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정리는 삼성물산 지배력 강화 효과, 전자 중심 그룹 재편 윤곽

삼성과 한화, 한화와 삼성 간 2조 원 규모의 ‘빅딜’이 이뤄졌다. 재계 및 금융 투자 업계에서는 이들 그룹의 과감한 선택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두 그룹은 이 딜을 통해 ‘명분과 실리’는 물론 ‘지배 구조와 후계 구도’까지 안정화하는 성과를 냈다. 왜 그럴까. 한경비즈니스는 2회에 걸쳐 양 그룹 입장에서 본 빅딜의 배경과 빅딜을 통해 노리고 있는 양 그룹의 전략을 집중 분석한다. 이번 회에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경쟁력 강화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체제’를 완성한 삼성이다.
[SPECIAL REPORT] 원톱 중심 ‘통합 경영’ 강화…이재용 시대 ‘활짝’
삼성그룹과 한화그룹이 11월 26일 삼성의 석유화학·방위산업 부문 4개 계열사의 매각·인수를 통해 사업 부문 ‘빅딜’을 단행했다. 삼성이 한화그룹에 매각한 계열사는 석유화학 부문인 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과 방산 부문인 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다. 계약 규모는 시장가격으로 1조9000억 원대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향후 경영 성과에 따라 가격 조정이 이뤄질 수 있다는 옵션이 붙어 있어 전체 빅딜 규모는 2조 원까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그룹은 이 딜을 통해 그룹의 미래 비전 및 후계 구도와 직결된 제조업의 역량을 대폭 강화했다. (주)한화는 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를 인수해 국내 1위는 물론이고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방산 회사가 됐다. 한화케미칼은 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을 인수함으로써 국내 화학 시장을 LG화학과 양분하게 됐을 뿐만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 이후 15년 만에 정유업에 복귀하게 됐다.

이 딜이 주목받는 이유는 거래 당사자 중 한쪽만 이득을 본 게 아니라 양쪽 모두 ‘윈-윈’할 수 있는 결과를 냈다는 것이다. 그럼 4개 회사를 매각한 삼성은 무엇을 얻었을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1조9000억 원에서 2조 원 수준의 현금을 얻게 됐다. 삼성테크윈은 최대 주주 삼성전자(지분율 25.46%)를 비롯해 삼성물산(4.28%)·삼성증권(1.95%)·삼성생명(0.64%)·삼성SDI(0.12%) 등 삼성 계열사가 지분 32.4%를 가지고 있다. 이를 한화그룹에 매각해 매각 차익 8400억 원을 얻었다. 삼성종합화학은 삼성물산(최대 주주, 지분율 37.28%)을 비롯해 삼성테크윈(22.73%)·삼성SDI(13.09%)·삼성전기(9.04%)·삼성전자(5.29%)·삼성정밀화학(3.06%)·제일기획(0.29%) 등 삼성 계열사가 지분의 대부분을 가지고 있다. 또 이건희 회장이 0.29%, 이부진 사장이 4.95%를 가지고 있다.

한화그룹은 이 지분 중 삼성물산이 가지고 있는 지분 절반(18.5%)과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삼성테크윈 지분을 제외한 전체를 1조600억 원에 사들였다. 당연히 삼성의 각 계열사 및 이건희 회장, 이부진 사장은 지분만큼의 매각 대금을 받게 된다

삼성은 지분 매각을 통한 현금을 활용해 각 계열사에서 투자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지분 매각을 통해 들어오는 ‘돈’만 놓고 보면 이번 거래의 가장 큰 수혜자는 가장 많은 자금을 확보한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삼성테크윈 지분 매각 차익 약 2000억 원과 삼성종합화학 지분 매각 이익 약 500억 원을 합쳐 약 2500억 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그런데 과연 삼성전자에 이만한 규모의 현금은 어떤 의미일까. 삼성전자의 올 9월까지 현금성 자산은 67조 원이다. 2500억 원이라는 큰돈도 삼성전자에는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즉 삼성의 이번 계열사 매각에서 ‘자금 확보’라는 ‘눈에 보이는 실리’는 부차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뜻이다.


삼성 계열사, 현금 2조 원 확보
그래서 삼성의 계열사 매각은 ‘경영전략’이라는 틀에서 들여다봐야 한다. 삼성은 한국 최대의 그룹사다. 제조업·금융업·서비스업 등등 다양한 부분을 아우르고 있다. 그러나 삼성의 성장 전략은 철저하게 ‘선택과 집중’에 의해 이뤄졌다. 지난 30여 년간 그 선택의 대상은 바로 ‘삼성전자’였다.

삼성의 성장 키워드는 ‘변신’이다. 삼성의 주력 사업은 끊임없이 변했다. 1950년대 삼성은 설탕 등 소비재에서 시작해 1960년대는 비료 등 기초 화학을 주력으로 했다. 1970년대는 중화학공업 및 미디어·레저 산업 등에 무게중심을 뒀고 198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가전을 중심으로 한 전자 산업에 뛰어들었다. 전자 산업 중에서도 1990년대 반도체를 거쳐 2000년대는 휴대전화를 중심으로 성장했다.

삼성이 이처럼 ‘주력 사업’ 자체가 바뀌어 버리는 엄청난 변화를 이루면서도 한국 재계 1위를 고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다. 바로 이병철 삼성 창업자 그리고 이건희 회장이 뜻을 함께했던 ‘통합 경영’이다.

‘통합 경영’은 ‘선택과 집중’의 다른 말이다. 재계 혹은 삼성 내에서도 ‘삼성은 삼성전자와 삼성후(後)자로 나뉜다’는 말을 한다. 삼성의 성장은 삼성전자라는 강력한 ‘원톱’의 질주를 통해 이뤄진다. 그리고 다른 계열사들은 출혈을 감수하고서라도 원톱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물적·인적 자원을 쏟아붓는다. 삼성전자는 그룹 내 주요 자원을 빨아들이며 계속된 성장을 거듭한다. 계열사들이 원톱의 질주에 대해 시기하거나 견제할 필요는 없다. 원톱이 잘되면 이를 지원하는 모든 계열사들의 실적도 덩달아 뛰기 때문이다. ‘삼성’이라는 브랜드의 후광도 같이 얻는다.

이 과정에서 회장 직속의 미래전략실은 삼성전자와 기타 계열사의 자원 배분에 대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비서실에서 구조조정본부로 또 구조조정본부에서 미래전략실로 이름을 바꿔 온 미래전략실은 그룹 내에서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회장의 판단을 계열사들이 보다 빨리 따를 수 있게 만든다. 이에 따라 회장의 지시는 ‘법’이 되며 회장의 권한도 강화된다. 자원이 없던 한국이 몇몇 대기업에 자원을 집중해 고속 성장한 것과 비슷한 원리다.

이는 삼성의 매출 구성을 보면 극명하게 나타난다. 삼성의 2013년 그룹 총매출은 334조 원이다. 이 중 삼성전자의 작년 매출은 228조 원이다. 그룹 전체의 매출 3분의 2가량을 삼성전자가 만들어 낸다. 삼성전자는 삼성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이번 매각 역시 ‘통합 경영’의 틀에서 보면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방위 사업은 마진은 적지만 안정적인 사업이다. 그런데 매출 300조 원을 훌쩍 넘기는 삼성으로선 이런 성장성이 크지 않은 저마진 사업을 굳이 유지할 필요성이 높지 않다. 실제로 삼성테크윈의 매출은 수년째 2조9000억 원대에 머물러 있다. 2012년과 2013년에는 매출이 역성장했고 올해도 역성장이 예상된다.

그렇다고 방위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하기도 부담이다. 특히 방위 사업은 핵심 사업인 삼성전자와 별 시너지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칫 삼성전자의 이미지를 해칠 수도 있는 사업이다. 실제로 유럽의 일부 인권 단체들은 삼성이 인명 살상용 무기를 만드는 방산 업체를 소유하고 있다며 삼성전자 제품 불매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또 그룹 차원에서 보면 최근 계속 불거져 나오는 군납 비리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게 됐다. 삼성은 2011년 삼성테크윈에 대한 경영 진단 과정에서 각종 비리가 드러나자 사장을 경질하고 감사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하지만 최근 통영함 비리 사건에서 나타났듯이 군납 비리는 업계 관행처럼 굳어진 게 많아 수사가 계속되면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즉 방산은 ‘안정적 사업’이 필요한 한화로서는 좋은 사업이지만 ‘저마진’이라는 점에서 보면 삼성에는 꼭 필요하지는 않은 사업이었다.

물론 화학 부문도 경쟁력은 크지 않다. 삼성은 ‘통합 경영’을 강조하는 동시에 ‘1등 주의’를 강조한다. 계열사가 각 영역에서 1등을 해야 ‘원톱의 질주’가 더 탄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성의 화학 계열사는 1등을 해보지 못했다. 삼성의 화학 계열사는 삼성종합화학(2014년 6월 삼성석유화학과 합병)·삼성토탈·삼성BP화학·삼성정밀화학 등 4곳에 이르렀지만 LG화학 1개사의 영업이익에도 못 미치는 곳이 많았다.


삼성전자를 축으로 한 선택과 집중
그러나 화학은 기본적으로 전자 부문과 어느 정도는 시너지가 있다. 기초 재료 업종이기 때문이다. 삼성 화학 부문의 매출은 10조 원 정도 된다. 그룹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지만 그냥 둬도 방산처럼 계열사의 발목을 잡을 일은 없다.

실제로 삼성은 화학 부문 중 삼성정밀화학과 삼성BP화학을 남겨두는 선택을 했다. 삼성정밀화학은 2차전지 소재의 하나인 양극활물질을 생산하고 있다. 이 밖에 삼성전자에 반도체 현상액, 레이저 프린터 토너 등을 공급하고 있다. 삼성BP화학은 초산·초산비닐(VAM)·수소를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다. 초산은 전자 소재 분야나 정밀화학 분야의 범용적인 기초 화학제품이다. 초산비닐은 액정표시장치(LCD) 디스플레이용 편광필름 등 첨단 전자 소재뿐만 아니라 접착제, 고기능 발포재, 식품용 포장재 등 고부가 제품에도 사용되고 있다. 즉 전자 부문과 시너지가 확실한 계열사는 매각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한화그룹 측은 “삼성에 방산 부문의 인수를 제안했고 삼성이 방산 부문과 함께 화학 부문의 인수를 한화에 다시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러면 왜 삼성은 화학 부문의 인수를 한화에 제안하게 됐을까. 특히 한화의 삼성화학 부문 계열사 인수 가격은 ‘싼 편’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삼성종합화학의 순자산 가치는 지난 3분기 말 1조8769억 원, 자산 규모는 2조4039억 원이다. 반면 한화는 삼성종합화학의 지분을 총 1조600억 원 지급하기로 했다. 3분기 말 삼성종합화학 지분 56%에 대한 순자산 가치는 단순 계산으로 1조511억 원이다. 하지만 인수·합병(M&A) 몸값을 측정할 땐 순자산 가치에 20~30%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주는 게 일반적이다. 즉 삼성은 한화에 ‘딱 받을 돈만 받고’ 판 것이다.

물론 매각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앞서 말한 ‘선택과 집중’이다. ‘통합 경영’의 차원에서 볼 때 삼성전자와 시너지가 크지 않은 사업을 남겨둘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왜 삼성은 지금까지 어렵게 키워 온 사업을 ‘딱 받을 돈만 받고’ 거래했을까. 그래서 이 매각의 이면에는 ‘이재용 부회장 체제의 완성’이라는 ‘지배 구조 재편 혹은 3세 승계’ 차원의 선택이 포함돼 있다고 관측되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삼성의 개략적 지배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앞서 말한 대로 삼성에서 삼성전자는 핵심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지분 중 이건희 회장 일가가 가진 지분은 그리 많지 않다. 이건희 회장은 3.38%, 이재용 부회장은 0.57%. 홍라희 리움 관장은 0.74%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이 회장은 삼성전자를 지배할까. 바로 삼성생명과 삼성물산을 통해서다. 쉽게 말해 삼성전자를 지배하려면 삼성생명과 삼성물산을 ‘세트’로 가져야 한다고 보면 된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지분 7.2%를 가지고 있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1%를 가지고 있다. 이들 양사의 지분은 국민연금(7.81%)과 삼성전자 자사주(11.1%)를 제외하고 가장 많다. 삼성전자를 지배하려면 삼성생명과 삼성물산을 확실히 지배해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생명에 대한 지배권을 유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 부회장이 지분율 25.1%로 최대 주주인 제일모직이 삼성생명의 주식 19.1%를 가지고 있다. 또 이건희 회장이 삼성생명 주식 20.8%를 가지고 있다. 이 지분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삼성생명의 지배권을 이어 갈 수 있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은 이 지분을 확실히 상속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0월 30일 금융위원회는 이 부회장의 삼성생명 지분 매입을 승인했다. 이 부회장은 최대 주주 이 회장의 특수관계인이라 금융사의 지분을 확보하려면 금융위의 승인이 필요하다. 이 부회장의 매입 규모는 0.1%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향후 이 회장의 지분 승계 시 발생할 수도 있는 문제가 ‘없음’을 승인 받은 것이다. 이 부회장을 제외하고는 상속자 중 아직 아무도 금융위 승인을 요청하지 않았다.

기업을 지배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하나는 카리스마고 하나는 돈이다. 돈은 곧 지분율이다. 지분율만 아주 높으면 그 기업을 지배하는 데 문제가 없다. 반면 카리스마는 다양한 데서 나온다. 그 기업을 창업하거나 그 기업에서 높은 업무 능력을 보여줄 때 발생하기도 한다. 두 가지가 아니더라도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 신망을 받으면 발생한다. 특히 한국 기업에서는 이런 카리스마가 발생하는 한 가지 요소가 또 있다. 선대 회장의 ‘자손’이라는 요소다.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서는 이 부회장의 지배력은 강하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에서 20년 넘게 일했고 삼성생명 등 금융 계열사에서 어느 정도 인사권을 직접 행사해 왔다. 실제로 여러 언론을 통해 금융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 중 몇몇은 ‘이 부회장의 라인’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개인 3대 주주다. 삼생생명은 물론이고 삼성화재에도 상징적 의미의 지분을 이미 확보했다.


전자 유지 위해선 물산 지배력 장악 필수
그런데 삼성물산은 좀 미묘하다. 냉정하게 말해 삼성물산에 대한 이건희 회장 일가 및 계열사의 지분율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삼성물산에 대한 오너 일가의 지분은 이 회장이 보유한 1.4%가 전부다. 삼성물산에 대한 지배는 그리 많지 않은 계열사 지분으로 이뤄진다. 삼성전자가 지분 13.5%를 가지고 있는 삼성SDI가 삼성물산의 지분 7.4%를 가지고 있고 삼성생명이 삼성물산의 지분 4.7%를 가지고 있다. 삼성생명에 비하면 지분이 초라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장(지분율 1.37%)이 삼성물산에 대해 강한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던 이유는 그의 카리스마 때문이다. 그런데 이재용 부회장 쪽에서 보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핵심인 삼성물산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는 데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직접 보유 지분이 전혀 없다는 것도 있지만 이보다 바로 동생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존재다.

이부진 사장은 현재 삼성물산에 직접 몸담고 있다. 이 사장은 2013년부터 삼성물산 상사 부문 고문을 맡고 있다. 삼성물산은 건설과 상사가 한 몸에 있는 복합 기업이지만 매출의 대부분은 건설에서 발생한다. 이 사장은 2010년부터 삼성에버랜드(현 제일모직) 리조트·건설부문 경영전략담당 사장을 맡고 있다. 이 사장이 상사 부문에 직접 발을 담그고 있는 것은 물론 건설 부문에서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 삼성물산이 삼성종합화학의 지분을 대규모로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도 눈여겨봐야 한다. 앞서 말한 대로 삼성물산은 삼성종합화학의 지분 37.28%를 가진 최대 주주였다. 삼성종합화학은 이 사장이 지분율 4.95%로 개인 최대 주주였다. 이 사장은 삼성물산의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동시에 삼성물산에서 대규모로 투자한 화학 부문의 리더가 되며 연결고리가 생겼다. 특히 이 사장은 최근 주목받는 CEO였다. 호텔신라의 실적 상승이라는 결과를 냈고 ‘호텔신라 정문 파손 사건’ 등의 에피소드 등으로 긍정적 이미지도 생겼다.

때문에 그간 일각에서는 삼성의 후계 구도가 이 부회장이 전자(삼성전자) 및 금융(삼성생명·삼성화재), 이 사장이 상사 및 건설(삼성물산·제일모직 건설부문 등)·중공업(삼성중공업)·화학(삼성종합화학)·호텔 및 레저(호텔신라·제일모직 레저부문 등)를, 이서현 사장이 패션(제일모직 패션부문) 및 미디어(제일기획)를 총괄하는 형식으로 성립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전망은 이제 무의미해졌다. 이번 딜을 통해 화학은 아예 삼성의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거의 사라졌다. 동시에 화학 계열사와 삼성물산과의 고리도 끊어졌다. 한 재계 관계자는 “과거 이병철 회장에서 이건희 회장으로의 승계 과정에서 보듯이 삼성은 후계 구도에서조차 ‘선택과 집중’을 중시한다”며 “결국 이번 딜은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선택과 집중’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제일기획 자사주 매입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게임은 킹을 잡기 위한 것’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삼성은 한화와의 빅딜을 발표함과 동시에 삼성전자의 제일기획 자사주 매입을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제일기획 주식 10.0%를 매입함으로써 지분율을 종전 2.61%에서 12.60%까지 끌어올렸다. 이로써 삼성전자는 삼성물산에 이어 제일기획의 2대 주주가 됐다. 제일기획에 대한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이 더 커진 것이다. 기존 전망대로라면 미디어 부문의 지배력은 이서현 사장의 지배력이 더 커져야만 했다.

물론 삼성의 미래 지배 구조를 함부로 예단할 수는 없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은 숀 코르란 CLSA한국 대표 및 리서치센터장의 말을 인용해 “삼성전자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보호해야 할 체스판의 ‘킹’과 같다며 투자자들에게 종반전에 집중해야 승자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삼성의 지배 구조 변화는 단지 이건희 회장 가족의 일 혹은 개별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현재 매출 300조 원으로 한국 총생산 2100조 원 중 14%에 달하는 삼성의 미래는 한국의 경제적·사회적 요인을 모두 반영해야만 한다. 실제로 이번 딜에 대해 한화로 회사가 매각되는 4개 계열사 임직원들의 반발은 매우 크다. 삼성그룹에 따르면 매각 계열사 소속 인력은 약 9000명이다. 이 중 가장 많은 수(6000여 명)를 차지하는 삼성테크윈의 임직원들은 ‘매각 반대 범비상대책위원회’를 설립하고 11월 4일 ‘매각을 조건으로 한 어떠한 협상도 하지 않겠다”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당장 이 딜로 9000명의 직장이 바뀌었다.

또 삼성 지배 구조 재편의 일환이었던 삼성중공업과 엔지니어링의 합병은 ‘주주 가치 훼손’이라는 이유에서 국민연금 및 투자자들이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국민연금은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을 각각 5.91%, 6.59%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말 그대로 국민들의 미래가 달린 자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딜을 통해 삼성이 말한 것은 확실하다. 삼성은 이제 본격적으로 ‘이재용 부회장’에게로의 ‘선택과 집중’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 부회장의 삼성은 어떤 길을 가게 될 것인가.



이부진·이서현 사장의 선택은?
[SPECIAL REPORT] 원톱 중심 ‘통합 경영’ 강화…이재용 시대 ‘활짝’
호텔·패션에 각각 ‘집중’할 듯

이번 빅딜로 이부진 사장은 삼성종합화학 지분 매각 대금 930억 원 정도의 현금을 손에 쥐게 됐다. 또 이서현 사장과 같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삼성SDS와 제일모직의 지분 가치는 각각 5700억 원과 5500억 원으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재계 및 금융 투자 업계에서는 약 1조3000억 원을 소유한 이부진 사장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호텔신라에 대한 확실한 지배권 확보다. 현재 이부진 사장은 호텔신라의 주주총회의 의사봉을 직접 잡을 정도로 애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이부진 사장은 호텔신라의 지분을 한 주도 갖고 있지 않다. 호텔신라는 삼성생명(7.3%)이 최대 주주고 2대 주주는 삼성전자(5.1%)다. 즉 확보한 현금을 비롯해 최근 상장한 삼성SDS 지분 그리고 앞으로 상장할 제일모직의 지분 등을 활용해 호텔신라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애널리스트는 “특히 한화갤러리아나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등도 욕심을 내볼 만하다”고 말했다. 한화가 시너지가 떨어지는 계열사들에 대한 매각도 가능하다고 한 만큼 호텔 신라와 사업 시너지가 큰 이들 두 개 계열사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한화의 호텔앤드리조트를 확보하게 되면 본격적으로 롯데그룹과 한국 호텔 시장을 양분하게 된다. 한화갤러리아 역시 면세점 사업 등과 시너지가 분명 있다.

이서현 사장은 향후 제일모직 패션 사업을 중심으로 지배권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에는 이서현 사장이 경영기획 부문장으로 있는 제일기획도 ‘이서현 사장의 몫’으로 거론됐지만 이는 불확실한 면이 크다. 삼성전자의 지배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서현 사장의 남편 김재열 사장이 제일기획 스포츠 사업을 맡게 된 점을 고려한다면 향후 제일기획에서 분리된 스포츠 전담 회사의 설립 등도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나이키 등의 예에서 보듯 스포츠 사업은 패션과 시너지가 큰 사업이다. 또 최근 와이지엔터테인먼트 등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패션 사업과 연관 있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으로의 확장도 가능하다.



삼성의 재편에 날개 달아준 조세 개정안
기업 간 주식 교환 시 ‘과세 이연’
삼성의 지배 구조 재편의 클라이맥스는 실질적 지주회사인 ‘제일모직’의 상장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지배 구조 최상단에 있던 비상장사 제일모직이 상장되면 이 주식을 바탕으로 각 계열사의 지분 교환을 통해 다양한 시나리오가 실제적으로 가능해진다. 즉 주식을 팔아 돈을 마련하고 다시 다른 회사의 주식을 사는 것보다 주식을 바로 교환하는 게 훨씬 간편하다는 의미다. 특히 연말 내 국회 통과가 확실시 되는 조세 개정안은 각 계열사의 지분 교환 형식의 지배 구조 재편에 날개를 달아줄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 8월 세법 개정안을 통해 주식 교환을 이용한 M&A에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내용의 조특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업 간 주식 교환을 통한 M&A 시 주식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식의 양도 차익에 상당하는 금액에 대한 양도소득세·법인세 부과를 해당 주식을 처분할 때까지 미뤄 주는(과세 이연) 것이 골자다. 쉽게 말해 인수되는 회사가 인수하는 회사에 자신의 지분을 넘기고 그 회사의 지분을 받는 방식으로 기업이 합병된다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교환되는 주식 간에는 가격 차이가 있어 차익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차익에 대한 과세를 해당 주식을 다시 팔 때까지 미뤄 M&A를 할 때의 부담을 줄여 준다는 취지다. 이때 각 회사들의 세금 부담이 크게 줄어들게 된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