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 제조업 구조 재편 가속, 성공 시 ‘경영 승계’도 완성돼
재계 순위 10위, 한화그룹의 사업 구조 재편이 빨라지고 있다. 골자는 비핵심 사업 정리와 이를 통한 주력 사업 경쟁력 강화다. 사업 구조 재편이 성공하면 확실히 그간 정체 상태에 있던 한화그룹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것으로 보인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구조 재편 작업이 잘 마무리되면 3세로의 경영 승계까지 무리 없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중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포석’을 따져봤다. 한화그룹이 굵직굵직한 인수·합병(M&A)을 통해 제조 부문 사업 구조 재편을 추진 중이다. 한화그룹은 지난 6월 계열 제약사인 드림파마를 미국계 제약사인 알보젠에 매각하기로 했다. 매각 대금은 1945억 원 수준이다. 이에 앞서 한화L&C(현 한화첨단소재) 건자재사업부가 모건스탠리PE에 매각됐다. 모건스탠리PE는 한화L&C 건자재사업부의 지분 90%를 1413억 원에 인수했다. 또 한화그룹은 편의점 업체 씨스페이스와 포장지 제조회사인 한화폴리드리머도 시장에 매물로 내놓았다.업계에서는 한화그룹이 관광 숙박업인 한화호텔앤리조트와 합성고무 및 플라스틱 제조업인 에이치컴파운드 등도 곧 매각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한화폴리드리머의 장부가는 372억 원, 씨스페이스의 장부가는 17억 원 정도다. 한화호텔앤리조트는 8000억 원에 육박하고 에이치컴파운드는 152억 원이 조금 넘는다. 즉 드림파마를 비롯해 4개사가 모두 매각되면 한화그룹은 최소 1조 원 정도를 손에 쥐게 된다. 특히 한화그룹은 이미 한화L&C의 건자재 부문 매각과 한화케미칼의 해외주식예탁증권(GDR) 발행으로 5000억 원이 넘는 자금을 마련했다. 한화건설도 최근 4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이렇게 되면 한화는 대략 2조 원의 현금을 확보한다.
이처럼 한화그룹이 제약·건자재·유통사업 등의 사업 매각을 통해 막대한 자금을 마련한 이유는 뭘까. 바로 ‘핵심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사실 한화그룹의 사업 재편은 이미 수년 전부터 예고돼 왔다. 한화는 선택과 집중에 기반 한 사업 구조 개편 작업을 통해 2020년까지 주요 사업 부문에서 세계 일류 기업으로 발돋움한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012년 신년사를 통해 “각 계열사는 선택과 집중에 기반한 기업 경쟁력을 더욱 고도화해 나가길 바란다”며 “기업의 미래 성장성을 냉철한 잣대로 평가하고 원점에서부터 사업 구조를 합리화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한화그룹, ‘3대 성장 동력’에 올인
한화그룹이 차세대 핵심 사업으로 밝힌 것은 세 가지다. ▷석유화학 ▷첨단 소재 ▷태양광이 그것이다. 한화그룹은 이 같은 대규모 사업 재편을 성공적으로 마친 적이 있다. 바로 1998년 외환위기 때다. 당시 한화그룹은 김 회장이 주도해 한화에너지를 포함해 보유 부동산 매각 등 그룹 재편을 단행했다. 이후 한화생명을 2002년 사들여 위기 탈출에 성공했다. 그 결과 현재 한화는 화학(한화케미칼)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과 보험(한화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이라는 두 사업을 중심축으로 재편됐다.
문제는 현재 한화그룹에게 ‘확실한 캐시카우’가 없다는 데 있다. 지난해 한화그룹은 총 38조5000억 원 매출에 9500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순이익률은 2.5%에 불과하다. ‘은행 이자’ 수준인 것이다.
물론 금융은 보험업이라는 한화생명의 업종 특성상 안정적인 현금 창출원이 되고 있는 편이다. 반면 제조 부문은 상황이 좀 다르다. 한화의 제조업은 석유화학 기업인 한화케미칼이 주축이다. 석유화학은 전형적인 경기 산업이다. 그런데 지금 석유화학의 업황은 그야말로 바닥이다.
한화케미칼은 2013년 7조8636억 원 매출에 순이익 83억 원을 내는 데 그쳤다. 즉 한화그룹은 업황이 최악이라고 평가 받는 바로 지금 비주력사를 매각한 자금으로 화학 계열사들에 대한 투자를 늘려 앞으로 경기 상승 시 후발 업체들과 격차를 벌린다는 전략을 쓰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한화는 비주력사 매각과 함께 주력 사업과 관련된 회사들에 대한 투자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첫째, 석유화학 부문은 한화케미칼이 지난 8월 13일 KPX화인케미칼의 지분 51%를 420억 원에 사들인 게 이를 대변한다. KPX화인케미칼은 가구·자동차·페인트·신발 등에 들어가는 폴리우레탄 원료와 폴리염화비닐(플라스틱) 원료인 염소를 생산한다. 한화 측은 지난해 매출 1721억 원에 그친 KPX화인케미칼을 2년 내 매출 4000억 원으로 키운다는 목표다. 이 인수로 한화케미칼은 염소를 활용한 제품 생산 확대가 가능해졌다. 한화케미칼은 국내 최대의 염소 생산 업체로, 여기서 1조 원 정도의 매출이 발생한다.
국내서 유일하게 태양광 수직 계열화 완성
한화그룹은 내친김에 세계적인 석유화학 업체를 인수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한화그룹은 지난 3월 12일 한화케미칼이 다우케미컬의 기초화학사업부 매각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기초화학사업부 중 염소 부문 인수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다우케미컬의 기초화학 부문 규모는 5조 원에 달한다. 한화그룹이 이 중 일부를 인수하면 염소의 가격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둘째, 첨단 소재 부문은 건자재 부문을 매각한 한화L&C 소재 부문을 ‘한화첨단소재’로 사명을 변경하며 의지를 다잡았다. 한화첨단소재는 향후 차량 경량화를 위한 탄소계 복합 소재 개발, 전자 소재 부문의 나노 프린팅 및 코팅 기술 개발 등 첨단 소재 사업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기존 한화케미칼과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 연구소를 분리·독립하는 한편 연구 인력을 지속적으로 충원하는 등 관련 분야 연구·개발(R&D)을 한층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 한화첨단소재 측은 “해외 자동차 및 필름 관련 소재 기업 인수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며 “또 미국 현지의 자동차 소재 공장 증설하는 등 소재산업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태양광에 대한 투자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2010년 솔라펀파워(현 한화솔라원), 2012년에는 한화큐셀 등에 등 2조 원대를 투자해 세계에서 유일하게 태양광 산업의 ‘수직 계열화’를 완성한 곳이다. 한화케미칼이 폴리실리콘을 생산하면 한화솔라원이 셀·모듈·웨이퍼 등을 제조하고 한화큐셀은 여기에 발전설비까지 지원하는 구조다.
여기에 최근 들어서는 판매처 확대에까지 나섰다. 한화그룹이 지난 8월 8일 지분 40%를 인수한 호주 엠피리얼이 그 대표 격이다. 엠피리얼은 호주에서 주택용 태양광 사업과 에너지 절감 사업을 하고 있는 회사다. 한화그룹은 엠피리얼 인수를 통해 연간 1GW에 이르는 호주 주택용 및 산업용 태양광 시장에 진출함과 동시에 전력 사용량 모니터 및 절감 시스템 등 태양광과 연계한 다양한 사업에 대한 확대 가능성도 타진할 계획이다. 이 밖에 한화그룹은 “일본·독일·중동 등 주요 지역에서 태양광 리테일 업체 인수 및 발전소 운영 사업 참여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일본 시장에서 한화는 모듈 판매뿐만 아니라 민간발전사업(IPP)까지 영역을 넓혔다. 외신 및 업계에 따르면 한화큐셀재팬은 민간 발전 사업자로 추진하고 있는 일본 오키타현 기쓰키에 24MW 규모의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올해 말까지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또 한화는 미국 주택용 태양광 시장을 잡기 위해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미주 사업 지주사인 ‘한화홀딩스(미국)’는 최근 태양광발전 설비 리스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원루프에너지에 100만 달러를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한화는 2011년 미주 법인인 ‘한화인터내셔널’을 통해 원루프에너지 지분을 800만 달러에 사들였고 이후 지속적으로 자금을 지원해 왔다. 현재 원루프에너지에 대한 투자금은 3000만 달러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한화그룹의 화학 및 태양광 등 제조업에 대한 적극 투자는 앞서 밝힌 것처럼 향후 그룹 생존과 성장 전략이 분명하다. 하지만 재계 및 증권가에서는 이번 구조 재편이 또 하나의 포석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바로 ‘경영 승계의 안착’을 위해서다.
그러면 왜 제조업에 대한 집중 투자가 ‘후계 구도’를 완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칠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화그룹의 지배 구조를 들여다봐야 한다. 앞서 밝혔듯이 한화그룹의 핵심 회사는 한화케미칼과 한화생명이다. 이들 두 개 회사는 (주)한화가 지배하고 있다.
경영 승계의 핵심 ‘태양광 사업’
(주)한화는 2014년 3월 말 기준으로 한화생명의 지분 21.7%, 한화케미칼의 37.9%를 보유하고 있다. 이 밖에 (주)한화는 그룹의 기타 주력 회사인 한화건설(100%)·한화호텔앤리조트(50.6%)·한화테크엠(100%)의 지분을 가진 최대 주주다. ‘금산 분리 원칙’ 때문에 지주사로 전환하지는 못하지만 (주)한화는 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로 보면 된다.
이 중 한화케미칼은 그룹 내 대다수의 기업에서 핵심 주주 역할을 한다. 한화솔라원·한화L&C·한화갤러리아·한화도시개발 등이 그곳이다. 또 한화호텔앤리조트의 2대 주주(48.7%)이기도 하다. 반면 한화생명은 그룹 내 금융 계열사에서만 핵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한화손해보험·한화자산운용 등이 그곳이다. 김 회장과 그 가족은 (주)한화 주식을 보유해 한화그룹을 지배한다. (주)한화는 김 회장이 22.7%, 장남 김동관 씨 4.4%, 차남 김동원 씨와 삼남 김동선 씨가 각각 1.7%씩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오너 일가, 특히 경영을 승계 받을 삼형제의 지분이 금융사보다 제조업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이다. 좀 복잡해 보이지만 태양광 사업만 뚝 떼놓고 분석하면 보다 ‘경영 승계’에 대한 전략이 보다 쉽게 보인다.
태양광 사업에서 중요한 회사는 한화케미칼(원료)·한화큐셀코리아(중간재)·한화솔라원(설비)이다. 한화케미칼은 한화큐셀코리아를 지분 39%로 지배하는데 한화큐셀코리아는 한화에스엔씨라는 회사가 지분을 20%나 가지고 있다. 태양광 사업이 성공하면 한화케미칼·한화큐셀코리아·한화솔라원은 물론이고 한화에스엔씨까지 함께 돈을 버는 구조다.
한화에스엔씨는 한화의 지배 구조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회사다. 시스템 통합(SI) 회사인 한화에스엔씨는 김동관 한화큐셀 전략마케팅 실장이 지분 50%, 차남 동원 씨와 막내 동선 씨가 각각 25%를 보유하고 있는 전형적 가족회사다.
한화에스엔씨의 최근 실적 성장은 눈부시다. 2002년에는 매출액 932억 원, 영업이익 10억 원에 불과했지만 2013년 매출액 9664억 원, 영업이익 1929억 원으로 급성장했다. 특히 이 회사는 그룹 내에서 ‘꼬박꼬박 현금’이 들어오는 회사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한화에스엔씨는 광고대행사 한컴의 지분 69.9%를 가지고 있으며 발전소인 휴먼파워와 한화에너지의 지분 100%를 가지고 있다. 이 중 한화에너지가 지난해에만 영업이익으로 1623억 원을 기록하며 실적 상승의 원동력이 됐다.
이 같은 큰 그림을 가지고 한화그룹과 오너 일가의 상황을 재구성해 보자. 제조와 금융이 동반 성장하면 배당 등을 통해 (주)한화가 돈을 번다. (주)한화가 돈을 벌면 대주주인 김 회장이 가장 큰돈을 벌고 자녀들이 소수의 지분만큼만 부를 쌓는다. 그런데 제조 부문 특히 태양광 사업이 성장하면 구도가 약간 달라진다. 당연히 (주)한화도 일정 부분 돈을 벌겠지만 한화큐셀코리아의 성장으로 한화에스엔씨는 더 큰돈을 벌 수 있다.
특히 김 회장보다 한화에스엔씨를 직접 소유한 삼형제가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된다. 경영 승계에서 중요한 것은 후계자들의 자금 확보다. 더 복잡한 이유가 많지만 쉽게 생각하면 선대 회장의 지분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큰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태양광 분야에서는 수익성이 밸류 체인의 하단으로 갈수록 좋아진다. 쉽게 말해 폴리실리콘을 만드는 회사보다 태양광 모듈을 만드는 회사가, 태양광 모듈을 만드는 회사보다 태양광 발전소나 발전소를 유지·보수하는 회사가 더 돈을 잘 번다는 뜻이다. 향후 발전소인 휴먼파워와 한화에너지 같은 회사가 그간의 노하우로 바탕으로 태양광발전에 참여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화에스엔씨, 그룹의 미래 컨트롤타워 되나
이 때문에 재계 및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향후 한화에스엔씨가 그룹 지배 구조에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관측한다. 박중선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한화에스엔씨가 기업 가치를 키운 뒤 주식시장에 상장, 이후 한화와 합병하는 형태의 지배 구조 개편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합병 후에는 삼형제가 한화의 그룹 계열사를 각각 나눠 갖기보다 한화 지분을 차등적으로 보유한 채 그룹을 지배하는 형태가 예상된다. 한화그룹으로서는 한화에스엔씨의 기업 가치를 크게 키울수록 향후 한화와 합병 시 세 아들의 지분율이 높아지며 경영 승계가 보다 쉽게 이뤄질 수 있다.
굳이 이렇게 복잡하게 보지 않더라도 이미 한화는 제조업 중심의 경영 승계에 대해 이미 마음을 먹고 있는 듯하다. 김 회장의 장남 김동관 실장은 2011년 12월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으로 선임됐고 한화큐셀을 인수한 이후 회사를 옮겨 최고전략책임자(CSO)를 맡아 태양광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또 김 회장의 차남 동원 씨도 올해 초 한화케미칼이 지분 100%를 가진 한화첨단소재에 입사했다.
김 실장 등 삼형제는 계열사 중 (주)한화와 한화에스엔씨 지분만 갖고 있고 김 회장 역시 계열 금융사에 대한 지분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도 주목할 포인트다. 재계 관계자는 “김승연 회장의 스타일을 고려할 때 앞으로 더 깜짝 놀랄 만한 큰 사업 재편이 일어날 수도 있다”며 “8월 11일 ‘구조조정의 대가(大家)’인 김연배 한화그룹 비상경영위원장을 한화생명 새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내정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물론 1952년생인 김 회장은 올해 만 62세로 경영 승계 이슈가 불거지기엔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한화그룹은 일찌감치 그룹 성장 동력 마련과 경영 승계 이슈를 동시에 준비하고 있다. 특히 김 회장의 건강이 호전되며 ‘두 마리 토끼 잡기’의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통 큰 경영’으로 유명한 김 회장이 던져 놓은 ‘고단수의 베팅’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낼지 주목할 때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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