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 이후 오히려 높아진 통신비…단말기 자급제·제4이통 등도 쉽지 않아

7%. 2011년을 기준으로 한국 국민의 가구당 소비 지출액 중에서 통신비가 차지하는 비중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2%와 비교해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지난 몇 년간 ‘가계 통신비 경감’을 목표로 대책들이 쏟아져 나온 이유다.

수많은 대책에도 불구하고 단통법마저 ‘실패’라는 낙인이 찍힌 지금, 가계 통신비를 줄일 수 있는 해결책은 과연 없는 것일까.
[SPECIAL REPORT] 알뜰폰부터 단통법까지, 반값 통신비 정책 ‘되는 게 없네’
“단통법 덕분에 숙면할 수 있어서 좋네요.”

지난 10월 26일 온라인 통신 판매 커뮤니티 ‘뽐뿌’에서는 ‘단통법 숙면 효과’가 여러 차례 언급됐다. 뽐뿌는 최신 스마트폰에 100만 원 이상의 보조금을 실었던 이른바 ‘보조금 대란’의 진원지로 일컬어지는 사이트다. 지난 10월 1일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 구조 개선에 관안 볍률안(단통법)이 시행되기 전만 하더라도 종종 밤 12시를 기점으로 기습적으로 보조금이 풀리곤 했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은 철야도 불사하며 사이트를 지키는 일이 비일비재 했는데 단통법 이후 이와 같은 불법 보조금 게시물이 눈에 띄게 줄어들면서 ‘밤잠을 설칠 필요가 없게 됐다’는 뼈 있는 농담이다. 뽐뿌 사이트뿐만이 아니다. 단통법 이후 신규 단말기 구입을 미루는 고객들이 늘어나면서 휴대전화 대리점과 판매점들 역시 단통법 이후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단통법을 두고 ‘정부의 정책이 시장을 이기지 못한 것’이라는 냉정한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단통법의 예견된 실패, 아이폰 6 대란
‘아이폰 6 대란’은 예정된 결과나 다름없었다. 단통법 이후 얼어붙은 시장에서 신규 고객 유치를 위한 호기를 맞은 이통사들은 지난 11월 1일 ‘보조금 경쟁’의 포문을 열었다. 이날 낮 12시 KT가 보조금을 40만 원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뒤따라 오후 2시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40만 원으로 보조금을 따라 올렸고 KT는 다시 50만 원으로 액수를 높였다. 이 같은 보조금 경쟁은 다음날인 11월 2일, 방송통신위원회가 “이통사들의 보조금 경쟁에 엄중 대응하겠다”는 경고를 내린 뒤에야 멈췄다. 50만~70만 원까지 올라갔던 이통사들의 보조금은 이후 다시 30만 원으로 재조정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일부 소비자에게 불똥이 튀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10만 원대에 아이폰 6를 구매’할 수 있다는 소식에 주말 내내 아이폰 6 대리점 앞에 사람 들이 줄을 길게 늘어섰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지난 월요일 이통사로부터 개통 취소 통보를 받은 것이다. 불법 보조금에 대한 정부의 엄중 처벌 방침에 일부 판매점이 아예 단말기 개통을 ‘없던 일’로 만들고 나선 것이다.

이용구 전국통신소비자협동조합 상임이사는 “보조금 경쟁에 참여한 유통점들도 정부의 강력한 징계를 받게 될 것이고 참여하지 못한 유통점들도 판매하지 못해 손해를 봤다”며 “단통법의 취지는 좋지만 운영이 잘못되면서 시장을 왜곡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상황의 심각성을 꼬집었다.

사실 ‘아이폰 6 대란’ 이전에도 이와 같은 조짐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특히 단통법 시행을 전후해 유·무선 결합 상품에 대한 보조금이 증가한 게 대표적이다. 소비자들이 유·무선 결합 상품에 가입할 때 고가의 보조금 대신 TV나 휴대전화를 공짜로 주는 방식이다.

스마트폰을 판매할 때 일단 할부 원금을 정상적으로 책정하고 이후 소비자에게 현금으로 돌려주는 ‘페이백 방식’ 또한 자주 사용되는 편법 중 하나다. ‘가계 통신비 인하를 위한 의원 모임’을 발족한 우상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단통법의 보조금 상한선인 30만 원을 무시한 채 편법이나 불법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리점이 늘어나고 있다”며 “단말기 출고가의 거품을 없애거나 시장 구조를 개선하는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통신 요금+단말기 출고가, 둘 다 잡아야 ‘반값 통신’ 가능
이처럼 단통법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기 위해서는 우선 그 탄생 배경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단통법은 ‘가계 통신비 반값’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주요 정책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이 2013년 5월 대표 발의한 법이다. 현재 정부의 기계 통신비 절감 정책은‘통신 요금 인하’와 ‘단말기 출고가 인하’ 두 가지를 중심축으로 하고 있다. 통신 요금 인하를 위한 대표적인 정책으로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이후 꾸준히 추진하고 있는 ‘기본 요금 등 통신비 인하’와 2013년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알뜰폰(MVNO) 활성화’를 들 수 있다. 단말기 출고가 인하를 위한 정책은 2012년 도입된 ‘단말기 자급제(블랙리스트 제도)’와 지난 5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단통법’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이들 중 어느 하나도 가계 통신비를 끌어내리는 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 의원은 “단통법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통신 요금 인하 정책과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며 “현재로서는 양쪽이 꽉 막혀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사실은 통계청에서 발표한 가계 통신비를 살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2012년 1분기 14만8469원에서 2014년 1분기에는 15만9380원으로 늘어났다. 2014년 2분기 가계 통신비는 14만3459원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는 최근 이동통신사들의 영업 중단의 영향으로 통신 서비스 가입비가 빠져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지난 6월에도 정부가 ‘가입비 50% 추가 인하’ 등의 대책을 내놓았지만 ‘가입비’와 ‘기본요금’은 다르다”며 “국민이 가계 통신비가 줄어드는 것을 체감하기 위해서는 기본요금 인하가 중요한데, 최근의 요금 인하 정책은 대부분 이와 같이 신규 가입 고객들에게만 집중돼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08년 이후 기본요금 관련 정책은 2011년 1000원 인하된 것이 유일하다. 정부가 가계 통신비 절감을 외칠 때마다 이통사들이 이와 관련한 선택 요금제 등을 선보이기도 했지만 이 역시 실질적인 체감 효과로 이어지기에는 역부족이다.

안 사무처장은 “지금은 오히려 요금제가 너무 많아 소비자들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똑똑하고 부지런한’ 일부 소비자들만 요금제를 ‘찾아서’ 이용하는 것이고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여전히 혜택에서 소외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단통법 이후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요금 인가제 폐지’가 부쩍 자주 거론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1991년 도입된 요금 인가제는 SK텔레콤(무선)과 KT(유선)가 통신 요금을 인상하거나 새로운 요금제를 내놓을 때 미래부의 인가를 받도록 한 법이다. 안 사무처장은 “이통사들이 요금을 인하할 때는 정부의 인가가 필요 없는데도 이통사들은 요금 인가제를 이유로 요금제 경쟁이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과도한 요금 인상을 막자는 법안이지만 현재는 그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논란이 일며 지난 11월 6일 미래부는 “요금 인가제의 부작용을 개선할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알뜰폰 활성화 대책 또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알뜰폰은 이통사들의 망을 빌려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것으로, 저가 요금제를 찾는 고객들을 중심으로 통신비 절감 효과에 대한 기대를 모으고 있다. KT 출신으로 새누리당의 가계 통신비 인하를 위한 국회의원 모임에 속해 있는 권은희 새누리당 의원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알뜰폰의 가계 통신비 인하 효과는 총 1조5655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안 사무처장은 “여러 대책들 중에서 그래도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이 알뜰폰 활성화”라며 “하지만 지난 6월을 기점으로 SK텔레콤(SK텔링크)은 물론 KT(KT파워텔)와 LG유플러스(미디어로그) 같은 대기업 이통사들이 알뜰폰 시장에 뛰어들며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알뜰폰 시장 또한 결국 이통 3사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SPECIAL REPORT] 알뜰폰부터 단통법까지, 반값 통신비 정책 ‘되는 게 없네’
한 중소 알뜰폰 업체 관계자는 “이들 이통 자회사들이 알뜰폰 자체의 서비스 경쟁력을 높이는 것보다 단순히 이통 3사의 가입자 유출을 막기 위한 방패막이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LG유플러스는 지난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영업정지 기간 동안 알뜰폰 자회사인 미디어로그가 신규 가입자 유치에 선방하며 손실을 최소화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미디어로그는 총 7654명의 신규 가입자를 모집했는데, 이는 같은 기간 알뜰폰 1위 기업인 CJ헬로비전의 2675명보다 3배 많은 것이다.


‘제4이통’ 등 대안으로 거론
이처럼 통신 요금 인하가 ‘꽉 막힌’ 상황에서 가계 통신비를 줄이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게 단말기 출고가를 낮추는 정책이다. 그러나 현실은 단통법 이후 오히려 가계 통신비가 높아졌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권은희 의원은 “단통법 시행 이후 태 조사 결과 체감 통신비가 평균 4.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아무리 초기에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지만 시행 이후 달라진 보조금 변화에 대한 시뮬레이션이나 시장 상황의 변화 가능성을 더욱 면밀하게 살폈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처럼 상황이 악화되자 단통법 폐지 논란까지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이럴 바에야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DMA) 관계자는 “아이폰 6 대란이 보여주듯이 단통법은 보조금 상한선 등 실패한 규제 정책”이라며 “이통 시장을 잘못 읽은 채 시장경제에 반하는 정책을 펼치는 대신 단통법 폐지가 맞다”고 주장했다. 반면 법안 폐지보다 보완에 힘을 싣는 의견 역시 적지 않다. 안 사무처장은 “시장이 워낙 얼어붙어 있어서 이통사들이 조금씩 보조금을 늘리고 있긴 하지만 단말기 출고가 인하로 이어지기에는 역부족”이라며 “단통법 원안에 포함돼 있던 분리공시제(이통사 보조금과 제조사 보조금을 분리해 공시)를 살리고 단말기 가격 구조가 드러나야 단말기 출고가가 낮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SPECIAL REPORT] 알뜰폰부터 단통법까지, 반값 통신비 정책 ‘되는 게 없네’
그렇다면 단통법에 앞서 단말기 유통 구조 개선을 위해 도입된 휴대전화 자급제가 어느 정도 보완 역할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우 의원은 “단말기 자급제 이후로 일부 중고 폰 판매가 늘어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 통해 혜택을 받는 소비자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우회적으로 답했다. 국내 이통 시장은 기본적으로 이통 3사가 스마트폰 제조사로부터 단말기를 대량 구매한 뒤 이를 다시 대리점이나 판매점들을 통해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구조다. 그는 “이통사의 약정 할부금 등을 통해 지금 당장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편리하게 휴대전화 단말기 구매가 가능한데, 단말기를 미리 구매하는 번거로움을 감당하는 고객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며 “몇몇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휴대전화 단말기와 이통사 서비스를 분리해 판매하는 ‘단말기 완전 자급제’가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이 역시 국내시장 구조에서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못 박았다. 완전 자급제를 실시하면 단통법과 마찬가지로 당장 국내 이통사 대리점과 스마트폰 판매점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우 의원은 “통신 요금과 단말기 가격 경쟁을 유도하기 위한 대안으로 거론되는 게 제4이통”이라며 “실제로 일본은 2006년 소프트뱅크가 진출하며 저가 경쟁을 촉발하는 등 이통 시장의 변화를 이끌어 낸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SK텔레콤·KT·LG유플러스의 시장점유율이 5 대 3 대 2로 십수 년째 고착화된 시장 구도에서 통신 요금이나 단말기의 가격 경쟁을 유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며 “하지만 KMI 등에서 여러 차례 제4이통에 도전했지만 자본금 등 조건이 맞지 않아 무산된 상황이어서 제4이통이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SPECIAL REPORT] 알뜰폰부터 단통법까지, 반값 통신비 정책 ‘되는 게 없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