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부터 할당제 열띤 논의, 성평등적 문화 인프라 구축 노력

스웨덴 女 의원 44.7%…여성 유권자의 힘
인구의 남초 현상이 오랫동안 상식이었던 한국에서 2015년에는 ‘여초’ 현상이 도래한다고 한다. 최근 여러 분야에서 여성의 도약이 눈에 띄고 있는 현실에서 인구구조까지 여성 다수로 변하는 것은 여성 우위 사회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는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성의 도약이 남성을 압도한다는 것도 표면에 있는 빙산의 일각이 수면 아래 거시적 구조를 대표하는 착시 현상일 뿐이다. 한국 사회는 여성 우위는커녕 아직 성평등도 달성하지 못한 사회다.

한국 사회의 성평등이 아직 반의 성공도 아닌데 이미 달성됐다고 믿는 데는 남녀 관계에 대한 기준이 남성 우위의 유교적 가치관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유교적 질서에서는 남성이 공적 활동을 주도하는 것을 정상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남녀 반반’이 기준이 아니다.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정부위원회의 남녀 위원 비율도 여성이 40%를 차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실제로 여성 비율이 40%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녀가 반반이 되면 사람들은 ‘세상이 변하는구나’라고 느낄 것이다. 특히나 외교관이나 법관처럼 사람들이 선망하는 특권적 인력을 뽑는 가시성 높은 국가고시에서 여성의 비율이 50%를 넘어서면 세상 변화의 느낌이 어지러울 지경에 달할 것이다.

사람들이 느끼는 어지러운 변화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대부분의 영역에서 답보 상태다. 2001년 여성부(현재 여성가족부)가 설립된 이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한 여성 경제활동 제고 정책에도 불구하고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50%를 밑돌고 있다. 또 2014년 세계경제포럼의 ‘국가 경쟁력 보고서’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한국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0.72로, 세계 144개 국가 중 91위다. 여성 경제활동에 대한 총체적 불평등성을 보여주는 성별 임금 격차는 2011년 여성의 평균임금이 남성 평균임금의 61.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격차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여성의 공적 활동의 지표로서 경제활동에 못지않게 중요한 정치 참여, 즉 국회의원 중 여성의 비율은 2014년 15.7%로, 세계국회연맹이 조사한 189개국 중 87위다.


아이슬란드 여성, 정치 권한 막강
이처럼 ‘이미 성평등은 이뤄지고 오히려 여성이 앞서간다는’ 한국이 이런 정도라면 세계 성평등 지수 조사에서 상위 순위를 차지한 소위 ‘성평등 선진국’의 사정은 어떨까.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하는 성격차지수(Gender Gap Index)의 상위 10개국은 순서대로 아이슬란드·핀란드·노르웨이·스웨덴·덴마크·니카라과·르완다·아일랜드·필리핀·벨기에다. 중미 니카라과, 아프리카 르완다, 아시아 필리핀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럽, 특히 북유럽 국가다. 유럽 국가의 성평등 대세는 스위스·독일·네덜란드·프랑스가 20위 안에 드는 것으로 재확인된다. 유럽 국가들은 어떤 면에서 그렇게 성평등한 것일까.

앞의 성격차 지수에서 측정하는 측면은 경제활동 참여와 기회, 교육 수준, 건강과 생존, 정치 권한 등 4영역이다. 경제 부문은 남성 대비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유사 직종에서 남녀 임금 형평성, 남성 대비 여성 소득, 남성 대비 여성 행정·관리직, 남성 대비 여성 전문·기술직의 비율을 본 것이다. 교육 성취도는 남성 대비 여성의 문해율과 초·중·고등 교육 취학률을 봤고 건강은 출생 성비와 건강 기대 수명의 성비를 봤다. 정치 권한은 남성 대비 여성 국회의원 비율과 장차관 비율, 최근 50년 이내에 국가 혹은 정부 수반의 재임 기간을 봤다. 이러한 지표를 이야기로 하자면 “여성은 남성과 유사한 기간 동안 교육을 받으며 남성처럼 취업과 승진을 할 수 있다. 같은 일을 하는 남성과 여성의 평균임금을 봤을 때 차이가 별로 없고 전반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소득이 비슷하다. 공무원이나 기업에서 관리 업무를 하는 사람들의 남녀 비율, 나아가 국회의원, 장관의 남녀 비율이 차이가 여타 국가들보다 작으며 여성이 대통령 혹은 총리 등을 할 때 남성 대통령이나 총리와 비슷한 재임 기간을 갖는다. 그리고 태어나는 아이들의 성비는 비슷하고 여성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기대 수명은 남성과 비슷하다”라고 풀어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앞의 국가들에서도 여성이 남성과 양적으로 정확하게 같은 혜택과 권리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이가 낮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2014 성격차 지수에서 1위를 차지한 아이슬란드는 교육 성취도에서 지수 1로, 남녀 차이가 전혀 없지만 경제 참여는 0.8169, 정치 권한은 0.6554, 건강과 생존은 0.9654로 여전히 남성과의 차이를 보여준다. 아이슬란드가 정치 권한에서 다른 나라보다 높은 순위를 기록한 것은 여성 대통령이 나온 효과가 크다. 아이슬란드는 지표 외의 상황에서도 우수한데, 예를 들어 여성이 기업 지도자로 오를 수 있는 가능성, 비농업 분야에서 여성 고용률, 과학기술 분야 졸업생 중 여성 비율이 가장 높다. 한국 여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입이 벌어질 정도의 성취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국가들은 어떻게 이런 성취를 이뤄 낸 것일까. 이는 국가적 운명에 따라 저절로 이뤄진 게 아니라 정부와 사회의 부단한 노력에 따른 것이다.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44.7%로 유럽에서 가장 높은 스웨덴은 정당 차원에서 여성 국회의원 비율을 정하는 ‘정당할당제’를 도입함으로써 1990년대 이후 40%가 넘는 비율을 유지해 왔다. 정당할당제는 정당에서 공천하는 후보자 중 여성의 최소 비율을 30% 혹은 40% 등으로 정함으로써 여성이 정치에 진출하는 최소한의 발판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여성 기준 적용해 작업 환경 개선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정당할당제는 여성의 국회의원 비율을 높이기 위한 할당제 중 가장 약한 구속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즉, 이는 국가법에 의한 의무 사항이 아니라 정당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부여한 할당이다. 따라서 정당별로 도입 여부, 할당량을 자발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이처럼 구속력이 약한 정당할당제를 가지고 유럽 최고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은 이 제도가 정치에서의 성평등에 대한 논의에 남녀가 참여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1920년대부터 시민운동가와 정당 내 여성들에 의해 시작된 여성 후보자 공천을 높이기 위한 시도들은 1960년대에는 할당제의 논의로 발전했다. 이 논의들은 계속해 남성 정당 지도자와 당원들에 의해 외면당했지만 이 논의가 거듭되면서 결국 여성 선거권자들의 동의를 얻어냈고 1970년대부터 정당할당제를 채택하는 정당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정당들은 열띤 논의를 거쳐 할당제를 채택하거나 거부하기도 했지만 사회 차원에서는 정치 분야에서 ‘여성이 남성과 같은 권한을 가져야 하는가’라는 이슈에 대한 논의의 구조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중앙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 후보에 여성을 50% 의무적으로 할당하는 정당할당제보다 강력한 법적 할당제를 적용하고 있다. 이는 한국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강력한 메커니즘이 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국회의원 전체의 18%에 불과한 비례대표에만 적용함으로써 국회의원 중 여성의 비율은 여전히 하위에 머무르고 있다. 사회 전체에서 성평등에 대한 정당성을 논의하는 담론 구조가 결여된 한국 사회에서는 이처럼 강력한 법제도적인 성평등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성평등성은 좀처럼 높아지지 않고 있다.

북유럽이나 유럽의 다른 성평등 선진국에서는 성평등 제고를 위한 노력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는 제도적인 개선과 함께 성평등한 문화 인프라를 만들고 사람들의 성평등에 대한 동의를 높이기 위한 교육과 캠페인, 성별 고정관념을 해소하기 위한 기상천외한 성평등 사업을 포함한다. 스웨덴에서는 남성들이 일할 때 입기 편하다는 남성용 킬트(스코틀랜드 전통 의상)를 개발한 기업에 스웨덴의류섬유협회가 2007년 올해의 상품으로 선정하고 스웨덴 혁신청이 우수 아이디어로 채택한 사례가 있다.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광산촌에서는 남성 중심의 위험한 업무 관행을 여성의 안전을 기준으로 바꿔 남녀 모두에게 안전한 작업 문화를 형성한 사례도 있다. 2014년에 출범한 연합정부는 자신들은 페미니스트 정부라고 부르며 좀 더 성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을 자신들의 정책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들의 갈 길이 멀다면 우리의 갈 길은 더욱 멀다.


이수연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평등문화정책센터장