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복잡하고 비용 많이 들어…현재 지배 구조 유지할 가능성 커

삼성이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의 상장을 공식화하는 등 지배 구조 재편의 속도를 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칭 ‘삼성지주회사’의 탄생에 대한 여러 가지 시나리오들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삼성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은 ‘가능하긴 하지만 당분간은 쉽지 않다’는 게 결론이다. 왜 그럴까. 이를 집중 분석했다.
삼성 서초 사옥 스케치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삼성 서초 사옥 스케치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최근 한국 재계 및 금융 투자 업계의 화두는 바로 ‘삼성의 지배 구조 변화’다. 그사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병석에 누운 지 한 달 이상이 지나갔다. 삼성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삼성 그룹은 이미 2012년 매출 300조 원, 자산 500조 원을 돌파했다. 특히 삼성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지난해 분기별 영업이익 10조 원이라는 사상 초유의 실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보다 분기 영업이익이 많은 회사는 세계 제조업체 중 단 한 곳도 없다.

삼성그룹, 특히 삼성전자의 대성공은 이 회장이 20여 년 전 부르짖은 ‘신경영’에서 출발했다. 물론 삼성은 그 당시에도 한국 최대의 그룹이었고 삼성전자는 한국 최대의 제조업체였다. 하지만 신경영을 통해 삼성전자는 ‘양만 갖춘 기업’에서 ‘질과 양을 모두 갖춘 기업’으로 재탄생했다. 이에 따라 이제는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 됐다. 창업자도 아니고 삼성전자의 지분을 불과 3.38% 보유하고 있을 뿐인 이 회장의 강력한 카리스마는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이 회장이 과거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온다면 삼성 그리고 한국 경제는 크게 달라질 게 없다. 하지만 그럴 확률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이 때문에 한국 경제에서 이처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삼성이 어떤 식으로 미래를 그려 갈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아마도 삼성의 미래를 이끌 밑그림은 그룹의 지배 구조에서 나올 것이다. 지배 구조가 안정돼야 경영의 지속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의 지배 구조 변화에 대한 갖가지 예측이 쏟아지면서 잠잠하던 한국 증시가 요동치고 있다. 만약 이 회장의 카리스마가 사라지게 된다면 어떤 식으로든 삼성이 흔들릴 것이며 이 과정에서 어떤 ‘기회’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전자·삼성물산 등 삼성 그룹 지배 구조 내 핵심 계열사들의 주가 상승이다. 이 회장은 5월 11일 일요일에 쓰러졌다. 금요일인 5월 9일 삼성전자의 주가는 133만5000원(종가 기준)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6월 11일 삼성전자의 주가는 142만2000원이다. 그동안 10%가량이 오른 것이다.

삼성그룹의 지배 구조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코스피의 주식거래 대금까지 크게 늘었다. 2012년 9월 이후 월별 일평균 거래 대금은 3조~4조 원대를 맴돌면서 단 한 번도 5조 원을 넘어선 적이 없었다. 하지만 5월 중순께부터 주식거래 대금이 일평균 5조 원을 훌쩍 넘어섰다. 시가총액(시총) 비중이 큰 삼성전자 및 삼성그룹주의 매매가 잦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전자의 지배 구조 재편에 관한 여러 시나리오 중 대다수는 ‘지주회사 설립’을 염두에 둔 것이다. 삼성그룹의 지배 구조는 금융·산업 간 지분 혼재, 핵심 기업에 대한 대주주 일가의 낮은 지분율 등이 숙제로 지적된다.

대부분의 지주회사 전환 시나리오는 ‘사실상의 지주회사’인 삼성에버랜드가 실제 지주회사로 전환하며 제조와 금융을 총괄하는 방식이다. 삼성전자·삼성물산을 사업회사와 지주회사로 분리한 후 이를 삼성에버랜드와 합병하는 시나리오가 가장 주목받는다. 또 삼성생명은 중간금융지주의 형태로 삼성에버랜드에 소속된다는 스토리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 보유 지분 일부가 지주회사에 현물출자되거나 일부 계열사 간 지분 맞교환이 추가로 이뤄질 가능성도 높게 점쳐지고 있다.


전자·물산·생명 등 기업 분할 가능성
메리츠종금증권은 향후 인적 분할을 통해 삼성전자홀딩스·삼성물산홀딩스·삼성에버랜드홀딩스를 설립한 뒤 지주회사 간 인수·합병(M&A)으로 통합지주회사를 만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통합지주사는 이들 3사의 사업회사를 자회사로 거느리고 금융 부문은 중간금융지주회사를 두거나 삼성생명을 중간지주사로 만든다는 의견이다. 키움증권도 유사한 전환 방식을 예상했다.삼성물산 지주사가 통합지주회사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만 차이가 있다

KDB대우증권은 삼성에버랜드가 삼성물산과 합병해 지주회사로 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삼성의 지주회사 전환 시나리오는 참신한 선택이며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선택이다. 깔끔한 지배 구조 재편을 통해 대주주는 경영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고 투자자는 지배 구조 재편에서 실질적 이득을 볼 수 있다. 정부·시민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인 역시 여러 가지 이유로 삼성의 지주회사 전환에서 어떤 과실을 챙길 수 있다.
[SPECIAL REPORT] 베일 속 ‘삼성지주회사’ 탄생 가능성 있나
“어렵다. 복잡한 법적 문제와 막대한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6월 9일 삼성 미래전략실 관계자) 하지만 삼성이 지주회사로 전환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는 가운데 삼성 내부적으로는 “지주회사 전환은 현실적 대안이 못 된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왜 그럴까.

결론적으로 삼성은 이른 시일 내에 지주회사로 ‘꼭 전환해야 할 동기’가 별로 없고 리스크만 클 뿐이다. 먼저 리스크를 보자. 에버랜드가 지주회사로 가기 위해서는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삼성생명이 중간금융지주회사가 돼야 한다. 삼성생명이 중간금융지주가 되면 삼성생명이 가지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7.2%)을 해소해야 한다. 그런데 삼성생명의 전자 지분은 삼성그룹 지배의 핵심이다. 당연히 이는 지주회사에 매각해야 한다. 하지만 이 지분의 가치는 14조 원에 달한다. 삼성에버랜드가 이만한 규모의 주식을 사들이기는 쉽지 않다. 설사 경영 리스크를 감내하고 삼성생명이 지분을 외부에 매각해도 워낙 규모가 커 이를 사들일 곳이 마땅치 않다. 안정성이 가장 중요한 보험회사인 삼성생명으로서도 부담이다. 총자산(200조 원) 중 7%가 한꺼번에 움직이기 때문이다.

리스크는 또 있다. 지주회사에 주어지는 규제는 금산분리 외에도 상향식 출자, 교차 보유 금지, 자회사·손자회사·증손자회사에 대한 최소 지분율 규제 등 다양하다. 지금으로서는 지주회사 관련 규제가 크게 완화될 가능성도 별로 없다. 무엇보다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절차가 너무도 복잡하다.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위해선 앞서 소개한 시나리오대로 삼성전자나 삼성물산의 인적 분할 후 삼성에버랜드와 합병이 키포인트인데 이게 쉽지 않다. 주주들을 설득해야 하고 전환 후에는 소액주주들의 경영 간섭을 끊임없이 받게 된다.

아주 단순하게 이야기해 삼성전자의 외국인 주식 보유 비율은 50%가 넘는다. 주식의 1%만 가지고 있어도 주주대표소송이 가능하니 각자 1%만 갖고 있더라도 50군데를 비행기를 타고 오너 스스로 설득하러 다녀야 한다. 비용과 노력에 비해 실질적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는 뜻이다.

‘실질적 지주회사’인 삼성에버랜드 중심의 지주회사 전환이 점쳐진 가장 큰 이유는 이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 20.8% 때문이다. 현재 공정거래법 시행령에 따르면 자산 중 자회사 지분가액이 50%를 넘으면 지주회사로 전환해야 한다. 제일모직 패션사업부 합병 전인 2013년 상반기 말 기준으로 삼성에버랜드의 자산 중 삼성생명의 지분 가치는 60%에 달한다. 이 상태라면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강제 지정 요건에 해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에버랜드가 지주회사로 전환되지 않은 이유는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의 1대 주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에서는 자회사 주식가액을 구할 때 1대 주주인 자회사만을 대상으로 한다. 이에 따라 삼성에버랜드는 이 회장이 있는 한 지주회사로 강제 지정될 위험이 없다. 강제 지정되면 일반 지주회사가 금융 자회사를 보유할 수 없다는 법 규정 때문에 삼성생명을 매각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거꾸로 말하면 삼성에버랜드의 자산 중 삼성생명의 주식이 자산 총액의 50%만 넘지 않으면 지금의 지배 구조를 유지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니 삼성에버랜드의 자산을 키우면 된다는 의미다. 실제로 삼성에버랜드의 2014년 초 상장이 공식화되면서 지주회사 전환에 대한 논의가 더 뜨거워진 감이 있다. 하지만 삼성이 지주회사 전환을 ‘비공식적으로 부인’하면서 삼성에버랜드의 상장이 결국 ‘자산 키우기’일 수도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는 모양새다. 즉 총자산을 늘려 계열사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을 낮추는 것이다.

특히 상장 과정에서 진행하는 자산 재평가는 삼성에버랜드의 부동산 가치를 크게 늘릴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테마파크를 보유한 삼성에버랜드는 땅 부자다. 삼성에버랜드는 현재 자산 8조5500억 원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에버랜드의 토지·건물·건축물 등의 자산 가치는 16년 전에 평가한 가치다. 이 가치가 1조8000억 원 정도 되는데 만약 자산 재평가가 이뤄진다면 부동산 자산에 대한 상승분이 충분히 감안될 것이다.


이미 탄탄한 지배 구조 갖춰
지주회사로 전환할 동기가 크게 없는 이유 중 또 하나는 삼성의 지배 구조가 탄탄하다는 점이다(964호 스페셜 리포트 ‘삼성의 미래’에 대한 다섯 가지 관전 포인트 참조). 삼성생명의 지배 구조 중 가장 핵심은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다. 이 중에서도 삼성생명에 대한 대주주 및 계열사의 지배는 매우 확실하다. 현재 삼성생명의 지배 지분은 이 회장(20.8%)과 삼성에버랜드(19%)·삼성문화재단(4.68%)·삼성생명공익재단(4.68%)·삼성전기(0.6%)·삼성정밀화학(0.47%) 등 총 51.11%다. 쉽게 말해 이 회장의 지분을 이재용 부회장이 상속받고 이 중 절반을 증여세로 내면 10% 정도가 된다. 동시에 삼성에버랜드 역시 이 지분을 절반 정도로 줄이면 9% 정도로 맞출 수 있다. 상장사 지분 30% 정도면 경영권 유지에 큰 어려움은 없다. 물론 삼성은 이런 선택보다 삼성에버랜드의 자산 가치 확대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상장 이유로 ‘글로벌 패션·서비스 기업으로의 도약’을 내세웠다.

또 끊임없이 문제점으로 제기되는 순환 출자 구조 역시 ‘신규 출자’만 하지 않는다면 법적으로 아무런 걸림돌이 없다. 규제가 더 거세진다면 삼성SDI·삼성전기·제일모직이 보유한 삼성에버랜드 지분 각 4%와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에버랜드 지분 약 1.5%만 해소하면 끝이다. 이에 대한 가치 평가는 모두 다르지만 적게는 8000억 원에서 1조 원 수준으로 평가된다. 삼성그룹의 규모에 비해 그리 부담되지 않는 액수다.

강성부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삼성에버랜드 혹은 삼성SDS를 중심으로 지주회사로 전환하면 금융사를 매각하고 각종 상호 출자를 해소해야 할 뿐만 아니라 손자회사는 증손자회사 지분 100%를 보유해야 하는 등 다양한 규제가 적용된다”며 “결국 지금과 같은 지배 구조를 유지하고 삼성에버랜드의 자산을 더 키우는 형태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강 애널리스트는 “장기적으로 본다면 삼성에버랜드가 직접 삼성전자의 대주주가 되는 것이 좋다”며 “이 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이 상속 전후 삼성에버랜드에 현물출자된다고 가정한다면 삼성물산 혹은 삼성SDS와 같은 자산 규모가 큰 기업을 삼성에버랜드에 합병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