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 항목 세분화·대상 확대 등 보완 목소리… ‘투명 경영 강화’ 긍정적 평가

[샐러리맨 신화는 살아 있다] 보수 근거만 A4 4장 첨부하는 영국 기업
연봉 공개 이후 파장은 쉬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직장인들은 다양한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경쟁 회사 연봉은 얼마인데 왜 우리 기업은 이러느냐”, “임원은 많이 받는데, 왜 직원 연봉은 적으냐” 등 일부는 부러워했고 일부는 허탈해 했다.

등기 이사의 개별 연봉 공개는 세계적 추세인 반면 국내에서는 이제 첫발을 내디딘 셈이다. “누가 얼마를 챙겨갔다”, “무슨 수로 저렇게 챙겼느냐”는 식의 감성적인 비판을 넘어 샐러리맨 신화가 많이 나오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이번 연봉 공개 이후 나온 반응 중 하나는 “저렇게 하면 나도 최고경영자(CEO)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구체적인 액수와 함께 간략하게나마 책정 기준이 공개되면서 직장인들은 10년 후, 20년 후 미래를 그려 볼 수 있게 됐다.


연봉 ‘산출 기준’ 명확해야
평사원으로 입사해 열정과 노력, 끈기만으로 꿈의 연봉을 거머쥐는 사례는 고단한 샐러리맨들에게 ‘왜 이 고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되기도 한다. 현재 기업에 남을지, ‘찜’해둔 기업으로 옮길지 여부, 커리어 패스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임원 연봉이 샐러리맨의 희망이 되기 위해선 더 많은 사례가 나와야 한다.

무엇보다 현시점에서 논의돼야 할 점은 ‘성과에는 보상이 따라야 한다’는 데 대한 공감대 형성과 이를 위한 발전 방안이라는 의견이다. 기업 지배 구조를 평가 및 연구하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송민경 연구위원은 “샐러리맨 신화가 배출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보수의 ‘높낮이’보다 ‘성과와의 연계’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사업보고서 자료는 5억 원 이상 개별 보수와 산정 기준 및 방법을 공시하게 돼 있다. 이때 산정 기준과 방법은 회사 자율에 맡기고 있다. 그렇다 보니 최소한의 항목만 기재해 실제로 어떤 기준에서 어떤 식으로 보수 총합이 구성되는지 알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수 산정 기준도 기업마다 제각각이다. 일례로 한 기업은 ‘근로소득’만으로 표시하고 또 다른 기업은 ‘급여·상여’로만, 또 다른 곳은 ‘급여와 기타 근로소득’만으로 구분돼 있어 구분이 모호하다. 샐러리맨들이 일찍부터 액션 플랜을 세우고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서라도 ‘책정 근거’가 보다 명확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은 연봉과 함께 구체적인 산정 근거를 공개하도록 돼 있다. 일례로 영국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매년 사업보고서에 A4 용지 4장 분량의 보수 보고서를 첨부해 그 해의 경영 성과와 임직원 보수 산정 근거, 이익 지출 계획 등을 밝히도록 한다. 임원 2인의 보수가 ‘1달러’인 미국 구글은 사업보고서 보수 항목에 해당 내용이 별도의 ‘위임장권유신고서(Proxy Statement)’에 실려 있다고 밝히고 있다. 송민경 연구위원은 “외국에는 성과 목표가 있어 ‘무슨 지표를 몇 % 달성했을 때 어떤 식으로 지급한다’가 설명돼 있다. 계획에 따른 실제 실적을 보고 주주나 투자자들이 적절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보상 내역과 체계를 기업 자율에 맡기고 있지만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사항이 포함되는 게 좋다. ▷보상에 관한 총계 정보(고정 및 변동 보상액의 구분) ▷변동 보상 금액 및 형태(현금, 주식, 주식연계 상품, 기타 등) ▷현금 및 주식 보상의 배분 기준 ▷성과와 보상의 연계성 ▷성과 측정 및 리스크 조정 기준 ▷이연 및 지급 확정 기준 ▷이연 보상액(당해 회계연도 지급액) ▷그 밖에 회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특정 보상에 관한 정보 등이다. 또한 보수를 공시할 때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성과급 비중’이다. 최소한 기본급과 성과급을 구분해 일정 비중을 유지하고 경영 성과와 관련해 설명을 달아주면 성과에 따른 책임이 명확해진다.

적절성 논란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10대 그룹 상장사 임원들이 받은 평균 보수는 10억4353만 원으로, 직원 평균 급여 7581만 원의 14배 수준이다. 임원이 한 해 받는 임금은 직원들이 평균 14년을 모아야 하는 것과 같다. 기업별로 상황이 달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한 배를 탄 직원과의 형평성은 유지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 이유다. 아직 적정 수준에 대해서는 학계 등에서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다. 다만 하버드대 논문 중 미국 대공황과 글로벌 금융 위기 직전 평직원과 임원 간 보수 차이 격차가 가장 컸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뿐이다. 워싱턴에 있는 싱크탱크 ‘정책연구소’에서는 지난 20년간 최고 연봉을 받은 CEO의 40%가 구제금융과 사기에 연루됐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이번 연봉 공개를 계기로 데이터가 쌓이면 관련 연구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지수 경제개혁연대 변호사는 “전문 경영인은 영국이나 미국에 비해 적은 금액이고 일본 기업에 비해서도 과다하지 않은 수준으로 절대적인 기준으로 많으냐 적으냐에 대해 가치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며 “CEO들이 짊어지는 책임이나 의사결정의 무게감을 생각해 봤을 때 성과가 올라가면 보수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경제의 룰”이라고 말했다. 회사 성과에 기여하고 보수를 받는다는 큰 전제에서 ‘합리적 범주’ 안에서의 격차는 비판의 대상이 아닌 동기부여 요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 변호사는 “미국이나 일부 외국처럼 50~60배 이상 격차가 나면 일반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겠지만 거대 조직을 이끌어 가는데 14배 차이는 합리적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직장인들이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는 배경에는 시간 대비 연봉, 고용 안정성 등에 대한 불만이 섞여 있는 만큼 기업도 사회적 책임 관점에서 노동이나 인권에 대해 돌아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절대 수준 논란보다 성과 연계 주목해야
이 변호사는 오히려 일부 총수 일가와 전문 경영인 사이의 연봉 차이를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이번에 발견된 현상 중 하나는 30대 중반밖에 안 된 오너 일가가 50~60대 전문 경영인에 비해 보수를 많이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험·경력 등을 고려해볼 때 전문 경영인보다 많이 받는 것은 지배 주주 일가라는 이유 외에는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또한 일부 재벌 총수 일가들이 연봉 공개를 앞두고 등기 이사직을 내려놓는 것을 두고 법적 권한과 책임을 회피한다는 지적이 일었다. 미국에서는 등기·비등기 구분 없이 연봉 10만 달러를 넘은 임원 3명의 연봉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실질적 경영권을 행사하는 총수들의 연봉 공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특히 이번에 질타를 받은 이들은 적자이거나 실적 부진을 겪는 데도 고액 연봉을 받은 경우다. 여기에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단 한 해의 데이터를 보고 섣불리 판단하기보다 중·장기 성과와 보상을 연계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송 연구위원은 “단기 이익에만 집착하고 중·장기 성과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단기 이익을 향상시키면서도 중·장기 이익에 기여할 때 성과급을 제대로 주는 성과급 이연 제도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연봉을 2~3년에 나눠 주는 장기 이월 형태도 있다. 이와 별개로 투자자 손실을 내거나 법정 관리 중에도 또는 재판 중이거나 문제를 겪고 있는 경영진이 거액을 받는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클로백(Clawback)’으로 불리는 보수 환수 제도를 도입해 볼 수 있다. 특정 상황 혹은 불법행위가 발생할 경우 지급된 보수를 회사가 다시 환수하는 제도다. 영국에서는 올해 3월부터 영국 중앙은행 산하 건전성규제국에서 이 시행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나섰다. 매케슨·스코틀랜드왕립은행·상하이홍콩은행(HSBC) 등 기업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다.

이번 연봉 공개의 취지 자체가 투명 경영 확보에 있는 만큼 경영의 또 다른 주체인 주주 및 투자자들이 보다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나아가 국내 주주총회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주총 전에 사업보고서를 공시해 업종 내 경쟁 업체와의 성과 등을 비교해 보고 경영진의 성과와 보상을 연동하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결국 모두가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직원들과 투자자 또한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회사 또한 성과에 따른 책임을 지는 형태로 나아가는 것이 투명 경영을 확보하는 중요한 과정이며 연봉 공개가 던진 화두라는 결론이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