 좋은 창작물들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이나 각 기업의 문화 지원도 마련돼 있어 얼마든지 활용이 가능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대형 제작사들이 뮤지컬 시장을 키움으로써 중소형 제작사를 오히려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는 의견도 있다.

CJ E&M 김종원 부장은 “중소형 제작사의 우수 콘텐츠는 초연 이후 장기 레퍼토리화를 꿈꾸더라도 제작 여건상의 실제적 한계에 부닥치는데 대형 제작사가 제작비를 비롯한 인적·마케팅적 지원을 통해 안정적인 장기 공연화를 가능하게 하고 이를 통해 확보되는 캐시카우를 통해 새로운 레퍼토리를 지속적으로 창작할 수 있는 선순환 제작 구조가 이미 마련돼 있다”고 말한다. 그뿐만 아니라 “‘오페라의 유령’이나 ‘캣츠’ 같은 글로벌 킬러 콘텐츠는 중소형 제작사만의 힘으로 유치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형 제작사의 참여로 대형 작품들이 한국 시장에 소개됨으로써 관객 수요 창출과 국내 뮤지컬 성장의 모멘텀이 됐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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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뮤지컬도 ‘호황’, 해외 진출도

창작 뮤지컬의 성공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도 뮤지컬 시장 확대에 따른 효과로 꼽힌다. 올 1분기 뮤지컬 예매 순위 톱 10 안에 ‘광화문 연가’, ‘서편제’, ‘영웅’ 등 창작 뮤지컬이 3편 올라 있는 것도 과거와 달라진 양상이다. ‘영웅’을 제작한 에이콤인터내셔널 관계자는 “그동안 실패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창작보다 검증된 라이선스 작품을 비싼 돈을 주고 들여오는 경우가 많았고 사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강한 편”이라며 하지만 “라이선스 작품을 들여오는 데도 한계가 있고, 또 뮤지컬 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작품 수에 비해 실제로 증가한 관객 규모는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어 공연마다 로열티를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라이선스보다 창작 뮤지컬에서 돌파구를 찾는 양상”이라고 밝혔다.

성숙해진 관객 문화도 창작 열풍을 뒷받침하고 있다. 예전에는 “오리지널 팀 아니면 안 본다”, “창작 뮤지컬은 완성도가 약하다”는 관객의 편견이 있었지만 다양한 콘텐츠 제작을 거듭하면서 생긴 노하우와 인프라가 뒷받침돼 수준 높은 결과물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관객의 시선이 달라졌다. 안중근 의사의 얘기를 다룬 ‘영웅’은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브로드웨이에 진출해 뉴욕 현지 언론의 극찬을 받는 등 국내 창작 뮤지컬의 위상을 한층 높이기도 했다.

‘영웅’ 외에도 국내 뮤지컬의 해외 진출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인 일이다. 창작 뮤지컬뿐만 아니라 라이선스 뮤지컬을 한국식으로 각색한 작품들이 해외에 수출되는 일도 빈번하다. 해외 진출 방식도 다양해졌다. 라이선스 방식으로 작품만 수출하거나 국내 제작팀이 현지에서 공연하는 방식을 비롯해 최근에는 합작 형식으로도 제작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CJ E&M이 중국과 합작 형식을 취한 ‘맘마미아’로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 6개 도시 투어를 통해 매출 규모 200억 원이라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뮤지컬 시장 급성장의 명암] 한류 ‘킬러 콘텐츠’ 부상…부작용 뒤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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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증하는 외국인 관객 ‘모시기’ 전략

뮤지컬 시장이 커지면서 관련 마케팅도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주요 관객층으로 떠오른 외국인들을 배려한 각종 서비스가 나타난 것도 그중 하나다. 국내 뮤지컬을 관람하러 오는 외국인은 점점 증가 추세다. 인터파크에 따르면 2011년엔 외국인 공연 예매가 전년 동기 대비 167% 증가했고 서울시 아이투어 사이트 집계로는 2011년 외국인 관객이 전년 대비 11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캐치 미 이프 유 캔’으로 외국인 관객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엠뮤지컬 측은 “한국 뮤지컬에서는 이례적으로 ‘락오브에이지(2008년)’에 이어 ‘삼총사’, ‘잭더리퍼’, ‘캐치 미 이프 유 캔’에 이르기까지 일본어 자막 서비스를 진행했다”며 “일본 관객이 큰 폭으로 증가함에 따라 외국인 관객들이 보다 재미있게 공연을 관람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배경을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엠뮤지컬은 공연 시작 2~3시간 전에 도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외국인 관객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다양한 극장 데커레이션과 트릭 아트 등을 설치, 공연 관람 이외의 재미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엠뮤지컬 관계자는 “요즘 공연 트렌드인 쌀 화환만 해도 직접 공연장을 찾지 못한 해외 팬들이 많이 보내고 있다”며 “‘캐치 미 이프 유 캔’만 해도 지난 4월 20일 기준으로 약 13톤에 이르는 쌀 화환 중 9톤 정도가 해외 팬들이 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쌀 기부 화환 10kg을 10만 원으로 측정했을 때 약 9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뮤지컬 시장 급성장의 명암] 한류 ‘킬러 콘텐츠’ 부상…부작용 뒤따라
[뮤지컬 시장 급성장의 명암] 한류 ‘킬러 콘텐츠’ 부상…부작용 뒤따라
제작사들이 외국인 관객을 특별히 ‘모시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같은 공연을 최소 5번에서 10번 이상 관람할 뿐만 아니라 머천다이즈(MD) 상품이나 프로그램 구매에도 적극적이라 부가 수익 창출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엠뮤지컬 관계자는 “외국인 관객들이 한류 스타가 출연하는 회에만 공연을 관람하는 게 아니라 다른 배우들이 출연하는 회차까지 관람하는 현상으로 이어져 한 스타의 팬이 아니라 한국 뮤지컬 팬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관객 중에도 같은 공연을 십수 번씩 재관람하는 관객층이 점점 늘고 있다. 한 공연 관계자는 “20~30대 여성 관객 중에 그런 ‘VIP’ 관객들이 많은데 이들의 목소리는 곧 바이럴 마케팅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제작사가 특별 관리한다”며 “때로는 공연 자체에 대한 평가뿐만 아니라 배우 앞에서 연기에 대한 간섭까지 대놓고 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지만 위력을 무시하긴 힘들다”고 밝혔다.

이처럼 시장은 확대되고 있지만 정작 제작사들은 수익 창출이 오히려 힘들어졌다고 말한다. 경쟁력 있는 작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제작 공연되면서 이른바 ‘대박 흥행’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스타 출연자 및 스태프들의 등장으로 제작비가 늘어난 것도 원인이다.
[뮤지컬 시장 급성장의 명암] 한류 ‘킬러 콘텐츠’ 부상…부작용 뒤따라
국내 뮤지컬 시장 급성장의 어두운 단면은 또 있다. 준비되지 않은 제작사가 뮤지컬 제작에 뛰어드는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 지난해 초 공연됐던 뮤지컬 ‘미션’이 대표적이다. 120억 원의 대작, ‘넬라 판타지아’로 유명한 작곡가 엔니오 모리코네를 내세운 이 뮤지컬은 조잡한 무대와 어설픈 배우들의 연기, 광고와 달리 오케스트라가 아닌 MR 반주에 일부 립싱크 무대까지 선보여 관객들이 공연 중단과 환불을 요청하는 사태를 빚었고 결국 리콜 조치가 이뤄졌다. 익명을 요구한 공연 관계자는 “일반적인 것은 아니지만 뮤지컬이 ‘돈이 된다’고 판단해 수익만을 목적으로 뛰어드는 이들이 있다”며 “이들은 그럴 듯한 포장으로 투자자들의 돈을 끌어 모으는 데 성공할지 몰라도 ‘미션’의 예처럼 결국 관객들에 의해 퇴출당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