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일 힘의 충돌이 기회 만들 것, 경계 파괴·공간 선점이 성공 키워드

[대한민국 재도약의 조건] 명운 건 ‘10년 전쟁’…틈새전략으로 맞서라
한국 기업이 미래에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10~15년의 전략이 중요하다. 필자의 예측으로는 2030년까지 30대 그룹 중에서 절반은 탈락할 커다란 변화가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이 기간에 펼쳐질 미래 산업의 전개 상황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는 ‘전쟁’이다.

지난 20년 한국은 일본을 너트 크래커에 빠뜨린 후 전자·조선·건설·석유화학에서 승승장구했다. 자동차 산업은 미국을 추월해 일본과 독일을 뒤쫓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지난 20년과는 상황이 다르다. 2000년 이후 한국에 세계시장을 내어 주며 갖은 수모를 겪었던 일본이 반격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지난 20~30년 중국은 한국과 사이좋은 동반자 관계를 맺으며 산업을 발전시켰다. 그런데 이제 중국은 한국을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칼이 됐다. 앞으로 6~7년 동안 벌어질 미국의 반격은 아시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전략적 캐스팅보트 활용해야
한국 기업의 주요 시장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1980년 한국의 대아시아 수출 비중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0% 정도였지만 30년이 지난 지금은 45~50%에 달한다. 반면 국내 민간 소비 시장의 비중은 거꾸로 17~20% 정도 감소했다. 아시아 경제 규모가 그만큼 커졌다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지만 수출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은 몇 년 동안 기업들의 대미 수출 의존도를 상당히 줄이고 중국과 유럽 등으로 수출 다변화를 이뤘다고 자랑(?)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수치상으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이 공급 사슬로 엮여 있기에 실제적인 대미 수출 의존도가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 수출하는 부품이나 반제품이 중국에서 조립돼 미국에 재수출되고 있다. 2008년 기준으로 중국의 미국 수출 비중은 21%에 이른다. 결국 중국 수출이 타격을 입으면 그 여파가 중국을 거쳐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전체로 퍼진다.

한국 기업이 미래에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어디서부터 승부수를 띄워야 할까. ‘틈새’에서 시작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역량은 미국·유럽·중국과 정면 대결을 벌이기에는 부족하다. 틈을 노린다는 것은 전략적 캐스팅보트를 쥔다는 말이다. 미국이 구소련과 중국이 중심이 된 아시아의 공산화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것처럼 한국은 본격적인 미중 패권 전쟁, 무역 전쟁, 환율 전쟁, 원가 전쟁, 산업 전쟁, 인재 전쟁 등에서 전략적 캐스팅 보트를 쥘 수 있다. 미중의 불편한 관계, 미일의 협력 관계가 강화될수록 한국에 대한 외교 및 투자, 산업 및 기술 협력의 매력은 커진다. 완충 역할을 할 나라가, 좀 더 안전한 투자 지대가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앞으로 5년의 아시아 위기, 앞으로 10년 이상 펼쳐질 미국과 중국이 부딪치고 일본이 중국과 부딪치면서 만들어 내는 위기들은 글로벌 차원에서 필연적으로 경제 및 산업 영역에서 심한 경련을 만들어 낼 것이다. 한국·중국·일본에서 경기 침체나 금융 위기가 발발하면 부의 이동, 산업의 지각변동, 시장 재구조화 위기가 연쇄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금융과 경제가 크게 흔들리면 역설적으로 큰 부를 얻을 기회가 생긴다. 원하는 기업을 좀 더 싸게 구매할 기회, 좋은 조건에 비즈니스 교두보를 확보할 기회, 좀 더 좋은 조건으로 거래를 성사시킬 여지도 생긴다. 이것은 매력적인 틈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제조업이 2단계로 전환하는 동력이 약화하거나 시간이 늦춰지는 틈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한국 기업으로서는 생존을 위한 혁신과 시스템 재구조화의 시간을 벌 수 있다. 기존 산업을 구조 조정해 생존 가능성을 늘리는 체질 개선에 성공하고 무형의 생각의 힘을 유형의 부로 바꾸는 창조 경제를 성공시키고 부품과 소재 산업, 미래 첨단 산업으로 도약하는 시간을 벌 수 있다.


선점이 또 다른 선점 낳는다
신산업 거품 전쟁과 특허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해야 한다. 생존하려면 특허 전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한국 기업들은 전통적으로 기술을 선점하기보다 남이 만들어 놓은 기술을 활용해 경쟁자보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일명 벤치마킹 전략이었다. 미래형 신산업에서도 한국 기업은 다른 나라보다 더 빨리 더 좋게 모방해 만드는 능력을 탁월하게 발휘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라는 비슷한 능력을 갖춘 모방 숙련자가 나타났다. 그래서 예전만큼 이익을 얻기가 힘들다. 미래형 신산업에서는 일정 부분 기술 선점, 시장 선점, 상용화 선점에 나서야 한다. 선점의 효과를 손에 쥐어야 중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 선점이 또 다른 선점을 낳는다.

경계 파괴 전쟁을 선도해야 한다. 인류는 지금 지난 200년이 넘도록 완전히 다르고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들을 물리적으로 결합하고 화학적으로 융합하는 경쟁에 돌입했다. 성장의 한계 돌파 도구이자 새로운 창조의 출발점으로 결합과 융합의 경쟁을 시작했다. 미래형 산업의 대부분은 이런 경쟁의 결과물이 될 것이다. 누가 더 빨리 더 창조적으로 결합·융합해 새로운 하나로 재탄생시키느냐가 생존과 승리를 가름할 것이다. 모든 경계의 파괴는 미래 산업의 결과이며 동시에 미래 산업의 더 빠른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이다. 미래는 경계를 파괴하는 자와 그 밑에 굴복한 자가 나뉠 것이다. 스스로 경계를 파괴하지 못하면 남이 경계를 파괴할 때 피해자가 될 것이다.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영역이 없어지고 남이 마음대로 규정하게 될 것이다.

공간 전쟁에서 판을 주도해야 한다. 공간을 지배하는 자가 미래의 소비자를 지배하게 된다. 그 첫째 공간은 ‘손(Hand)’이란 공간이다. ‘손’을 지배하려면 세 가지 능력을 갖춰야 한다. 첫째는 디바이스다. 디바이스는 공간을 형성하고 공간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둘째는 운영체제다. 운영체제는 공간이, 경계의 해체와 융·복합을 통해 새로운 구조화의 장이 돼 움직이도록 하는 기반이다. 마지막으로 가상 생태계를 지배해야 한다. 가상 생태계는 가상이 현실로 튀어나오고 현실이 가상으로 편입되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사람들을 연결하는 삶의 터전이다. 이는 후기 정보화 사회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손 다음의 공간은 ‘자동차’다. 미래의 자동차는 전기자동차 기술과 무인 자동차 기술이 결합하면서 3차원 지능적 모바일 네트워크의 대표적인 디바이스가 된다. 10년 이내에 곧바로 이 전쟁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자동차 디바이스 전쟁은 지금의 스마트폰 전쟁보다 더 크고 치열할 것이다. 그다음의 공간은 ‘집과 사무실’이고 넷째 공간은 ‘몸(Human body)’이며 마지막 공간은 ‘길(Way)’이다.

미래 사람의 문제·욕구·결핍의 변화를 간파해야 한다. 미래를 지배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싶다면 기술의 미래가 어떨지에 관심을 두기보다 부의 이동, 인구구조 변화, 미래 사회 변화 등에 따른 미래 사람의 문제·욕구·결핍의 미래 변화를 간파해야 한다. 스티브 잡스가 피처폰 시대를 종식하고 이전에는 없었던 스마트폰 시대를 연 것은 시대의 변화를 읽고 사람들의 문제·욕구·결핍을 해소하는 제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잡스의 스마트폰은 순전히 미래형 기술, 완전히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나온 제품이 아니다. 10년 전 기술이었지만 상용화에 실패한 기술, 한국이 개발했지만 글로벌화하지 못한 기술, 여기에 몇 가지 새로운 기술을 합쳐 인간이 오래전부터 꿈꿨던 미래를 손에 잡히게 해 준 제품이었다. 시장을 지배하는 기술은 최고의 기술이 아니라 인간을 이롭게 하고 새로운 미래로 이끄는 기술이다. 즉 미래 인간의 문제·욕구·결핍을 해결해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주는 기술이다. 이것을 간파하는 기업이 최종 승리자가 된다.


최윤식 아시아미래인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