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 고점 대비 30% 이상 삭감…정규직도 성과 연동제로

[여의도의 눈물] ‘잔치는 끝났다’…고액 연봉 파티는 옛말
증권가의 불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길게는 2008년 미국 금융 위기 때부터 좋은 시절은 갔다’는 게 중론이다. 여기에 2011년 들어선 유럽 재정 위기까지 겹치며 본격적인 실적 악화가 시작됐다. 2012년 국내 증권사들의 당기순이익은 그 전해(2011)에 비해 절반 가까이 추락했다. 2011년 2조2126억 원이었던 전체 증권사들의 총 당기순이익이 2012년 들어 1조208억 원으로 떨어진 것이다.

충격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듬해인 2013년에는 아예 적자로 돌아섰다. 62개 증권사들이 1098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것. 그나마 1조 원이 넘는 순이익을 기록했던 2012년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거래 대금 자체가 줄어든 것은 여전했고 미국의 양적 완화로 금리가 오르며 채권 매매 이익까지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증권업계의 적자는 2002년 이후 11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2008년과 2011년 연이어 벌어진 위기 전만 해도 여의도 금융맨들에겐 ‘고액 연봉자’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다. 미국 월가의 천문학적인 연봉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억대 연봉’의 신화를 쓴 샐러리맨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여의도 금융가, 특히 증권가였다. 하지만 위기 후 모든 것이 변했다. 매매 수수료 등 리테일 수익에 치중해 있던 증권사가 제일 먼저 칼바람을 맞았다.

불황에 대처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비용 절감이다. 그리고 비용 절감의 핵심은 인건비, 즉 직원들의 연봉을 깎는 일이다. 사실 여의도 증권맨들 중 연봉 삭감의 한파를 몸으로 실감하는 이들은 따로 있다. 리서치센터 소속의 애널리스트, 특수·해외 영업 인력, 투자은행(IB) 전문가, 주식·채권 트레이더, 상품 개발·판매 같은 이른바 ‘전문 계약직’들이다. ‘전문’이라는 단어에서 고액 연봉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르는 게 사실이지만 실상 이들은 고용 보장이나 임금 문제에서만큼은 철저하게 ‘을’의 처지일 수밖에 없다. 개인 능력과 실적을 증명하지 못하는 이상 임금이 깎이거나 심지어 퇴출돼도 문제될 게 없기 때문이다.


리서치센터장 1년 사이 10여 명 옷 벗어
실제로 지난 1년간 교체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의 수만 10여 명에 이른다. 센터장도 자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개별 애널리스트들의 입지는 말할 것도 없다. 애널리스트들의 연봉을 구체적으로 알기는 어렵다. 철저하게 능력으로 평가받는 업종이기 때문에 외부에 함부로 자신의 연봉을 발설하는 것 자체가 권고사직 사유에 해당하는 기업이 대다수다. 하지만 업계에선 2008년 금융 위기 직전까지의 호황기에 비해 평균 연봉이 30% 이상은 삭감됐다는 게 정설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리서치센터장은 “대부분의 회사가 30% 이상 삭감됐고 임금이 줄지 않은 곳이 이상한 회사일 정도”라고 말했다.

2005년에서 2008년까지는 ‘연봉 수직 상승’의 시기였다. 당시 한창 잘나가던 화학·자동차·조선 업종 같은 섹터의 애널리스트들은 기본 연봉이 3억~4억 원 선에 달했다. 업계에서 인정받는 시니어급은 평균 4억~5억 원, 많게는 6억 원 가까이 챙기는 사례까지 있었다.

지금은 어떨까. 비교적 안정적인 대형사에 속하는 A증권사 리서치센터의 평균 연봉은 1억~1억2000만 원 수준이다. 이는 물론 RA(Research Assistant)나 일반 관리직을 포함한 액수다. 애널리스트만 따로 놓고 보면 대리급 이상의 시니어 그룹이 평균 2억5000만 원을 받는다는 게 이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호황기 때는 웬만한 샐러리맨의 연봉에 육박했던 연말 성과급도 2000만~3000만 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나마 연간 연봉 총액을 미리 정해 놓은 상태에서 정식 연봉을 제외하고 남은 돈을 직원들이 나눠 갖는 형식이다. 명목은 상여지만 실질적으로는 임금에 가깝다는 뜻이다.

4억~5억 원을 받던 시절에 비하면 대폭 삭감이지만 2억 원을 훌쩍 넘는 평균 연봉은 분명 고액 연봉이라는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다소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업종의 특성상 수명이 짧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시니어급 애널리스트로 성장해 고액 연봉을 챙기는 시기는 평균 7~8년에 불과하다. 일반 기업에선 한창 일해야 할 40대 중반의 나이가 증권업계에선 시니어급으로 분류된다. 일찍 수명을 다한 애널리스트들은 본·지점의 영업직으로 옮기거나 기업의 IR 담당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도 아니면 개인 전업 투자가로 변신해 유사 투자 자문 업체를 차리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애널리스트는 “최근 몇 년간 여의도에 이른바 ‘애미(애널리스트 출신 개미)’와 ‘매미(펀드매니저 출신 개미)’가 넘쳐나는 이유가 다 이들 때문”이라며 씁쓸해 했다.

공채 출신인 정규직 사원은 노사 협약에 따라 함부로 연봉에 손을 대기는 어렵다. 불황에 숨죽인 증권사들도 정규직 사원의 기본급을 깎는 일은 거의 없었다. 상여금 등 인센티브 역시 노사 협약 조항이어서 웬만해선 건드리지 못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한 것은 올 들어서다. 2013 회계연도 동안 62개 증권사 중 흑자를 본 곳은 34개에 불과했고 무려 28개사가 적자를 기록했다. 흑자를 봤다가 적자 전환된 기업도 12곳에 달했다. 현재 청산 작업을 진행 중인 한맥증권과 애플투자증권을 제외하고도 국내에서 영업 중인 증권사는 모두 60개에 달한다. 이 중 자본금 3000억 원 미만의 소형사가 27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소형사를 중심으로 정규 사원들의 임금 삭감 문제로 노사 간 골머리를 앓는 곳들이 늘고 있다.


증권사 1인당 평균 연봉 5400만 원
IBK투자증권은 본사에 소속된 영업 직원과 지점 영업 직원 간 임금 격차를 두고 노사 갈등이 심각하다. 현재 사측이 정한 규정에 따르면 지점 소속의 프라이빗뱅커(PB)들은 월 급여의 2.85배로 잡힌 손익분기점 달성률(BEF 달성률)을 채우지 못하면 매년 최대 25%의 연봉이 잘려 나간다. 구체적으로는 BEF 달성률이 65~80%일 때 연봉의 10%가, 65% 미만이면 25%가 삭감된다. 이후에도 BEF 달성률을 채우지 못하면 삭감된 연봉이 급여 책정의 기준이 된다. 이듬해에도 계속 65%에 미치지 못하면 아예 연봉이 반으로 깎인다. 반면 BEP 달성률이 120~160%면 연봉의 5%, 160% 이상이면 10% 오르는 데 그친다.

IBK증권 공시 자료에 따르면 본점 영업 직원의 반기 평균 급여는 1억1200만 원인데 비해 지점 영업 직원들의 평균 급여는 3400만 원에 불과하다. 반면 평균 근속 연수는 본점이 1년 11개월, 지점은 3년 1개월로 지점 영업 직원들이 14개월이나 더 오래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IBK증권 노조는 “직원들과 합의되지 않은 사항”이라며 사측을 상대로 미지급 임금을 돌려받는 민사소송을 제기한다는 방침이다. 사측의 입장은 다르다. “성과에 따라 급여가 결정되는 시스템이 이미 2009년부터 적용됐고 당시 직원의 동의도 받았다”는 것이다. “IB 영업 등을 통해 성과가 높은 직원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주는 것도 당연하다”는 게 회사의 해명이다.

HMC투자증권은 직원 평균 연봉이 2007년 1억500만 원에서 2012년 7300만 원으로 30.5% 줄었다. 급기야 작년 12월 기준으로 5900만 원까지 떨어졌다. 또 올해부터 직원들의 동의를 얻어 실적 연동형 임금 제도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실적이 낮은 직원의 연봉은 최대 30%까지 깎인다.

대형사도 이 같은 연봉 삭감 추세에서 예외는 아니다. 삼성증권은 직원들의 동의를 얻어 인사 평가 등급이 낮을 경우 임금이 깎이는 제도를 도입했다. 과장급 이상은 인사 평가가 C~D등급에 해당되면 최대 30%까지 임금이 삭감된다.

지난 4월 8일 자산 순위 20대 증권사가 제출한 사업 보고서(자료 확보된 19개사 기준)를 보면 지난해(4~12월) 직원 1인당 평균 연봉은 5400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 동기보다 2.7%(99만 원) 줄어든 액수다.

김경수 사무금융노조 대외협력국장은 “지난 2년 동안 통폐합된 증권사 지점이 300곳이 넘는다”며 “급여도 성과 연동형으로 바뀌어 가면서 증권사 직원들의 급여 체제 자체가 악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지난해 증권사 등기 임원 1명에게 돌아간 연봉은 평균 4억3900만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2.0%(1억800만 원)나 뛴 것으로 나타났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