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생적 차이나타운 없는 유일한 나라…지자체 조성 계획, 역사성·현실성 부재

[요우커 노믹스 왕서방을 잡아라] 왜 한국에는 차이나타운이 없을까
전 세계 도시들의 관광 정책은 요우커(중국인 관광객) 잡기에 쏠리고 있다. 전 세계 해외 관광객 10명 중 한 명일 정도로 중국인 관광객의 파워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 관광객은 2013년 한 해 동안 9730만 명이 해외여행에 나섰고 소비한 금액은 총 1290억 달러(133조1280억 원)에 달한다. 미국인 관광객 소비액 860억 달러를 크게 웃돈다.

요우커의 수와 씀씀이가 날이 갈수록 커지다 보니 영국·미국 등 각국 정부는 서둘러 중국인의 비자 발급 조건을 완화하거나 무비자 방문을 검토하고 있다. 이와 함께 중국인을 겨냥한 관광 명소 개발에도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호주의 테마파크는 중국인 고객 유치를 위한 대대적 투자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호주의 뉴 익스프레스 데일리에 따르면 사우스웨일스 와이옹샤이어시에 들어설 중국 테마파크는 총 투자액 5억 위안(836억9500만 원) 규모로 추진되고 있다. 자금성 등 왕궁, 당과 송의 학술원, 귀족 마을, 남중국의 수상 마을, 판다 낙원, 사원 등 8개의 테마관으로 구성되는 이 테마파크는 내년 착공해 2020년에 준공 예정이다. 와이옹샤이어 시장과 중국인 투자자는 중국 테마파크가 호주의 오페라하우스와 하버 브리지에 못지않은 관광 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럽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영국 런던의 차이나타운도 늘어가는 중국인 관광객을 의식해 변신을 꾀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한 부동산 기업이 런던 로열독 지역에 35에이커 규모의 상업 오피스 단지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중국 기업들을 대거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호주·영국과 마찬가지로 국내에서도 요우커 유치를 위한 관광 명소를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지역 상권 개발 프로젝트에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감안해 차이나타운 조성을 부르짖고 있다. 서울을 비롯해 기존 차이나타운이 조성돼 있는 항구도시 인천·부산 그리고 강원도 정동진, 경기도 고양시까지 저마다 차이나타운 개발을 추진해 왔다.


인천 이어 정동진도 개발 나서
최근 가장 야심차게 추진되고 있는 차이나타운은 동해안의 관광 명소인 강릉 정동진에 중국 기업이 참여하는 ‘복합문화관광형 차이나타운’이다. 강원도와 강릉시, 상차오 홀딩스는 지난 7월 9일 ‘차이나 드림시티 조성 사업’ 투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상차오홀딩스는 이 자리에서 2017년까지 2000억 원 이상을 투자해 정동진 일대 50만1000㎡에 호텔·콘도·쇼핑몰 등을 짓겠다고 밝혔다.

연간 200만 명의 관광객이 몰리는 것으로 추산되는 인천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인천시 중구청은 ‘개항 각국 거리 조성 사업’을 발표하고 지난 7월 16일 착공식을 열었다. 차아나타운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러시아거리와 유럽 각국 거리를 조성해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게 목표다. 이는 인천과 중국을 오가는 항로가 꾸준히 늘면서 차이나타운을 비롯한 인천항 일대가 중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이게 된 데 탄력을 받아 부족한 관광 인프라를 보강하겠다는 계산이다.

부산시와 동구청은 1990년대 일찍이 부산화교의 주요 활동무대인 청관거리를 ‘상해거리’로 바꾸면서 부산 차이나타운 건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04년 이후 매년 상해거리를 활성화하기 위해 ‘상해거리 축제’, ‘차이나타운 (특구)축제’, ‘차이나타운특구 문화축제’란 이색적인 행사를 진행해 왔다.


화교보다 지자체 중심…효과 의문
중국인 관광객이 국내 내수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중국 투자자들이 차이나 머니로 국내 관광지 개발 사업에 참여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무분별한 차이나타운 개발에 대한 비판도 있다. 국내 지자체를 중심으로 건설돼 중국인 이주민의 역사와 스토리가 부족한 차이나타운 개발이고 또한 공수표를 날리는 현실성 없는 개발 계획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다.

우선 한국의 차이나타운은 ‘짝퉁’이라는 비판이다. 세계 각국의 관광 명소인 차이나타운은 중국 이주 역사와 함께한다. 19세기 중반 아편전쟁 후 청나라와 영국 사이에 난징조약이 체결되면서 경제·사회 정세의 변화에 많은 중국인들이 해외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호주·미국·동남아 등의 농장과 광산에서 일할 노동력 수요가 발생하면서 중국인 미숙련 노동자가 대거로 해외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이렇게 해외에 나간 중국인, ‘화교’라고 불리는 이들은 전 세계 3500만~4000만 명에 달하고 이들은 낮선 이국땅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사는 동네가 바로 차이나 타운의 기원이다. 그래서 현재 런던·밴쿠버·시드니·뉴욕·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페낭·요코하마 등의 도시의 차이나타운이 대표적이다. 이곳들은 모두 관광 명소가 됐는데 중국 밖에서도 중국인들의 문화와 관습이 잘 유지되고 있고 맛있는 중식과 값싸고 독특한 공산품 등을 쇼핑할 수 있어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았다.
[요우커 노믹스 왕서방을 잡아라] 왜 한국에는 차이나타운이 없을까
하지만 한국에서 화교는 구한말부터 1930년대까지 한때 화교 경제가 번성했지만 이후 대중 수입 무역 단절, 일제와 한국 정부의 화교 탄압 정책 등으로 쇠퇴의 길을 걸었다. 한중 수교가 수립된 1990년대까지 한국 내 화교의 역사는 거의 부재하다. 그래서 한국은 차이나타운이 없는 유일의 국가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중국인 이주의 역사적 근거가 약하고 화교보다 지자체가 중심돼 조성하는 차이나타운이 관광객들에게 어떤 스토리와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느냐는 의견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도중에 무산된 차이나타운 개발 프로젝트도 거듭됐다. 2004년 경기도 고양시는 일산서구에 차이나타운 개발을 추진했다. 도와 시는 외국인투자유치법에 따라 차이나타운 부지를 계약했고 대화동 6만9000여㎡의 공사를 2008년 2월 시작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를 맡은 서울차이나타운개발의 대주주인 프라임개발이 자금난을 겪으며 2009년 9월 공사가 중단됐다. 또한 서울 연남동 차이나타운 개발 계획도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 추진되다가 무산됐다. 2008년 서울 마포구 연남동 일대에 20만㎡ 규모의 차이나타운 조성 프로젝트가 추진돼 중국 문화 특화 거리를 조성해 서울의 대표적인 국제 마을로 만들겠다는 서울시의 구상이었다. 하지만 2010년 서울시와 마포구는 연남동 차이나타운 조성 사업을 전면 보류하겠다는 공문을 주민들에게 보냈다. 서울시는 주민들이 과도한 개발 이익을 요구해 사업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차이나타운이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과연 매력적인 관광지인가라는 의구심도 있다. 지난해 중국의 작가 겸 평론가 양헝쥔(楊恒均)은 ‘중국인 관광객은 왜 차이나타운에 가지 않는가’라는 칼럼을 중국 블로그 사이트에 게재했다. 그리스 등 해외 차이나타운은 치안과 시설이 좋지 않고 기념품 등을 비싸게 팔아 현지 여행사들이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권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명동에서 만난 한 중국인 관광객은 한국의 차이나타운에 방문하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우리가 해외까지 나와 차이나타운에 갈 이유가 뭐죠?”라며 “차이나타운을 만들 바에야 차라리 디즈니랜드를 만드는 게 나을 것”이라고 답했다.

우리가 해외에 나가 코리아타운을 관광지로서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 것과 같은 논리다. 다만 코리아타운을 중심으로 해외 관광의 여러 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차이나타운 개발 사업도 관광지로서보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한국 여행에서 불편함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서비스 제공의 기반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견이다. 황태규 우석대 교수는 부안차이나교육문화특구 조성 토론회에서 “중국인 관광객에게는 타국이지만 자국처럼 친근한 곳이, 국내 관광객에게는 호기심이 생기는 새로운 차원의 관광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